3일간의 연휴를 맞아 아내는 나에게 1박 2일의 여행을 제안했다.
시절이 하 수상하고 답답함을 해소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기에
흔쾌히 받아들였고 서해 바다를 향해 500리 이상을 단숨에 달려갔다.
아무리 봐도 우리는 역마살 부부임에 틀림없다.
매월당 김시습이 입적하기 전까지 10년 남짓 보냈던 만수산 무량사에 들렀다.
몇 년 전에 들를 때는 비가 내려서 우산을 쓰고 다녀야 했는데, 오늘은 날씨가 좋다.
보물 제 233호 무량사 석등, 잔디밭 위의 돌빛이 선명해서 눈에 확 들어온다.
석등은 절의 탑이나 건물 앞에 세워 부처나 보살의 지혜가 밝다는 것을 나타내는 등이다.
탑 앞에 불을 밝히면 33천에 다시 태어나 허물이나 번뇌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한다.
보물 제185호인 무량사 오층석탑, 1층 탑신에 비해 2층 탑신부터는
점점 크기가 작아지고 있다는 점에서 정림사지 오층석탑과 매우 닮았다.
백제와 통일신라의 석탑 양식을 조화시켜 만든 고려초기의 탑인 것이다.
보물 제356호 무량사 극락전, 하층출목보다 상층출목을 더 많게 만들어 화려하게 조성하였다.
보물 제1565호, 무량사 소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이 극락전 안에 큰 규모로 모셔져 있다.
극락전은 겉으로 보면 2층 건물이지만 안에 들어가면 층 구분이 없는 단층의 구조이다.
극락전의 공포는 다포식임을 알 수 있고, 단청빛이 은은하여 오히려 신비감을 자아내고 있는 듯하다.
명부전 내부
노란꽃의 상사화가 경내 곳곳에 피어나 있었다. 분홍색 꽃이 아닌 노랑빛 상사화는 처음 본다.
무량사 영산전 옆에는 매월당 김시습의 영정(보물 제1497호)만을 모신 건물이 하나 있다.
입적하기 전까지 10년간 무량사에 들어와 여생을 보냈던 그였기에 영정각이 마련된 듯하다.
진본은 따로 있고 그 사진본이 보관되어 있는데 전각 앞에는 편액이 걸려 있지 않았다.
'찌푸린 눈썹에 우수띤 얼굴, 눈의 총기'가 생생한 것으로 평가된다.
매월당이라는 인물사적 가치가 있어서 더욱 의미가 깊다고 하겠다.
영산전의 내부, 자그마한 오백나한의 모습을 보니 영천의 거조암 안에 모셔진 오백나한들과 비교되었다.
사람의 실제 크기와 비슷할 정도의 나한상이 제각각 다른 모습으로 앉아 있었는데 여기는 거의 똑같다.
네 개의 보물이 한 줄로 서 있어서 무량사를 찾는 이들은 한꺼번에 눈의 호사를 경험할 수 있다.
절에 들르기 전에 산채비빔밥을 맛있게 먹었던 삼호식당은 문화재청장을 지낸 유홍준 교수의 단골집이다.
유홍준 교수는 무량사에서 매우 가까운 거리에 있는 외산면 반교리에 8평 정도의 작은집 휴휴당을 짓고는
5도(都)2촌(村)의 삶을 살고 있고, 2주에 한 번 정도는 이곳을 찾아와 식사를 꼭 한다고 한다.
매월당 김시습(1443~1493)의 부도
부도 앞 검은 비석에 '오세 김시습지묘'라고 쓰여져 있다. '오세(五歲)'라니?
김시습의 별호이다. '세 살 때부터 한시를 썼고, 오세에 소학을 뗀 천재가 있다.'는
소문을 들은 세종 임금께서 직접 그를 불러서 한시 써내려가는 솜씨를 확인하고는
다섯 살 천재가 크게 되라는 뜻으로 '오세'라고 불렀다고 한다. '동봉'도 그의 호다.
무량사에서 외산면 반교마을까지는 아주 가깝다. 엎어지면 코닿을 만한 곳,
유홍준 교수가 원하던 삶(생활)의 여러 요소가 골고루 갖춰진 마을이었을 것이다.
이 마을이 돌담길로 유명하게 된 사연은 그의 저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도 밝힌 바 있다.
휴휴당 입구의 오른쪽 느티나무 그늘 아래엔 앉아서 쉴 수 있는 널찍한 바위 하나가 길쭉하게 누워 있다.
휴휴당 건물 뒤쪽의 낮은 담장이 돌로 쌓여져 있어서 소박한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돌담 주변에는 유교수가 좋아하는 개복숭나무도 여러 그루 보였다. 여름날의 풍성함이었다.
담장 뒤쪽길을 걸어와서 되돌아 본 풍경, 나무를 타고오른 능소화가 구름 사이에 매달려 있다.
'탁오대(濯吾臺)'라고 이름지은 정자가 하나 운치있게 서 있다. 바로 앞으로는 계곡물이 흐르고.....
탁오대에 담긴 의미가 뭔지를 생각해 본다. 굴원의 '어부사'에서 따온 말일 것이다.
'나의 무엇을 씻겠다'는 구체적인 대상을 밝히지 않아서 깊은 여운을 주고 있는 것 같고
굳이 그것을 밝히지 않음으로써 더욱 은근함을 드러냈으니 더 가슴에 와 닿는다고나 할까?
