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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주의 토지문화관, 충주 주변

여행 이야기

by 우람별(논강) 2011. 8. 2.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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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 2일의 여행을 또 떠났다.

강원도 원주의 토지문화관, 충주 등지를 둘러보는 것으로 정했다.

어차피 영주의 무섬마을에 들렀다가 움직여야 했기에

그쪽으로 자연스럽게 여행지가 정해진 것이다.

 

지난 토요일 영주의 무섬마을에서 1박 2일의 마음샘터 모임이 있어서

올해만도 영주 부석사 일대를 세 번씩이나 찾았던 것인데, 그것도 모자라 또 갔다.

민박했던 집(오헌 종택)에 가지고 갔던 선풍기를 깜빡 잊고 두고 왔기 때문이다.

연세 많으신 주인 양반은 그냥 기증을 하지 또 왔냐며 농담삼아 핀잔을 주는데 좀 부끄러웠다.

무섬마을을 떠나던 날, 손목시계를 두고 와서 저녁 무렵 주인장을 다시 찾았는데

또 선풍기를 찾으러 왔다고 했으니 얼마나 기가 찼을까 싶다.

인생의 장년기에 흔히 나타나는 건망증이라서 그러려니 하면서도

바짝 긴장이 되는 것은 왜일까?

 

 

무섬마을의 내성천은 계속되는 비로 며칠 전보다 물이 많이 불어있었다.

 

원주로 가는 중앙고속도로는 비가 하염없이 내리고 있었다.

아내는 빗길에 위험하지 않겠냐 차라리 돌아가는 게 어떠냐 한다.

그럴 수는 없고 '원주 말고 충주로 갈까?' 하니 좋단다. '그래도 그렇지.....'

일단 마음 먹은 거, 원주까지 그대로 달려가기로 한다.

단양 IC에서 잠시 내려 자장면으로 점심을 때우고(자장면 매우 맛있음).....

 

어느 덧, 남원주 IC에서 내려 충주 방향으로 다시 내려가는 길로 접어들었다.

 

토지문화관(1999년 완공)에서 내려다보는 탁 트인 공간, 소설 <토지>의 산실이다.

작가 박경리가 세상을 뜨기까지 이곳에서 늘그막을 보냈던 곳이다.

강원도 원주시 흥업면 매지리 570번지, 얼핏 봐도 명당이다.

좌청룡 우백호에 안산까지 앞에 두고 있으니......

 

작가의 친필 원고. 빛바랜 원고지 위에 칸칸이 써내려간 작가의 꼼꼼함이 배어 있다.

 

대하소설 '토지', 현대문학사에 큰 획을 그은 작품으로 평가되는 방대한 양의 장편소설,

26년간에 걸쳐서 5부 21권으로 완성된 <토지>, 우리 민족의 현대사가, 우리 민족의 삶이

광활한 땅을 배경으로 박경리 작가의 손에서 하나하나 해석되고 묘사되었으니

작가의 열정과 역할에 다시금 경외감을 느끼며 머리를 숙인다.

 

 

 

토지 문화관 1층 전시실에는 작가의 유품을 몇 점 볼 수 있었다. 옥편과 돋보기, 작품 노트,

 

故 박경리는 작가이기 이전에 생활인으로서, 여성으로서 바느질 도구를 많이 사용했는가 보다.

화려한 안경집이 인상적이고 똑딱단추, 실패, 거울, 커다란 단추 등이 옛모습 그대로다.

 

작가께서 즐겨 입던 옷 세 벌이 단정히 개어져 있다. 몸은 갔으나 유품은 저렇게 남는가 보다.

나같은 사람이야 죽으면 저런 유품도 없을 것이다. 그저 한 줌의 재로 흔적없이 사라질 뿐이다. 

 

 

 

故 박경리 선생의 초상화는 큰 도마(?) 위에서 더 인상적이다.

백발의 모습으로 까치를 응시하고 있는 모습이 나무판에 새겨져 있다.

그 옆에 서니 아직 난 너무 젊다. 노안, 건망증, 발음 불량을 탓할 나이가 아니다.

아직은 더 힘쓸 나이니까 실망하지 말라며 위로 말씀을 주시는 듯했다.^^

 

많은 문인들이 찾아오는 창작 집필실, 장기 3개월, 단기 1개월, 소정 기간에

작가들이 신청을 하면 여기에 머물면서 무료로 창작에 전념할 수 있도록 배려한단다. 

