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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년 한해를 마무리하면서

오늘 나는

by 우람별(논강) 2012. 12. 30.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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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년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그간의 시간들이 내게 어떤 의미가 있었는가를

잠시 더듬어 보는 시간을 가져본다.

 

가장으로서 남편으로서 나는 어떤 모습?

아침 일찍 출근해서 저녁 늦게 귀가하는 남편에 대한 평가는?

학생들과의 진로진학상담 때문에 주당 2,3일 정도 으레 늦을 수밖에 없는 것을

감안하고라도 늦어지는 귀가 때문에 혹시 섭섭한 마음 켜켜이 쌓여있지 않을까?

그래도 아내는 나에게 비교적 후한 점수를 줄 것이라고 위로해 본다.

나로 인하여 아내가 행복해 하리라는 강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부부가 서로 행복하게 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보고,

우리 부부는 틈나는 대로 원근가리지 않고 여기저기 여행하면서 살고 있다.

그것을 블로그에 일일이 기록하고 카페에도 공유하면서 삶을 엮어가고 있다.

사람들은 우리가 여행만 하면서 살고 있는 역마살 부부처럼 생각할 것만 같다.

가끔씩은 부모님 모시고 가까운 곳을 드라이브삼아 다녀오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어린애들처럼 좋아하시는 부모님을 생각하면

자주 그런 기회를 갖지 못하는 것에 대한 송구함을 숨길 수 없다.

 

세 아들들은 이미 다 장성해서 부모의 통제와 간섭이 잘 통하지 않게 된 바,

알아서 자신들의 갈 길을 찾아갈 것이고, 서서히 독립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이 희망적이지 않아서 걱정이 앞서지만 어차피

온몸으로 부닥치면서 치열하게 살지 않으면 안 되는 현실이 아니던가!

언젠가는 저 거친 광야로 스스로를 내몰아야 할 세 아들들이 아닌가!

맏이는 공익근무를 마치고 내년 5월부터는 공식적인 사회생활을 시작한다.

둘째는 제대하고 학교에 복학, 내년 신학기에는 대학 4학년이다.

바둑 전공인데 앞으로 잘 풀렸으면 좋겠는데 좀더 두고 봐야 한다.

막내는 호텔콘벤션학과 2학년을 마치고 올 6월에 군에 입대하여

지금은 강원도 양구의 어느 부대, 해발 천 미터가 넘는 곳에서

영하 20도 내외의 강추위와 싸우고 있지만 잘 견뎌내리라 믿는다.

 

학교 선생님으로서 올 한해는 어떤 해였을까?

진로진학상담교사로서 새롭게 출발한 한 해였다.

국어교사로서는 구미고등학교 근무를 마지막으로 하고

다시 새 학교(사곡고)로 옮겨서 새로운 교과에 적응하기 바빴다.

어쩔 수 없는 외로움에 잠시 힘들어 하고 시행착오를 겪기도 했다.

그러나 이젠 그 외로움마저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것 같다.

국비 지원을 받아 진로활동 전용공간이 생기면서는

진로진학상담실의 품격이 높아진 느낌도 있어서 한결 만족스럽다.

학생들과의 상담 공간도 새로 마련되어 진로진학을 위한

기반을 어느 정도는 구축해 놓은 상태여서 이젠 마음 든든하다.

내년 새학기부터는 지난 1년간의 성공 실패 경험을 되살려

보다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고 적극적으로 시작해 볼까 한다.

얼마 전, 신년도 업부분장과 관련한 신경전이 있었다.

교감 선생님이 애초에는 ‘창의·인성교육 주관’, ‘요선도학생,

부적응학생 지도’라는 업무를 진로진학부의 일로 분류해 놓았는데,

적절치 못하다는 내 주장이 받아들여져 다른 부서로 가게 된 것은 다행이다.

진로진학 상담과 관련한 일을 결국 혼자 처리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필요 이상의 업무가 추가됨으로써 고유의 업무를 할 수 없으니

거부하지 않을 수 없었음을 모두가 이해해 주리라 믿는다.

 

나 자신이 속한 조직에서 나는 누구인가를 생각해 본다.

국어과 동기회, 청류회, 구인회, 석우회, 극단 형영, 선주문학회, 구미낭송가협회,

고교 동기회, 아로모, 등산모임 등을 비롯해서 개인적인 유대관계에 따른

비정기적인 모임까지 포함하면 그 수가 매우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런 모임에 일일이 다 참가하면서 어떻게 여유 있는 삶을 영위할 수 있냐면서

주변에서는 모임을 좀 줄이라는 충고(?)를 서슴지 않는다.

