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안나푸르나 트레킹 3

여행 이야기

by 우람별(논강) 2025. 3. 5. 08:22

본문

 

로워 시누아(Lower Sinua)에서 숙박을 하고 일출 시간이 된 듯하여 밖으로 나오니 비교적 쾌청한 날씨가 반긴다. 마차푸차레(6993m) 봉우리 주변의 구름빛이 떠오른 햇빛을 받아 불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물고기 꼬리 모양의 마차푸차레 봉우리가 여전히 고혹적이다. 마차푸차레는 힌두교의 시바(Shiva) 신과 관련이 깊은 신성한 산으로 여겨져서 언제부터인가 등반이 금지되어 있는 곳이다. 멀리서 바라보기만 해도 좋은 우리들, 연신 사진을 찍으면서 조금이라도 더 멋진 사진을 남기려 애쓴다. 오늘은 비교적 이 봉우리를 최대한 잘 볼 수 있는 곳, 데우랄리까지 접근하기로 되어 있다.
 

로워 시누아에서 어퍼 시누아까지 가는 데는 30분 정도를 더 올라가야 한다. 그곳에서 보는 전망은 이곳보다 더 좋다고 하니 거기까지 열심히 올라 보도록 하자.
 

들것을 등에 지고 내려가는 원주민의 발걸음이 가볍고, 뒤따르는 개도 바짝 달라붙어 있다. 건너편 촘롱마을 꼭대기엔 이미 햇살이 가득하다. 보기엔 가까운 듯 보이지만 거기에서 여기까지 오려면 서너 시간은 족히 걸어야 한다.
 

헬기가 비상 착륙할 수 있는 공간이 트레킹 코스 옆에 마련되어 있었다. 지금까지 얼마만큼 활용되었는지 모르겠으나 유용하게 쓰여질 수 있음은 분명한 듯하다. 
 

우리 일행과 4일째 함께하고 있는 포터1 붓다, 포터2 부르커스, 포터3 이쏘르가 모여서 알아들지 못할 네팔어로 대화를 하고 있다. 가운데 앉은 부르커스는 담배를 피우지 않지만 서 있는 두 친구는 골초들이다. 쉴 때마다 담배를 얼마나 맛있게 피우는지 모른다. 특히 이쏘르는 덩치가 작고 날씬하지만 근육질 몸매로 힘이 넘치는 듯했다. 우리가 맡긴 15킬로의 짐을 지고도 거의 날다시피 빠른 속도로 트레킹코스를 오르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어퍼 시누아에 도달하니 예상대로 조망이 탁 트여서 사진찍기가 더욱 좋다. 친구들끼리 서로 찍어주고 찍히면서 건네는 말들과 웃는 모습들이 참 보기에 좋다. 전망대 앞 랄리구라스 나무 사이로 옮겨다니는 작디작은 새들의 분주한 지저귐도 또 하나의 화음을 이루고 있다. 무슨 사연들인지 알 수는 없지만 아침의 흥겨움을 이기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랄리구라스의 붉은 꽃만큼이나 정열적인 지저귐이고 멋진 교향곡이 아닐까. 계곡이 제공하는 신선한 공기에 새들도 우리도 모두 하나가 된 듯하다. 자연과 인간이 하나되어 느낄 수 있으니 곧 '물아일체(物我一體)' 아니던가!!    
 

전망 좋은 곳에서는 플래카드를 내서 특별 촬영을 해 두어야 한다. 깔끔한 플래카드다. 오른쪽 '유짱 여정회'란 글씨 위의 돼지 그림은 뜬금없이 무슨 의미? 트레킹에 참여하는 여섯 명 모두가 돼지띠라는 사실을 새긴 것인데 부정하는 친구가 한 명 있다. 58년 개띠의 태국이다. 그러나 호적 나이가 돼지띠이니 부정해도 소용없다.^^
 

자, 그럼 데우랄리까지 가는 오늘의 산행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뭐니뭐니해도 안전이 최고이니 천천히 충분한 휴식을 취하면서 올라가야 한다. 여기부터 거치게 되는 곳은 차례대로 밤부(bamboo 2190m), 도반(Dovan 2505m), 히말라야(Himalaya 2873m), 데우랄리(Deurali 3230m)다. 소요 시간은 밤부까지 2시간, 다시 도반까지 1시간 30분, 거기서 점심을 먹고 다시 히말라야까지 1시간 30분, 거기에서 마지막 데우랄리까지 1시간 30분 등 휴식 시간 포함해서 모두 7, 8시간 정도는 걸어야 한다.
 

