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에는 많은 문화재들이 있다. 오늘도 안동시에 산재되어 있는 몇 곳을 찾아가 봤다. 제일 먼저 간 곳이 유일재 종택이다.

유일재 종택,
안동시 와룡면 가구리, 산을 뒤로 하고 넓은 들판을 바라보며 남서향으로 자리잡고 있는 집으로, 1700년대 말에 지은 광산 김씨 유일재공파의 종가이다. 유일재 김언기(1520∼1588)는 선조 때의 문신으로 안동지방의 교육에 크게 힘쓴 인물이다. 이 집은 ㅁ자형의 정침과 사당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사당은 정침의 왼쪽 뒤편 약간 높은 언덕 위에 있다. 중문을 들어서면 정면에 안채가 있고 양 옆으로 사랑채와 행랑채가 안마당을 감싸고 있는 폐쇄적인 배치를 하였다. 창호의 구성이나 목재를 다룬 수법이 옛 방식이며, 배치 및 평면구성 등에서는 조선 후기의 건축양식을 잘 보여주는 옛 집이다.



거의 보기 힘든 디딜방아가 유일재 종택에는 남아 있다.




안동시 예안면 주진리 소재, 안동 삼산정에 대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내용을 인용해 본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홑처마 팔작지붕건물. 1982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1750년(영조 26)경 삼산 유정원(柳正源)이 후손들의 도덕계승과 학문정진을 위해 창건하였다고 한다. 평면을 보면, 어칸은 대청이며, 좌협칸은 앞쪽 1칸 마루 뒤쪽에 1칸 온돌방이 있고 우협칸은 온돌방 2칸이 배치되어 있다. 대청과 온돌방 전면에는 기둥 밖으로 마루를 조금 내밀어 계자각 헌함(軒檻 : 대청 기둥 밖으로 돌아가며 깐 좁은 마루)을 돌렸고, 누하주와 누상주는 별주를 사용하였으며 온돌방이 있는 누 하부의 일부는 벽체로 막아 구들을 축조하였다. 가구는 측면 가운데 주열에서 합보[合梁 : 두 부재를 결합시켜 한 개의 보로 만든 것]로 처리하고 위치에 따라 장여를 놓았으며, 측면 중앙 기둥에서 뻗어나온 충량은 퇴량과 함께 주두(柱頭) 위에서 결구되었다. 합보로 이루어진 대량위에는 동자주(童子柱 : 세로로 세운 짧은 기둥)를 세워 종량을 받았는데, 동자주상에 공포를 짜아 종량의 보아지와 중도리 장여를 받게 하였으며, 종량 위에는 동자주를 두어 종도리를 받고 있다. 특히 온돌방을 넓히기 위해 종대공과 측면 중앙기둥을 동일선상에 두지 않고 서로 어긋나게 배치하였다. 전체적으로 볼 때 건물의 평면 구성방식과 상부 가구수법, 특히 누마루집이면서 기둥은 모두 평주를 사용하여 대량과 퇴량을 합보로 처리한 것이나 종대공과 중앙기둥을 동일선상에 두지 않은 점, 중대공의 세부수법 등은 드문 예이다.




주진 마을에 소재한 어느 열녀각






월천서당이란 글씨는 퇴계 선생이 직접 쓰신 글씨라고 한다.






















어필영정각(御筆影幀閣)
안동시 풍산읍 하1리의 3번지 전의이씨 문중 소유로 침류정 아래 자리 잡고있다. 하리 마을 뒤편의 산골을 따라 올라가면 사방이 낮은 산으로 둘러싸인 깊은 곳에 남동향으로 앉아 있다. 산자락 끝의 완 경사지 일부를 정지하여 건물을 앉히고 사방을 판축 담장을 둘렀다. 정면 담장 중앙에 출입 사주문이 나있고 앞으로는 이 영정각을 오르는 계단이 설치되어 있으며 좌측 편 산 능선에는 전의(全義) 이씨 양정공파(襄靖公派)문중 소유의 침류정 아래 자리 잡고 있다.
'어필영정각'(御筆影幀閣) 은 영조 45년(1769)에 임금이 화공을 내려 보내 이산두(1680~1772) 공의 초상화를 그리게 하고 그것을 보관할 영정각으로 지은 것이다. 이산두는 경종 3년(1723) 문과에 급제하고 선무랑이 되었으며 예조좌랑, 남포 현감 등의 벼슬을 하였고 관직에 임하여 공을 우선하고 사사로움이 전혀 없어 칭송이 자자한 청백리였다. 현재의 건물은 구조양식에서 창건까지 올려 볼 수 있는 모습을 거의 찾아 볼 수 없는 것으로 보아 지금에 이르는 동안에 건축적 변화가 있은 것으로 여겨지나 건립 이후의 건축 연혁은 알 수 없다. 구조양식은 평범하지만 대들보, 벽체 등에 시채 된 여러 문양의 단청이 눈길을 끌며, 영정과 어필 등은 역사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어필영정각 바로 뒤, 경사가 급한 곳에 위치한 안동 침류정,
안동시 풍산읍 하리 1리 3번지에 위치한 ‘침류정’은 전의 이씨 소유로 조선시대 판서를 지낸 양정공(襄靖公) 이화(李樺1391~1459)가 만년에 향리인 풍산에서 후진양성을 위해 지은 정자로 유래하나 건립연대는 확실하지 않다. 양정공(襄靖公) 이화(李樺)는 1420년 사마시에 합격하고 무관으로출사했으나, 1422년 문과에 급제하고 오랑캐를 토벌한 공으로 첨지중추원사에 등용됐으며 왜구를 격침한 공으로 병조판서에 제수 됐고 중종때 청백리로 뽑혔다.
안동에서 풍산읍 하리 풍산읍 119안전센터 옆 농로를 따라 가다 좌측 산에 위치한 일성당을 지나 산을 오르면 어필 영정각이 있고 뒤편 능선에 정자가 남향으로 앉아있다. 침류정(沈流亭)은 안동지역의 독립운동과 관련 있는 건물로 대청상부에 피신을 위한 우물천정과 독립정신의 표상으로 장식한 대청 정면살창과 외기 달동자의 태극문양은 당시 시대적 성격을 배울 수 있는 건축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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