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별일 없으시죠?"
가끔씩 아버지의 안부가 궁금해서 전화를 걸면, 예상대로 들려오는 대답은
"나야 잘 있지. 애비는? 토요일 아침엔 선산으로 올 수 있제?"
작년 봄에 아버지는 구미시 선산읍의 안은댕이 마을로 이사를 하셨다. 어머니와 함께 전가족 이주가 아니라 얼마간의 세간살이만 챙겨서 혼자 오신 것이다. 어머니는 막내딸네 집에 매일 들러 외손주들을 돌봐줘야 해서 함께하실 형편도 아니긴 했으나 아버지는 은근히 자연 속에 스며들어 혼자 사는 것을 꿈꾸고 계셨을 것 같다. 함께 계시다 보면 성격 차이로 티격태격 잘 다투는 편이라서 떨어질 필요가 있음을 느끼고 계셨기에 자연스럽게 별거를 선택하셨다고 보는 게 더 정확할 것 같다.
아버지는 청년 시절과 20대 후반까지만 해도 고향 충주에서 농사일을 하셨다. 그러나 아버지의 남다른 글재주와 한문 실력을 아까워한 어느 분께서 서울의 H대학교 중앙도서관 사서로 일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배려 덕분에 전 가족이 고향을 떠나 서울로 이주하게 되는 역사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아버지는 서울과는 인연이 그다지 길지 않아서 9년간의 서울살이를 접고 대구의 K대학으로 전근하시면서 경상도와 인연을 맺었다. 그러다가 40년이 지난 작년 어느 날 도시생활마저 접고 '열호재'라는 이름의 농막을 짓고 농촌생활의 잔잔한 재미를 택하신 것이다. 혹시 심심해 하실까 염려하는 둘째아들이 진돗개 한 마리를 구해다 놓으니 고양이 두 마리를 어디서 또 직접 구해 오셨다. 한 달쯤 뒤에는 닭에 관심을 보이시더니 닭장을 먼저 크게 지어놓고 문경 동로까지 가서 토종닭인 고려닭 여덟 마리까지.
작년 초, 나는 구미에서 ** 한의원을 경영하고 있는 동생과 함께 실천하고자 한 것이 있다. 아버지께서 열호재에 계시는 동안 일주일에 하루 정도 한문을 배우는 것이다. 평소에 자랑할 만한 한문 실력이니 만큼, 자식들에게 가르칠 수 있는 기회를 드림으로써 당신은 기쁨과 성취감을, 자식들도 그 만큼의 보람은 물론 용돈까지 챙겨드릴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였다. 예상대로 아버지는 매우 흡족해 하셨고, 아들들도 아버지의 수업을 한 번도 빠뜨리지 않고 열심히 들었다. <고문진보>, <맹자> 등의 책을 교재로 일주일에 한 번, 두 시간씩 공부를 했고, 원문을 읽고 해석하는 것을 위주로 진행했다. 주를 달아놓은 부분은 복습 차원에서 우리 스스로가 해결해야 할 숙제였다. 공부를 끝낸 뒤에는? 아버지는 피곤해서 주무셔야 했고, 젊은 아들 형제는 미리 준비해 온 막걸리를 한 잔씩 마시면서 공부한 내용과 관련한 얘기를 하거나 밤하늘의 자연을 안주삼아 세상사는 이야기를 하나둘 꺼내놓다 보면 밤은 점점 짧아졌다. 일주일에 한 번씩 형제가 만나 밤 이슥토록 이야기하는 즐거움은 우리의 특권이 된 셈이다. 형제간의 우애가 깊을수록 그 깊이는 더해질 것임을 믿으면서 여름날을 만끽했던 거다.
몇 달이 흐른 어느 늦가을에, 아버지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애비야, 전깃세가 왜 이렇게 많이 나오냐? 앞으로 전기판넬 난방을 해선 안 되겠어. 그리고 너희들 공부하던 것, 앞으로는 잠시 보류하고 내년 봄이나 여름에 하자."
전기판넬로 난방을 한 결과 매달 가정용 전기사용료가 40만 원 가까이 나오면서 급변화가 생긴 거다. 우리 형제가 열호재에서 하룻밤 자는 날의 난방이 크게 문제가 되었다는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그 이후, 전기판넬 난방을 한 번도 사용하지 않으셨다고 한다. 자식들이 난방만큼은 책임질 테니 그러실 필요 없다고 해도 막무가내다. 아무리 추워도 전기장판을 잠시 이용하거나 실내용 난로로 실내온도를 높이는 정도였다. 당신의 생각만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고 있어서 난감할 때가 많다. 자식들의 생각을 존중해 준다면 별 무리없이 잘 될 텐데.....
작년 여름 이후, 아버지와 하던 공부를 하지 못하고 있는데, 언제 다시 이어질 수 있을까? 올해 접어들면서 도시를 떠나 농촌에서 근무하게 되는 근무 조건의 변화와 바빠진 일정으로 동생과 시간을 맞추기가 어렵고, 다시 공부해 보고자 하는 의욕도 다소 떨어져서 글을 제대로 읽을 수가 없었다. 아버지의 구수한 글 읽는 소리를 언제 다시 들을 수 있을지조차 확실하지 않다.
우리 형제자매들은 젊은 시절의 아버지 덕분에 도시생활에 점차 익숙해졌고, 그 복잡함과 익명성에 순응하게 되면서 타고난 순진함을 잃어버렸거나 외면의 꾀죄죄함도 모르는 사이 서서히 없어진 것 같다. 또한 불행하게도 혐오스런 영악함과 허세가 어느새 우리 정서를 지배했을지도 모른다. 가난한 시대를 치열하게 살아야했던 사람들이 물질적 빈곤에 허우적대던 시절이어서다. 누구는 그랬다. 때 묻지 않고 살 수는 없는 거라고. 세속화의 길을 걸어야 하는 비굴함마저도 삶의 형태일 수밖에 없는 거라고...... 그럴까?
세월은 또 흘러서 우리 자식들도 이젠 어렵게 살던 옛날 아버지보다 더 나이를 먹었고 당신의 손자와 손녀도 옛날 아들딸보다 나이가 더 들어버리고 만 것 같아 혼란스럽다. 지나온 과거가 그렇거늘, 앞으로 맞을 미래는 더 빠르게 지나갈 것이고..... 시대의 흐름과 더불어 그렇게 세상과 사람들은 변할 것이다. 아버지의 도도한 삶도 자식들의 기억 속에서 애절한 그리움으로 자리할 것임에 나는 오늘도 아버지께 안부 전화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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