노새가 한 마리 지나가는데 사람이 타고 있었다. 말과 당나귀의 교배종인 노새는 힘이 세기로 유명한데 희말라야의 산길을 무거운 짐을 싣거나 사람들을 태우고 다니는 교통수단의 역할도 훌륭하게 해 내는 것 같았다. 가이드에 의하면 도반(Dovan 2505m)과 시누아(Sinua 2340m) 사이를 오가는 노새들이라고 한다.
 

시누아에서 밤부로 가는 길에 특별히 자주 보게 되는 대나무들, 여기저기 군집을 이루면서 길가에 자라고 있다. 오죽하면 지명마저 '밤부(Bamboo 2190m)'일까! 빛바랜 댓잎들마저 길 위 곳곳에 수북하게 떨어져 있어 대나무가 엄청 많음을 실감한다.  
 

우리들의 트레킹을 무사하게 마칠 수 있도록 기원하는 총무 휘동의 간절함이 타르초 사이에 매달아 놓은 황금빛 종을 서너 번 흔들어 놓았다. 종소리의 경쾌함이 주변으로 파문처럼 울려퍼지다가 이내 잦아들었다. 타르초는 티베트어로 '바람의 말'을 의미하며 티벳 불교에서 사용하는 오색의 기도 깃발을 가리킨다. 일반적으로 산이나 사원, 다리, 집, 성지 등 높은 곳에 걸려있으며 바람이 불 때마다 깃발에 적인 경전과 기도문이 바람을 타고 퍼져나가 세상의 모든 존재에게 축복과 평안을 전한다고 믿게 되는 것이다.
 

밤부에서 잠시 짐을 내려놓고 쉬다가 또 우리는 길을 떠나야 한다. 쉬다가 걷고 걷다가 쉬고의 반복이지만 머지않아 목표 지점에 오를 때까지 우리의 발걸음은 멈출 수 없다.
 

앞에 걸어가는 친구들에게 갑자기 큰소리로 "친구들, 다들 여기를 봐 줘." 이렇게 요구하니 일제히 바라 본다. 이 때 찍은 사진이다. 각자의 자세로 자연스럽게 포즈를 취하고 있을 때 찍는 스냅 사진의 매력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대나무 사이로 삐죽이 올라선 물고기 꼬리, 마차푸차레 사진이 예사롭지 않다. 사진 콘테스트 작품으로 출품해도 훌륭하지 않을까 싶다. <은빛 신비감 머금은 대나무>를 제목으로 써도 좋을 것 같다.^^
 

대나무 숲이 주는 오묘한 매력에 다들 심취해 있는 것 같았다. 그 흥겨움과 멋스러움에 가끔씩은 멈춰서 표현하고 감탄하면서 그 감성을 나눌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휘동이는 그런 감정의 표현에 솔직하다. 속으로만 느끼는 것이 아니라 느낌과 동시에 어떻게든 표현해 버리는 부지런함이 매력이다. 길위에 떨어진 버팔로와 노새의 똥에도 감탄을 숨기지 못하는 감성을 여러 번 보여주었다. 똥예찬론자 못지 않다고 말하니 자신의 한 때 별명이 '피똥'이었다고 해서 한바탕 웃었다. '피똥'과 휘동이란 이름의 발음 유사성에서 비롯된 장난끼 섞인 별명일 테지만 흥미롭다. 그 별명 덕에 유난히 원초적인 똥 얘기를 많이 하게 됐다면 거기에도 인과관계가 있는 것은 아닌지.ㅎㅎ  
 

2,3일간 수염을 깎지 않으니 제법 턱수염이 자랐다. 너무 허연 것이 씁쓸하지만 어쩌랴. 사진에 나오는 네 명 모두가 당분간 수염을 길러보기로 했으니 트레킹을 마칠 때쯤의 우리들 모습은 어떻게 보일지 자못 궁금하다.
 

