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마이뉴스 장윤선 기자와 영화 '귀향'의 감독 조정래님과의 인터뷰(1시간) 메모 ***
14년의 제작 기간, 후원 75,270명 12억 원의 제작비, 2월 24일 개봉을 앞두고 있음.
강일출 할머니의 사연을 바탕으로 영화화, 2002년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에 봉사활동 간 적이 있음. 판소리, 고수, 장구를 치는 국악인의 한 사람으로서..... 바다소리 박혜리씨와 함께...... 봉사한다고 갔으나 할머니들로부터 오히려 위로를 받아...... 매달 공연활동, 소리도 가르치고 배우고.....강일출 할머니가 그린 '태워지는 처녀들', 그림 속에 있는 내용, 소녀들의 끌려감, 대부분 돌아가신 할머니들 이야기지만 충격..... 증언집을 보면서 영화로 알려야겠다고 마음 먹음. 2002년 감독 나이 30살부터 시작한 셈...... 할머니들에 대해 무지했음. 부끄러운 상태, 너무나 큰 충격(남성으로서).....인권 문제에 무지상태에서 봉사활동 하면서 충격을 받고......신체적 나이로 봐서는 아동 성폭력에 가까운......겉은 할머니 같지만 눈은 소녀의 눈을 가진 분들, 주름진 소녀를 만난 느낌, 남자로서의 죄의식, 영원히 벗어나지 못할 듯
한 작품에 14년간 올인할 수 있었을까?
영화 '두레소리'와 고양 원더스의 이야기 '파울볼'도 중간에 만들었음. 나중에는 '귀향' 얘기를 하고 있더라. '기승전귀향'.....김구 선생의 외종손인 임성철 PD는 감독으로부터 2시간 동안 일본군 악역을 맡아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고 고백(자신은 10분간 이야기 한 것 같은데)
영화 제작에 따른 취재 과정
태워지는 처녀들(그림)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함, 홀로코스트 같은 학살 현장을 그린 그림 - 충격을 받고 며칠 후 꿈을 꿈(그림에 있는 내용이 재현) 백워드, 불타고 있는 소녀들이 불이 그을음이 없어지고 소녀들이 발끝을 들고 하늘을 보더니 고향으로 가는 장관이었음. 나중엔 다 날고 있더라. 벌떡 일어나 꿈얘기를 받아 적음, 모든 영혼이 귀향하고 싶어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음악, 영화 작업을 시작, 수요집회 참여하면서 증언집, 자료집을 수십 번 읽음, 영화보다 증언집이 훨씬 슬픔, 238명의 등록된 생존자 증언, 죽은자의 기록은 없음.
죽어간 동무들의 이름들을 생각함.....
전쟁의 폭력성, 뻔뻔한 일제(증거가 없다고 거짓말), 명령 지시했던 전범들이 있는 각료들의 신사 참배(잘못을 사과할 줄 모르는).....할머니들은 70년 이상을 고통 당하고 있음,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있음. 나눔의 집에서 봉사하면 사는 사람들에 비하면 자신은 아무것도 아님
베트남전 진실위원회, 한국군들이 자행한 집단 학살, 인터뷰 에피소드,
스튜디오 안에도 할머니들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음, 영화 제작과정에서 늘 함께 있는 느낌.....중국까지 가서 취재, 정확한 장소는 모르지만, 중국 정부들의 자료, 세트장 안에 중국의 군부 관리들이 보관, 실제로 일본군들이 쓰던 막사도 있음. 여성들을 싣고 다니던 퍼레이드카도 있음 (북경 근처의 영화세트장 소재) 소름끼치는 트럭(탱크보다도 더) - 일본군들이 사용하던 것들 섬뜩하고 만지기도 싫었음. 한국을 비롯한 너무나 많은 피해 여성들, 중국 등 아시아의 여성들의 피해는 물론이고 끔찍한 상처는 계속 기억되고 알려져야 함.
개인 투자자들, 서민들,
차 팔고, 전세로 옮기면서 7만 여 명의 사람들 후원('희망회'를 비롯한) 100원부터 재능기부까지..... 엑스트라, 단역 배우, 물품, 등. 배우와 스텝 200명 이상 참여(배우들 4년까지 기다렸을 정도, 자비로 또는 대부분 재능기부, 1인 3역 - 에피소드 다양) 재일교포들에게 특별히 감사, 얼마 전 일본 후원 시사회가 있었는데 아주 좋았음.....우익 블로거의 글 - 영화에 대한 기사, 악플이 달림, 너무나 죄송하고 보호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김
초기에 제작비가 1주일만에 너무 일찍 소진됨,
베테랑들이 도와주려고 왔음. 신인배우 대사 NG가 안 남, 제작 감독들이 크게 감동을 받아 재능기부, 세트 제작 감독의 경우는 카드론 받아 일을 할 정도로 감동적 헌신...... 효과 담당 감독의 재능기부, 금액으로 환산한다면 엄청남, 그 분들의 협조 없이는 개봉이 불가능했을 것임.
잊지못할 슬픈 역사를 만드신 주역들, 자원봉사, 재일동포도 피해자, 일본 우익들로부터 당할 수도 있을 텐데.....
