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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성산의 능선길

오늘 나는

by 우람별(논강) 2013. 3. 10. 0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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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시 고아읍 원호리에 소재한 접성산(接聖山)이 오늘 우리가 오르기로 한 산이다.

아주 나즈막한 산(해발 374미터)이지만, 접근성이 좋아 구미시민들이 종종 찾곤 한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접성산 남쪽 언저리로 대규모 아파트가 두 군데 들어서면서

그 주민들이 즐겨찾는 산이기도 하다. 아파트 앞쪽에 위치한 들성못 주변에는

순환 데크 시설이 만들어지면서 아침 저녁으로 그 위를 산책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아파트 단지를 중심으로 그 뒤는 공기좋은 산, 그 앞은 훌륭한 공원시설이 있어서

나도 이 동네를 지나다니면서 참 살기좋은 곳이로구나 하는 평가를 내린 바 있다.

그런데 가까운 친구 토담 선생이 그곳으로 이사를 온 것이다. 대구에서 구미로,

나보다 토담이 그 아파트 동네와 인연이 깊었던 것임에 틀림없다.

집을 구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고 들었는데 친구는 운이 좋았다.

 

이삿짐 정리를 마치고 마음의 여유가 생겼는지 며칠 전 우리 부부를 불러서

신고식을 하더니 오늘은 드디어 벼르고 벼르던 뒷산을 올라보기로 한 것이다.

집에서 산 정상이 있는 대황정까지는 십리가 약간 넘는 거리이다. 왕복하면 제법 운동이 된다.

배낭에 물병 두 개를 꽂고, 과일 몇 가지를 챙겨 담아 천천히 등산을 시작했다.

토담 선생의 등산 복장이 가관이다. 털모자를 썼고, 오리털 잠바에 점퍼까지 입었다.

그리 춥지도 않은 날씨이고 운동하면 땀이 날 터이니 털모자와 오리털은 곤란하다.

그러나 토담의 아내는 워낙 신경이 쓰이는지라 그런 모습을 연출한 것 같다.

챙이 달린 내 모자로 바꿔 쓰게 했다. 등산용 지팡이 두 개를 챙겨 그에게 주었다.

필요없다고 하더니 나중에는 이것 없으면 힘들 뻔했다면서 준비를 잘 한 것 같단다.

 

토담은 작년 2학기 반 년 가량, 갑작스레 찾아온 병마와의 싸움으로

몸이 많이 쇠약해져 있는 상태다. 몸무게가 15킬로그램 정도 빠져 있는 것이다.

항암치료를 4차례에 걸쳐서 받다보니 그 많던 머리숱도 없어지고 하얗다.

얼마 전에 마지막 항암치료를 끝냈으니 이제는 회복하는 것만 남았다.

머지 않아 차츰차츰 원기를 회복하고 다시는 병원을 찾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하룻밤 사이에 설악산 종주를 끝낼 정도로 왕성하던 체력을 되찾을 것이다.

오늘 등산을 통해 반 년의 침묵을 깨고 재활의 기지개를 켜 보는 것이다.

 

접성산은 숨을 헐떡이며 올라야 하는 오르막이 군데군데 있어서 좋다.

헐떡이며 오르고 나면 완만한 내리막이 있고, 평평한 능선도 적당히 있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웬만한 오르막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지만

토담은 절대로 무리해서는 안 되기에 힘이 좀 든다 싶으면 자주 쉬었다.

물을 마시고, 과일도 섭취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까지 곁들이면 좋다.

어느 지점을 오르니 구미시에서 최근에 만들어 놓은 작은 정자가 하나 있다.

먼저 와 난간에 걸터앉아 쉬고 있는 아주머니 두 분이 우리에게 묻는다.

왜 그리 천천히 가냐고, 조금 전 우리를 추월해서 갔던 분들이다.

토담은 농담삼아 답하길 "우리 나이 되어 보세요. 다 그리 됩니다."하니

"뭐 나이도 우리와 비슷해 보이는데, 뭘 그러세요." 하면서 웃는다. 

이야기를 더 주고 받다 보니 토담과 같은 아파트에 사는 부녀회원들이었다.

부녀회원들이 역할을 확실히 해서 아파트가 깔끔하다는 소식을 들었다면서

토담이 추켜 세우니 두 아주머니는 으쓱해졌는지 더 많은 웃음을 흘린다.

 

능선길은 머지않아 진달래의 향연을 보여줄 것이다.

길 좌우로 진달래의 줄기가 꽤 많이 보였고, 작년 이맘때의 감격을 되살아났다.

