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에 이어 오늘도 봄나들이를 계속했던 하루다. 낭송가협회 최고령의 회원이지만 제일 젊게 살고 있는 홍경 윤*희 회원님의 적극적인 봄나들이 방식에 고무된 남녀 3명이 의견의 일치를 보고 홍경께서 자주 다녔던 길을 따라 나서게 된 거다. 나들이 코스는 상주에서 보은 속리산에 이르는 국도 주변의 풍광을 좇아 가는 것인데, 홍경 누님의 안내를 받으면서 천천히 진행되었다.
제일 먼저 들른 곳은 상주 보건소 경내에 피어 있는 목련꽃 그늘 아래다. 마침 만개한 목련이어서 홍경은 이미 꽃그늘에 앉아서 정신없이 취해 있었고, 우리들에게 빨리 와서 사진부터 찍으라고 난리다. 저 흐뭇한 미소를 보시라.
꽃 안의 꽃술을 자세히 살필 수 있을 때 꽃의 진정한 매력을 느낄 수 있다는 홍경님의 말씀을 듣고 목련꽃을 확대해 보았다.
상주 남장사 입구에 있는 조선시대의 석장승, 1982년 2월 24일 경상북도의 민속문화제 제33호로 지정되었다. 장승은 마을 입구나 사찰 입구에 세워 잡귀와 액운의 출입을 막고 사찰 내의 재산과 경계를 표시하는 민간신앙물로 마을에서는 수호신의 기능을 겸하기도 한다. 눈꼬리가 치켜 올라간 왕방울 눈, 주먹코, 야무지게 다문 입술에 송곳니가 보인다. 가슴에는 한 가닥의 수염이 있다. 성난 표정을 표현하려 했으나 그보다는 소박함과 천진스러움이 엿보인다.
느티나무는 어느 정도 나이를 먹게 되면 수피의 거친 질감과 옹이 부분의 변화가 주는 독특함이 눈길을 끄는 것 같다.
보광전과 교남정사(강당)
보광전에 울려오는 스님의 독경소리를 들으면서 천천히 남장사 경내를 둘러보았다. 보광전 중앙계단 양옆에 자라고 있던 파초가 보이지 않아서 섭섭하다. 다른 절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함이기도 해서 좋아했는데..... 주지 스님이 바뀌었나?
보광전 목각탱(보물 922호)과 철불좌상(보물 990호), 목각탱은 조각 기법으로 보아 조선 후기의 목각탱으로 추정되고 작품의 우수성이 뛰어나 보물로 지정되었다. 철불좌상(비로자나불)은 보광전의 주존불로 조선 초기 철불상의 귀중한 자료로 높이 평가되어 보물로 지정되었으며 병란이나 심한 가뭄이 닥칠 때는 스스로 땀을 흘리는 영험함이 있다고 한다.
노란꽃이 핀 꽃다지
남장사의 금당으로 고려 신종 6년(1203)에 건립하여 여러 차례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는 극락보전 안에는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보물)이 모셔져 있다. 극락세계의 주인공인 아미타불을 본존불로 가운데 두고, 자비를 상징하는 관세음보살상을 왼쪽 협시보살로, 지혜를 상징하는 대세지보살을 오른쪽 협시보살로 배치했다.
봄날의 따스한 햇볕에 세 분의 보살님은 극락보전 앞 계단에 앉아 휴식을 취한다. 부처님을 향해 두 손을 모으거나 108배를 올리는 심정으로 꽤 여러 번 절을 하는 편 회장님의 모습을 보았다. 소원하는 내용이 무엇일지 짐작해 볼 수 있었다. 올해 말에 듬직한 사위를 본다고 하는데..... 가족 기업을 꿈꾸는 남편의 사업 성공은 물론이고 딸과 예비사위를 향한 오롯한 마음이 아니었을까?
상주 남장사 영산회 괘불도를 보관하고 있는 크고 길다란 나무상자가 법당 뒤편에 보인다. 그 괘불도는 죽은 사람의 명복을 비는 불교의식인 영산재 때 사용된 큰 그림(가로 6.43m, 세로 10.34m)이다. 정조 12년(1788) 불교그림을 그리던 상겸의 주도로 총 22명의 화승이 참여하여 완성했다고 한다.
남장사를 벗어나 보은 방향으로 달리는 국도 주변의 풍광은 어느 계절이든 좋다. 내가 현직에 있을 때 아침저녁으로 늘 오가던 길이라서 익숙한 길이지만 오랜만의 길이라 더욱 반가웠다. 봄기운은 완연했으나 여기저기 피어나는 꽃들은 잘 보이지 않았다. 꽃이 없다고 봄이 아닐까? 그러나 봄은 이미 온 세상을 변화시키고 있지 않나?