철제 쓰레기통 및 소각장이 가끔씩 보인다. 소각을 용이하게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 같다. 트레킹을 하는 사람들은 자연 사랑이 남다른 만큼 쓰레기를 가능하면 만들지 말아야 할 것이다. 쓰레기를 아무데나 버리지 않음은 물론, 그것을 되가져가는 기본적인 양심은 지녀야 힐 것 같다. 
 

점심 시간이 다 되었나 보다. 식사를 하기로 되어 있는 도반(Dovan, 2505m)에 도착했다.
 

트레킹 중에 자주 만나게 되는 개들, 대부분 주인이 없다고 하는데 사람들과의 잦은 만남 때문인지 사람들을 경계하거나 무서워하는 놈들은 없다. 사람들을 봐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눈길을 마주치지도 않고 그냥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사는 것 같다. 불러주면 그저 힘없이 잠시 쳐다보다가 이내 시선을 돌려버리기 일쑤다. 누군가 먹거리라도 제공하면 착 달라붙어 새 주인을 만난 듯 계속 따라다닐 것만 같다. 여하튼 주인이 따로 없다는 사실에 놀랐고 그렇게 특정 주인에게 의지하지 않고 이리저리 방랑하면서 사는 개들이 많다는 사실에 놀랐다. 
 

도반(2505m)을 지나 히말라야(2873m)에 가까워지는 지점에 특별한 폭포가 보였다. 가파른 암벽 위로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물이 여기저기 물길을 이루더니 폭포처럼 여러 갈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오후 3시 남짓 되어서 다시 히말라야(2873m)란 곳에 다다랐다. 2900미터의 고지대다. 여기에는 커피 전문점이 있다. 에스프레소, 아메리카노, 커피라떼 등 자신의 기호 대로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 그곳의 매력이다.
 

경북 영주에서 온 아주머니가 유튜브 유짱 여정회에 들어가 봤다면서 우리에게 다가오더니 중국 여행 관련하여 족장에게 묻는다. 싱글벙글 웃으면서 친절하게 답해주는 족장의 여유로움이 보기 좋다.
 

눈이 잦아들기를 기다리면서 우리들 맞은 편에 앉아 쉬고 있는 영주의 동지들, 
 

트레킹 일정을 우리와 함께하고 있는 대전의 삼부자 팀도 잠시 숨을 고르고 있다. 중3, 중1의 두 아들을 데리고 특별한 체험을 시도한 아버지의 마음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는 있겠지만 자식에 대한 사랑과 배려를 직접 행동으로 옮기는 그 단호함과 진정성에 박수를 보낸다. 그에 비해 우리들은 주변 가족들을 추스르기 보다는 늙어가는 나 자신의 몸과 마음을 더 잘 챙겨야겠다는 이기심의 발로가 더 큰 것 같아서 비교가 될 수도 있겠다. 여하튼 의도 여부를 떠나 태산처럼 높고 큰 산을 접하면서 더 큰 꿈을 키울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더 무엇을 바라겠는가.  
 

희말라야 롯지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오늘의 최종 목적지 데우랄리까지는 1시간 30분의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눈덮인 길이라 시간이 좀더 걸릴 수도 있을 것 같다. 데우랄리 직전에 있는 눈사태 사고 지역을 통과해야 하는 부담이 없지 않으나 상황을 관찰해 가면서 조심조심 통과해야 하리라. 
 

위의 두 사진은 우리 일행이 눈사태 사고 지역을 통과하는 장면이다. 1920년 1월 17일 충남교육청 소속으로 네팔 교육봉사활동에 참가한 김숙자, 이민수, 정필봉, 최효원 선생님이 이곳을 통과하다가 눈사태를 만나 히말라야의 별이 되고 만 지점이다. 
 