 

토지문화관 제일 뒤에는 야외 무대가 설치되어 있다.

돌계단 객석에 앉아 바라보는 온갖 예술행위를 상상해 본다.

저 원형무대에서는 스토리 텔링이나, 시낭송이 어울릴 것 같다.

문태준 시인이 이곳에 머무른 바 있다고 하는데, 그의 시가 낭송되었을 것 같고,

신경숙 소설가가 이곳에 머물 때는 그녀가 살아온 과정이

누군가에 의해 소설처럼 이야기되지 않았을까 싶다.

 

 

토지 문화관 옆에 있는 이 건물엔 지금 누가 살고 있을까?

빈 집? 박경리의 외동딸이 가끔 들를 것만 같고 사위인 김지하 시인이

가끔씩 찾아와 장모님을 회상하면서 자신도 늙었음을 한탄할 것만 같다.

젊었을 때는 부당한 정치권력에 맞서 목숨 걸고 싸웠던 김지하 시인,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를 갈망했던 시인, 지금은 그 존재감이 어디에?

조용히 조용히 지내고 있는가 보다. 그도 이젠 정말 늙었나 보다.

사진을 보니 지팡이를 짚고 있다..... 그의 부인도 이젠 할머니 아닌가? 

 

 

 

 

 

원주 귀래에서 양안치재(해발 380미터)를 넘으면 행정구역이 바뀌어 충북 충주 소태면으로 연결된다.

나의 외갓집 동네가 지척에 있다. 풀무골을 지나 동막골을 넘으면 내 고향 논강리 강현 마을이다.

 

나, 우람별(논강)의 생가, 충주시 엄정면 논강리 610번지

옛날엔 'ㄱ'자형의 안채와 '一'자 형의 바깥채 두 채로 구분되어

그 사이 마당이 넓고 삽작문까지 달려 있는 초가집이었지만,

지금은 다 헐려 흔적조차 없고 새로 지은 조립식 건물만이 서 있다.

소꿉친구 현주네 집으로 연결되던 작은 길도 없어져 풀만 무성하고,

어린 삽살개로 보이는 개 한 마리가 낯설은지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다.

마당에 멍석을 펴고 누워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던 그 시절이 그립다.

 

고향집 바로 앞 옥수수밭을 보니 어린 시절 추억에 자꾸 우습다.

동네 친구들과 술래잡기할 때, 옥수수밭은 훌륭한 은신처이기도 했고,

옥수숫대에 물이 한창 올라있을 때는 그 대공을 적당한 길이로 잘라서

껍데기를 이빨로 벗긴 다음 보드라운 대공을 씹어 먹으면 그 단맛이 그만이었다.

사탕수수만큼은 아닐지라도 배고픔 달래기에는 충분했고, 연보랏빛을 띠던 대공이 더 맛이 있었다.

수확을 끝낸 뒤 마른 수수깡으로는 껍질을 조심스레 벗겨 안경도 만들어 보고, 시계도 만들어

어느 누구 부럽지 않게 멋쟁이가 되어 에헴 에헴 거드름 피우던 추억도 새롭다.

 

고향 마을에 생긴 버스 정류장,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없던 시설이다. 오히려 낯설다.

어린 시절의 신작로는 우리들 놀이터였는데 지금은 어디를 가나 아스팔트길이나 시멘트길의 연속!

엄정 장터에 장이 서는 날이면 강현마을(갈메기) 신작로 위로 많은 장꾼들이 오가고,

친구들과 함께 오가는 어른들 아무에게나 '안녕하세요?' 인사를 계속했던 기억이 새롭다.

인사받은 어른들은 착하다면서 머리를 쓰다듬어주기라도 하면 우리들은

신명이 나서 더욱 열심히 인사를 했고, 무심한 사람들한텐 팔뚝질을 했었다.

그러다 심심하면 신작로 가에 흙과 모래를 쌓아 자동차놀이를 시작했다.

검정 고무신(기차표, 말표) 한 짝을 꺾어 다른 한 짝 안에 넣으면 바퀴는 없지만 귀여운 트럭이 된다.

