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사정을 고려하여 1년의 가장 좋은 날(3/31~4/4)을 잡아서 영신고 22기 동기 14명(대구 9명, 구미 3명, 서울 2명)은 4박 5일간의 칭다오 수학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동기들끼리의 해외 수학여행(?)을 한번 추진해 보는 게 필요하다고 판단한 동기회장 순균이의 제안을 받은 창렬이가 심사숙고 끝에 앞장서서 추진하게 된 것이다. 세계여행가 반열에 올랐다고 표현해도 좋은 창열이는 마음만 먹으면 세계 어디든 돌아다니는 친구다. 그는 중국 여행을 수없이 했고, 칭다오에도 다녀온 적이 있어서 친구들이 그 주변의 나들이(수학여행)를 원한다면 다시 한번 기획해 볼 수도 있겠다는 반응을 보임에 따라 14명의 동기들이 참여 의사를 밝혔고 지난 12월부터 차곡차곡 준비할 수 있었다. 창열이는 그 관련 자료(A4 25쪽 분량)를 친구들에게 메일로 보내주면서 미리 공부해 올 것을 요구했다. 아는 것 만큼 보이는 것이 여행이라는 것을 믿기 때문이다.
여행 첫날(3.31)
인천공항 제2터미널에 아침 10시까지 모이기로 되어 있었는데 늦게 도착한 친구는 아무도 없었다. 대구에서 8명, 구미에서 3명이 리무진 버스 한 차에 타서 같이 왔고, 영활이는 하루 전에 공항 부근에 와 있다가 시간 맞춰 도착했다. 서울의 2명(호영, 의기)은 공항이 가까우니 공항에 금방 도착했을 것이다.
참여한 친구들의 이름을 적어본다. 정태, 기호, 창열, 순박, 상근, 순균, 의기, 명배, 무수, 호영, 일한, 병우, 영활, 나(권주) 등 이렇게 14명이다. 집행부 3명(창열, 권주, 명배)을 제외하고 두 조로 나눴다. 1조에는 병우(조장), 정태, 일한, 영활, 무수 등 5명이 2조에는 상근(조장), 기호, 순박, 순균, 호영, 의기 등 6명이 속해 있다.
인천공항에서 칭다오 쟈오동국제공항까지는 1시간 3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기내식으로 제공하는 햄버거 하나 먹고 잠시 쉬다 보니 도착했다는 기내 방송이 들릴 정도였다.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숙소로 향했는데 숙소는 칭다오역에서 5분 거리에 위치한 호텔이다. 공항에서 숙소로 가려면 일단 8호선 지하철을 타고 칭다오북역까지 가야 한다. 거기에서 1호선으로 갈아타고 칭다오역까지 가면 되는 것이다.
칭다오의 지하철은 만 60세 이상인 사람들에게는 무료다. 신분증이나 여권을 제시하면 위 사진과 같은 편도용 표를 주는데 그것을 이용해서 어디든 갈 수 있다. 탈 때마다 1,500원 정도의 요금을 절약할 수 있으니 우리들에겐 행운이 아닐 수 없다. 하루에 적어도 서너 번은 표를 받아 이용해야 하는데 5,6천원은 절약할 수 있는 것이다. 5일 동안이니 적어도 개인당 2,3만원을 절약할 수 있는 행운이다. 3만원 잡으면 공동경비 40여만 원의 절약이 가능하다. 나이들어 좋은 것 중의 하나임에 틀림없다. 1년이 모자라 한 끝 차이로 지공(지하철 공짜)거사가 되지 못한 대구 사는 친구들은 그 혜택을 중국 칭다오에 와서 담뿍 받게 된 것이니 참 아이러니컬하다.
지하철 내부 의자가 파란색인 것으로 보아 3호선이다. 황토색 1호선을 타면 빨리 갈 수 있는 것을 3호선을 타는 바람에 30분 정도는 더 걸려서 도착했다. 시간에 쫓기지 않으니 그것도 우리들에겐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종점에서 타서 종점에서 내리는 셈이라 좌석의 여유가 많아서 좋았다. 마치 우리들의 전용차처럼 느껴졌다.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는 칭다오 지하철 지도인데, 모두 10개의 노선을 갖추고 있다. 서울과 비슷한 노선의 수이다. 인구 규모로 보아서도 서울과 비슷하니 서로 비교가 잘 된다.