포터 이쏘르씨가 그들의 명복을 빌 수 있도록 2023년 1월 17일에 따또바니교육봉사회에서 설치한 추모판을 보여주고 있다. '당신들의 뜻을 끝내 펼치지 못하고….. 편히 잠드소서'
 

오후 5시경, 우리 일행은 오늘의 목적지인 데우랄리에 도착했다. 
 

숙소에 도착해서 바로 옆에 있는 입간판을 찍었다. 해발 3200m 지점에 우리가 와 있음을 실감한다.
 

싱글벙글 족장의 모습, 하루 하루 높은 곳을 오르면서 느껴지는 성취감에 고무된 듯하다. 우리 팀이 모두 이렇게 즐거울 수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당신 덕분이오. 족장, 고맙소.^^ 
 

저녁식사로 선택한 달밧, 네팔인들이 즐겨먹는 음식이자 전통음식으로 '달(Dal)은 렌틸콩 수프를, '밧(Bhat)'은 밥을 의미한다. 네팔 전역에서 하루 두 끼 기본적으로 먹는 주요 식사라고 하는데, 아직 우리들에게는 익숙치 않고 네팔 음식에 더 적응해야만 할 것 같다. 현지에서는 매우 비싸게 팔리고 있는 신라면의 맛이 나에게는 더 감동이다. 
 

틈나는 대로 충전을 해 두지 않으면 안 되는 휴대폰과 충전 밧데리인만큼 다들 신경써서 관리하시길.....
 

이역만리 히말라야에서도 그나마 와이파이가 어느 정도는 작동되어서 인터넷 세상 소식을 접할 수 있어서 좋다.
 

다음 날 아침 7시경, 조식으로 식빵과 계란후라이 감자 토마토 소스를 주문해서 먹었다. 그런대로 먹을 만 했다. 친구들도 비교적 만족하고 있는 듯 했다. 
 

날씨는 쾌청했다. 아침 8시에 출발해서 MBC를 거쳐 최종 목적지 ABC까지 오르는 날이다. 그런데 출발 직전에 데우랄리 바로 윗지점에서 눈사태가 나는 바람에 출발이 불확실하게 되고 말았다.
 

희뿌연 안개가 바로 눈사태 직후에 보이는 눈가루들이다. 데우랄리 롯지에서 현장을 내려다보면서 찍은 사진이다.
 

길을 나섰던 많은 사람들이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이 되어 갈등하는 장면인데, 대부분 등산을 포기하고 내려가거나 하루를 온전히 더 기다려 다음날 도전하는 것으로 계획을 바꿔야 했다. 영주 팀도 우리 팀도 마찬가지였다. 몇몇 팀은 망설이다가 우회해서 돌아가는 길을 선택해서 기어코 위로 올라갔다고 했지만 크게 부러워할 일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안전을 중시해야 한다는 가이드의 충고와 제안을 받은 이상, 하룻밤을 데우랄리에서 더 묵어야 했다. 문제는 피부를 파고드는 추위였다. 하루종일 걸을 때에야 운동하는 만큼의  땀이라도 흘릴 수 있지만 크게 움직이지 못하고 있어서 자주 엄습해 오는 오싹오싹한 추위는 공포 자체였다. 
 

이렇게 햇빛을 쬐면서 젖은 옷이나 장갑을 말릴 수 있었던 것은 잠시 뿐,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다시 눈이 오기 시작했고 또 계곡의 음산한 기운과 함께 찾아오는 추위와는 지속적으로 싸울 수밖에 없었다. 견디다 못해 나는 두터운 옷을 입고 뜨거운물 1리터를 사서 날진물병에 담아 침낭 안에 넣어두고 핫팩을 속옷에 붙이고 침낭안으로 들어가 누워버렸다. 물병의 온기를 느끼면서 한참 있으니 온몸이 따스해진다. 최근 2,3일 동안 나를 추위로부터 지켜내는 최고의 방법이다. 샤워를 한 지도 며칠이 지났는지 모른다.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할 수 있는 시설이 되어 있다 하더라도 고지대에서 샤워는 금물이다. 고산병을 부르는 위험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개들은 눈이 많이 내려서 마냥 좋다. 사람들에 대해서 아무 관심이 없는 것 같고 저들끼리 어울려 사는 개들이다. 여기저기 마음껏 뛰어다니면서 노느라 바쁘다. 더구나 암수의 관계라면 더욱 좋아할 것이고 그 열기는 뜨거우리라. 저들을 위무하는 것도 오로지 저들일 뿐, 인간의 손길이 뻗친다손 치더라도 저들끼리만큼이야 하겠어? 그래, 마음껏 사랑하라. 그리고 컹컹 짖어대라. 우리를 더 이상 방해하지 말라고.  
 

