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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형영' 20주년 공연을 맞으면서

세상과 함께

by 우람별(논강) 2012. 9. 22. 0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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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에 가입(1993년)한 이후, 7년 전까지 나는 여러 편의 작품에 배우로 출연한 바 있다. 안타깝게도 공연할 때마다 대사를 잘 잊어버리는 징크스가 있어서 애먹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평소 연습할 때는 실수없이 잘 하다가도 막상 실전에 들어가서는 꼭 한 군데씩 놓쳐서 황당해 할 때가 있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모 작품의 결말 부분이었는데, 대사가 너무 길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기억나지 않아 2,3초 가량 머뭇거리면서 계속 쳐나가지 못하고 있는 상황, 그 때의 1초 1초는 그 길이가 엄청나다. 결국 관객 중의 한 명이 '메롱(대사 까먹었지롱!)'이라 하는 바람에 관객이 모두 웃어버리게 되는 치명적 실수를 했던 것이다. 곧 생각이 나서 마무리를 했지만, 그날의 황당함을 결코 잊을 수 없다. 그 이후에도 징크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실수를 하곤 해서 연출을 맡은 강순원 선생을 매우 당황하게 했었다. 나로서는 '형영' 극단 마지막 출연이었던 전국연극제 출품작, '이구아나'(2005)에서만큼은 별 실수없이 끝냈던 것으로 기억하지만 그것도 냉정히 돌아보건대 심사받는 공연에서 결국은 또 대사를 씹고 말았으니..... 결국 나는 그 징크스를 깨지 못한 채, 불명예스런 존재로 남아있는 것이다. 그날 경북 대표로 출전한 극단 '형영'이 전국연극제에서 애석하게도 입상하지 못했는데, 나 때문은 아닌지 마음에 찔린 적이 있었으니까.


극단 '형영'의 역사는 최희범 고문님 이하, 강순원, 최운철, 김시종, 이영률, 최건주, 이동선 등 쟁쟁한 초창기 멤버들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그 이후 많은 배우들이 인연을 맺어 한두 달씩 피땀 흘리며 연습한 끝에 무대에 올라 신들린 듯한 연기를 하고 그 횟수가 반복되면서 자아효능감이 점점 높아짐을 느꼈으리라. 연극을 직접 해 본 사람들만이 느낄 수 있는 묘한 자부심이라고나 할까? 돌이켜보면 모두가 다 그리움이다. 형산로터리 부근에서 소극장을 운영하던 시절, 많은 어려움과 아픔을 겪긴 했어도 지금도 추억어린 역사로 남아 있고, 20년의 세월과 함께 일취월장, 포항의 중심가에 멋진 소극장까지 보유하게 된 것이다. 그것은 포항의 또다른 소극장운동의 시작이었다고 해도 되지 않을까 한다. 이제는 제법 두껍게 쌓여있는 공연팜플렛들을 보는 감회도 남다르다. 극단에서 오래 머문 단원일수록 더욱 그럴 것이다. 그간 '형영'에서 만난 사람들이 참 많았다. 동료 단원은 물론 극단 <가인>을 비롯한 타극단의 관계자들, 작가님들, 애정을 보여준 관객들, 모두 나를 행복하게 했던 분들이다. 내가 활동했던 시절에 느꼈던 행복감이 내 삶에 큰 활력소가 되었듯이, 많은 단원들이 극단 '형영'으로 말미암아 참 행복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구미로 이사와서 산 지도 벌써 6년이 넘었다. 그 이후, '형영'의 정기공연이 있으면 놓치지 않고 달려가서 공연을 봤고, 그 소감 및 후기를 적어 카페에 올리기도 했다. 언제부턴가 카페의 '자유로운 이야기' 꼭지는 주로 내(우람별, kjri99)가 쓴 글로 도배가 되어 있다시피 하다. 직접 배우로 활동하지 못하는 아쉬움을 보상받고 싶어서, 또는 함께했던 단원들과의 정이 그리워서 행하는 최소한의 몸짓이라고 봐 주면 고맙겠다. 동시에 미안하다. 연극과는 아무런 관계없는 별의별 기록을 다 남기면서 염장을 지르고 있으니 말이다. 극단 선후배들이 함께 만들어왔던 연극, 어느 덧 20주년 기념 공연까지 하게 되었다고 하니 참으로 감개무량하다. 끝까지 함께하지 못하고 나는 구미로 떨어져 나왔지만, 다들 인연 깊은 선후배들이기에 '형영' 단원으로 함께하고 있어서 마음 든든하다. 나는 앞으로도 공연할 때마다 찾아가 관극 단원으로서의 의무를 다하고, 그 옛정을 잊지 않으련다. 함께했던 동료들과 새로운 배우들을 만나는 즐거움을 만끽하련다. 사실, 극단 '형영'의 매력은 끈끈이처럼 그렇게 사람들을 쉽사리 떼어놓지 못하는 것에 있음을 다들 아는지 모르겠다. 작품 하나를 무대에 올리기 위해 숱한 시간을 함께하는 경험을 해 본 사람들이기에, 그곳이 좋고 쉽사리 그곳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들 아는지 모르겠다. 극단 '형영'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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