칭다오역에서 내려 숙소로 이동하기 직전, 기념 사진 한 장 남기기로 한다. 사진 찍는 나와 기호 뒤에 가려진 창열이가 제대로 안 보인다. 석양에 긴 그림자가 보이는 것으로 보아 곧 어두워질 것이니 홍도북참역 부근의 명월산해간 '불야성'을 보기로 한 계획은 미뤄야 할 것 같다.
캐리어를 끌고다니는 번거로움을 피하기 위해 숙소는 4일간 한 군데서 머물기로 했다. 작년 중국여행 때 17일 동안 여기저기 캐리어를 끌고다니느라 애먹었던 적이 있었는데 올해 우리들은 탁월한 선택을 한 셈이다.
우리 일행이 묵게될 MERCURE 호텔[美居酒店]이다. 얼핏 보기에 허술해 보이지만 내부는 아주 훌륭했다.
호텔에 여장을 풀고 저녁을 먹기 위해 5분 정도 걸어나와서 들렀던 식당, 털보 사장이 근무하고 있었는데 수시로 담배를 입에 물고 사는 골초였다. 그래도 음식 솜씨가 좋은지 손님들은 적잖이 출입했고 여기저기 담배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실내 금연을 실천하고 있는 우리나라와는 사뭇 다르다. 25년 전 내가 담배를 끊기 전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실내에서 담배 피우기가 큰 흉이 아니었던 시절이 오버랩 되었다. 여하튼 실내에서의 담배피우기만큼은 하루빨리 사라져야 할 나쁜문화임에 틀림없다.
힘좋은 털보사장이 14명을 위한 식탁을 마련해 줘서 빙 둘러앉아 음식을 주문하고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서 한 마디씩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늘그막 여행이긴 하나 친구들과 함께하는만큼 칭다오 수학여행이야말로 매우 뜻깊고 소중하다는 것,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우리 모두 멋진 추억을 쌓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등의 말들이 이어졌다. 나는 건강관리 잘해서 아프지 말자는 말과 함께 최근에 낭송을 하게 된 시, '동백은 동백으로 모란은 모란으로'라는 김윤현 시인의 시를 낭송했다. 그 전문을 소개한다.
계절이 바뀌어 동백이 피는 것이 아니라 동백이 피어 계절이 바뀌는 것이리라.
봄이 가서 모란이 지는 것이 아니라 모란이 져서 봄이 가고 마는 것이리라.
동백으로 피었다고 이 세상을 얻은 것이 아니듯
모란으로 졌다고 봄을 잃어버리는 것은 아니리
산다는 것은 동백으로 왔다가 모란으로 지는 것
지나가는 봄을 아쉬워할 일 뭐 있겠나
동백은 동백이 되어 동백으로 살면 되는 것이고
모란은 모란이 되어 모란으로 살면 되는 것이라
동백은 모란을 넌지시 바라보면 되는 것이고
모란은 또 동백을 지그시 바라보면 되는 것이라
많은 사람들이 모여사는 이 세상에서 현명하게 사는 방법이 무엇일까를 고민한 시인의 메시지가 고스란히 담긴 시 같아서 최근 나의 시낭송 목록에 추가한 시이다. 더구나 요즘처럼 대통령 탄핵정국을 맞아 가치관의 혼란으로 전 국민이 둘로 나뉘다시피 아웅다웅 싸우고 있는 것 같은 현실이 안타까워 이 시를 낭송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무슨 긴 설명이 필요하랴. 명배가 오늘 술자리에서 화두로 꺼낸 '용서와 배려'와도 통하는 시가 아닐까 한다.
