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오후 2시, 고 김대중 대통령 국장이 엄수된다.
6일장으로 치러지는 장례식에 수많은 조문객들이 참여할 것 같다.
나는 어제(놀토) 아침 일찍 학교에 들러
학급에 들어가 정리를 좀 해 놓고,(임애진 학생이 먼저 와 있기에 함께 함)
아이들의 자율학습 출석상태를 점검할 겸 10시까지 교무실에 있다가
불현듯 봉하마을에 들러봐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길을 나섰다..
고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존경심의 표현을 어떤 형태로든 표현하고,
빈소를 찾아가 문상을 하는 것이 국민의 도리 같아서
이왕이면 봉하마을에 가서 고 노무현 대통령을 알현하고
마을회관 앞에 마련된 고 김대중 대통령 빈소에도 들러야겠다는 생각에
명혜당한테 연락을 하니 흔쾌히 가자고 한다. 의기투합이다.
집에 들어가 늦은 아침을 먹고 가벼운 옷차림으로 나섰다.
얼마 전, 명혜당이 명퇴 기념으로 구입한 현대 i30 승용차를 타고
기분 좋게 경남 진영읍을 향하여 고속도로 위를 달렸다.
"요즘, 뭐든지 잘 풀리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아요."
하면서 한껏 들떠있는 듯한 명혜당, 여하튼 좋다.
남밀양 IC로 빠져나와 진영읍까지 단숨에 도착했다.
읍 교차로에서 봉하마을까지는 5킬로 정도임을 보여준다.
석 달 전 노무현 대통령 문상왔을 때는 교차로에 차를 세우고
봉하마을까지 5키로의 그 밤길을 걸어서 갔었는데......
큰길에서 좌회전 해서 조금 지나니 멀리 보이는 사자바위,
그 왼쪽 옆으로 노짱께서 몸을 던진 부엉이바위가 보였다.
좁은 마을 길로 접어드니 차들이 제법 많았다.
님은 갔어도 그 님을 잊지 못해 찾아오는 발길이고
다들 우리같은 마음으로 찾아오는 분들이 아닐까 싶다,
노짱을 툭하면 비난하던 친구의 얼굴이 떠오른다.
아직도 그는 노짱을 미워하고 있을까 궁금해졌다.
봉하마을 회관앞에는 이미 차들로 꽉 차 있었다.
길 오른쪽 넓은 공간에 또 다른 주차장이 있어서 거기에 주차를 하고,
노무현 대통령의 무덤이 있는 곳으로 발을 옮겼다.
길 양편으로 장사하는 분들이 참 많다. 사람많은 곳이니 당연하다.
님은 갔어도 그 님 때문에 많은 사람 먹고 산다. 그래 같이 사는 거다.
햇볕이 작열(灼熱)하는 듯하다. 맥고모자를 하나 사 썼다.(4,000원)
노무현 대통령이 즐겨 쓰던 모자 아니던가?
명혜당은 양산을 받쳐 들고 나를 따라 오는데 말이 없다.
왼쪽의 사저 입구엔 한 경비병이 쓸쓸히 지키고 있다.
노짱이 세상을 뜨던 날 이른 아침,
사저를 나와 비서관과 함께 걷던 그 마지막 길을 생각한다.
왈칵 솟아나는 눈물을 막을 수가 없다.
왜 그렇게 가야만 했을까
누가 그를 돌아오지 않을 길로 가게 만들었을까?
사관이 있다면 그는 그 사건을 어떻게 기록할까?
밭이었던 곳을 흙으로 돋워서 묘역을 만든 것 같다.
'대한민국 제16대 노무현 대통령님 묘역 안내'라는 안내문이 서있다.
그림과 함께 묘소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지하는 안장 시설이고, 비석은 남방식 고인돌 형식이다.
유골을 모신 백자도자기를 연꽃석합에 담아
다시 대리석 석함에 봉안하여 지하에 매장하는 방식으로
안장했음을 설명하고 있는데, 여기에 사용된 것들은
지역균형 발전이라는 대통령님 국정철학에 맞춰
전국 팔도 물산이 고루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제주의 현무암으로 된 넓고 투박한 비석에는
'노무현 대통령'이라 내려쓴 지관스님의 작은 글씨가
그 투박한 오목새김 글씨가 눈에 확 들어와 박힌다.
비석 받침 강판에는 대통령의 어록 중 시민주권론을 강조한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입니다'
라고 한 신영복 선생의 힘찬 글씨가 새겨져 있다.
특이하게 묘역 뒤에는 경관과 묘역을 분할하는 강판벽이 설치되어
묘역으로서의 경건함을 드러내고자 한 부분도 있다.
잠시 고개 숙여 님의 명복을 빌어 본다.
'님이여, 당신은 진정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당신은 진정 우리가 바라는 대통령이셨습니다. 편히 잠드소서'
흰국화꽃 수백 송이 묘 앞에 놓혀져 있다.
마을 방문객들을 맞으면서 웃고 있는 모습의 작은 사진도 있다.
금방이라도 우리들에게 무슨 말을 들려줄 것만 같다.
님이 마지막으로 걸어 오르던 그 길을 따라가 보았다.
왜 그리 눈물이 솟아나오는지 주체할 수가 없다.
