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소 앞 피라밋 역에서 7호선을 타고 주시외 역에서 내렸다. 목적지는 아레나 데 뤼테스, 로마 제국의 유적을 만나러 가는 길이다.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해 한두 사람에게 길을 물어서 겨우 찾아냈는데, 쥬시외 역에서 3,4분 정도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다.
원형 경기장으로 올라가는 계단과 이오니아식 난간의 조각, 오른쪽 정원의 꽃들이 아름다운 곳이다.
뤼테스라는 말은 파리의 로마식 이름이었는데 이 뤼테스 경기장은 2세기 후반에 파리가 로마의 지배를 받았을 때 만들어진 것이다. 그 당시 경기장은 35층에 총 15,000명을 수용할 수 있었고, 검투사들의 결투와 연극 공연을 벌였던 곳이지만, 3세기 후반에 붕괴되었고 여기서 나온 벽돌의 일부는 시테 섬을 만드는 데 사용되었다. 그 뒤 형태가 사라져 가다가 1869년 몽주 거리(Rue Monge)가 만들어지면서 원형 경기장의 터가 발견되었다. 그 후 1918년 이후로 재건되어 지금과 같은 형태를 나타내게 되었다. 파리의 유적지 중에서도 오래된 유적지에 속하는 이곳은 유적지답지 않은 그냥 평범한 학교 운동장과 같은 모습이다.(인용: Enjoy 파리)
고대 유적은 그저 보호되고 있을 뿐 효용가치가 없는 게 대부분일 텐데 아직도 이렇게 활용되고 있으니 그 장구한 역사를 대하는 당국의 태도가 부럽다. 자, 이제 지척에 있는 생테튀엔 뒤몽 성당과 팡테옹으로 가자.^^
생 테튀엔 뒤몽 성당, 주느비에브 언덕에 자리잡은 이 성당은 파리의 가장 아름다운 성당 중 하나로 손꼽히는데, 성녀 주느비에브(Geneviève)를 기념하는 성당이다. 건물은 성녀 주느비에브를 숭배하는 사람들이 지었는데, 1492년에 건축을 시작해 1626년에 완성되었으며, 고딕 양식과 르네상스 양식 등 여러 가지 양식이 혼합되어 있다.
성당 정문 오른쪽 조각상이 성녀 주느비에브이고, 성당 내부에는 주느비에브에 관한 스테인드글라스, 설교단과 17세기 작품인 파이프 오르간 등이 있다. 또한, 1803년에 파리의 수호자 성 주느비에브의 성골함이 이곳에 안치되면서 많은 순례자들이 이곳을 찾는다.(인용: Enjoy 파리)
성당문이 개방되길 기다리면서
성당 문이 아침 10시가 넘으니 드디어 개방되었다.
성당 쪽에서 바라본 팡테옹
팡테옹은 중병에 걸렸던 루이 15세가 자신의 병이 나은 것을 기념해 성 주느비에브(Sainte Geneviève) 수도원의 성당을 개축해 1789년 높이 85m의 돔을 가진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만든 것이다. 로마의 판테온에서 영감을 받은 신전의 입구에는 22개의 코린트 양식의 기둥이 있고, 돔 교회와 런던의 세인트 폴 대성당의 영향을 받은 철제 구조의 돔은 모두 3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내부는 그리스 십자가 모양으로 된 네 개의 통로가 있고 돔의 채광은 건물의 중앙에만 빛이 들어오게 만들어졌다. 본당의 남쪽 벽을 따라 그려져 있는 19세기 프레스코 화가인 피에르 퓌비 드 샤방느의 작품인 성녀 주느비에브의 프레스코는 그녀의 일생을 묘사하고 있다.
