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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봄, 국어과 동기 모임

사진과 함께

by 우람별(논강) 2024. 4. 5. 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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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간의 중국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국어과 동기모임에 참여했다. 국립칠곡숲체원 단체동에서 숙박을 하기로 되어 있어서 함께 여행했던 서정우 선생과 함께 그곳을 찾아갔는데 도착하니 밤 10시 30분이었다. 마침 서정우 선생의 눈웃음을 소재로 익살꾼인 병국이가 일행을 한참 웃기고 있을 때였는데, 우릴 보자마자 포복절도를 한다. 과연 서정우 선생의 눈웃음은 한 여인을 매료시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는 결론을 낸 것 같았다. 멋도 모르고 나도 덩달아 환하게 웃고 말았다. 중국 땅에 있을 때 가장 먹고 싶은 것이 김치이고, 마시고 싶은 막걸리였는데, 미리 알고 있는 듯 준비를 해 놓은 동기들이 눈물날 정도로 고마웠다. 전 회장님인 연중씨와 현 회장님인 해숙씨가 얼마나 시장하겠느냐며 된장국과 함께 비빔밥을 만들어 왔는데 꿀맛이었다. 또 얼마나 그리웠던 음식이었을까!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나 이렇게 살아왔소'의 이야기는 희륜씨의 표현처럼 씨줄 날줄처럼 엮어가는 대서사시처럼 이어졌고 여자 동기들이 먼저 돌아간 뒤에도 이야기는 계속 이어져서 새벽 3시가 되어서야 이부자리를 펼칠 수 있었다. 다음날의 일정을 소화하려면 밤을 지새는 것은 불가능하니까.
 

다음 날 아침, 8시에 구내식당에서 제공하는 아침을 맛있게 먹고 9시에 숙소를 나와 숲해설사로 활동하고 있는 동식이를 따라 숲체원 경내를 천천히 걸으면서 꽃과 나무에 관한 해설을 듣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우동식 선생은 교장으로 정년퇴임을 한 이후 경상북도 환경연수원에서 소정의 연수 과정을 거쳐서 숲해설사 자격증을 땄고, 지금까지 수많은 활동 경력을 쌓고 있으며, 틈틈이 수필을 써서 많은 독자를 확보하고 있다. 금오산 수필문학회를 창립하여 초대 회장에 추대되었고 지금까지 활동을 계속해 오고 있다.
 

아침 일찍 희경씨는 사정이 생겨서 귀가했고, 12명이 남았는데 남녀 각각 6명이라서 일대일 미팅도 가능해졌다.^^ 파트너 정하기 놀이라도 해 볼까? 누구랑 파트너가 되어도 재미있을 것임에 틀림없다.^^
 

털켜가 없어서 겨울에도 잎을 떨어뜨리지 않는 감태나무와 관련한 설명을 하는 장면이다. 어느 작가의 감태나무를 소재로 작품까지 인용하는 해설까지 덧붙이니 한층 품격이 높다. 청중을 배려한 설명 같아서 좋다. 역시, 동식이는 최고의 숲해설가임에 틀림없다.^^
 

칠곡숲체원 데크길 주변에는 생강나무가 많이 보였는데, 노란 꽃이 서서히 떨어지면서 유선형의 잎이 여기저기 발랄하게 돋아나고 있는 장면이 자주 보였다. 생강나무의 가는 가지를  잘라 맛을 본 병국이는 진짜로 생강맛이 난다면서 먹어보라고 한다. 김유정의 소설에 나오는 노란 동백꽃이 바로 생강나무란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다지 흔하지 않을 것 같다.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난 다람쥐의 경쾌한 발걸음이 눈에 띄었다. 가까이 사람이 있어도 그다지 무서워하지 않는다. 사람들로부터 귀여움을 받는 존재일 뿐인데 왜 도망을 가냐는 듯하다. 7,8년 전 인도여행 때, 여행객의 손에 있는 먹이를 먹기 위해 그 손안에까지 들어가던 다람쥐가 떠오른다.
 

남산제비꽃
 

현호색의 자태, 잎끝에 맺힌 이슬방울이 신선하다.
 