데우랄리에서의 이틀째 밤은 길고 길었다. 새벽 5시쯤 되니 저절로 깨었다. 밤새도록 몸을 따스하게 해 주던 날진물병도 이젠 제 기능을 잃었다. 아침 날씨가 어떨지 제일 궁금했다. 눈이 계속 내린다면? 밖으로 나가보니 컴컴한 하늘에 별들이 총총이다. 이러면 됐다. 어제 아침처럼 일찍 식사를 하고 8시쯤에는 MBC를 향해 길을 떠날 수 있으리라.
 

날씨는 참 쾌청하다. MBC, ABC까지 트레킹이 가능하다는 결론이다. 눈이 녹으면서 산사태가 날 수 있는 지역도 최대한 빨리 지나가서 위험을 최대한 줄이면 된다.
 

MBC를 향해 가는 트레킹, 눈사태 지역을 벗어나 우회하는 길을 선택했다. 발자욱마다 스릴이 넘치고 있음을 즐기면서.
 

등산화에 아이젠을 달고 걸으니 미끄러짐이 거의 없다. 뽀드득 뽀드득 눈을 밟는 촉감도 좋다. 계속 걷기 힘들면 털썩 주저앉아 쉬는 것도 마냥 좋기만 하다.
 

산그림자 지역을 벗어나 해가 솟은 눈길을 지나가자니 햇볕이 너무 강렬하다. 선글라스를 쓰지 않고는 계속 걷기가 매우 어려울 텐데 태국이는 미처 선글라스를 준비하지 못했다. 결국 햇볕이 반사되어 앞을 거의 못볼 지경까지 되고 만 것이다. 궁즉통이라 햇던가. 휘동이가 자신의 안경에 달아 끼울 수 있는 선글라스를 태국에게 건네고, 휘동이는 춘수가 빌려주는 도수 없는 선글라스를 빌려 쓰면 되었던 것이다. 태국은 워낙 고도근시라서 자신의 안경 없이는 조금도 움직일 수 없을 정도인데 자신의 안경에 선글라스를 달게 되었으니 그 효과는 그저그만이다. 휘동이는 얼마 전 눈수술(라식, 라섹)을 해서 자신의 안경을 벗어도 웬만큼은 볼 수 있는지라 도수없는 춘수의 안경을 빌려 써도 괜찮은 것이다. 춘수에게는 또다른 여분 선글라스가 있으니 그것을 자신이 쓰면 되고...... 만약 태국이가 끝까지 햇빛 속에서 선글라스를 쓰지 않고 계속 움직이게 되었다면? 심각한 설맹 현상 때문에 엄청난 고통을 겪어야 했을 것이다. '태국이는 복도 참 많고, 참 착한 사람이라 누가 도와도 도와주는 사람이 있구먼. 하나님의 사랑을 한몸에 받은 탓일까?'
 

MBC에 거의 도착했음을 알리는 현판 앞에서 기념사진 한 장 남겼다. 해발 3700m 지점이다. 
 

춘수가 우리 둘 사이에 앉아서 자세를 잡았는데 그의 날씬한 몸매가 갑자기 부러워졌다.
 

저 뒤로 보이는 곳이 MBC다. 거기에서 점심을 먹고 한참을 쉬다가 트레킹의 최종 목적지인 ABC로 출발할 예정이다.
 

오전 11시가 조금 안 된 시간, MBC에 도착해서 여섯 명이 나란히 기념사진 한 장을 남겼다. 거의 목표지점에 다 와 간다는 성취감에 기분이 좋아지는 순간이다. 이제 남은 고도는 430미터 정도인데 거기까지 가면 더이상 오르지 않아도 된다.  
 

