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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벽참선 그거 어렵지

아이들과 함께

by 우람별(논강) 2011. 4. 2. 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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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입시를 준비해야 하는 인문계 고등학교에 근무하다 보면

정규 수업 이후, 보충수업(방과후 학교)을 하고 특히 담임교사는

사나흘에 한 번씩은 밤늦게까지 야간 자율학습 감독을 맡는 것이 일상화 되어 있다.

각 반 복도를 순회하면서 조용한 학습 분위기를 조성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만만치 않다. 학생들의 자습태도가 좋지만은 않아서이다.

차분하게 앉아 제대로 학과 공부를 하는 열심히 하고 있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옆에 있는 친구와 소곤소곤 말을 거는 등 공부에 집중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있다.

이유야 어떻든 그런 학생들은 감독교사의 제재를 받을 수밖에 없는데

벌을 줘야 하는 감독 교사나 벌을 받아야 하는 학생들은 서로가 괴롭다.

 

엊저녁에도 야간자율학습 감독을 하다가  

친구에게 잠담을 하거나, 히히덕거리는 학생 몇 명을 복도로 불러내어

'면벽참선'의 벌을 주었다. 그거 만만한 벌은 아니다.

남의 공부를 방해했으니 격리당한 상태에서 혼자 벽에 바싹 붙어 서서

자율학습 마칠 때가지 오랜 시간을 반성하고 있으라고 내리는 벌이다.

그것이 싫으면 조용한 상태에서 끝까지 자율학습을 잘 해야만 하는 것이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지 이제 한 달, 어느 정도 적응이 되어 갈 때이긴 하지만

익숙지 않아서 그런지 아직도 야간자율학습은 힘들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고 야간자율학습에 절대 참여하지 않겠다며 '거부 선언'을 할 수도 없으니

학생들은 그저 운명처럼 주어진 시간을 잘 활용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일테다.

자율학습을 감독하는 교사의 한 사람으로서 마음이 무겁고 아프다.

 

아침 8시에 등교해서 밤 10시 또는 11시까지 학교에 매어있으면서

대학입시에 대비하는 공부만 시키고 있는 교육구조 속에서 무슨 희망이 있을까?

요즘 정부에서 부르짖는 '창의 인성교육'은 공허한 메아리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모 일간지에는 언,수,외 등급 잘 나온 학교의 이름을 공개하기까지 했다.

학교간의 경쟁을 부추기는 분위기임에 틀림없고, 이젠 학교간 성과급도 달리 준단다.

교사의 성과급은 물론 학교의 성과급도 성적에 따라 차이를 두겠다고 한다.

학교간 경쟁, 교사간의 경쟁을 끊임없이 조장하는 사회적 분위기인 것이다.

그렇게 해서 결국 우리 교사들을, 학교를 어떻게 만들겠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그 경쟁의 끝은 도대체 무엇일까? 성취감? 몇몇만의 전유물인 그 성취감을 누가 제대로 느끼기라도 할까?

그렇다고 그 몇몇은 행복할까? 십중팔구는 끝까지 경쟁하면서 모두 지쳐버리고 희망마저 잃을 것만 같다.

용기와 희망을 주는 교육이 아니라면 그 어떤 것도 교육적 가치가 없다고 보는데,

왜 그런 경쟁교육만을 부추기고 있는지 현 정권을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다.

 

원하는 대학에 꼭 들어가고 말겠다는 결심을 하고 입학했던 꿈많은 새내기들,

3월 10일에 치른 첫 모의고사 성적표를 받아들고는 얼마나 의기소침했을까?

자만하지도 실망하지도 말고 멀리 내다보고 열심히 하라고 격려는 했지만

성적이 좋게 나오지 않은 학생들이 받은 정신적 충격은 컸을 것이다.

중학교 때는 나름대로 성적이 좋았던 학생들이기에 자존심이 상했을 것이다.

남보다 앞서지 않으면 경쟁사회에서 뒤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학교생활하면서 지금껏 느꼈왔던 것이겠지만 엄청난 스트레스 아니던가?

남들보다 앞서야 한다는 그 스트레스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만 같은데.....

 

슬픈나라 슬픈교육, 불확실성의 시대에, 경쟁만능시대에

이 땅의 교사로 녹을 먹고 있음이 새삼스레 부끄러워진다.

좋은 세상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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