'창랑의 물이 맑으면 나의 갓끈을 씻을 것이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나의 발을 씻겠다'고 한
어부의 인생관을 드러내는 장면과 오버랩된다. 시세의 흐름을 결코 거역하지 않겠다는?
굴원은 초췌한 모습이 된 이유를 묻는 어부의 질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모든 사람들이 취해있으면 나 홀로 깨어있었고, 세상이 모두 탁한데 나 홀로 맑으려 하다가
이렇게 추방당하는 신세가 되었다고 고백했던 것이다. 굴원과 어부의 서로 다른 인생관,
무엇이 옳다고 규정할 수는 없지만 오늘날에도 분명히 수많은 굴원과 어부는 존재하고 있다.
아미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잠시 가두었다가 흐르게 하는 작은 연못이 만들어졌다.
고산 윤선도가 보길도에 정착해 살면서 만든 바 있는 '세연정'의 이미지가 보인다.
잔잔하게 흘러내리는 물의 흐름이 퍽 정감이 가고 정원의 배치가 전체적으로 자연스러웠다.
휴휴당의 출입구는 이렇게 단절되지 않고 자연스럽게 세상의 안과 밖을 연결해 놓았다.
주인장의 탁 트인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부분이다. 누구든 들어와서 쉬어가라는 뜻일 게다.
휴휴당을 둘러보고 마을을 빠져오는 길에 볼 수 있는 거리의 모습
반교마을 다리를 건너자마자 보령 쪽으로 서해안을 향해서 좀더 가다가
'성주사지'로 안내하는 이정표를 발견하면 머뭇거리지 말고 찾아가 보면 좋다.
여유를 갖고 두 번이나 찾았던 곳이었기에 이번에는 그냥 지나쳤다.
보령시내를 지나 들렀던 대천 해수욕장과 무창포 해수욕장은 인산인해였다.
연휴인데다 피서 막바지라서 그런지 수많은 차량들과 찜통더위가 뒤엉켜 있는 듯했다.
바닷물에 잠시 몸을 적셔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으나 오히려 더위를 먹을 것 같아서
한적한 곳을 찾아보기로 했다. 복잡한 곳을 찾는 것 자체가 내 정서엔 맞지 않는다.
길게 뻗은 남포 방조제는 광활한 갯벌의 바다를 멋없게 가로질러 놓았지만
두 지점의 거리를 아주 가깝게 만들어 놓기는 했다. 안타깝게도 두 개의 섬은 육지가 되었다.
방조제에서 바다쪽으로 돌출한 죽도와 육지로 편입되어 솟아있는 보리섬, 맥도가 그것이다.
죽도에서 바라본 방조제, 바닷물은 방조제 끝자락만 핥다가 썰물 때를 맞아 힘을 잃어버린 듯했다.
저 멀리 보이는 해수욕장이 무창포라고 한다.
아름다운 죽도를 개인의 소유가 아닌, 모두의 공원으로 만들자는 서명운동을 전개하는 분이 있어서
간단한 설명을 듣고 서명에 동참해 주었다. 현재까지 200여 명이 참여했고, 목표는 3000 명이란다.
여기 또한 수많은 차량과 사람들로 그득했다. 그러면 보리섬, 맥도로 가 볼 수밖에!
죽도 가까이 있는 보리섬 맥도에는 한 사람도 없는 텅빈 공간이었다.
소나무 숲이 적당하게 조성되어 있고 그 사이로 불어오는 솔바람이 압권이었다.
고운 최치원 선생이 간혹 이곳을 찾아 선유(船遊)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육두품 출신의 고운 선생이 당나라에서 그토록 그리던 신라로 돌아왔으나
등용되지 않는 현실을 개탄하면서 미련을 버리고 전국을 떠돌다가 이곳까지 왔었나 보다.
경치가 아름다운 이곳에 머물면서 병풍같은 바위에 한시를 새겼다고 전해진다.
1995년 남포방조제가 건설된 이후, 이 보리섬 맥도는 논 한가운데 솟은 바위산이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그 멋스러움은 남아 나그네의 발길을 유혹하고 있었던 것이다.
보리섬 한 켠에는 고운 최치원의 유명한 시, '추야우중'이란 오언절구가 새겨져 있었다.
당나라에 유학하면서 고국 신라로 돌아가고 싶은 강렬한 향수를 드러내고 있는 명시다.
보리섬 맥도(麥島) 정상에서 바라본 죽도, 바닷물 대신에 벼의 푸르름이 넘실거리고 있다.
멋진 피서지, 이 그늘진 곳에서 한 시간이 넘도록 편히 앉아 쉬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방파제 밑으로 오가는 수많은 차량 행렬과 뜨거운 바다에서 노니는 이들에게는 연민을......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해 한 달이 넘도록 단식을 하고 있는 분들에게는 죄송스러움을......
아내는 말했다. 여기에 계속 머물 수만은 없으니 당진의 '솔뫼성지'란 곳으로 가자고.
한국을 방문 중인 교황 성하가 그리로 오신다고 했으니 어쩌면 만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아내의 제안은 항상 좋은 결과를 가져왔으니 당장 당진 솔뫼성지로 달려가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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