안나푸르나 남봉을 배경으로 영신22기 네 명끼리도 기념사진 한 장 정도는 찍어서 남겨놓아야 한다. 동기회장 순균이가 꼭 보고 싶은 장면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히말라야를 품은, 자연 속에 숨겨 준 보물, 네팔에서 좋은 기운 듬뿍 받고 안전하게 돌아오라'는 그 간절함에 화답하는 의미도 있겠다.
 

MBC의 롯지 뒤로 보이는 봉우리는 마차푸차레다. 벽공의 하늘에 구름과 함께 기분좋게 매달려 있는 모습이다.
 

지금까지는 날씨가 너무너무 좋았는데,  ABC 쪽에서 구름이 일어나는 것으로 보아 날씨의 급격한 변화가 예상된다. 설마 저렇게 맑은 하늘인데.....
 

점심 메뉴는 애플 팬케잌 또는 바나나 팬케잌 정도로 가볍게 먹는 것으로 하고 12시쯤 넘어서 ABC로 향하기로 했다.
 

다를 출발 준비 됐나요? 마지막으로 힘을 내서 안전하게 오르도록 합니다. 되도록이면 천천히 천천히, 알았지요?
 

마차푸차레의 영봉을 배경으로 태국이는 희열감의 만세 자세를 취했다. 적당한 구름과 백설, 하늘과 봉우리 등이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이다.
 

광활한 자연 속에 우뚝 서서 외쳐본다. "마차푸차레여, 안나푸르나여, 히운출리여, 나 당신들 보러 여기까지 이렇게 왔어요. 잘 받아주시오. 내가 사는 세상 돌아가서 당신들의 안부 멋지게 전해줄 거요."   
 

저 멀리 ABC가 보이는데 가도 가도 멀리 달아나는 것만 같다. 날씨까지 갑자기 안 좋아지는데 웬일이야? 구름이 온통 산을 가리고 있네? 우리가 너무 욕심을 냈는가? 보여주려면 끝까지 보여줘야지. 왜 보여주다가 마는 거요?
 

MBC에서 ABC까지 오는데 거의 세 시간이 걸렸다. 12시 경 출발한 것이 거의 오후 3시에 도착했으니 말이다. 금방 도달할 것만 같은 길이었는데 예상보다 눈길에 다들 헤맸다는 결론이다. 여하튼 최종 목표 지점에 이르렀으니 더이상 무엇을 바라랴. 친구들아, 고맙다. 함께였기에 서로 도우면서 한마음이 되었기에 우리가 여기까지 올랐구나. 함께 이 감격을 누릴 수 있음이 얼마나 큰 행운이고 기쁨이냐? 고맙데이. 저 플래카드를 함께 잡고 기념할 수 있어서 참 좋다. 우리 모두 기쁨의 눈물이라도 흠뻑 흘려야 하지 않을까? 
"창열, 권주, 정우, 휘동! 글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이다! 눈물 난다. 돌고 돌아 올라간, 그 고생 익히 알겠다." 동기회장 순균이의 카톡 메시지다 "볼에 비비고 업어주마."도 추가된 순균이의 메시지다. 동기회 감사를 맡은 이병우의 카톡 메시지도 보인다. "히말이 우리 옆으로 성큼 다가왔네. 장엄함과 신비로운 정기를 듬뿍 가지고서. 친구들 고맙다. 사랑한다!!"
 

저녁 6시 경, 혜초여행사에서 주관한 ABC 트레킹에 참여한 분들 16명과 같은 장소에서 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식당의 취사도구로 보이는 곳에서 스멀스멀 새어나오는 역겨운 가스냄새가 코를 심하게 자극했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왔다. 특히 나보다 춘수는 그 냄새로 매우 힘들어 했다. 식사를 빨리 끝내고 이곳을 벗어나는 수밖에 없으리라.
 