지하 묘소는 건물 지하의 전역에 걸쳐 있는데 이곳에 최초로 묻힌 사람은 웅변가 오노레 미라보였다. 그리고 빅토르 위고, 장 자크 루소, 퀴리 부인 등 80명의 위인이 이곳에 잠들어 있다. 가장 최근에 묻힌 사람은 〈삼총사〉 〈몽테크리스토 백작〉 등을 쓴 19세기 낭만주의 작가 알렉상드르 뒤마다.(인용: Enjoy 파리)
푸코의 진자가 왜 여기서 나와? 저 노란 추의 왕복운둥은 이 팡테옹과 무슨 관계일까?
팡테온 지하에 잠들어 있는 유명인사들의 무덤 앞으로 가 보았다. 무덤 형태가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팡테옹에서 도보로 7,8분 거리에 있는 뤽상부르 궁전과 정원은 앙리 4세의 왕비였던 마리 드 메디치를 위해 지어진 것인데, 왕이 죽자 기거하던 루브르 궁전이 싫어져 그녀의 고향인 피렌체의 피티 궁전을 본따서 새롭게 지은 것이다. 오늘날 이 궁전은 프랑스 상원 의사당으로 사용되고 있다.
공원의 한쪽에는 메디치(Medicis) 분수가 있는데, 연못 역시 메디치에게 바쳐진 것으로, 이탈리아 석굴 양식의 연못의 끝쪽에는 바로크 양식의 분수대가 있다. 분수대의 조각들은 오귀스트 오탱(Hautain)의 작품이다. 또한 넓은 공원에는 미술관, 테니스 코트, 체험 학습장, 분수대 등이 다양하게 꾸며져 있으며, ‘자유의 여신상’의 모델이 되었던 조각 등 다양한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앙증맞은 가로등 하나, 화려하지도 소박하지도 않은 중용의 품격을 지닌 듯하다.
고딕 양식의 생 쉴퓌스 성당은 파리의 예수회 성당 중에서 가장 크고 가장 장식이 아름다운 성당으로, 노트르담 대성당, 사크레 쾨르 성당과 더불어 파리의 3대 성당으로 꼽힌다. 특히 성당의 파이프 오르간은 세계에서 가장 큰 파이프 오르간이자 가장 아름답고 섬세한 음을 내는 오르간이라고 한다. 성당 안으로 들어가서 오른쪽 첫 번째 소성당 안으로 가면 유명한 들라크루아의 벽화 두 점을 볼 수 있는데 왼편 벽에 있는 〈천사와 싸우는 야곱〉과 그 맞은편의 〈사원으로부터 쫓겨난 헬리오도루스〉가 그것이다. 또한 예배당 천장의 〈악마를 무찌르는 대천사 미카엘〉도 들라크루아의 작품이다. 성당 앞 생 쉴피스 광장의 중앙에는 네 주교의 분수가 있는데, 1844년 비스콘티가 만든 작품이다.(인터넷 인용)
아내는 날씬한 십자고상 아래에 앉아 쪽지에 무언가를 적고 있다. 간절한 소원을 담아 십지고상 앞에 바치면 그 소원을 들어줄 것이라는 믿음으로! 어떤 내용을 적었느냐고 물으니 답을 하지 않았다. 그냥 미루어 짐작하는 게 더 나을 텐데 왜 묻냐는 듯한 태도였다.ㅋㅋ
클뤼니 중세박물관, 로마 시대 때 대중 목욕탕이 있던 곳으로, 아름다운 중세 양식의 정원에 둘러싸인 이 건물은 로마와 중세의 건축 양식이 절묘하게 혼합되어 있다. 박물관에는 다양한 중세 유물들이 두 개의 층에 전시되어 있는데, 태피스트리, 금은 세공품과 스테인드글라스, 철 공예품과 상아 세공품, 조각, 회화 등 다양한 중세 유물들이 테마별로 전시되어 있고 원고의 사본, 옷감, 귀금속, 설화, 도자기, 그리고 교회의 가구 등도 있다. 특히 〈유니콘과 여인 태피스트리〉 6점은 클뤼니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가장 귀중한 유물이다.(인터넷 자료)
빠리에는 한국인들을 위한 마트가 있다. 들어가 확인하니 우리나라 제품이 대부분인 것 같다.
