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2일 토요일 아침 6시 남짓되어 출발, 충주 외갓집 동네를 잠시 들렀다가
부모님의 유택이 될 곳을 둘러보았다. 어머니께서는 돌아가시면 화장을 해 달라 하셨지만
아버지께서는 절대로 화장은 안 되고 매장을 해야 한다 고집하셨다.
외삼촌의 도움을 받아 외갓집 동네에 유택을 마련할 수 있었다.
장원네와 우리 형제들이 추렴해서 가족묘원처럼 만들기로 한 것이다.
며칠 전에 봉분 뒤로 돌로 축대를 쌓는 작업을 했다.
돌 사이에는 영산홍류의 나무를 심으면 적당할 것 같다.
온갖 풀로 무성해서 어설퍼 보이던 유택 자리가
깔끔하게 작업을 끝낸 뒤라 그런지 제법 마음에 든다.
어머니께서는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실까? 태어나 자란 고향집쪽을 향해 바라보시는 시선이 예사롭지 않다.
잔디를 깔아 유택을 단장하고 정리하면 제법 훌륭한 공간으로 탈바꿈되지 않을까 싶다.
폭신폭신한 잔디를 밟는 기분도 좋을 것 같다. 부모님의 숨결이 느껴지는 공간일 것이다.
안개 속으로 보이는 외갓집 동네, 충주시 중원군 소태면 오량 마을,
어릴 적 나의 추억도 깃들어 있는 곳이다.
어머니, 무슨 생각을 하세요? 옆을 바라보시는 모습 또한 예사롭지 않네요.^^
9시쯤 여주 이모네집에 도착하니 인천 이모님 내외가 와 계셨다.
하루 전날 오셔서 큰이모네와 함께 밭에서 배추 250포기 정도를 베어 와서
김장 준비를 밤새도록 하셨단다. (오량마을에서 여주 이모집까지 40킬로 거리!)
노인이 되신 두 이모부께서 김칫속 만드는 작업을 하고 계신다.
채칼로 무를 잘게 자르고 계셨는데, 카메라를 든 조카를 보더니 환하게 웃으신다.
그냥 바라볼 수만은 없어서 큰이모부 자리를 빼앗아(?) 냉큼 끼어들었다.
채를 썬 무에 고추가루를 듬뿍 뿌리고 버무리는 작업에 열중이신 이모님들과 어머니
백발의 큰이모는 일을 얼마나 잘 하시는지 대장암 환자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소금에 절인 배추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는데, 어느 정도 시간이 걸려야 김장을 끝낼 수 있을까?
드디어 작업을 시작해서 4시간 30분 정도 걸려서야 끝을 낼 수 있었다.
나도 이왕에 끼어들어 작업을 돕기 시작한 이상 끝까지 해 보기로 했고
잠시도 쉬지 않고 배추에 김칫속 넣기 작업에 참여했음을 밝힌다.
어머니 곁에서 이모들과 이야기하면서 평생 잊지못할 경험을 한 것이다.
이모님들께서 어찌 그리 일을 잘하냐며 칭찬하는 말씀이 귀에 쟁쟁하다.
젊은 나도 무척 힘들었는데, 노인들이야 오죽했을까 싶다.
이제 마무리 작업, 이웃에 사는 인심좋은 아주머님이 오셔서 큰도움을 주셨다.
그 비싼 고춧가루도 꽤 많이(10근은 족히 될듯) 가져와 양념 만드는 데 쓰라고 주셨다.
시골 인심이 얼마나 후하고 따스한지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이종동생과 제수씨가 서울에서 늦게 도착해서 일손을 거들었다.
고속도로의 교통체증이 심해서 무려 3시간이나 걸렸다고 한다.
이종동생 장원이의 아내인 제수씨는 아주 인상 좋은 효부다.
우리 엄니가 얼마나 좋아하는지 질투가 날 정도다.
이날도 질좋은 돼지고기 수육을 엄청 많이 사왔고,
시어머니와 이모님들을 위해서 신발 3종 세트를 사왔다. 제수씨 고마워요.^^
얼마나 일을 시원시원하게 잘 하시는지, 아무리 봐도 암환자가 아니시다.^^
이모님, 끝까지 암을 이길 수 있다는 희망 잃지 않고 열심히 사셔야 돼요.
이모님의 연세는 그리 많지가 않아요. 아직 젊어요 이모님^^
드디어 김장 일을 끝내고 늦은 점심을 하는 장면이다. 푹 삶은 돼지고기 수육을
소금에 절인 배추에 싸서 먹는 맛이란 직접 먹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얼마나 맛이 좋던지 소주잔 기울이면서 배가 터지도록 먹을 수밖에 없었다.
인천에 사는 이종동생 인기네 식구들이 이모네 집을 찾았다. 오랜만에 만나니 그저 반가웠다.
큰이모는 며느리가 사 준 털신을 신어보고는 엉덩이춤 추면서 기분이 좋으시다.
이종동생 인기(38세)는 현재 세 딸의 아버지다. 제수씨의 뱃속에는 또 한 생명이 자라고 있단다.
저출산에 시달리는 우리나라 처지로 본다면 인기 동생은 애국자임에 틀림없다.
홍익대학교 건축학과의 겸임교수로 일하고 있는데 패기 넘치고 치밀한 젊은이다.
건축가로서 큰 성공을 거두기를 간절히 기원해 본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난 세 자매는 뒷산의 밭에 가서 배추 몇 포기와 파 몇 단을 수확해서 가져오셨다.
조금이라도 언니, 동생들에게 나눠주고 싶은 큰이모의 따스한 마음씨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뒷산의 터밭을 나도 가 봤지만 고개넘어 걷는 가을길의 감촉이 눈물겨울 정도로 좋았다.
밤새 근무를 마친 외삼촌께서 울산에서 여주까지 쏜살같이 달려오셨다. 오전 9시경,
마당에 차린 술 자리엔 푹 삶은 돼지수육과 노란 배추포기가 입맛을 돋군다.
어머니는 터밭의 파를 뽑고 계신데, 챙겨서 대구로 가져가시려는가 보다.
큰이모는 마음대로 뽑아 가라 하신다. 옆집의 아저씨한테도 필요한 만큼 뽑아가라 하셨다.
승용차 6대가 주차하고도 남는 너른 마당에서 식구들이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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