ABC 롯지는 목표를 이뤘다는 성취감 때문인지 지금까지 묵었던 어떤 롯지보다 편하게 느껴졌다. 이불도 푹신푹신, 추위도 얼마든지 견뎌낼 수 있을 것만 같은 롯지다. 방이 모자라서인지 우리는 두 개의 방에 각각 3명씩 배정되어 자야 했다. 나, 춘수, 태국 이렇게 3명이 한 방을 쓰고 그 옆방을 창열, 휘동, 정우 이렇게 세 명이 쓰기로 했다. 가이드는 너무 일찍 잠을 자지 말고 느즈막하게 잠을 잘 것을 요청했다. 해발고도가 높은 곳에서 일찍 잠이 들면 너무 많은 잠을 자게 돼서 오히려 건강에 좋지 않다는 뜻이란다. 그러나 밤새도록 추위를 견디려면 날진물병에 뜨거운물 채워서 침낭 속으로 빨리 들어가는 게 상책인지라 일찍 자리에 누워야 했다. 다음날의 일출 광경을 잘 보기 위해서도, 오랜 시간의 하산길 트레킹에 대비하기 위해서도 그렇게 해야 했다. 잠은 최대한 늦게 드는 것으로 하고 세 명이 나란히 누워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가볍게 시작했는데 '확증 편향'을 주제로 이야기하다 보니 정치적 견해를 피력해야만 하는 상황이 생기게 되고 결국 태국과 나는 견해 차이로 가벼운 의견 충돌이 생기고 말았다. 춘수가 여러 번 중재하기도 했지만 결론은 내지 않았고 생각의 차이만을 드러낸 채 이야기를 끝내야 했다. 이젠 더 이상 상대방을 설득의 대상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결론일 수도 있겠다. 자신의 생각과 소신 대로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참 많다는 사실을 인정할수록 더욱 그렇다.
 

깊고 오랜 잠에 빠졌던 지난 밤이었기에 이른 새벽에 잠을 깰 수밖에 없었다. 설레는 맘이 이만큼 강렬할 수 있을까 싶다. 숱한 별들이 점점이 박혀 하늘을 수놓으며 안나푸르나의 새벽 기운을 한층 고조시키는가 싶더니 어둠을 차츰차츰 밀어내던 여명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영롱하던 별빛도 그 세력이 약해지고 그믐달이 마차푸차레 봉우리 옆에 살짝 걸렸다. 잠시 후면 일출이 시작된다는 신호 같았다. 
 

동쪽에서 이미 해는 떴을 테지만 우리는 마차푸차레(6997m)의 거대한 산그림자 때문에 아직 볼 수는 없다. 굳이 보지 않아도 된다. 일출이 진행되는 동안에 관찰할 수 있는  ABC 주변의 시시각각 변화에 더 관심이 있으며 그 장면 장면을 사진에 담아두고 싶은 것이다. 
  

안나푸르나 1봉(8091m)의 위용이다. 이 주변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이기에 햇볕도 제일 먼저 맞이한 것 같다.
 

롯지에서 하룻밤을 묵고 있던 각국의 사람들이 일출 장면을 보기 위해 한마음이 되어 우리가 있는 곳으로 모이기 시작한다. 모두가 지금의 이 순간을 만끽하기 위해 몇날 며칠을 고생하며 찾아오지 않았던가! 고생한 보람을 맘껏 느낄 수 있는 오늘이 아닐까 싶다. 이렇게 장엄한 장면을 이곳 아니면 어디서 직접 볼 수 있겠는가! 감동, 감동, 감동,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이 순간, 이 느낌을 무엇이라 표현할 수 있을까, 감동의 눈물이라도 펑펑 흘리고 싶은 오늘이다. 인생을 살면서 경험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가 아닐까! 

 

아무리 보아도 매력적인 마차푸차레(6997m)의 자태다. 햇빛을 머금은 구름에 둘러싸여 그 신비로움을 더하고 있는 봉우리이다. 여기에 온 숱한 군상들의 삶을 모두 알고 있기나 한 듯, 우리를 내려다보면서 한 마디 충고를 하는 듯하다. "인생 별 것 아니야. 아웅다웅 살지 마. 잠시 살다가는 인생, 서로 사랑하고 서로 즐기면서 살아. 나를 찾아와 준 것은 최고의 선택이었어. 히말라야에는 나 말고 멋진 친구들이 많이 있어. 다음엔 그들을 보러 가시게."

