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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리 여행 셋째날

여행 이야기

by 우람별(논강) 2023. 8. 9. 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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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 앞, 에맄 케제르 제과점은 오전 7시에 문을 여는 빵집이다. 오늘 아침 처음으로 그곳에 들러 크라상, 쇼콜라, 레쟁, 타르트 등을 샀다. 
 

아침 식사 겸해서 가게 바로 앞 의자에 앉아 빵을 먹는데, 숙소에서 컵에 내려 가져온 드립 커피를 곁들이니 최고의 풍미라고 말할 수 있겠다. 기분이 좋아져서 자꾸만 입에 넣게 된다. 고급 밀가루와 버터를 사용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되는데, 국내에서 맛보았던 것과는 차원이 좀 다르다는 느낌이다. ‘역시 빵의 원조국은 남다른 데가 있군.’
 

숙소 부근에 있어 늘 보면서 지나다녔던 앙드레 말로 광장, 프랑스의 정치가이자 소설가인 앙드레 말로(1901~1976)를 기념하기 위한 공간이다. 그는 1936년부터 스페인 내전에 공화주의자들 편에 서서 싸웠다. 제2차 세계 대전 때 프랑스가 정복당하고 비시 괴뢰국이 세워지자 자유프랑스 편에 서서 레지스탕스로 활동했다. 1958년에는 샤골 드골 대통령 치하에 문화부 장관이 되었다. 이때 프랑스는 처음으로 실질적인 문화적 정책을 갖게 된다. 1969년 사임했다.
저서는 르포르타주 형식의 역작인, <희망>과 <인간의 조건>이 있다. <인간의 조건>으로 1933년 공쿠르 상을 받았다. 나중에 방글라데시에 방글라데시 독립전쟁에 노령에도 불구하고  참전하였으나 당연히 별 도움은 되지 못했으며 전쟁이 끝난 뒤 프랑스로 돌아온 뒤에 지내다가 병사했다.(인터넷 자료)

구슬역에서 7호선을 타고 퐁네프역에서 내렸다. 
 

퐁네프를 건너 향하는 곳은 도핀 광장이다.

도핀 광장, 영화에 자주 등장한는 곳이다. 퐁네프에서  아주 가까운 곳, 대법원 뒤에 위치해 있다.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마로니에 가로수가 싱그럽다. 아내는 고즈넉한 분위기가 좋다면서 벤치에 한동안 움직이지 않고 앉아 있었다.
 

카페 주인은 도핀 광장 입구쪽 한 켠에 탁자와 의자를 배치해 놓고 곧 찾아올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다.
 

센강의 명물인 녹색상자, '부키니스트'라고 불리는 고서적상인들이 오래된 책과 중고 서적을 담아 진열해 놓은 일종의 상자형 좌판대다.
 

생 미셸 광장(Place Saint-Michel), 나폴레옹 1세가 미카엘 천사를 기념해서 만든 곳으로, 광장 중앙에는 1855년 프랑스의 조각가 다비유드( Davioud)가 세운 분수가 있는데, 분수 가운데의 청동상은 미카엘 천사가 용을 죽이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이 광장은 1944년 파리가 나치로부터 해방되기 직전 대학생 레지스탕스 단원들과 독일군 사이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광장에는 당시 나치와 싸우다 죽어 간 학생들을 추모하는 대리석 기념 명판도 있다.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1919년 개업해서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서점, 헤밍웨이가 20대 무명 작가 시절 즐겨 찾았던 것으로 유명한 서점,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의 배경이 될 정도로 현대 예술가들도 사랑하는 서점, 파리에 위치한 영문학 전문서점,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독립서점으로 알려져 있다.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옆 작은 공원, 르네 비비아니 광장이다. 가운데에는 조형물이 하나 서 있는데 나치에게 끌려간 이 마을 아이들 100여 명의 눈물을 형상화했다고 한다. 1910년대에 프랑스 총리를 지낸 르네 비비아니를 기리며 1928년에 세운 공원이다.
 

 노트르담 대성당, 몇년 전의 대화재로 지금은 복원 공사 중이라서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

 노트르담 대성당을 그나마 밖에서나마 자세하게 바라보며 공부할 수 있도록 한 가설물, 관광객들을 위한 당국의 배려일 게다.

정면에 보이는 건물이 대법원, 왼쪽에는 생 샤펠 성당, 오른쪽은 콩시에르쥬리가 위치해 있다.
 

