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나의 이름을 듣고 곱씹어 보더니 이렇게 표현하더군요. '세상 사람들의 사랑을 골고루 받을 운명'이라나요? 꿈보다 해몽이 좋아서 접수하긴 했지만, 원 세상에, 한 마디 안 할 수가 없네요. 넋두리 삼아 몇 자 적어 볼까 합니다.
'권주'(권세 권, 두루 주), 권세를 두루 누려서 좋은 이름? '권주'(권할 권, 술 주) 이태백의 낭만과 함께 한잔의 술을 떠올릴 수 있는 이름? 사실, 젊은 시절엔 이름 때문에 마신 술만 해도 엄청났어요. 특히 막걸리는 늘 내 주변에 넘치고 넘쳤지요. '통일을 위한 막걸리 살풀이'라고 알지요? 백두산 중학교 병사봉 분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것이 꿈이라면서 그저 술만 먹으면 마치 내 자신이 정의의 사도가 된 느낌이 들었습니다.
1979년, 경북대 본관앞에서 공연되었던 '냄새굿'을 잊을 수가 없군요. 어용교수를 풍자하는 탈춤이었는데, 가까운 친구(78동기 유창열)가 주인공인 학생역을 맡았어요. 교수들의 역겹고 냄새나는 작태를 고발하고 꼬집는 장면이었습니다. 어찌나 통쾌하던지 감상하며 마시라고 궤짝으로 가져다 놓은 쌀막걸리를 몇 병 꺼내어 순식간에 비웠던 기억이 나네요. 흥분을 이기지 못해서 함께 감상하던 친구와 함께 꿀떡꿀떡 삼켰지요.
공연이 거의 끝나가던 중, 약속이나 한듯이 동시에 한 켠에서 '독재 타도'라는 구호를 외치는 한 무리가 사범대 신관쪽으로 몰려가고 있었어요. 결국 그들은 사대 신관 1층 벽에 걸려있는 박정희의 흉상을 철거해야 한다면서 준비해간 도끼로 독재자의 얼굴을 짓찍었습니다. '잘한 짓이다. 그래서야 되겠느냐'며 사범대 내에서도 두고두고 회자되며 논란거리가 되었던 사건이었는데, 그 사건 이후, 잠자고 있던 경북대는 온 시내를 휘돌아 오는 전국 최대의 시위를 했고 곧 부-마 항쟁으로 이어졌고, 독재자 박정희의 시해 사건, 10,26 사건이 곧이어 터졌던 거지요. 하극상의 비극 12.12가 이어졌고, 또 다른 군부독재의 싹은 그렇게 피어났지요. 그런 역사적 사건을 바라보면서 한창 젊고 피끓는 시절의 청년 학도가 어찌 술을 마시지 않을 수 있었겠어요. 공부가 뭐 그리 중요한가 싶었어요. 그저 마시고 취하고 싶었던 거지요. 즉, 권주란 이름에 걸맞게 행동했던 겁니다.
공부보다는 야학활동에 관심많았고 관심있던 연극에 빠져서 살던 것도 따지고 보면 그런 사회적 배경이 크게 작용했다고 봐야겠지요. 현진건의 '술권하는 사회'란 소설 제목과 왜 그리 들어맞던지요. 그러니까 저의 삶은 권력과는 멉니다. 어른의 뜻을 저버리고 그저 소박하게 살고 있는 셈인데, 내가 걷고 있는 가르침의 길은 아무리 생각해도 잘 택했는 것 같아요. 여러가지로 부족한 사람임엔 틀림없지만, 그나마 때묻지 않은 순수한 아이들에게 뭔가를 가르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모릅니다.
어제 만났던 야학 선배님인 소설가 정병윤 형은 경덕왕릉 가는 길에 있는 내남초등학교를 지날 무렵, 내게 한 마디 하더군요. '아이고, 미치겠네, 나도 애들을 가르칠 수 있다면 .....' 1982년 영양중고등학교에서 근무하던 시절, 가까운 친구지간인 이창동, 정병윤 선생은 열정적으로 아이들을 가르쳤더라구요. 두 분은 교육과 관련한 토론이 지나친 나머지 술집에서 멱살을 붙잡고 싸운 적이 있대요. 한 분은 이제 영화감독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고, 또 한 분은 일찌기(대학 2학년) 소설가로서 문단에 등단, 30대 초반 교직을 떠나 권력을 지향하다가 갑자기 중풍이 와서 반신불수로 산 지 어언 15년입니다. 외로움을 이기지 못해 늦게나마 다시 시작한 소설 창작이 삶의 희망입니다. 저는 요즘 영광스럽게도 그 분의 발이 되어서 선배가 원하는 이곳저곳을 모시고 가는 즐거움을 가끔씩이나마 만끽하고 있습니다.
요즘 학기말고사 기간입니다. 어제 오후에는 경주 현곡동 가막골에 위치한 도자기 만드는 곳을 찾아갔습니다. 10여명의 전교조 경주여고 분회원들과 찾아가서 질감 좋은 흙을 만지작거리면서 크고 작은 찻잔 몇 개, 넙적한 쟁반, 숟가락 몇 개를 정성스레 빚었습니다. 모처럼 하는 그 작업이 얼마나 재미있던지요. 가르치는 도공 선생님으로부터 칭찬을 들었습니다. 어른이나 애나 원래 칭찬들으면 좋지요? 저도 예외는 아닙니다. 정말 기분 좋두만요, 시샘 많은 여선생님들의 부러움을 샀답니다. 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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