 
 

4130미터, 꿈의 고도다. 막연히 오르고 싶었던 이곳, 친구들과 함께 한 트레킹이었기에 해낼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혼자였다면 과연 오를 수 있었을까 싶다. 적어도 등산이나 트레킹의 경우는 그러하리라. 혼자서 해내려면 우선 외로움이 앞설 것이고 순간순간 찾아오는 고통과 갈등 때문에 자신감이 떨어질 수 있고 누군가와 함께할 때보다 매우 힘들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래서 우리 인간들은 누군가와 함께하며 동지애도 느끼고 서로 도와주고 도움을 받으면서 살아야 존재이리라.  

 

우리의 족장 창열, 그는 여행 매니아다. 지구의 여러 곳을 참 많이도 돌아다니며 살고 있는 노마드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패키지 여행을 거부하고 직접 기획하고 준비해서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훌쩍 떠나는 여행을 즐긴다. 몇 년 전 히말라야 EBS트레킹을 다녀온 후 ABC트레킹을 계획한 것도 우연이 아니다. 그는 이번에 두 번째 히말라야를 찾았고 최고의 절경을 보았다고 고백했다. EBS트레킹 때 못 보았던 아기자기한 풍경을 만끽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안나푸르나 남봉(7219m)을 배경으로도 한 장면 찍어 둔다. 내가 이런 곳에 올 수 있었다니!
 

ABC롯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산악인의 전설인 박영석 대장, 신동민, 강기석의 추모비가 있다. 고인의 삶을 추모하기 위한 최소한의 예절로 고개숙여 명복을 빌었다. 영주 팀이 준비한 태극기를 빌려서 히말라야에 와서 한국인의 기상을 널리 알리고 꿈을 실현했던 분들을 기렸다. '고인이시여, 당신들은 히말라야의 별이 되어 영원히 이곳을 지키고 있습니다. 고이 잠드소서.'
 

박영석 대장에 대한 자료를 인용한다. <2005년 4월 30일에 북극점에 도달함으로써, 세계 최초로 탐험가 그랜드슬램(Explorers Grand Slam)을 달성하여 기네스북에 등재되었다. 한국에서 최초, 세계에서 8번째로 히말라야 8000미터 이상의 봉우리 14좌를 완등(세계 최단기간)한 산악인이기도 하다. 2011년 10월 18일 오후4시,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남벽에서 실종 된 후 2명의 대원과 함께 소식이 끊겼다. 이후 대한산악연맹을 중심으로 두 차례 구조대를 파견했지만 아무런 흔적을 찾지 못했다.>(나무위키 자료 인용)
 

ABC 롯지에 머물렀던 트레커들이 모두 떠나고 우리 팀만 남아서 늦은 아침 식사를 했다. 8시쯤에 하산을 하기로 했는데 다른 팀들은 30분 전에 서둘러 빠져나간 것이다. 추측컨대 해가 떠서 눈이 녹기 시작하면 눈사태가 날 가능성이 많아서 그 전에 내려가기로 한 것이 아닐까 싶다. 가이드인 붓다에게 우리 팀이 너무 늦게 가는 것 아니냐고 물으니 걱정 안 해도 되고, 눈사태 가능성도 별로 없다고 한다. 자주 이곳을 오르내리는 그들의 말이기에 믿음이 갔다.^^

 

 하룻밤 묵었던 ABC 롯지의 방도 기념으로 한 장 찍어두었다. 비록 어설픈 듯 보이는 공간이지만 밤새도록 강추위에서 우리를 보호해 준 고마움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이다. 이곳에서 하룻밤 머물다 가게 될 모든 분들의 건강과 무사함을 빌어 본다. 

'여행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안나푸르나 트레킹 5  (0) 2025.03.07
안나푸르나 트레킹 4  (0) 2025.03.06
안나푸르나 트레킹 2  (0) 2025.03.04
안나푸르나 트레킹 1  (1) 2025.02.19
캐나다 로키 트레킹 3  (5) 2024.10.07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