굴참나무, 소나무들이 어우러져 하늘을 덮고 있어서 한여름의 피서도 가능하다.

침엽수인 소나무와 활엽수인 참나무와의 경쟁에서 소나무가 진다고 한다.

소나무가 참나무의 왕성한 번식력을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삼림의 80%를 차지하고 있던 소나무가 이젠 그 세력을 잃어

20% 정도밖에 되지 않으니 그 사실을 증명해 주고도 남는다.

언젠가 관심있게 읽었던 '신갈나무 투쟁기'를 연상시키다. 

 

온전한 형태의 솔방울을 몇 개 주워서 토담의 배낭에 넣어 주었다.

실내의 습도 조절용으로 솔방울을 이용하면 좋다는 것쯤은 상식 아닌가?

 

수분이 날아간 솔방울은 있는 대로 벌어져 있지만 수분을 머금은 솔방울은 

촘촘하게 자신의 몸을 웅크리는 성질이 있다. 그래서 솔방울을 물에 한 시간 정도 담가두면

솔방울은 물기를 잔뜩 품은 채 부피가 작아지면서 단단한 몸통으로 변한다.

그것을 빈 그릇에 담아 건조한 곳에 담아두게 되면 시간이 점점 흐를수록

촘촘하게 밴 솔방울이 차츰차츰 벌어지면서 그 안의 수분을 발산하는 것이다.

토담도 당장 방안의 건조한 공기가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잘 됐다면서

내 제안을 받아들여 당장 오늘부터 습기조절용으로 쓰겠다고 한다.

 

 

 

 

 

 

 

 

 

 

 

쉬엄쉬엄 2시간 20분만에 4킬로 남짓되는 정상까지의 거리를 모두 걸었다.

정상의 돌팻말과 기념사진 하나 남기면서 친구는 몹시 만족해 한다.

드디어 오랜만에 산을 하나 정복했다는 성취감이 누구보다 클 것 같다.

대황정 정자에 올라 눈아래 사방을 둘러보니 희뿌연 안개인지, 황사인지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먼지가 넓게 퍼져 있는 것 같아 다소 께름찍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일 뿐, 배낭에서 먹을 것을 꺼내 놓으니 금방 입안에 침이 가득이다.

둘러보니 식구들끼리 둘러앉아 준비해 온 음식을 나누는 모습이 있는가 하면,

거동이 불편한 사람이 도우미와 함께 땀을 뻘뻘 흘리며 가쁜 숨을 내 쉬는 모습도 보인다. 

60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한 어른은 혼자 김밥을 들고 있는데 퍽 외로워 보였다.

그래도 우리는 친구 사이라서 의지도 되고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다만

나이들어 혼자 산을 오르는 기분은 또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자, 이제 하산을 해야 한다.

토담의 아내가 걱정을 하며 기다리고 있는 시간이다.

혹시 남편의 몸에 무리가 되지 읺았을까 하는 걱정인 것이다.

하산 길은 아무래도 오르막보다는 내리막이 많아서 걷기가 좋다.

그래도 토담은 무리가 되는지 땀을 많이 흘리고 있다. 날씨 탓도 있지만

옷을 너무 두껍게 입은 나머지 온몸이 비에 맞은 듯 젖어 있었던 것이다.

잠시 쉬면서 땀에 젖은 속옷을 벗고, 오리털 점퍼를 벗어 배낭 속에 넣었다

'운동도 좋지만 오늘 너무 무리하는 것 아닌가 모르겠네' 하니 괜찮단다.

피 생성이 원활하지 못해서 빈혈증세가 다소 있을 수 있지만 기분 최고란다.

하산 해서 점심 한 그릇 하고, 낮잠 두어 시간 자면 회복될 수 있단다.

 

이럭저럭 등산 시작 지점까지 내려오니 토담의 아내는

벌써부터 집에서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남편의 표정을 본다.

서로 바라보며 걱정해 주는 마음들이 오가는 순간이기도 하다.

"토담, 오늘은 내가 그대의 구미 입성을 환영하는 뜻에서 점심을 쏠게.

(토담의 아내에게) 쌈밥 혹은 토속 도토리 묵밥 정도가 어떨까 하는데

음식의 선택은 원재 엄마가 하세요.", "고마워요. 쌈밥이 좋겠네요."

 

'뚱이네 마실'이라는 식당에서의 점심 식사는 꿀맛이었다.

건강할 때의 식사량의 80%는 회복했다면서 맛있게 먹는

토담의 모습이 참 보기 좋았고, 그것을 옆에서 그윽하게 지켜보는

원재 엄마의 웃음도 얼마나 보기 좋았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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