그것을 흙과 모래로 쌓아 만든 꼬부랑길에 올려놓고 한 손으로 오르락내리락 몰고 다니다 보면

나는 영락없는 자동차 운전수가 되고, 그렇게 놀며 지내는 시간이 그저 행복하기만 했다.

 

5리 남짓되는 면소재지 초등학교까지 통학하면서 겪었던 기억들,

특히 초등 3학년 때의 도시락 반찬통 사건은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아 있다.

책가방이 없어 책보에 책을 둘둘 말아 어깨에 둘러메고 다녔던 시절,

학교급식으로 나오는 빵이 최고의 맛이었고, 면사무소 옆의 양조장을 지날 때면

창살 안에 말리고 있는 고두밥을 주인 몰래 훔쳐서 입에 털어넣던 우리들이었다.

그러면서도 별다른 죄의식 없이 지냈던 가난의 추억이 바로 엊그제 같다.

 

'꽃여울'카페에서 가끔씩 글과 사진으로 만나게 되는 야래화님이

우리 고향 충주 사람이라서 언젠가는 한번 만나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는데,

고향을 찾아 온 김에 만나봐야겠다고 마음먹고 '충주시 금가면 금가숯불'을 찾았다.

충주 보조댐 중간 위치에서 목계 방면으로 흘러 떨어지는 물소리와 모습을 찍었다.

여기에서 야래화님 계시는 곳까지는 불과 1킬로미터가 되지 않는다.

 

남한강 바로 옆에 위치한 야래화님의 사업장은 엄청난 규모였다.

곳곳에 숯가마가 흩어져 있고, 적당한 크기로 잘린 참나무 원목이 야적장에 쌓여 있었다.

참나무 숯을 생산해 낸 지 10년이 넘었고, 성심 성의껏 제품을 만들어서

고객들에게 제공하는 것이 전국으로 소문이 나서 주문량이 아주 많다고 한다.

 

갑작스레 들이닥쳐서 야래화님에게 다소 심적인 부담을 주긴했지만

간단히 인사를 하고 야래화님이 가꾼 야생화 비닐하우스를 구경했다.

정성들여 가꾼 흔적이 많았고, 잘 정리되어 있었다.

 

털북숭이 강아지의 이미지인데 귀엽고 하얀 것은 산호다.

 

향기가 좋다며 야래화님이 가르쳐 준 꽃이름이 지금은 도저히 생각나지 않는다.

 

 

 

 

야래화님의 사업장 <금가 참숯> 방문 기념으로 사진을 같이 찍자고 했는데,

극구 사양하셨더랬는데 날 안내하시다가 잠시 내 사진기에 포착이 되고 말았다. 죄송해요.^^

 

하트 모양의 도기 안에 빼곡히 들어찬 참숯 몇 개,

야래화님은 방문 기념으로 직사각형의 하얀 박스 포장에

충주금가 참숯(생활용)이라 쓰여있는 중량 약 2키로그램의 숯을

선물로 주셨다. 참으로 감사한 마음으로 받았다.

 

 

 

 

야래화님 사업장과는 지척 거리에 있는 '중앙탑 공원'으로 왔다.

제10회 충주호수축제(8/4~8/7)를 알리는 광고판이 서 있다.

 

'술박물관 리쿼리움'이라는 이정표가 눈에 띈다. 입장료는 개인당 4,000원

다소 비싸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볼 게 많다는 직원의 말을 믿고 들어가 봤다.

이종기 교수가 거금을 들여 세운 개인 박물관인데, 그런대로 볼 만했다.

와인역사관, 맥주관, 동양주관, 오크통관, 증류주관, 야외 잔디공연장 등으로

구분해서 술에 관련된 다양한 유물과 전시를 통해 우리 술의 전통과

세계 각국의 다양한 술 문화를 경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좋았다.

 

 

전시관을 끝에 있는 휴식 공간, 커피나 음료수를 사 마실 수 있고,

남한강이 넓은 창너머로 흐르고 있어 조망이 매우 좋다.

 

중앙탑 공원에는 많은 조각품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었다. 모두 2년 전 작품들이다.

 

 

국보 6호, 충주 탑평리 7층석탑, 일명 '중앙탑'(우리나라의 정 중앙에 있어서 붙여진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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