다음에 들를 곳은 로댕 박물관이다. 하루 종일 걸어다닌 탓에 다리를 좀 쉬고 싶은 시점이 되었다.
그 유명한 로댕의 대표적 조각작품 <생각하는 사람> 앞에 드디어 섰다. 온 세상 근심을 도맡아 하고 있는 모습이다.
로댕 박물관에 대한 자료를 인용해 보면,
무엇인가 골똘히 생각하는 것을 넘어 고뇌에 찬 모습의 한 남자의 조각상. 로댕을 세계적인 조각가로 알리게 된 대표적 작품 「생각하는 사람」이다. 오귀스트 로댕(Auguste Rodin, 1840~1917)은 프랑스의 조각가로 건축의 장식물에 지나지 않던 조각에 생명과 감정을 불어넣어 훌륭한 예술로 승화시킨 근대조각의 시조다.
비롱주택(호텔비롱)으로 불리기도 하는 로댕 미술관은 조각가 로댕이 죽을 때까지 작업활동을 한 아틀리에로 로댕의 흔적과 주옥같은 작품들을 볼 수 있는 곳이다. 1728년부터 1730년에 걸쳐 건축가 장 오베르와 자크 가브리엘의 설계로 세워졌고 로댕이 죽기 일 년 전 국가에 기증하면서 1916년 미술관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이곳에는 세계적인 조각가 로댕의 데생과 작품의 주형, 미술 컬렉션, 그리고 「불멸의 우상」, 「칼레의 시민들」, 「생각하는 사람」 등 위대한 작품이 관람객들을 기다린다. 로코코 양식의 아름다운 건물 또한 볼거리인데 내부에는 로댕의 작품을 가득 담은 총 17개의 전시실이 꾸며져 있다.
박물관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 「생각하는 사람」은 로댕의 또 다른 유명한 작품인 「지옥의 문」의 구성품이었는데 본래 지옥의 문의 윗부분에서 아래쪽의 사람들을 내려다보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것을 1888년 독립된 작품으로 크게 제작하여 발표한 것이다.
「지옥의 문」은 로댕이 1880년부터 죽을 때까지 오랜 시간 공을 들인 작품이었으나 끝내 미완성으로 남았다(로댕미술관의 청동상 「지옥의 문」은 로댕 사후 다른 사람이 완성한 것이다). 로댕은 단테의 신곡 「지옥」 편에서 영감을 얻어 「지옥의 문」 제작에 착수하게 되었는데 제작된 186명의 인체를 높이 약 8m의 문에 조각한 것이다. 그리고 「지옥의 문」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서로 얽히고설킨 인간군상을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 「생각하는 사람」 외에 「지옥의 문」에 나오는 다수의 인물들은 후에 다른 작품에도 많은 영감을 주었다고 한다.
정원에 자리한 또 하나 중요한 작품, 「칼레의 시민들」도 한참을 감상했다. 이 작품은 100년 전쟁 때 영국에게 도시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목숨을 내놓고 고향을 지키려고 했던 6명의 시민들을 기리기 위해 칼레 시로부터 의뢰받아 완성한 작품이다. 그러나 완성 당시 비장한 모습과 영웅주의적 모습보다는 공포와 절망에 사로잡힌 주인공들의 모습이 부각되어 칼레 시민들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았다고 한다.
로댕의 역작, <지옥의 문>
로댕 박물관에 왜 고흐의 작품을 만나게 될 줄이야! 아래 사진은 탕귀 영감 초상화인 것 같은데…. 로댕이 이곳에 살면서 로댕의 그림을 구입하여 갖고 있게 된 것이 아닐까? 내일 저녁 오르세 미술관에 들러 고흐의 작품을 만나게 될 것이니 오늘은 로댕의 숱한 조각 작품을 만난 것에 만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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