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후엔 경주로 바람이 불었다.
포항 두호고등학교로 근무지를 옮기고는
처음으로 찾는 경주 시내였으니
그 얼마나 감개무량했으랴!
요즘은 해가 지고 컴컴해지면
무논에서는 영락없이 개구리들이 울어대는데
그렇게 정겨울 수가 없는데,
그 소리에 마냥 흠뻑 젖어있고 싶을 때가 있다.
우리 동네 뒷고개 연화재만 넘어 가면
그걸 만끽할 수 있는 곳이 있기에 종종 찾는다.
근데, 어제 오후는 특별히
해질녁의 낭만을 좇아가다 보니
어느덧 너른 안강 들녘에 닿았고,
갑자기 손자장면을 먹고 싶은 마음에
이곳저곳을 찾아 헤매다 보니,
에라, 경주까지 가서 먹자
이리 된 거외다.
안강에서 경주로 가는 옛 국도,
왼켠으로 펼쳐지는 너른 들판과
굽이굽이 동해로 흘러내리는 형산강이
보일듯 말듯 지리하게 꾸물거리고 있다.
철길 건널목도 몇 군데 지나게 되고
약수터로 유명한 사방리,
오층석탑을 자랑하는 나원리,
임신서기석이 발견된 금장리로 연결된다.
거기서부터가 곧 경주 시내다.
경주여고 근무 중에도 시간이 좀 나면
나원리 오층석탑(국보)을 찾곤 했다.
거기 가면 조용해서 참 좋다.
탑을 완상하는 것은 요란한 데서는 금물!
가까이서 혹은 멀리서 그 탑을 올려보다 보면,
몇 바뀌씩 탑돌이를 하게 되기도 한다.
불자들이야 가득한 불심을 가지고
탑돌이를 하겠지요마는 난 그런 불심은 없다.
그저 그런 불교문화가 좋을 뿐이다.
하늘을 배경으로 한 그 웅장함이
옥개석과 탑신의 비례가 안정감 있어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맘을 편하게 한다.
앉아서 편안히 탑을 바라봐야 제맛이라며
거기엔 탑을 향한 벤치도 마련되어 있다.
결국, 손자장면을 먹었다.
동국대 다리를 건너 경주 외곽도로를 지나서
태종 무열왕릉 부근에 있는 왕릉반점에서
자장면 한 그릇과 군만두를 시켜 먹었다.
시장이 반찬이라 참 맛있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
계림 숲과 유채꽃밭에 들러
저물녁의 평화를 만끽하면서 거닐었다.
잔뜩 흐린 하늘의 구름과는 대조적으로
반월성 주변에 비치된 조명이 빛을 내기 시작했다.
인왕동의 첨성대 아래에서도
연한 보라빛이 소리없이 솟았다.
밤을 노니는 관광객들을 위한 배려라지만
인공이 너무 가미된 것이라서
"거 참 멋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달밝은 밤에 이슥도록 노닐었던
처용이 마냥 부럽다는 생각도 했다.
여전히 내겐 풍류가 남아있는 건가?
분황사 앞을 돌아
컴컴한 탈해왕릉을 상상하며
산업도로를 부리나케 달려 포항으로 돌아왔다.
그냥 집에 들어가기가 섭섭한 듯해서
무논의 개구리 소리를 한참 듣다가
다시 연화재를 넘어 집 가까이에서
맥주 몇 잔 곁들였다.
여전히 술은 좋았다.
5/11 논강
메모 : 2004.5.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