생 샤펠(Sainte-Chapelle) 성당은 시떼섬의 서쪽에 있는 프랑스 후기 고딕양식의 성당이다. 14세기까지 프랑스의 왕들이 살았던 궁전인 시떼궁 안에 지어진 왕실 예배당이었다.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으며 파리 대법원이 바로 옆에 위치해 있다. 이름은 프랑스어로 ‘성스러운 예배당’을 뜻한다.
생 샤펠은 1238년 이후 어느 시점에 지어지기 시작했고 1248년 4월 26일에 축성되었다. 생 샤펠은 프랑스의 왕 루이 9세가 예수의 수난에 관련된 자신의 성유물 수집품을 보관하기 위해 건축을 지시했다. 그 중에서도 예수의 가시면류관은 중세 기독교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진 성유물 중 하나로서 나중에는 노트르담 대성당으로 옮겨졌다.
생 샤펠은 여전히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13세기 스테인드 글라스를 보유하고 있다. 생 샤펠은 프랑스 대혁명 이후 세속화되어 더이상 교회 건물로 쓰이지 않으며, 이웃한 콩시에르주리 등 옛 궁전 건물들과 함께 프랑스 국립건축물센터의 관리를 받고 있다.(인터넷 자료)
 

생 샤펠 성당은 아래층과 위층으로 구분되고 있다. 스테인드글라스의 규모, 분위기가 다르다. 아래층은 위층에 비해 작고 서민적이며 따스한 느낌의 공간인 것 같았다.

생 샤펠 성당 위층의 출입문 모습
 

 프랑스 대법원, 앞에서 보아 오른쪽은 콩시에르주리다.

콩시에르주리(Conciergerie)는 시떼섬 서쪽에 있는 옛 법원 청사이자 교도소이다. 콩시에르주리는 원래 생 샤펠 성당을 포함한 시떼궁의 일부였다. 왕궁에는 두 개의 큰 중세 홀이 남아있다. 프랑스 혁명 기간 동안 마리 앙투아네트를 포함한 2,780명의 수감자들이 이곳에 투옥되었으며. 재판을 받고 선고를 받은 후 단두대에서 처형되도록 여러 장소로 보내졌다. 현재는 국가기념물로 지정되어 박물관으로 활용되고 있다.(인터넷 자료)
 

마리 앙투아네트가 신었던 신발이 전시되고 있다. 그녀에 대한 언급은 생략하기로 한다. 이야기가 워낙 방대하다. 궁금한 독자는 인터넷 검색을 해 보시라. 다만 그녀가 이곳에 수감되어 있다가 법원의 사형 판결을 받고 콩코드 광장에서 단두대에 올랐다는 사실이다.
 

콩시에르주리 건물 끝, 센강 가에는 대형 고급시계가 현재 시간(오전 10시 40분)을 알리고 있다. 나무 그늘로 인해서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다.

시떼섬을 한 바퀴 돌아 노틀담 성당 동쪽 끝에서 연결된 생루이 다리 위를 걸어 생루이 섬으로 건너갔다.
 

다리를 건너자마다 눈에 띄는 아이스크림 가게, 베르띠용 아이스크림을 사먹어 보기로 했다. 생루이섬 강변으로 내려가는 계단에 걸터 앉아서 할짝할짝 달콤달콤, 어린 시절에 얼음과자가 먹고 싶어 돈은 없고 물물교환으로 닳아빠진 고무신을 주고 사 먹던 생각이 난다. 나이들어 프랑스 빠리에까지 놀러와서 고급 아이스크림을 사 먹고 있으니 참 그 가난했던 어린시절이 감개무량하다.
 

투르넬 다리, 빠리를 수호하고 지키려는 의도로 세워진 탑이 견고함의 이미지가 강렬하다.
 

센 강변 4킬로미터에 이르는 거리에 2000여 개의 이 같은 중고서점이 1000여 개의 상자를 관리하며 약 30만 권의 책과 수많은 인쇄물, 잡지, 수집가 카드 등을 판매하고 있다. 그 주인공들인 부키니스트들은 빠리의 역사와 함께해 왔다고 볼 수 있겠다.

술리 다리

귀족들이 많이 살았다는 생루이섬을 둘러보고 퐁마리를 건너 마레지구로 들어섰다. 다음 목적지는 생 폴 생 루이 성당이다.
 

길인지 광장인지 모를 공간 한 가운데 가로수가 줄을 맞춰 서 있어 시원한 느낌이다. 언제 어디서든 그늘을 쉽게 찾을 수 있어서 좋다. 여름에 파리가 그다지 덥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도 그늘이 많기 때문이 아닐까?
 

