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회 멤버 6명은 1박 2일의 모임을 끝내면서 대구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간송 박물관 소장 미술품과 김환기의 그림을 감상해 보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간송 전형필 선생이 혜곡 최순우(1916-1984)를 위해 써 준 작품
고사소요(高士逍遙: 높은 선비가 거닐다), 간송이 추사가 그린 고사소요를 모방한 작품
간송의 그림, <고당추효>: 오래된 못가의 가을 새벽
사임당 신씨의 8폭 초충도 중 한 폭인 <귀비호접(貴妃胡蝶)>, 양귀비 꽃과 호랑나비
김시(1524-1593)의 <매조문향>
김시의 <야우한와(野牛閒臥)>
이경윤(1545-1611)의 계산운림(溪山雲林)
이경윤은 성종 임금의 고손자로 선조 연간의 화단에서
크게 활동한 왕실 출신의 문인화가였다.
김명국(1600경 - )의 비급전관(秘笈展觀)
비방이 적힌 족자를 가운데 두고 얘기가 한창인 두 신선을 그린 신선도,
김명국은 취옹(醉翁)이란 호가 있을 만큼 술을 좋아했다고 함.
정선(1676-1759)의 청풍계(淸風계)
보물 1953호, 정선의 <여산초당(廬山草堂)>
백낙천의 여산초당 고사를 소재로 하여 그린 것.
중국의 고사를 표현하면서 집의 구조와 형태는 물론 주인공의 모습마저
조선 양식으로 표현한 것이 그 특징이다. 외래문화의 자기화를 이룩한
정선의 대표작이다. 정선이 진경화풍을 확립하고 그 기법을 정형산수에
응용하는 단계인 70대 중반 이후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정선의 <화적연(禾積淵)> 화적연은 우리말 볏가리의 한자식 표현!
정선의 <삼부연(三釜淵)>
삼부연은 강원도 철원군 갈말읍에 용화동에 있는 폭포다.
겸재 정선의 스승인 김창흡은 27세의 젊은 나이로 이곳에 은거해 살기로
마음먹고 전 가족을 이끌고 이곳으로 이사했다고 한다.
정선의 <정양사(正陽寺)>
정양사는 금강산의 주봉인 비로봉으로부터 내려오는 금강산의 정맥에 해당하는 절이다.
그렇다 보니 금강산 일만이천봉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명당에 자리한 정양사의 역사와 유래는
매우 오래되었다. 그런데 정선은 오직 방광대와 천일대의 토산에 둘러싸인
울창한 숲속에 파묻힌 정양사의 모습만을 집중적으로 묘사했다.
정선의 <해산정(海山亭)>
강원도 고성의 대표적 명승지가 바로 해산정이다.
원경으로는 금강산 백색 암봉들이 담묵의 서릿발준법으로
아련하게 표현되어 삼엄한 기세를 과시하고 남강 건너편에는
절벽을 이룬 적벽과 그 배후의 토산이 과감한 필법을 보임.
보물 1950호, 정선의 <시화환상간(詩畵換相看)>
양천 현령으로 발령받은 정선은 단금의 벗인 사천 이병연과
석별의 정을 나누면서 시와 그림을 서로 바꿔보자는 굳은 약속을 한다.
그래서 정선은 양천현령 부임 후 이병연의 시찰을 받고
북악산 아래 개울가 노송 아래에서 시화환상간의 약속을 하는
정경을 그대로 그려냈다. 정면으로 얼굴을 보이고 앉은
노인이 이병연일 것이고 뒷모습과 옆모습을 보이고 있는 노인이 정선일 것이다.
다른 그림에서 정선이라고 생각되는 모습과 매우 비슷하기 때문이다.
정선의 <독서여가(讀書餘暇)>
정선의 <장안연우(長安烟雨)>
정선의 <목멱조돈(木覓朝暾)>
정선의 <서과투서(西瓜偸鼠)>
정선의 <과전전계(瓜田田鷄)>
정선의 <홍료추선(紅蓼秋蟬)>
정선의 <추일한묘(秋日閑猫)>
조영석(1686-1761)의 <촌가여행(村家女行)>
조영석의 <노승헐각(老僧歇脚)>
조영석의 <노승휴장(老僧携杖)>
조영석의 <현이도(賢已圖)>
정선의 <楓岳內山總覽>
수백 수천의 봉우리들로 이루어진 내금강의 전모를
세세히 파악하여 한 화폭안에 담았다.
심사정(1707-1769)의 <매월만정(梅月滿庭)>
심사정의 <포도이숙(葡萄已熟)>
심사정의 <노응탐치(老鷹眈雉)>
심사정의 <어약영일(魚躍迎日)>
지금부터 보게 될 그림이 심사정의 <촉잔도권>이다
화선지 6폭을 이어붙인 긴 두루마리에 그린 그림이다.
현재 심사정이 62세(1768)에 조카 심유진의 부탁을 받고
중국 사천성 가릉강 삼백리 촉도 산천을 그린 그림이다.
심사정은 60평생의 그림 이력을 총정리하기 위해
이 한 폭의 그림을 마지막으로 그려 남겼다.