여러 종류의 음식을 맛있게 먹었고 칭다오 맥주와 랑야(琅琊) 백주(白酒)를 한두 잔씩 마시다 보니 다들 기분이 좋아진다. 명배의 목소리가 한껏 높아지고 있었다. 2일 전인 지난 토요일, 딸을 시집보내는 혼사를 치르고 부랴부랴 여장을 꾸려 우리들과 함께했다. 더구나 여행의 재정관리까지 맡아서 항공권 구입, 호텔 예약, 환전 등 많은 일들을 처리하느라 바빴던 그다. 고맙데이.
실컷 먹고 마셨지만 1인당 12,000원 정도의 비용밖에 들지 않았다. 가성비 최고였다. 다음에 다시 들러야겠다는 반응이 여기저기 터져 나왔을 정도였다.
우리의 슈퍼마켓, 편의점에 해당하는 대형 상점 불빛이 환하다. 몇몇 친구들이 매장에 들러 무언가를 구입할 기세였다. 우리가 훌륭한 술이라고 평가한 랑야 백주 500ml가 겨우 42위안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놀랍다고 누군가 얘기를 했다. 애주가인 나도 그 맛을 어찌 모르랴만 당분간 술과 거리를 두기로 한 나에게는 그저 그림의 떡이었다.
저녁 8시 30분, 호텔 숙소에 도착했다. 사진상으로 본 영활이와 기호는 기분좋게 한잔 취한 것처럼 흐느적 거리고 있다.
4일간 두 명씩 짝지어 묵게될 방 번호다. 7개의 방에 골고루 분산 배치되었고, 호텔방은 예상보다 참으로 아늑하고 좋았다. 시설도 괜찮고, 음식은 가성비가 최고였다. 3일간 호텔에서 아침 식사를 했는데 아주 풍성하고 맛있다는 반응이었다.
둘째날(4.1)
노산(嶗山) 태청풍경구를 찾아가 그 주변의 풍광을 즐기는 것으로 계획한 날이다.
아침 7시 30분에 로비에 모여
둘쨋날 일정을 시작했다.
호텔에서 접근할 수 있는 관광지에는 어떤 곳이 있고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를 친절하게 알려주는 안내판, 칭다오의 랜트마크라고 할 수 있는 잔교가 불과 1.2킬로미터밖에 떨어져 있지 않고, 루신 공원, 5.4광장, 팔대관풍경구도 다 손에 잡힐 수 있는 지척의 거리에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시간만 허락된다면 다 들를르면 좋겠으나 일정상 시내 관광보다는 라오샨풍경구(태청, 앙구, 학산)를 보는 것으로 계획했기에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훗날 개인적으로 다시 올 기회가 있으면 그 때 찾아가 보아야 하리라.
아니, 이렇게 멋진 오토바이가? 사진기를 들이대니 상근이는 금방이라도 오토바이를 탈 기세로 포즈를 취했다. 교통신호 대기 상태에서 한 장 찍은 사진이다.
조식은 현지식으로 해결하기로 했다. 엊저녁 과음으로 해장 겸해 우육면(牛肉麵)으로 통일해서 주문했다. 누구는 맛있다면서 한그릇을 후루룩 금방 비웠으나 누구는 거의 먹지 못하고 남긴 친구도 보였다. 사진 찍을 때 일제히 바라보는 모습들이 보기 좋다. 특히 언제나 해맑게 웃는 영활이의 포즈는 백만불짜리이다. 그는 4일 동안 나의 룸메이트다.
