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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전, 덕산 두 시인님의 구미나들이

오늘 나는

by 우람별(논강) 2013. 3. 25. 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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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전 김재환 시인과 덕산 배창환 시인이 모처럼 구미에 와서

함께 술 한잔 하고 우리집에 하룻밤 머물면서 마음 편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돌아오는 4월 12일 예정된 청록파 시인 추모 전국시낭송대회에

덕산 형의 시를 갖고 출전할 예정으로 있는 나로서는 그간 준비해 온 것을

한번 들려드리고 조언을 들을 수 있는 기회로 삼을 만하였다.

 

토요일 저녁, 금오산 아래 청기와 한정식집에서

고등어조림으로 저녁 식사를 한 뒤 원호리 동네로 자리를 옮겨 들성못을 한 바퀴 돌고,

수하헌 선생이 한 잔 산다고 해서 '더스틴호프만'이라는 분위기 좋은 술집에 들렀다.

그곳에서 시작된 안주 곁들인 흑맥주 마시기는 꽤 오랜 시간 계속되었다. 

두 형님의 재미난 건강이야기와 수하헌 선생의 수수함이 한 몫을 했다고나 할까.

이야기 중에 잠시 끼어들어 덕산 형이 지은 시를 낭송해 보기로 했다.

 

고등학교 다닐 때였지

노가다 도목수 아버지 따라

서문시장 3지구 부근, 할매술집에 갔지.

담벼락에 광목을 치고 나무의자 몇개 놓은 선술집

바로 그곳이었지. 노가다들이 떼서리로 와서 한잔 걸치고 가는 곳

대광수지리 삶은 돼지다리에서 하얀 김이 설설 피어올랐고

(하략)

 

<서문시장 돼지고기 선술집>이란 시인데, 

연극적인 요소를 좀더 살리고 톤의 변화를 주면 좋겠다는 조언을 들었다.

이 시 말고 청록파 시인의 시 가운데 하나를 지정시로 선택해야 한다고 해서

조지훈의 '봉황수'란 작품을 선택했고, 며칠 연습도 했으니 낭송을 추가했다.

그러나, 관객 입장에서 본다면 '봉황수'는 쉽게 이해될 수 있는 시가 아니니

다른 시로 바꾸는 게 좋을 것 같다는 반응이었다. 예상 밖이었다.

사실, 조지훈 시인의 꼿꼿한 선비정신과 민족의식이 잘 나타난 시이고

현재의 우리나라의 처한 상황과 오버랩되는 부분도 있어서 선택했는데

두 시인 형님들의 반응은 예상과 달라 다소 혼란스러웠던 것이다.

되도록 빨리 다른 시를 찾아보는 것으로 결론을 냈다.

 

호프집에서의 술 한잔은 결국 자정을 넘기고 나서야 끝이 났다.

광평동 내 아파트로 돌아와서도 막걸리 한 통과 소주 한 병을 더 비우고

라면까지 끓여먹고 새벽 2시가 지나서야 잠자리에 들을 수 있었다.

덕산 형은 아직도 아래 위의 내복을 벗지 못하고 있기에 입을 댔더니

거처하는 단독주택의 방이 워낙 추워서 그렇다며 웃었다.

 

*  *  *  *  *  *

 

잠시 눈을 붙이고 일어났는데 벌써 날이 훤하다.

두 형님들도 일찍 잠에서 깨었다면서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고 있다.

남전 형은 오랜 세월 아침운동을 해 오신 분이라 몸동작이 썩 익숙하다.

나한테 몇 가지 방법을 직접 제시하면서 따라해 보라고 하지만 쉽지 않았다.

일종의 요가라고나 할까? 나로서는 흉내내기 어려운 동작들이다.

 

아홉 시쯤 되어 아내가 차린 조촐한 아침상이 준비되었다.

북어국에 야채가 제법 입맛을 돋군다. 두 형님들이 맛있게 드시니 좋다.

커피를 마시고 과일을 깎아서 몇 조각 먹으면서 남전형이 또 하나 제안을 하셨다.

상주에 같이 가 보는 것이 어떠냐, 화서 IC 부근 '신봉솔의길'을 찾으면 되는 위치란다.

의기투합이 되어 어느새 우리 모두는 곧장 상주를 향해 길을 나섰다.

 

화서 IC에서 내려 남전 형이 꼭 가 보고 싶어했던 곳을 금방 찾았다.

어쩌면 퇴임 후 조촐한 집을 하나 짓고 살게 될지도 모를 곳이라 했다.

상주까지 온 김에 야학 후배가 보고 싶어서 전화를 거니 받는다. 잠시 만나자고 했다.

어디서? 정준모 선생 집에서. 내 친구집이기도 하고 아내의 친구집이기도 한 곳이다.

정선생 부부는 봄을 맞아 나무를 심을 수 있는 공간에 성토작업을 하고 있었다.

손님이 갑자기 들이닥치니 얼마나 난처할까 싶기도 하다마는 워낙 인심좋은 집주인들이다.

일단 다섯 명의 손님들은 거실로 안내되어 급히 준비한 듯한 매실차 한 잔을 대접받았다.

'정선생은 아파트에서 살다가 단독주택으로 이사 와 추운 겨울을 어떻게 보냈을까?'

정남향의 탁트인 공간을 차지한 집의 거실은 내리쬐는 봄볕에 온기가 그득했다.

잠시 후 이제는 갈 시간이 되었다면서 일어서니 손님을 그냥 보낼 수는 없다면서

상주남부초등학교 옆의 유명한 식당에 들러 칼국수나 한 그릇 하고 가잔다.

선배들에게 기어코 점심을 사먹여 보내겠다는 후배의 마음이 봄처럼 따스했다.

 

봄내음을 물씬 맡으면서 화서, 상주, 무을, 선산 등지를 다 돌고

덕산 형의 차가 주차되어 있던 금오산 아래로 돌아왔을 때는 오후 3시였다.

오랜만에 함께 했던 두 선배님을 전송하고, 전날 약속한 접성산 등산을 위해

토담과 창렬 선생을 만나 7킬로 정도의 산길을 걸으면서 하루를 정리했다.

 

가까이 지냈던 분들을 하루 이틀만에 

동시에 만날 수 있었던 인복있는 주말 휴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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