화서면 소재지 옆의 상현마을 반송을 찾아가 보기로 했다. 천연기념물 293호로 지정되었고, 수령 약 500년 정도를 자랑하는 반송이다. 마을에서는 예부터 신성한 나무로 여겨서 나무가지, 낙엽 하나 못 주워가게 할 정도라고 한다.
반송 주변 잔디밭에는 봄까치풀(개불알꽃)이 눈에 띠게 많이 보였고, 노란 꽃다지, 냉이풀꽃, 제비꽃이 한창 매력을 발산하고 있었다. 동백나무도 꽃망울을 잔뜩 부풀려 놓아서 하루 이틀 지나면 만개할 것만 같았다.
상주시 화남면 평온과 동관을 지나 충청북도 속리산면으로 어느덧 접어들었다. 어느 갈림길, 홍경 누님께서는 젊은 시절 부군과 함께 자주 찾았다는 만수계곡 방향쪽으로 핸들을 돌리자고 했다. 예정된 방향과는 정반대였다. 좀처럼 알려주지 않는 비밀 장소인데 오늘 우리들을 위해 특별히 공개하겠다면서 20리 길을 달리며 곳곳에 어려있는 추억들을 말씀하는데 끝없이 이야기는 이어졌다. 나무와 계곡, 바위, 돌멩이 하나하나에 심어놓은 추억의 보따리가 한꺼번에 쏟아지는 느낌이었다. 앞으로 이곳을 찾을 사람은 당신한테 신고를 해야 한다면서 웃는다. 한편 그 웃음 뒤에 서려있는 헛헛함을 또 어쩌랴. 홍경을 끔찍하게도 사랑하고 아꼈던 부군께서는 10년 전에 암투병 끝에 세상을 뜨고 말았으니..... 그러나 홍경께서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언제든지 와서 어디든 데려갈 수 있는 남자들이 대여섯 명은 된다면서 한바탕 웃게 만든다. 공허함이 살짝 묻어나는 순간이기도 했다.
속리산 입구의 정이품송 앞에 오랜만에 서 본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온전하게 지켜보았을 나무, 오죽하면 정이품이라는 품계를 받았을까. 자연이 인간에게 베푸는 친절함으로 인해 벼슬을 받는다면 비단 저 정이품송 뿐이었을까 싶다. 여하튼 오랜 세월 꼿꼿하게 서서 온갖 풍상을 견뎌낸 그 '지인달사'의 풍모는 찬양받아 마땅하리라.
서울의 D중학교 2학년 때 속리산으로 수학여행을 온 적이 있는데, 그 때 정이품송을 처음 봤고 순식간에 52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간의 눈에 보이는 변화라면 나무의 오른쪽 가지가 일부 잘려나가서 균형감을 조금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그 동안 폭싹 늙어버린 나라는 인간에 비해서는 눈꼽만큼의 변화일 뿐이다. 왜 가지가 부러졌는지 원인은 잘 모르겠으나 세월의 변화일 게다. 또 그렇게 변하는 게 순리일 것이다. 언젠가는 생명을 다하겠지만 그 전까지는 조금씩이나마 변해야 하는 것 아닐까? 하물며 인간임에랴.
속리산 칼국수 집, 콩나물 칼국수라고 해야 할 정도로 칼국수에 콩나물을 넣어서 먹을 때 느낄 수 있는 입맛을 만끽하려면 꼭 이 식당에 들르지 않으면 안 된다며 홍경께서 안내한 식당이다. 과연 칼국수의 맛은 홍경의 말씀대로였다. 개인적으로는 거의 처음 맛보는 최고의 칼국수였다. 가운데 보이는 감자전의 쫀득쫀득한 맛도 일품이다. 거기에 막걸리 한 잔을 곁들이니 다들 좋아라 한다.^^
점심 시간을 전후해서 사람들이 줄을 서야 할 정도로 손님이 매우 많은 식당임을 금방 알 수 있었다.
점심을 해결했으니 커피를 또 한잔 해야 해서 속리산 오리숲 입구의 어느 까페를 찾았다.
보은 속리산 오리숲길을 걸으려던 계획을 갑자기 바꿔서 상주 왕산역사공원으로 급히 돌아왔다. 문경 부모님 댁에 와 있는 선아 사무국장의 전화를 받고 그녀가 너무 우리 일행을 오래 기다리게 해서는 안 된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다.