대추나무 연 걸리듯 복잡한 관계망 속에서 산다는 것이

얼마나 피곤한 일이냐는 걱정에서 하는 말임을 안다.

그러나 그 모임으로 인해서 사는 맛이 나고 즐겁다면

굳이 애써 피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렇게 만나면서 살아온 세월을 어찌 거부할 수 있으랴.

 

그러나 올 한해 너무나 아쉬운 것이 하나 있다.

18대 대통령 선거에서 내가 투표한 후보가 대통령이 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MB정부의 실정을 심판 응징하고, 새로운 정치 패러다임을 실현하려면

정권교체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보았는데, 단일 야권 후보가

국민의 절대적 지지를 받지 못하고 아깝게 패하고 말았던 것이다.

거의 멘붕상태가 되어 며칠간은 아무 일도 할 수 없었고,

앞으로 5년간을 어떻게 견딜 것인가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반대로 여당의 후보를 지지했던 분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을 것이다.

특히 50대의 투표율이 89.9%이고 그 중의 70% 가까운 분들이

여당 후보를 지지함으로써 20, 30대의 절대적 지지를 받은 야권 단일후보를

누르고 드디어 대통령 당선자가 되었으니 얼마나 눈물나고 감동스런 선거 결과인가?

그러나 많은 민주인사들이 의욕을 잃고 멘붕상태에 빠져있었음도 기억해야 한다.

야당은 선거에서 이기리라 예상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패했다.

 

엊저녁, 한 모임의 회원으로부터 들은 이야기가 자꾸 귀에 맴돈다.

“나는 좌파를 제일 싫어합니다. 그 사람은 좌파예요.”

“이 선생님은 이번 대선에서 누구한테 투표를 했습니까?”

이런 얘기를 들었을 때, 받은 느낌은 한 마디로 가슴답답함이다.

그러나 아무런 반응을 보일 수 없었다.

그분은 나에 대한 호감을 갖고 있는 분이고 당신 고향집에 한 번 놀러오라고

전화를 한 것이었고 이야기하다가 우연히 그렇게 정치적 성향을 드러냈을 뿐이었다.

나중에 만나서 이야기해야지 전화상으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낼 수는 없었던 것이다.

1470만 명(48%)의 지지를 받은 야권 후보,

그를 ‘빨갱이’라고 몰아세우는 노인들이 한두 분이 아니고,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도 ‘좌빨’이라고 매도하는 사람들 또한 부지기수 아니던가!

‘좌익’, ‘빨갱이’라는 말을 듣게 되면 공산주의자를 연상케 하고,

공산주의자들은 처단의 대상이 되었던 한국전쟁 전후의 현대사가 떠오른다.

그 당시의 소용돌이를 조명해 보면 소름이 돋아 모골이 송연해지거늘,

그 좌우 논쟁의 망령이 되살아나 국민들 사이를 이간질시키고 있는 것 같다.

도대체 누군가? 보수와 진보로 대별되는 국민들의 다양한 생각조차

좌우의 이념 논쟁으로 몰아세우는 주체는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유권자의 반에 가까운 사람들을 '좌빨'이라고 규정짓는 자들은 누군가?

유령일까? 언론? 수구 정당의 꼼수? 아니면? ..................

 

오늘은 야권을 향해 '2012년을 점령하라'고 했던

고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의 추모 1주기 날이다.

올해 초에 그의 무덤 앞에 참배를 하면서 느꼈던 가슴 먹먹함이

영화 '남영동 1985'에서는 그 고인이 겪었던 고통에 몸서리를 쳐야했고,

야권 통합에도 불구하고 총선과 대선에서 잇단 패배를 당한 현실 앞에서는

아예 할말을 잃고 말았다. 모든 희망이 사라져버린 듯한 공허감 때문이다.

선거 혁명을 통해서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자고 했던

그 비장했던 말씀이 이렇게 공허한 말씀으로 남아있다는 게 서럽다.

남양주 모란공원에도 눈이 내려 민주열사 묘역이 하얗게 하얗게

얼어있을 것만 같은데 찾아가는 이 누가 있을까?

오늘은 그분의 차분한 음성을 다시한번 듣고 싶다.

 

'민주주의자 고 김근태 형, 고이 잠드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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