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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동주'를 보고

영화 이야기

by 우람별(논강) 2016. 2. 18.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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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도 언어도 꿈도 허락되지 않았던 1945년, 평생의 친구이자 라이벌이었던 두 친구의 빛나던 청춘 이야기, 민족시인 윤동주의 삶과 독립운동가 송몽규의 삶을 대비시켜 보여주는 영화 <동주>를 개봉 첫날에 아내와 함께 보았다. 어둠 속 빛나던 미완의 청춘, 시인 윤동주와 독립운동가 송몽규를 그린 이준익 감독의 영화였다. 이 감독은 흑백사진으로만 봐 오던 윤동주 시인과 송몽규 열사 스물 여덟 청춘의 시절을 그 누구보다 뜨겁게 살아낸 이분들의 영혼을 흑백의 화면에 정중히 모시고 싶었다고 고백했다. <왕의 남자>(2005), <라디오 스타>(2006), <소원>(2013), <사도>(2015)도 그가 만든 영화다.

 

윤동주 역을 강하늘이 송몽규는 박정민이라는 젊은 배우가 맡아 멋지게 열연했는데 당시 두 청년의 특징과 시대 상황을 잘 드러내 주고 있어서 이 감독의 캐스팅은 성공적이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70년 전의 현실 속에 잠시 들어갔다가 가슴저린 체험을 하고 온 느낌이 들었다. 윤동주가 왜 민족시인으로 평가되는지, 송몽규가 독립운동가로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등을 잘 조명해 줌으로써 두 역사적 인물에 대한 재평가를 시도한 것 같다. 또한 관객으로 하여금 시대 상황에 맞게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삶이고 어떤 어려움이 있는가를 객관적으로 보여주고 있어서 그 시대를 살았던 지식인의 삶과 고통을 이해시키는 데도 일정 부분 도움을 주고 있는 것이다. 장면 장면마다 삽입되는 그의 대표적인 시편들이 주는 감동과 주변 상황이 자연스레 연결되고 있었다. 그의 시를 좋아하는 여인의 관심 속에서 그의 대표작들이 영문으로 번역되고 시집으로 출판되는 과정도 묘사되기는 하나 실제와는 좀 다른 것 같다. 시집 이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동주 자신이 정하는 것으로 표현되는데 실제로는 윤동주의 사후, 친구인 정병욱 교수가 유고 30편을 모아 시집을 낼 때 붙인 이름이다.

 

일본 교토 도시샤 대학 영문학부에 유학을 하던 윤동주는 1943년 7월 14일(여름방학에 고향에 돌아가려고 차표까지 사놓은 직후였다)에 송몽규와 함께 검거되어 같은 해 12월 6일 일본검찰에 송치 이듬해 6월까지 미결수로 있다가 재판 결과 송몽규 2년 6개월, 윤동주 2년의 형을 받고 후꾸오까 감옥에 갇힌다. 결국 그 감옥에서 생체실험 대상이 되어 광복 6개월을 앞두고 2월 16일에 의문의 죽음을 당하게 되는 것으로 묘사된다. 송몽규도 같은 해 3월 10일에 죽음을 당하고, 어느 날 갑자기 광복은 다가오지만 두 젊은이를 이미 잃은 뒤다. 경찰에게 검거되어 감옥에 갇히기 전의 두 주인공 삶은 역순행적 구성 방식으로 과거와 현재를 오가면서 잘 드러난다. 특히 두 인물의 관계와 대비되는 성격, 민족의식을 갖게 되는 배경과 그 과정 등이 그렇다. 

 

 영화를 보고 나서 느끼는 벅찬 감동을 간단히 정리도 할 겸해서, 살아있으면 올해 100세가 되는 시인에게 마음 다해 짤막한 글 하나 쓰면서 요즘의 세상 돌아가는 분위기를 하소연해 보고 싶은 심정이다.

 

윤동주 형에게

 

간도 용정에서라도 받아주세요

흑백영화 속에 등장한 형의 신선함

숲 속을 거니는 이슬처럼 영롱해서

사진 속에서 걸어나온 청순함과 닮아서

해방도 못 보고 돌아가신 형이 그리워서

마음 한 장 다듬어 꿈결에 띄워요

 

형처럼 부끄럼을 타지도 않고

형처럼 절박하지도 않은데도

세상살이 파랗게 지쳐버린 이웃들이

이 해방 세상에는 참 많이 있어요

칠십 년 세월 흘렀어도 벼랑 끝에 살아가느라

자존심 따위 이미 자본에 팔아 버렸는지

남아있는 것은 비겁한 복종뿐인가 봐요

그저 함포고복(含飽鼓腹)하는 부자들이

이 거짓된 세상에는 참 많아요

 

친일파 후손들, 망령처럼 득세하여

정치 경제 교육 언론 모든 권력 차지했고

파시즘의 찌꺼기 구린내처럼 준동하고

남북한 전쟁 위험 날이갈수록 높아지고

권력 편에 서서 교언영색(巧言令色) 하는 자 많고

낮은 자세로 정의롭게 살아가는 자

보기 힘들어 안경 도수라도 높여야 해요

 

히히덕거리는 풍부(豊富) 속에 숨은

또 다른 점령군을 향한 사대의식 때문인지

이젠 안전장치마저 물속으로 빠뜨리려 해요

다 빠뜨리고 살릴 것만 살려야 한다고

민족혼까지 저당잡아 거짓말하고 있어요  

수렁에 빠진 서민들의 처절한 몸부림

지푸라기 몸짓으로 보는 거지요

 

올해로 형 나이는 백 살이네요

스물 아홉은 살아있어서 감동이고

일흔 하나는 저항의 시가 감동임을 믿어요

형이 남긴 참회록과 자화상, 서시, 별

여전히 우리의 감각을 살려주고 있어요

간도 용정의 형님은 여전히 살아계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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