청명한 칭다오의 하늘을 보니 기분이 좋아진다. 일석 이희승 선생은 그의 수필에서 저런 하늘을 '벽공(碧空)'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내가 입은 파란색 등산복이 유난히 파랗다. 파란색의 모자도 격에 맞는 것 같다. 창열이도 동의했다. 눈에 띄는 색깔의 등산복을 입는 것이 좋다고. 특히 등산할 때는 그 효과가 적지 않다고.^^
건강 전도사, 병우의 명랑하고 날렵한 걸음걸이가 돋보인다. 그는 아침식사를 거의 하지 않고 지낸 세월이 20년이 넘는다고 한다. 오늘 아침식사를 할 때도 식사를 포기하고 식당 주변을 계속 걸으면서 운동을 했다. 하루에 적어도 2만 보 이상을 걷는 것을 생활화하고 있는 '보행교(步行敎)' 신자(?)답다. 정확히 말하면 8명의 고딩 동기들끼리 만든 걷기 동아리(회장 故 박재현) 회원의 진가를 몸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를 만날 때도 이용하지 않고 걸어서 오르내린다. 최근 간 수치가 높아져서 술을 마시지 않고 있는 나에게 관심을 많이 보이면서 비타민 C를 지속적으로 복용해 보라는 처방을 내려주기도 했다. 친구의 건강을 걱정해 주는 그의 따스한 마음이 고마웠다.
지하철 4호선을 타고 그 종점인 대하동까지 가야 한다.
대하동(大河洞) 역에서 내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와 라오샨관광서비스센터가 있는 광장에서 현수막을 앞에 펼쳐두고 모두가 기념촬영을 했다. 포항에서 왔다는 한 여인이 찍어주었다.
관광코스 입장권과 셔틀버스 이용권의 가격은 130위안인데 만 60세 이상은 경로 우대라서 모두 20위안밖에 지불하지 않았다. 표 한 장으로 4개의 풍경구를 모두 이용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이다.
노산(라오샨)은 바다와 접해 있는 바다 위의 산이다. 아름다운 해안 절경과 장엄한 산세를 자랑하는 곳이라서 관광객들을 설레게 하기에 충분하다. 해안을 따라 셔틀버스를 타고 10분 정도 가면 팔수하(八水河), 거기에서 내려 태청풍경구의 입구라고 할 수 있는 태청궁(太淸宮)까지 1.2킬로미터 도보로 걸어가면 만나게 되는 곳이다.
태청 유람구 앞의 바다, 데크길을 따라 천천히 걸으면서 느끼는 바닷바람의 속살거림이 좋았다. 우리가 ‘서해’라고 부르는 황해의 매력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갈라진 바위를 종횡무진 쌓아올린 라오샨의 거친 모습도 바다와 잘 어울려서 눈맛이 기막히다.
<태청유람구는 노산 동남쪽에 위치해 있다. 풍경구는 유명한 전당 태청궁으로 인해 이름이 지어졌다. 풍경구는 ‘도교명소’, ‘소강남 식물구역’과 천연 바다 암석이 주요 특색이다. 태청궁은 노산에서 역사가 가장 유구하고 규모가 제일 큰 도교 전당이다. 서한 건원원년 (建元元年, BC 140년)에 건설되어 지금까지 2100여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태청궁은 3면이 산이고 한면은 바다이며 좀 떨어져있는 거봉과 근처의 7개 산봉우리에 둘러싸있어 겨울철 북방으로부터 불어오는 찬 바람을 가로막아 독특한 소기후, 소환경이 형성되어 아열대지역과 흡사하며 혹한, 혹서가 없고 온난하고 습윤하여 식물이 번성하고 종류가 풍부해 ‘소강남’으로 불리우고 있다.>(인터넷 자료)
중국 최대의 노자신상, 그 규모가 엄청나다. 높이는 무려 83미터이니 태청궁을 압도할 만한 크기이다.
노자상을 보려면 태청궁 입장권(1인당 27위안)을 끊고 가야 하지만 우리는 경로우대라서 공짜다. 나이가 들어서 좋다.
동백꽃(산다화) 아래 선 순균 회장, 동기회장을 맡아 일한 지도 벌써 4년째다. 너무도 열심히 치밀하게 적극적으로 일을 하는 성격이라서 그간 그가 이룩해 놓은 업적은 대단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늘도 그는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을 해야 할지를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동기들은 모두 그의 진정성에 감동하여 회비 납부는 물론 특별회비와 물품 찬조에 이르기끼지 매우 적극적인 반응을 보여왔다. 그만큼 동기들간의 모임이 크게 활성화 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이번 칭다오 수학여행도 마찬가지다. 순균아, 고맙데이.^^
백동백(백산다)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고 하는데 이곳 태청궁 안에서 소복하게 꽃을 피우고 있었다. 처음 보는 꽃이라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공자가 노자에게 도를 묻는 장면을 형상화한 조각 작품 주변에 의기를 필두로 친구들이 나란히 섰다. 학창 시절 한 때 별명이 '공자'였던 의기는 공자의 입장에서 노자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을까? 있다면 과연 무엇일까?