생 폴 생 루이 성당, 다른 성당에 비해 밝은 분위기이다. 1580년 수도사들을 위한 수용 시설과 수도원을 세운 것을 계기로 세워졌는데, 1627~1641년에 걸쳐서 확장되었다. 그 후 이 성당은 1762년 프랑스에서 예수회가 금지될 때까지 예수회가 지녔던 영향력의 상징이었다. 조개껍데기 모양의 성수함은 자신의 딸이 결혼식을 올린 것을 기념하여 빅토르 위고가 기증한 것이라고 한다. 그가 쓴 대표작 레미제라블에서 주인공 코제트가 결혼한 장소이기도 하다.(인터넷 인용)
 

성당을 나와 얼마 떨어지지 않은 보주 광장으로 이동하여 맛집이 많다는 그 주변 어딘가에서 점심식사를 해야 한다.

생 루이 성당의 돔이 보인다. 가까이에서는 보이지 않던 것이 멀리 떨어지니 저렇게….

보주 광장(Place des Vosges), 1612년에 완성된 보주 광장은 원래 앙리 4세의 명으로 그가 태어난 왕궁이 있던 곳에 만든 광장이다. 현재는 마레지구를 대표하는 아름다운 광장으로서 완벽한 대칭 구조로 유명한 이 광장은 서로 붙어있는 4층 건물이 한 면에 9채씩 36채가 사각형 광장을 형성하고 있다. 4개의 분수가 있는 광장 중앙에는 대리석으로 조각한 루이 13세의 기마상이 있는 프랑스 혁명 때 파괴되었던 것을 1818년에 재건했다. 이 광장에는 세비네 부인, 보쉬에, 리슐리외, 빅토르위고, 테오필 고티에, 알퐁스 도테 등 많은 작가, 예술가, 정치인들이 평생을 살았던 집이 있다. 또한 지금은 아케이드가 설치되어 카페, 부티크, 갤러리 등이 들어서 있다.(출저: Enjoy 파리)

루이 13세 기마상

이 광장에는 역사적인 건물이 매우 많으며, 국제 통화 기금(IMF)의 전 총재 등 저명한 인사들도 많이 거주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빅토르 위고(1802~1885) 또한 여기에 거주하였으며, 그의 집은 현재 빅토르 위고의 집이라는 이름으로 박물관이 운영되고 있다.
 

남쪽 회랑 가운데의 레스토랑, 라 플라쎄 루아얄(왕실 광장)에서 시저 샐러드와 바질 파스타, 소고기 스테이크를 먹었다. 아내는 파리에서 먹은 샐러드 중에 제일 맛있었다고 한다.

빅토르 위고의 집 안 3층에서 맞은편 쪽을 담은 사진, 하늘빛조차 회색지붕과 어울려 버릴 게 없다.
 

빅토르 유고는 독특한 동양풍의 실내장식을 좋아했는가 보다. 방의 분위기가 대체로 중국 스타일인 것으로 보아서. 

보주 광장 상가 중에 다만 프레르 홍차를 파는 가게가 있어 들렀다. 여기가 그 본점이란다.

걷고 걸어서 국립 피카소박물관까지 왔다. 피카소 박물관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인터넷에 검색한 결과를 아래에 소개한다.
 
5년 동안의 긴 공사를 마치고 피카소 미술관이 2014년 10월 25일 드디어 그 모습을 드러냈다. 10월 25일은 우연한 날짜가 아니다. 파블로 피카소가 태어난 1881년 10월 25일을 상징하기 위한 날이다.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5,000여 점 가운데 400여 점의 작품이 5개층에 구성된 37개관에서 소개된다. 파블로 피카소는 20세기에 활약하며 그림, 조각상, 그래픽 아트, 도예, 사진 등 수많은 예술 작품을 남겼다. 1973년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그가 소장하고 있던 작품의 일부분은 프랑스 정부에 상속세 대신 기증되었으며 덕분에 세계에서 피카소 작품을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는 미술관을 열 수 있었다. 폭넓은 영역의 작품을 보유하고 있는 피카소 미술관은 그 퀄리티로 봤을 때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피카소의 작품들을 시대별로 모두 볼 수 있는 동시에 예술가의 창작 과정을 정확히 알 수 있는 곳이다. 또한 수 많은 걸작과 20세기 예술의 아이콘으로 방대한 컬렉션을 자랑한다.
피카소의 청색시대 자화상부터, 정물화, 나무의자, 올가의 초상, 도라 마르의 초상까지 소장하고 있다. 또한 세잔, 르느와르, 마티스, 모딜리아니의 작품 포함 150여 점과 피카소 개인이 소장하고 있던 21,000여 점의 그림도 있다.
피카소 국립 미술관은 1985년 파리의 역사적인 구역인 마레 지구 중심에 위치한 살레 호텔에 자리 잡았다. 1656년과 1659년 사이에 건설된 이 호텔은 17세기 말에 마레 지구에 지어진 상징적인 호텔들 중 하나이며, 마자린 시대의 건축물 중 보기 드물게 온전한 건물이다. 25년이 지난 오늘 피카소 미술관은 더 이상 개선되기 힘든 상태가 되었고, 2009년부터 리뉴얼 공사를 시작해 2014년 10월 새롭게 문을 열었다.
 