역사공원 안의 평화의 소녀상을 세우는 행사 때 참여한 적이 있었는데 벌써 1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는 게 실감나지 않는다. 저 소녀상 옆자리에 위안부 할머니 이용수 할머님이 안고 이 행사를 주관했던 고 조영옥 선생님이 환하게 웃으면서 사진을 찍던 모습이 엊그제 같은데.....
상주 복룡동 석조여래좌상(보물 제 119호)이 왕산역사공원 장원봉 바로 아래 위치해 있다. 부처가 앉아 있는 모습을 돌에 조각한 불상이다. 원래 상주시 복룡동에 있던 것을 1975년에 지금 자리로 옮겼다고 기록되어 있다. 불상의 자세나 신체 묘사가 투박하고 얼굴이 풍만하게 생긴 것으로 미루어 고려시대 작품으로 추정된다.
산수유꽃을 사진에 담아보려는 세 여인의 자세가 재밌다.
풍류을 읊어볼 수 있는 누각이라는 뜻으로 쓴 어느 명필의 글씨 '풍영루'가 눈에 들어온다. 4년간 나에게 서예를 가르쳐 주신 석천 김*영 선생님의 글씨와 참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혹시 그분의 글씨인가 싶어 낙관을 봤더니 잘 모르는 분이다. 벌써 2년째 중단한 서예, 언제 다시 이을 수 있을까? 얼마 전, 내년 초에 정년퇴임 기념 서예전시회를 열 예정이니 작품을 찬조할 수 있어야 안 되겠냐는 석천 선생님의 전화 목소리가 오버랩 되었다.
홍경 누님은 편*미 회장님과 조*숙 사무국장님은 꼭 자매같다고 표현했다. 요즘 두 분은 몇 년간 구미낭송가협회의 일을 맡아서 처리하느라 몸과 마음이 바쁘다. 올해 6월의 도서관 콘서트, 9월의 시낭송콘서트가 기다리고 있어서 철저히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내가 옆에서 조금씩 도와준다고는 하지만 쉽지 않은 일들이 수시로 괴롭히고 있는 현실이다. '두 분의 수고로움 우리 회원들 모두가 잘 알고 있는 만큼 적극적으로 협조할 것이니 의욕 잃지 말고 더욱 힘내시기 바랍니다.'
저녁 식사는 북천의 모 식당으로 가서 코다리찜을 먹을까 하다가 다시 차로 이동하기가 번거로우니 가까운 곳을 찾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의견이어서 역사공원에서 5분 거리에 있는 내 단골집, '산버섯 식당'을 찾기로 했다. 5시 30분까지 가겠다고 예약까지 해 두었다. 다들 동의하기도 했지만 그만큼 맛과 풍류를 보장할 수 있기 때문에 꼭 안내하고 싶었던 식당이다. 내가 상주교육청 소속 교사로 7년 남짓 근무하면서 술을 한 잔 하고 싶거나 귀한 손님께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고 싶을 때면 늘 찾아가던 곳이다. 식당 주인 할머니의 손맛과 두터운 인심을 어찌 잊겠는가! 고생을 많이 하고 연세도 많아 등까지 굽었는데 그분의 음식맛은 누구도 흉내낼 수 없다. 할머니의 만수무강을 기원한다.
산버섯 식당이 맛집이라는 것은 장편 만화 <식객>의 저자이자 TV 백반기행의 진행자인 허영만 선생의 방문기념 사인 문구만 봐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오늘 하루 즐겁던 날, 우리들의 발걸음은 매우 가벼웠다. 또 언젠가 좋은 날이 오면 이런 시간을 가질 수 있겠지? 헤어진 뒤, 회장님의 카톡 메시지가 왔다. "부회장님, 어제 오늘 안전 운전이며 봄 가이드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덕분에 봄맞이 제대로 했습니다. 편안한 밤 되셔요." 사무국장님의 메시지도 연이어 왔다. "부회장님, 들어가셨지요? 늦게 합류했지만 행복한 시간 주셔서 감사해요. 편안한 밤 보내셔요."
아들 내외와 나은이를 만난 날 (0) | 2025.03.25 |
---|---|
산수유 마을 꽃맞이 축제 행사 초청 시낭송 (0) | 2025.03.22 |
비봉산의 조그만 돌탑들 (0) | 2025.03.18 |
당고모님의 별세 소식 (1) | 2025.03.13 |
화가 박성녀 선생님, 추운 날의 지산샛강생태공원 (0) | 2025.02.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