우리 동기들이 여기까지 걸어오면서 본 것들 중에, 영화 <칠곡가시나들>과 관련하여 ‘인문학이 흐르는 다누리길‘(데크길)에 할머니들의 시가 10여 편 전시되고 있었는데, 그 시들을 감상해 보는 것도 좋겠다 싶어서 한꺼번에 여기에 올린다.
 

국립칠곡숲체원을 둘러보는 1시간 남짓 가량의 시간은 참 소중했다. 또 하나의 멋진 추억을 쌓았기 때문이다. 그 무엇이든 함께하는 즐거움이 있었으니 우리들에겐 매우 의미있는 시간들이다. 60대 중반을 넘긴 우리 동기들, 이젠 교육현장을 떠나 비교적 자유롭게 살고 있으니 행복한 나날들 아닌가! 그간 참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온 덕이라는 생각도 들지만 이렇게 1년에 한두 번씩 건강하게 만나는 것도 과연 얼마나 지속될까 하는 생각을 하면 우리가 결코 젊지만은 않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국립칠곡숲체원에서 15분 정도를 달려 왜관에 있는 가실성당을 찾았다. 현재의 성당 및 사제관은 1924년에 완성되었다고 하니 올해로 꼭 100년이 되는 건물임을 알겠다.
 

45.6 킬로미터의 <한티 가는 길>의 시작점이 바로 이 가실 성당이다. 2년 전에 일부 구간을 잠시 걸었던 길이기도 해서 다시 시도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서정우 선생이 내맘을 아는 듯 "논강, 이 길도 같이 한 번 걸어야지?" 한다. "좋지, 조만간 우리 함께 걸어보자구."
 

희륜씨는 '소박한 경건미'가 가실성당에서 느껴진다고 표현했다.
 

정병국(안티모) 선생은 성모당 옆 붉은 동백 그늘 아래서 떨어진 잎을 손에 담으며 무슨 말인가를 나에게 던졌는데 기억나지 않는다. 미안해.

성당 계단 옆엔 노란연두빛의 유채밭이 하나 있어서 그 앞에 앉아 배경으로 삼으니 보기가 괜찮다.

점심 식사는 <가실면옥>이란 식당에서 갈비탕으로 해결했는데 그 맛과 가성비가 아주 좋았다. 제법 너른 규모의 식당인데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손님들이 많았다.
 

식사 후 다시 찾은 곳은 하빈면 묘골에 소재한 육신사이다. 그곳에서는 사육신(박팽년, 이개, 하위지, 성삼문, 유성원, 유응부)의 충절을 기리고 있는데 사람들의 출입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는 것 같다. 
 

보물 제 554호인 태고정, 성종 10년에 사육신 중의 한 사람인 박팽년의 손자 박일산이 건립한 정자이다. 원래는 종가 안에 붙어있던 별당 건물이었는데 선조 25년 임진왜란 때 불타 일부만 남았다가 광해군 6년에 다시 지었다. 규모는 그다지 크지 않으나 가구나 세부 가공이 정교한 편이며 조선 전기 건축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어 건축사적인 가치가 크다.
 

육신사 앞에는 초대형 규모의 묘운이란 찻집이 있다.  
 

 

다음 모임은 강원도 원주에서 갖는 것으로 잠정적으로 정하고 헤어져야 했다. 서울 사는 친구들이 오후 3시 남짓 서울행 고속철도를 타려면 급히 서둘러야 한다. 17일간 중국여행을 같이 했던 정우는 그 시간에 동대구에서 경주가는 고속철 예약을 해 놓았었는데 급히 취소해야 했다. 옥정윤 이연중 부부가 경주 남촌집까지 태워준단다. 벚꽃놀이도 할 겸 경주 가기로 예정되어 있어서 가는 길에 친구를 태우고 가면 된단다. 참 잘 됐다 싶다.
 
돌아가는 길에 희륜씨가 보낸 단톡글이 가슴을 파고든다.
'65세 전후의 우리네들이 얼마나 더 이렇게 만날 수 있겠느냐를 얘기하는 대목에서는 살짝 울컥했습니다. 숫자가 뭐 그리 중요하겠습니까만 만날 수 있을 때 만나야겠다는 생각은 변함없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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