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도 용정에서라도 받아주세요
흑백영화 속에 등장한 형의 신선함
숲 속을 거니는 이슬처럼 영롱해서
사진 속에서 걸어나온 청순함과 닮아서
해방도 못 보고 돌아가신 형이 그리워서
마음 한 장 다듬어 꿈결에 띄워요
형처럼 부끄럼을 타지도 않고
형처럼 절박하지도 않은데도
세상살이 파랗게 지쳐버린 이웃들
이 해방 세상에는 참 많이 있어요
칠십 년 세월 흘렀어도 벼랑 끝에 살아가느라
자존심 따윈 이미 자본에 팔아 버렸는지
남아있는 건 비겁한 복종뿐인가 봐요
그저 함포고복(含飽鼓腹)하는 부자들이
이 거짓된 세상에는 참 많아요
친일파 후손들, 망령처럼 득세하여
정치 경제 교육 언론 모든 권력 차지했고
파시즘의 찌꺼기 구린내처럼 준동하고
남북한 전쟁 위험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권력의 편에 서서 교언영색(巧言令色) 하는 자 많고
낮은 자세로 정의롭게 살아가는 자 보기 힘들어
안경 도수라도 높여야 해요
히히덕거리는 풍부(豊富) 속에 숨은
또 다른 점령군을 향한 사대의식 때문인지
이젠 안전장치마저 물속으로 빠뜨리려 해요
다 빠뜨리고 살릴 것만 살려야 한다고
민족혼까지 저당잡아 거짓말하고 있어요
수렁에 빠진 서민들의 처절한 몸부림을
지푸라기 몸짓으로만 보는 거지요
올해로 형 나이는 백 살이네요
스물 아홉은 살아있어서 감동이고
일흔 하나는 저항의 시가 감동임을 믿어요
형이 남긴 참회록과 자화상, 서시, 별
여전히 우리의 감각을 살려주고 있어요
간도 용정의 형님은 여전히 살아계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