국제영화제 초대, 기승전귀향, 배우들을 찾고 있었다. 리얼리티를 중시했다. 일본인들이 봤을 때 이해할 수 있고, 용납할 수 있으려면 기본적인 사항이 준비되어야(언어적인 부분-협조가 잘 안 됨, 우연한 장소에서 일본인 악역을 맡은 정*승 씨, 귀향 얘기에 울음).....후원계좌, 출연, 허드렛일, 일본어 교사, 온갖 일을 다함. 일본인 후배 영화 보고 이틀간 전화 안 받음. "형님을 볼 수 없다. 말을 섞기가 싫다." 즉, 리얼리티가 살아있다는 증거, 일본인, 재일교포들의 출연으로 인한 리얼리티 성공.....목숨을 내놓고 하는 연기임에도 참여, 주인공이 거창 사람이라 협조한 부분이 있음. 출연 결심을 하면서 자신이 귀향 결심을 했다.....감독의 할아버지도 미쯔비시에서 일을 했다고 함. 주인공 재일교포 4세로 중2, 현재 고1, 출연했던 학생들에게 참으로 감사
함께 봤던 사람들이 많이 울었음. 손숙 선생님은 시나리오 받자마자 울었음. 어떻게 그 분에게 배역을 맡기게 되었나.
위안부 할머니의 이미지, 연극계의 원로, 대배우, 선생님의 눈이 바로 소녀같은 눈, 나이가 안 든 느낌, 나이에 별로 관계없이 생각하는 분, 아내가 손숙 선생님을 아주 좋아함, 만나자마자 일사천리로 이야기하면서 영화에 참가할 것과, 개런티 안 받을 것, 혹시 영화 잘 되면 인센티브는 달라. 그것도 좋은 일에 기부할 거야. 그 시간부로 투입, 당신도 자료를 조사하면서 연기에 몰입, 마음을 함께 했고 1000원 한 장 받지 않음, 재능기부했음. 그런 분들 덕분에 영화를 만들 수 있었음.
강제로 끌려간 성노예를 다룬 영화 귀향, 그 리얼리티와 허구성은 어느 부분에서 강조가 되었을까?
리얼리티에 충실했던 장면? 아프고 증언집에 충실한 영화라면 너무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을 했음. 남자 감독이 만든 영화라는 게 이해되지 않았다고 평가하는 경우도 있었음. 소녀와 할머니들의 고통과 아픔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것보다는 .... 슬프지만 아름다운 영화. 속죄하는 마음으로 만들었음. 나눔의 집에 계신 분들에게 자문을 구하고..... 감독 조정래가 만든 것이 아니라 7만 5천명의 후원회원들께서 만들었다.....허구성이 드러난 부분을 굳이 언급한다면, 진도 씻김굿 장면인데 감독 자신이 꾼 꿈 부분을 형상화 한 것이라고 보면 됨
놋대야 속에 물이 잠겨있는데 핏빛 빛깔, 몸 씻은 물, 작은 상자(콘돔), 내부는 매우 깨끗함,
고증에 의한 것임(위안소 안의 풍경, 팻말, 담요,등) 위안부 역사관도 마찬가지, 그 안에 들어가면 다 울게 된다. 4월부터 촬영, 세트장 안은 영하의 기온..... 4, 50명씩 받아야 하는 위안부, 줄서서 기다리는 군인들, 콘돔 만들었던 회사 지금도 경영, 위안소 설치 자체가 일본군이 주둔해서 생기는 범죄를 막고 성욕을 해소, 군사력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제도화 시킴, 죄의식 거세, 그야말로 지옥, 초경도 하지 않은 소녀들이 그대로 당하는 현장, 일본군들이 선호했고 연애하는 느낌이 난다고 했음. 당하는 입장에서는..... 분노가 치밈......일본군 장교 왈, '너희는 사람이 아니다. 황군을 위한 암캐다.' 등의 증언, 쉰들러 리스트와 비슷, 일할 수 없는 자는 죽음,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에서부터 시작된 위안부 사태
잔악무도한 일본군도 나쁘지만 그런 시스템를 고안했던 자들이 지금도 일본 A급 전범으로 존경을 받고 기업을 운영하고 있다. 너무나 뻔뻔하게 각료들은 신사를 참배하고 ... 이렇게까지 심한 짓을 했는지 믿어지지 않는다. 이 영화를 일본인들이 보고 아베 총리가 봐야 할 것이다.
최근 정부는 터무니없는 불가역적 합의, 상영장 부족, 상영관과는 어떻게 얘기가 되었는가?
배급사의 고군분투하는 공에 감사드린다. 영화 너무 좋다. 온국민이 봐야 할 영화다. 상영관이 점점 늘어나고 있으나.....개봉관이 하나 열리는 것만으로도 감사..... 영어, 독일어 등으로 번역하는 작업도 끝내 놓았음. 이 영화를 세계인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국민들의 예매 운동으로 더 많은 상영관을 확보하자. 3.1절에 태극기를 들고 영화를 보러가자 등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갖고 있기에 희망적임
아픈 역사를 아이들에게 가르칠 필요가 있다.
위안부라는 용어가 과연 적절한가? 우리의 아픔이라면 정부가 나서서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하는는 것이 아니냐?
"내가 왜 위안부냐 나는 이용수다. " ......당신들의 이름을 가진 작은 소녀였고, 당당한 자신의 삶을 당당하게 꾸릴 수 있는 사람이었기에..... 우리가 이 영화를 통해서 이 소녀의 삶을 담으려 했지 위안부의 삶을 담으려 한 것이 아니다......타향에서 돌아아가셨던 분들이 슬프지만 고향으로 돌아오는 장면을 보실 수 있습니다. 꼭 봐 주시기 바랍니다.(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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