피카소 박물관에서 나와서 또 걸었다. 걷다 보니 퐁피두센터가 눈에 들어온다. 그 안에 들어가려니 많은 시간이 걸릴 것 같아서 그냥 외부만 바라보고 어떤 곳인지 인터넷 검색만 해 보았다.

퐁피두 센터는 현대 미술에서 주요한 입지는 지닌 미술관으로 유럽 현대 미술관 중에서도 가장 두각을 나타내는 장소이다. 디자인, 건축, 사진, 뉴 미디어 등의 분야에 70,000여 점이 넘는 작품을 소장하고 있으며, 작품은 정기적으로 교체 전시하고 있다.
퐁피두 센터는 매년 직접 주관하는 20여 회 이상의 전시회를 테마와 분야별로 열고 있으며, 음악, 공연, 춤, 연극, 퍼포먼스, 영화와 관련된 다양한 프로그램을 연중 선보이고 있다. 또한 작가와의 만남, 컨퍼런스, 토론과 같은 전문적인 자리에도 대중들이 참가 가능할 수 있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안하고 있다. 또한 퐁피두 센터는 다수의 현대 예술 서적과 자료를 소장하고 있는 무료 도서관, 6월에 열리는 « 아카데미Académie-페스티벌 Festival »과 같이 다양한 공연이 열리는 시청각 교육실과 음악실(Ircam) 등이 구비되어 있다.
프랑스 대통령 조르주 퐁피두의 구상에 의해 건설된 퐁피두 센터는 건축가 리처드 로저스 와 렌조 피아노의 공동 프로젝트가 당선되어 1977년 2월에 문을 열었고, 보부르 언덕에 건설되어 보부르 Beaubourg라고 불리기도 한다. 퐁피두 센터는 오늘날 수 많은 건축가들에게 풍부한 영감을 제공하며, 20세기 현대 건축물의 상징적인 존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인터넷 자료)
 

아내는 또 아이스크림을 샀다. 아모리노 장미꽃 아이스크림을 꼭 먹어봐야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잘 생긴 노란색 망고맛 아이스크림과 못생긴 흰색 바닐라맛 아이스크림 중에서 어느 것을 먹겠느냐고 묻는 장면인데 나는 어떤 것을 선택했을까? 못생긴 나, 후자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걷고 또 걷는다. 어느 대형 거울이 있어 나란히 서서 우리 둘의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셀카나 남이 찍어주지 않으면 독사진밖에 없는지라 모처럼의 기회라면서 거울 앞에 섰다. 
 

니나스 홍차 가게에 들러 또 구입을 한다. 오늘은 가게 사장님이 없고 점원인 듯한 일본인이 가게를 지키고 있었다.
 

아내가 즐겨 먹는 과일 중에 '납작 복숭아'라는 것이 있는데, 빠리에 온 김에 수시로 사 먹어야 한다며 틈만 나면 과일 가게를 찾는다.
 

우리보다 7일 정도 먼저 여행을 나선 우성훈 교감 선생님 부부가 빠리 시내 2구역에 머물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서 아내와 문자를 주고 받더니 오늘 저녁 식사를 같이 하기로 했다. 몰리에르 광장 옆 한식식당 '고운'에 먼저 도착해서 한참을 기다렸는데,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아직 에펠탑 주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서 시간 약속을 지키기가 어렵다는 연락이 왔다. 그렇다면 우리가 먼저 저녁식사를 하고 다시 만나서 술이나 한잔 하는 것으로 해야 할 것 같았다.

우리는 빨레 루아얄 광장 언저리에서 만났다. 특별히 반가웠다. 만리타국에서 이렇게 부부끼리 만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즐겁고 행복했다. 아내는 우교감 부부와 남다른 감회가 있으니 오죽하랴.

우리의 만남을 축하하는 길거리 공연이 고마웠다.^^

숙소에서 매우 가까운 앙드레 말로 광장 부근, 어느 카페에 자리를 잡고 생맥주 몇 잔을 시켜 마시면서 파리 여행을 소재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두 부부와 즐겁게 함께하다가 헤어지고 아내와 나는 가까이 있는 루브르 박물관 주변의 야경 분위기를 감상하기로 했다.
 

물위에 흔들리는 노오란 빛, 병아리를 연상시키는 빛, 건물과 피라미드에 달라붙어 있는 빛의 색깔이 정겹다.

 

빠리의 야경을 즐기는 사람들은 밤새도록 센강 주변에 흩어져서 저마다의 추억을 쌓고 있을 것이다. 오늘도 우리는 참 많이 걸었다. 흡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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