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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 받을만 하냐?

세상과 함께

by 우람별(논강) 2012. 6. 18. 0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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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병, 이한별!!

잘 있는가? 군기가 바짝 들어서 눈동자가 반짝반짝 빛날 것만 같은데, 견딜만 한가?

구미의 아버지야 우리 아들이 나라를 잘 지켜줘서 잘 지내고 있다.

힘들었던 5주간의 훈련 일정을 거의 마칠 때가 되어가는구나.

6월 28일에 모든 훈련 일정이 모두 끝난다고 했지?

훈련 끝나는 그날 웬만하면 양구까지 가서 검게 그을린 아들 얼굴 보면서

그간 고생한 것에 대한 위로도 좀 해 주고, 맛있는 통닭도 한 마리 뜯으면서

훈련받던 온갖 이야기도 좀 듣고 하면 좋을 텐데, 그날 공교롭게도 

진로진학상담교사 연수원 자격평가가 있는 날이라서 빠질 수가 없단다.

섭섭하지? 단순히 하루 연가를 내서 갈 수 있는 형편이 못되는 것을

우리 아들이 잘 이해해 주었으면 좋겠다. 엄마는 아마 갈거야.

나는 아들이 자대 배치를 받은 후, 적절한 시점에 면회를 가려 한다.

어디로 배치가 될지는 모르겠으나 받는 대로 연락을 반드시 하도록 해라.

 

더운 여름에 하는 훈련이라서 육신은 고되고 힘들 수밖에 없을텐데

견딜 만한지 잘 모르겠구나. 워낙 체력이 좋은 너지만 그래도 늘 걱정이다.

아빠는 대학 졸업하고 교사 발령 받아 6개월 근무하다가 군대에 갔었는데

20대 중반의 4주간의 훈련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른다. 대구의 50사단 훈련소였어.

거의 탈진 상태까지 갔었단다. 이놈의 조교란 놈이 '어머님 은혜'라는 노래를 

훈련병들로 하여금 일제히 부르게 하는데, 얼마나 울었는지 잊혀지지 않더구나.

'나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진 자리 마른 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시네(중략)'

 

날씨가 더워서 고생이 좀 되겠다마는 몸이 좋은 우리 한별이는

끝까지 어떤 어려움도 잘 견뎌내리라는 생각을 한다. 

언제부터인가 애비의 마음을 듬직하게 해 준 우리 아들, 한별이

사춘기 무렵, 아빠 마음을 잘 몰라주고 바락바락 대들던 모습도

까칠한 태도로 아빠를 멀뚱히 바라보던 그 냉랭함도 이젠 과거이고

앞으로라도 부자간에 속깊은 정을 나누면서 살았으면 좋겠다.

아빠가 우리 아들 한별이에게 가졌던 미안함을 너는 잘 알고 있지?

동시에 아빠의 절박했던 속사정을 우리 아들은 또 얼마나 잘 이해할지.....

 

아빠는 옛날의 젊은 아빠가 아니라, 50대 중반의 원로급 교사가 되고 말았다.

세월에 밀려서 이젠 명예퇴직을 생각할 정도가 되었다는 사실 때문에

간혹 허무감마저 느끼는 요즘이란다. 교단을 떠나는 친구들도 많아지고,

어떤 친구들은 이미 교장이 되었고, 교감으로 승진한 친구들은 수두룩하다.

애비는 승진 쪽으로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기에 평교사로 사는 게 어쩌면 당연한 것이겠지만

몸과 마음이 서서히 늙어가고 있음을 느끼는 요즈음엔 기분이 아주 묘해진단다.

대구의 할아버지는 지금의 아빠 나이에 손자 기훈이가 7살이고, 한별이가 3살이었어.

그러고 보면 아빠 엄마 나이가 결코 적은 나이가 아니라는 것이야.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그 묘한 기분을 우리 한별이는 이해할 수 있을까?

 

나이가 들어가면서 세상을 알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파악하면서

우리가 살아갈 세상에 대하여 그 대처능력을 배워나가는 게 인생살이란다.

군인으로서의 우리 한별이가 2년 가까운 시간을 부대에서 보내게 되겠지만

너한테 주어진 2년의 시간들은 앞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데 아주 좋은 보약이 될 거다.

철저한 계급사회이기 때문에 나이에 관계없이 상하관계 속에서 살아야 하는 만큼,

때로는 인간적 모멸감과 분노까지도 스스로 삭여야 한다는 것 잊지 말아야 한다.

'군대는 원래 그런 것이다' 생각하고 원만한 마음을 갖고 모든 것을 잘 받아들이도록 해라.

마음이 불편할 때는 그 불편함을 털어놓을 수 있는 전우나 고참을 사귀어 놓는 것도 좋겠지?

어떤 일을 맡게 되든 회피하지 말고 '내가 못하는 게 어딨어?'. '난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다 받아들이는 태도가 매우 중요하단다. 내가 설령 다른 사람보다 일을 많이 하게 되더라도

일일이 불평하지 말고, 그냥 다 내가 하면 된다 생각하고 해버리는 게 좋을 것이다.

내가 조금 더 많이 함으로써 내 동료, 고참, 졸병이 더 편할 수 있다면

그 자체가 좋은 것이고, 그 일을 내가 한다는 것도 큰 행운이라 생각하라는 거지.

일일이 쩨쩨하게 따지거나 해서 주변의 빈축을 산다면 군생활이 괴로워진단다.

 

군생활을 원만하게 잘 해내는 사람은 사회에 나가서도 잘 하고, 잘 살 수 있다고 믿는다.

남은 훈련 일정 젊은이답게 잘 소화해 내길 바란다. 몸의 컨디션 잘 조절해 가면서.

훈련 마치는 날, 아빠는 없지만 엄마와 만나서 모자간의 정 돈독히 나누길 바란다.

자대 배치 받는 즉시, 간단하게나마 편지를 보내주면 좋겠다.

아빠는 7월 12일부터 8월 14일까지는 진로진학상담교사 연수를 또 빡시게 받는다.

연수 마치는 대로 적절한 시간을 봐서 배치 받은 부대로 찾아갈테니

그 전에 반드시 연락을 하도록 해라. 알았제?

자, 그럼 만나볼 때까지 잘 지내도록......

 

6/18 구미에서 아빠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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