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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광주민중 항쟁 31주년에 나는

아이들과 함께

by 우람별(논강) 2011. 5. 19.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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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18 광주민중항쟁 31주년 기념일,

나는 수업시간에 아이들과 함께 관련 동영상을 보면서 

당시 광주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가슴에 새겼다.

 

창비 국어교과서(상) 3단원 2과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이란 글이 있다.

그 글의 일부를 보면 1981년 국민들의 행복점수가 갑자기 뚝 떨어진 것으로 나왔다.

5공화국 출범과 함께 국민들이 겪었던 분노와 공포가 뚝 떨어진 행복점수로 연결된 것이다.

그것을 증명해 줄 수 있는 방법은 그 당시의 역사를 이야기하거나

당시의 동영상을 보여주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해서

인터넷에 검색을 해 보니 다양한 자료들이 많았다.

하나하나 내용을 점검하면서 20분 정도의 동영상 하나를 골랐는데 

비교적 화면도 괜찮아서 학생들에게 보여줄 만했다.

 

마침 중간고사를 끝낸 직후여서

진도를 나가는 것보다 사제간의 대화 시간도 필요하다는 생각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조금 있는데 들어줄 수 있겠냐?"고 하니

고함을 지르고 박수까지 치면서 얼마나 좋아들하는지......

잘됐다 싶어서 준비된 이야기를 해 나가기 시작했다.

좀더 진지한 학습태도와 생활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요지의

충고성 이야기로 시작을 했는데 자못 진지하게 들어주었고

학생들에게도 이야기 기회를 줘서 소통의 구색을 갖췄다.

 

20여 분 정도의 시간을 남겨두고 동영상을 틀었다.

단순히 알고 있었던 5.18 에 대해 좀더 의미있게

구체적으로 알게 해야 되지 않겠냐는 의도가 작용한 것이다.

'나는 5.18 광주민주화 항쟁 당시에 뭘하고 있었나?'

1980. 5.17 비상계엄 전국 확대 조치 이후 모든 대학교에 휴교령이 내렸고

나 또한 학교 가다가 정문 앞에서 등교 정지를 당하고 돌아온 적이 있다.

탱크를 세워놓고 지키고 있는 군인들에 의해 막무가내로 쫓겨난 셈이다.

신성한 캠퍼스에 군인들이 진을 치고 있는 기막힌 상황에 분노하면서

이제나 저제나 학교갈 날만을 기다리며 집에 처박혀 며칠을 보내던 시간이었다.

 

티비에 나오는 주된 장면은 고작 가수들이 출연해서 노래하고 춤추는 것들이고

가끔 화면의 밑으로 자막이 흐르는 것을 보면서 광주 상황을 의심할 뿐

구체적인 소식을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죽음의 시간들이었다.

전두환은 그렇게 언론을 철저하게 통제했다.

기억 속에 남아있는 티비의 자막은 이런 것이었다.

'광주 지역에 유언비어가 유포되고 있으니 국민여러분께서는

현혹되지 마시고 생업에 열중해 주시기 바랍니다.'

 

국민의 눈과 귀를 철저하게 속였던 전두환 군사 쿠테타 세력은

그렇게 그렇게 광주 시민을 제물로 해서 정권을 차지하고 그 측근들을

요직에 앉히고 '정의사회 구현'을 외치면서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었고

그들만의 세상이 최고인 양 언론의 도움을 받아 군림하기를 10년 세월,

그렇게 미워했던 전두환이지만 또 다른 정권의 비호를 받았고,

아직도 살아남아 '수중에 남은 것은 29만원밖에 없다'며 국민을 우롱하고 있다.

그는 분명 5.18 광주민중항쟁 당시, 발포 명령의 책임자다.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아는 사람은 다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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