봉선교(만날 봉, 신선 선, 다리 교), 신선을 만나기 위해 건너야 하는 다리를 뜻하는 글씨가 바위에 깊이 새겨져 있다. 여기를 지나야 노자를 만날 수 있다는 걸까?
삼황전(三皇殿)의 일부 사진, 삼황(三皇)이라 하면 복희(伏羲), 신농(神農), 헌원(軒轅) 황제를 가리킨다. 참고로 오제(五帝)는 소호(少昊), 전욱(顓頊), 제곡(帝嚳), 요(堯), 순(舜)이다.
태청 풍경구 전역에 강풍이 불고 있는 상태라서 태청궁 삭도는 운행하지 않고 있었다. 되돌아가거나 걸어올라야 한다. 거의 12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인데 가능할까? 우선 달걀과 옥수수를 사서 요기를 좀 하고 1시간 30분 정도의 트레킹을 하면 되는데 다들 그렇게 하겠냐고 하니 괜찮다는 반응이었다. 요기를 끝낸 몇은 등산을 시작했고 몇은 쉽지 않겠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나 전체적 분위기를 거스를 수 없는지 신발끈을 다시 동여맸다. 오후 2시쯤은 지나서야 점심 식사를 할 수 있는데 오죽하겠냐마는 최고의 배려심이 발동된 것이다.
갈림길에서 명하동으로 가는 길은 포기하고 상청궁과 팔수하 광장으로 가는 길을 택했다. 시간이 많이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참을 내려가다가 만난 차밭이다. 라오샨 구릉지와 다랑밭을 중심으로 곳곳에 재배되고 있는 차를 가까이서 볼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봐 왔던 차들과 달리 키가 참 작았다. 일부러 작게 키우는 것인지 차의 수종 자체가 작은 것인지는 나로서는 알 수 없다. 기회가 되면 구입해서 맛을 보리라.
하산길에 만나게 된 상청궁
태청 풍경구(유람구)를 모두 둘러보고 오후 2시쯤 식당에 도착, 출출한 허기를 채우기 위해 돈까스로 점심 식사를 했는데, 반찬이 하나도 없어서 밥그릇 안에 제공된 양념만을 요령껏 잘 버무려서 천천히 먹어야 했다. 중국식 돈까스였다.
식당은 태평 풍경구 입구 상가에 위치해 있었다. 이 식당이 없었다면 배고픔을 해결할 수 있었을까? 여러 명이 함께하다 보면 먹을 복만큼은 누군가의 먹을 복에 힘입어 덩달아 생기는 것이 아닐까 싶다는 생각을 했다.
태청 풍경구를 다 둘러본 뒤 신호산(信号山) 공원 전망대에 올랐을 때는 이미 2시간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였다. 내려다보는 눈맛이 좋았으나 미세먼지로 인해 시야는 크게 확보되지 않았다.
작년에는 저 가운데로 보이는 소어산(小魚山)에 올라서 칭다오 시내를 내려다 보면서 독일풍의 건물들의 붉은 빛에 물들었느데 올해는 신호산에 올라 똑같은 분위기에 젖어본다.
신호산 공원에서 내려와 지하철을 타고 팔대관(八大關) 풍경구로 이동하는 데는 약 30분 정도 소요된 것 같다.
팔대관 풍경구 중에서 우리가 가려고 하는 곳은 공주루와 화석루다. 도착 시간이 늦어지는 바람에 출입문이 닫혔고 밖에서 건물만 바라다볼 수밖에 없었다.
