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의 마지막 날, 어디론가 여행을 훌쩍 떠나고 싶었다. 어디로?
늦여름 또는 초가을에 예정된 문학회의 문학기행 사전 답사 차원에서
우리 고향 출신인 신경림 시인을 주제로 충주 일대를 돌아보면 괜찮을 것 같다.
구미에서 중앙고속도로를 달려 1시간 20분이면 충주 IC에 닿는다.
거기서 10분 거리인 탄금대, 거기서 다시 10분 정도 강을 끼고 가다보면 중앙탑 공원,
남한강의 시원함과 운치가 제법 그 주변에 널려 있어서 오래 머물고 싶은 곳들이다.
그러다 보면 배가 좀 출출해질 것이고, 주변의 먹거리 식당을 찾아 냉면 한 그릇 뚝딱!
아니면 좀더 든든한 정식 쌈밥, 곤드레밥, 설렁탕도 맛이 괜찮을 것이다.
중앙탑공원 가까이에서 둘러볼 수 있는 것이 가금면 용전리 입석마을의 고구려비(국보 205호)이다.
차도 옆에 온갖 먼지 다 뒤집어쓰고 그냥 비각 안에 팽개쳐져 있다시피했던 '중원 고구려비'가
건축가 승효상의 설계로 그럴 듯한 건물에 모셔져 있었고, '중원'의 명칭도 '충주'로 바뀌었다.
건물 앞의 길도 폐쇄되어 당국에 의해 철저하게 보호되고 있다. 문화재 관리 차원인 것 같다.
고구려비는 원래의 위치에서 약간 높이 들어올렸고 큰 받침돌을 밑에 고여 놓았다.
선돌 양식에 예서체로 쓰여져 형태와 글자체는 광개토왕릉비와 비슷하다.
맨처음에는 평범한 비석인 줄 알고 있었으나 1979년 동국대 정영호 교수가
현지답사를 실시한 결과 이 비에 수백 자의 글씨가 새겨져 있음을 발견해 냈다고 한다.
장수왕 69년(481) 경에 고구려의 남하정책을 기념하여 세운 비로 추정하고 있다.
이 비문에는 고구려의 많은 관직 이름은 물론 고구려가 신라를 동이(東夷),
그 왕을 매금(寐錦)이라 일컬었음을 보여주는 등, 삼국사기 같은 어느 역사기록에서도 볼 수 없는
생생한 당대 사실이 풍부히 담겨 있다. 그러나 비석 앞쪽과 오른쪽, 왼쪽 등 모두 3개면에
원래는 모두 700여자에 달하는 글자가 새겨져 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판독된 글자는 겨우 200여자에 불과하고 그나마 불확실한 글자가 많아
사료적 가치에 비해 활용도는 월등히 떨어진다고 봐야 할 것이다.
충주시 노은면 연하리에 위치한 노은초등학교 전경. 신경림 시인의 생가가 학교 건물 뒤쪽에 위치해 있다.
신경림 생가로 들어가는 길목의 풍경이다. 느티나무 오른쪽에 위치해 있다.
신경림 시인이 50년대 후반까지 이곳에서 생활했다고 하고, 그 이후는 다른 사람의 소유로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 처마나 문짝은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고 설명한다.
가까이 보이는 노은초등학교나, 집앞의 느티나무는 신경림 시인의 문학세계에 늘 자리하고 있을 것 같다.
70년대 후반에 대학의 국문학을 전공하면서 충주 출신의 시인,신경림을 모른다면? 간첩이지.^^
그의 시집, <농무>나 <새재> 정도는 읽어보지 않은 사람들이 없었을 것이다. 특히 고향의 시인이라
특별히 그를 기억했는지도 모른다. 이제야 그의 생가를 찾아 70대 후반 연세의 시인을 생각한다.
그의 작품세계는 주로 농촌 현실을 바탕으로 농민의 한과 울분을 노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평론가 백낙청은 1973년 발표한 시집 《농무》의 발문에서 ‘민중의 사랑을 받을 수 있고
받아 마땅한 문학’이라는 점에서 이 시집의 의의가 있다'고 하였다.
이후부터 그는 우리 민족의 정서가 짙게 깔려 있는 농촌 현실을 바탕으로
민중들과 공감대를 이루려는 시도를 꾸준히 하고 있다.
1973년 제1회 만해문학상, 1981년 제8회 한국문학작가상을 수상하였다
연하리 동네에 어울리지 않는 새로운 목조 건축 하나가 눈에 띈다. 울도 담도 없는 새집이다.
나도 농촌으로 들어가서 이런 목조 건축물(10평 정도) 하나 짓고 살아보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신경림 생가 부근의 노은양조장, 옛날 같으면 성업을 이루었을 테지만
지금은 영세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명맥만 유지하고 있을 것만 같다.
신경림의 시비는 목계나루터 옆에 있다. 그의 대표작 '목계장터'란 시가 새겨져 있다.
제천시 백운면 평동에 낙향해 살고 있는 판화가 이철수 님의 독특한 글씨가 돋보인다.
'목계장터'란 시야 신경림 시인의 대표작으로서 만인의 입에 회자되는 시이지만
이철수님의 독특한 판화 글씨체가 가미되니 더욱 값진 시비가 된 것 같아서 좋다.
목계나루는 내 초등학교 재학시절 소풍 장소이기도 했고, 별신제가 열리던 날은
온갖 놀이패들이 이곳을 찾아 온갖 재주를 보여주기도 했던 것을 나는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내 고향 마을인 강현(갈매기)에서 목계나루까지는 십리가 채 안 되는 거리라서
목계에서 무슨 행사가 열린다는 소문이 나면 한달음에 달려왔던 곳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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