심사정은 촉으로 가는 험난한 여정을 수많은 바위산들과 이어졌다
끊어지고 다시 이어지는 길로 표현했다. 워낙 길게 이어지는 여정이기에
곳곳에 다양한 요소들을 추가했는데 숨막힐 듯 이어지던 험준한 산과
깊은 계곡들의 신비로운 조화는 드넓은 강물이 나타나며 숨을 고르듯 마루리 된다.
<촉잔도권>은 12준법(산수화에서 산이나 돌에 주름을 그려 입체감을 나타내는 기법)이
갖춰져 있다. 12준법은 심사정이 중국의 화보를 공부하고 아울러 정선의 진경산수화법
수련을 통해 이들을 함축 융회한 독창성 있는 조선남종화법이다.
두루마리 끝에 '무자년 중추 이당의 촉잔을 방한다. 현재'라는 관서를 남겨
남송시대 화가인 이당의 촉잔도를 모방하여 그렸다고 밝혔다.
이인상(李麟祥, 1710-1760)의 <은선대(隱仙臺)>
이인상의 <옥류동(玉流洞)>
정홍래(鄭弘來, 1720-?)의 <해응영일(海鷹迎日)>
김홍도(金弘道, 1745-1806)의 <모구양자(母狗養子)>
김홍도의 <야수압영(野水鴨泳)>
김홍도의 <조탁연실(鳥啄蓮實)>
김홍도의 <하화청정(荷花蜻蜓)>
김홍도의 <황묘농접(黃猫弄蝶)>
변상벽(1730-1775)의 <자웅장추(雌雄將雛)>
변상벽은 변닭이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닭을 잘 그렸던 전원화가이다.
위의 작품은 이런 그의 명성을 확인하게 하는 작품이다.
흑갈색 암탉이 벌레 한 마리를 잡아 부리에 물고 꾹꾹거리며 새끼들을
불러모은다. 새끼들이 어미 곁으로 모여들자 수탉이 덩다아 허세로
풀밭을 헤집고 쪼아대며 더 큰 소리로 쿡쿡대어 가장의 위세를 과시하려 든다.
병아리 한 마리가 그에 속아 돌아서지만 곧 허세인 줄 알고 말똥이 바라보고 있다.
강세황(1713-1791)의 <소림모옥(疏林茅屋)
김홍도의 <마상청앵(馬上聽鶯)>
녹음이 무성하고 여러 꽃이 만발하는 늦봄 어느 화창한 날에
어느 젊은 선비가 춘정을 이기지 못해 문득 말에 올라 봄을 찾아나섰다가
길가 버드나무 위에서 꾀꼬리 한 쌍이 화답하며 노니는 것에
넋을 빼앗긴 채 서서 바라보는 장면이다.
꾀꼬리의 화답 장면과 넋나간 선비의 모습을 돋보이게 하려고
버드나무는 간결하게 처리하여 길가 한곁으로 몰아 놓고 선비 일행을
큰길 가운데로 내세운 채 나머지는 모두 하늘로 비워 둔
대담한 구도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왼쪽 위의 화제를 살펴보면
佳人花底簧千舌 韻士樽前柑一雙 歷亂金樽楊柳崖 惹烟和雨織春江
(아리따운사람이 꽃밑에서 천 가지 소리로 생황을 부는 듯하고
시인의 술통이 앞에 황금귤 한 쌍이 놓인 듯하다.
어리저운 금북(북은 베짜는 기구)이 버드나무 언덕 누비니
아라랑이 비 섞어 봄강을 짜낸다.)
보물 1972호인 김홍도의 <과로도기(果老倒騎)>
김홍도는 도교의 신선과 불교의 불보살을 소재로 하는 도석인물화(道釋人物畵)에도 정통했다.
위의 작품은 당나라 때 신선 장과(張果)가 나귀를 거꾸로 타고 가면서
책을 열심히 읽고 있는 모습을 묘사한 도석인물화이다.
김호도의 <절로도해(絶蘆渡海)>
달마대사는 남조 양나라에들어왔다가 양무제와 뜻이 맞지 않자
몰래 양자강을 건넜는데 김홍도는 강을 바다로 바꾸고
달마의 얼굴은 조선 승려의 모습으로 바꿔놓았다.
김홍도의 <무이귀도(武夷歸棹)>
주자가 무이산 계곡을 노 저어 돌아오는 내용을 그린 고사인물도이다.
주자의 발길이 서린 무이산 그림은 조선에서 퇴계 이황 이후 애호했고,
조선후기까지 계속되었다. 무이산 절벽은 몸시도 험준하고 물살은 사납기 그지 없다.
사공은 신속히 닻을 내리고 장대로 계곡을 밀며 부딪치지 않도록 방향을 잡는다.
총각 아이들은 갑판을 움켜쥔 채 두려움에 떠는데 도포와 복건 차림의 주자는
미동의 기색도 없이 태연하게 앉아 산수를 바라본다.
김홍도 50대 후반경의 작품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김홍도의 <서호방학(西湖放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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