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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경주의 도솔마을에서

세상과 함께

by 우람별(논강) 2009. 8. 6.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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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호식 있던 날(논강의 생일이기도 했음)

지난 금요일(4월 22일) 마음 샘터 가족 5명은 경주의 천마총 옆 ‘도솔마을’이란 식당에 모였다. 새로운 식구 류정 선생을 위한 작호식(爵號式) 자리를 만들기 위함이다. 저녁 9시 포항에서 만나 밤이 이슥한 뒤에야 식당을 찾았다. 보름을 하루 앞둔 날 밤이라 경주의 하늘은 달빛으로 온통 덮여 있다.

음식점이 마음에 들었다. 누구든 한 번 찾으면 다시 한번 더 오고 싶어할 것 같다. 경주의 문화예술인들이 주로 찾으며, 술로는 도솔주라는 동동주가 일품이라면서 류정이 자랑을 한다. 방마다 입구에 재미있는 이름이 붙어 있는데, 단골 손님들이 지은 이름이라 하는데, 운치가 있다. 마당에 펴 놓은 평상도 누군가 ‘야단법석(野壇法席)’이라 이름했다. 옛날 그 단어를 처음 가르쳐준 친구인 법우 스님이 생각나는 순간이었다.

도솔주와 막걸리, 우산 형이 준비한 샴페인을 곁들여 마시면서 자연스레 호에 얽힌 이야기를 시작했다. 손선생님에게 주는 ‘류정(留亭)’이란 호와 관련하여 남전 형께서 그 의미를 부여하는 말씀을 하셨고, 손 선생님도 그 호가 매우 좋다면서 고마워했다.

서로의 체온을 나누는 독특한 건배를 계속하면서 샘터 식구들은 작호식을 빌미로 거나하게 다들 취해 갔다. 분위기에도 취하여 도솔마을을 나와 계림 숲을 향해 걸었다. 천마총 돌담을 끼고 도는 기분이 특별했고, 계림 입구에 다다랐을 때 교교(皎皎)히 비치는 달은 우리 모두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말끔히 깎인 잔디 위로 걸어 들어갔다. 밟히는 감촉이 참으로 폭신했다. 네 명이 둘러서고 한 명이 그 가운데서 춤을 추면 영락없는 처용무일테다. 춤사위가 따로 필요 없다. 신라의 밝은 달이 있고 적당히 취했으니 우리가 곧 처용이 아니고 무엇인가?

근데 속이 갑자기 안 좋아졌다. 갑작스런 배변의 욕구가 느껴지면서 고통스런 갈등에 휩싸이고 말았다. 다시 돌아가자니 분위기 깨는 것이고 참자니 곧 큰 실수를 하고 말 것만 같다. 화장지도 없다. 술이 확 깨고 만다. 사방 어디고 화장실은 없다. 언젠가 찾아갔던 내물왕릉이 저 어둑한 숲 건너에 자리하고 있다. 일행에게 ‘똥 마렵다!’라는 말만 남기고 그리로 급히 발길을 옮겼다. 어떻게 해서든 해결해야 할 상황이다. 숲 속으로 들어갔다. 적당한 곳을 찾아 앉아 실례를 했다. (그 다음부터는 차마 기록을 못하겠다. 다만, 볼 일을 보고 화장지가 없을 때 해결하는 방법을 우스개 소리로 들은 적이 있었는데 난 더 엽기적인 방법으로 그 상황을 해결했다. 해결한 뒤에도 너무 우스워서 달을 보면서 한참을 웃었다. 난생 처음 겪는 일이었다.) 서울에서 전철을 타고 가다가 배변을 느껴 고생했던 장면이 오버랩되었다.

나를 제외한 일행은 큼지막한 봉분 위에 올라가 누구는 앉고 서 있는데 하늘과 맞닿은 공제선에 위치해 있어서 그 형태가 그대로 드러난다. 다들 나의 안부를 걱정하고 있을 것만 같다. 무사함을 알리기 위해 일행을 불렀고 다가와서도 나의 부끄러운 부분에 대해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고마웠다. 달빛 아래서 내물왕릉으로 전해지는 왕릉 주변을 훑어보다가 입구 쪽을 향해 걸었다. 바람이 부는데 제법 한기가 느껴진다. 그러나 그냥 갈 수 없다며 잔디 위에 앉았다. 여전히 폭신하다. 샘터 가족을 위해 노래를 한 곡 불러야겠다고 생각했다. 주인공 류정님이 꼭 듣고 싶어하는 것 같아서 악조건을 무릅쓰고 부르기로 한 것이다. 18번 격인 ‘진주난봉가’를 불렀다. 대학 시절부터 수도 없이 불러온 노래다. 긴 노래라서 중간에 사설(아니리)을 곁들여야 격조에 맞다. 근데 참신한 맛이 없어서 요즘은 이 노래가 내 스스로 싫다. 막걸리 한 잔 하면 향수가 느껴져서 한 번쯤 부르는데, 이젠 가사도 자꾸 틀린다. 공연 중에 연극 대사를 씹고 마는 징크스와 뭐가 다르랴?

** 엊저녁, 술 마신 김에 회원들 앞에서 똥 얘기 하다가 냄새난다며 중간에 못하게 했지요? 모처럼의 발언 기회였는데........ 누구는 똥 안 누나, 뭐?^^ 히히.
메모 : 2005.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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