차마 흐느껴 울 수는 없고, 눈을 감아서 눈물만 떨궈냈다.
계속 올라갈 수가 없다. 부엉이 바위 아래쪽만 가 보기로 했다.
투신한 장소는 금줄로 처져 있어서 들어갈 수 없어도
님의 죽음을 애도하는 분들이 남긴 수많은 리본글이
그 금줄에 걸려있어 경건함을 더하고 있다.
"민주화의 두 거인이 함께 사라져 우리 가슴이 텅 미었습니다. 존경합니다."
"무력한 20대, 살아서 할 수 있는 것 눈물밖에 없네요. 죄송해요. 싸울게요"
특별하게 종이에 쓰여있는 글이 눈에 들어와 기록해 둬 본다.
넓고 검은 천에 쓰여진 님의 유서가 눈에 들어왔다.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신세를 졌다.
나로 말미암아 여러 사람이 받은 고통이 너무 크다
앞으로 받을 고통도 헤아릴 수가 없다.
여생도 남에게 짐이 될 일밖에 없다.//
건강이 좋지 않아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읽을 수도 없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 하지 마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화장해라.
그리고 집 가까운 곳에 아주 작은 비석 하나만 남겨라.
오래된 생각이다."
...............................
명혜당이 건네는 손수건으로
눈물을 한참 동안 훔쳐내고 털레털레 내려오는데,
얼마 전 정선의 민둥산 자락에서 본
그 쪽빛의 달개비꽃이 배시시 웃더니 내 발목을 잡는다.
카메라를 들이대어 사진 한장 찍어 주었다.
'달개비꽃(닭의장풀)은 저렇게 파릇한데,
당신은 우리가 바치는 한 송이 흰국화꽃을 받으며,
그저 말없는 위로만으로 저희를 달랠 수 있겠습니까?
훌륭한 정치 지도자들을 잃어버리고,
희망없는 시대를 살아가야 할 우리 국민들을 어찌 하려구요.
왜곡된 광고와 선전만 있고, 진심어린 실천이 없는 아득한 시대에
그저 말없이 웃고만 있으면 되겠습니까?........'
마을회관쪽으로 가니 빈소가 보인다.
사람들이 줄을 서서 문상을 하고 있다. 명혜당과 나란히 그리로 갔다.
검은 천에 '근조, 고 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 분향소' 라 쓰였고,
흰국화로 장식된 제단이 말끔히 차려져 있고,
김대중 대통령의 영정이 가운데 놓였다.
영정의 사진은 아주 건강할 때의 인자한 모습이다.
민주당 ** 지구 위원장이란 사람이 상주가 되어 문상객들을 맞고 있다.
흰국화 한 송이 제단에 바치고, 정중하게 절을 올렸다.
방명록이 마련되어 있어서 몇 글자 남겨 놓고 나왔다.
구름 한점없는 날씨라서 돌아오는 길은 땡볕이었다.
대구까지만이라도 고속도로가 아닌 국도로 가기로 했다.
얼마 전까지 전국 최고의 더위를 자랑하는 밀양을 지날 때는
차밖의 온도가 36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지명이 빽빽할 밀(密), 볕 양(陽)이라서 더욱 실감이 난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밀양'에서도 강렬한 햇빛이 강조된 바 있지만
유난히 밀양의 이미지는 뜨거운 날씨와 관계가 깊다.
몇 년 전 밀양강 가의 영남루를 오른 적이 있어서 잠시 들러려다가
그냥 밀양은 지나치기로 했다. 더운 날씨 탓이다.
청도의 와인터널에 잠시 들러
드라마 '떼루아'의 촬영장소를 잠시 훑어 보고,
경산을 거쳐 대구에 도착, 시원한 막국수로 늦은 점심을 먹고,
어머니가 좋아하는 감자전과 감자 송편을 좀 사서 망우당 공원으로 갔다.
부모님이 장사하고 계신 공원사업장엔 휴일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유난히 많고 그늘이 생긴 곳을 다 차지하고 있다.
바둑과 장기를 두면서 하루 종일 즐기는 사람들인데,
4,50대의 장년층이 제일 많고, 6,70대의 노인들도 쾌 많다.
유일한 여성은 어머니이다. 명혜당이 끼었으니 오늘은 둘이다.
아버지는 약간 떨어진 곳에서 누군가와 바둑을 두고 계신다.
다가가서 인사를 드리니,
"애비 왔냐, 에미도 왔고? 가서 따끈한 커피 한 잔 히여."
어머니는 여기저기 주문받느라 정신없이 바쁘시다.
"아주머니, 여기 냉커피 둘, 마차 세 개 주세요."
"국수 두 개, 라면 하나 끓여 주세요."
"..............."
공원에서의 영업행위라서 때로는 단속의 대상이 되기도 하지만,
어른들의 쉼터 공간을 만들어 주는 것이라 판단했는지
이제는 거의 간섭을 받지 않고 일을 계속하고 계신다.
당신들의 건강을 위해서도 괜찮은 것 같아서 이젠 자식들이 말리지 않지만,
이미 어른들은 솔솔하게 돈 버는 재미에 말려도 통하지 않을 정도다.
아직 건강하시다는 증거이니 한편으로 마음을 놓고 있는 우리 자식들,
상식적으로 다른 분들이 이해할 수 있을까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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