팔대관은 칭다오 해변에 있는데 잘 정돈된 도로와 울창한 숲, 서양 여러 나라 풍의 고급 별장들이 어우러진 곳이다. 중국 안의 서양식 풍경으로 산책, 조깅, 웨딩촬영, 그림그리기 장소로 인기가 높다고 한다.
공주루의 모습이다. 1930년대 덴마크의 주 칭다오 총영사가 덴마크 공주를 위해 지었으며 오랫동안 문이 꽁꽁 닫혀 있었다가 2015년부터 입장료를 받고 내부를 공개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공주루에서 화석루를 향해서 가는 길, 바닷가를 경유해서 가는 게 더 낭만적일 것 같다.
둘이 나란히 서서 두 손을 위로 길게 뻗어 교차시키면 영신 '22[二十二]'기의 숫자를 연상시키는 모습이 보인다. 친구들과 고산골 등산을 할 때, 이 자세와 관련해 표현을 한 바 있다. 우리 동기들만큼은 각자 확인해 보고 두 명이 사진을 찍을 때는 따라해도 좋을 것이다
저 멀리 보이는 나지막한 언덕 가운데 서 있는 건물이 화석루다. 건물 아래서 해변을 내려다보는 눈맛은 짐작을 하고도 남는다. 예나 지금이나 좋은 위치에 건물을 지어 그 주변의 자연풍광을 즐기고자 하는 건 인지상정인가 보다.
칭다오의 일몰 광경을 볼 수 있는 행운을 화석루 앞 해변에서 만날 수 있었다.
화석루는 칭다오의 대표적인 유럽풍 건축물 중의 하나이다. 1930년대 독일의 건축가가 설계했고 한 때 대만 총통 장개석이 별장으로 사용하면서 더욱 유명해졌다고 한다. 건물 외벽이 꽃처럼 아름다운 돌로 장식되어 있어서 화석루란 이름이 붙은 것이 아닐까? 오후 5시까지 왔어야 입장할 수 있는데 1시간이나 늦었으니 건물의 외벽만 바라보다가 발길을 돌려야 했다.
화석루 앞에서 기념 사진 한 장 찍고 이제 지하철로 한두 코스 거리에 위치한 5.4광장으로 가야 한다. 택시를 타고 가자는 의견이 있었으나 서너 대의 택시를 동시에 부를 수도 없는 일이고 해서 지하철역까지 걸어가서 지하철을 타고 잠시 이동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니 5.4광장 가까이 위치한 식당에 들러 먼저 저녁 식사를 해야 했다.
널찍한 식당의 한 켠에 자리를 잡고 앉아 여유있게 중국 음식을 맛볼 수 있었다. 평소에 먹던 음식이 아니긴 했으나 조금씩 맛보는 즐거움이 컸다. 음식에 술 한잔 곁들이니 분위기는 고조되고.....
일본의 산둥반도 지배에 대항하여 1919년 베이징에서 일어난 반제국주의 민중 운동인 5.4운동을 기념하여 조성된 광장이다. 칭다오가 5.4운동의 시발점이 된 것을 기리기 위해 5.4광장이라고 명명되었다. 5.4운동의 상징인 높이 30미터, 무게 700톤의 붉은 거대 조형물 '5월의 바람'이 광장 중앙에 위치하고 있어서 이곳을 배경으로 인증샷을 찍기 위해 찾은 관광객이 많으며 밤이 되면 조형물 뒤로 우뚝 선 고층빌딩들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조명쇼와 화려한 분수쇼를 구경할 수 있다고 한다.
이렇게 둘째날의 트레킹은 모두 끝났고 숙소로 가는 지하철을 타야 한다. 숙소에 돌아와 침대에 몸을 눕히기 전에 확인한 이날의 걸음수는 28,186보였다. 성큼성큼 걷는 나의 발걸음이 이러하니 룸메이트 영활이의 종종걸음은 훨씬 더 많았겠지? 영활이는 역시 예상대로 성격이 참 좋은 친구였다. 자신의 주변 이야기를 하거나 의사 표현에 솔직담백함해서 서로 어떤 이야기를 해도 부담이 없다. 나도 그 보답으로 비밀 이야기를 하나 들려주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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