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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상사, 심우장, 대학로 공연

사진과 함께

by 우람별(논강) 2011. 3. 12. 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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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서울로 향하는 KTX에 몸을 실었다. 아내와 함께.

며칠 전 아내는 서울 대학로에 있는 극단 '학전'의 20주년 기념 공연 예매를 해 놓았다.

아내의 문화적 결핍, 무료함을 달래줄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삼을 수 있겠다 싶어

서울나들이에 동의했고, 거금을 투자해서 서울행을 감행한 것이다.

 

 

집에서 김천구미역까지는 30분 정도 소요되었고, 아침 10:11분 출발하는 KTX를 기다리면서.....

 

서울역에 도착하니 11:36분.  KTX 의 기점이 서울역임을 알리는 조형물이 있다.

 

소소연(한양대 인터넷 지원팀에서 근무)이 우리 부부 얼굴을 보고 싶다며 기다리고 있다가

찻집에 들러 차를 한 잔 사 준다. 대학원 강의가 있는 날인데도 짬내서 와 준 사실이 고맙다.

아내가 선물한 봄빛 손수건을 스카프삼아 두르고 포즈를 잡았는데 그녀는 여전히 귀엽다.

 

소소연이 서울 도착 기념으로 우리 모습을 담아주겠다 해서 포즈를 잡았는데,

내 턱은 분명 두 개다. 근데 소소연은 "논강 선생님, 살이 좀 빠지셨네요?" 한다. ㅎㅎㅎ

잠시 얘기를 나누다 갈길이 바빠 다음에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고 전철역에서 헤어졌다.

 

법정 스님이 계셨던 길상사(吉祥寺)를 가 보기로 했다. 오늘의 목적지는 혜화동 대학로지만

연극 공연시간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아 있어서.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 역에서 내려

 6번 출구로 빠져나와 진행방향으로 50미터 정도 가면 길상사를 오가는 셔틀버스가 있다.

 

셔틀버스는 20분 간격, 또는 40분, 60분, 두 시간 간격으로 운행되고 있었다. 길상사 입구의 모습이다.

 

길상사 곳곳에는 스님들이 묵언 수행하는 건물이 많이 있다.

능인당, 정인당, 대화당, 반야당.... 온갖 이름의 건물들인데

스님들의 개인 기도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절에서 흔히 보는 법당의 모습은 아닌 것 같다. 사찰로 지어진 건물이 아님이 확연하다.

1987년 시인 백석을 사랑했던 여인, 길상화(吉祥華) 김영한 보살이 법정(法頂) 스님께

대원각 대지 7,000여 평과 지상 건물 40여 동 등 부동산 전체를 사찰로 기증할 것을 제의해서

1997년 5월 등기 이전을 완료, 대한불교 조계종 제21교구 본사 송광사 서울 분원이 되었다고 한다.

 

법정 스님이 열반에 들기 전에 머물러 왔던 길상사이기에,

곳곳에 스님의 흔적이 남아있다. 스님께서 무수히 걸었을 경내의 길, 길, 길.....

'무소유'의 가르침을 저 돈 많고 위세 좋은 위정자들은 왜 배우지 않고 있는지.....

 

절이 생기기 전에는 우리나라의 잘나가는 사람들이 수없이 드나들었을 요정(料亭)이었을 텐데

'어수선했던 이런 곳에서 스님들의 묵언수행이 잘 될까?' 하는 망상을 해 보면서 지나갔다.

저 난간의 운치는 이 절집의 격에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나 할까?

 

길상사 설법전 건너 편에 있는 주택의 모습들인데, 얼핏 보아도 고급 주택들이다.

강남이 개발되기 전에는 서울의 부자들이 성북동에 몰려살았다고 한다.

정원수로 보이는 나무들이 예사롭지 않다. 영화배우 배용준도 이 동네 어드멘가 살고 있을 것이다.

몇 나라의 대사관저도 이 동네에 있었다. 콜롬비아, 호주, 캐나다, 스웨덴 등의 대사관저이다.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길상사에서 나와 식당으로 이동하면서 이정표를 보고 알았다.

 

영양돌솥밥(2인분 기본), 김치빈대떡 하나를 시켜서 먹었는데 출출했던 아내는 단숨에 그릇을 비워냈다.

 

길상사에서 가까운 곳에 만해 한용운 선생이 살았던 집, '심우장'을 찾아가는 길이다.

올라가는 곳은 좁은 골목길이고, 초라한 언덕길이었으나 자연스러워 오히려 좋았다.

 

주소가 보이고 대문안으로 들어가면 왼쪽으로 북쪽을 향한 기와집인 '심우장'이 있다.

그 앞으로 건물 관리인이 사는 양옥 건물이 하나 보인다. 오른쪽 담장쪽으로 가면

만해 선생이 직접 심은 향나무가 한 그루 서 있는데 키가 몹시 크다.

 

정면 4칸 측면 2칸의 역'ㄴ'자의 작은 건물인데 중안 대청은 두 칸을 쓰고

왼쪽은 서재(심우장)로 온돌방 한 칸을 두었고, 오른쪽으로 부엌 1칸이 있으며

부엌에서 남쪽으로 꺾여나간 곳에 찬마루 1칸이 트인 공간에 위치한다.

 

햇빛이 들어오는 방향이 남향인데, 굴뚝이 그쪽에 있는 것으로 북향집임을 보여준다.

남향을 하면 조선총독부와 마주보게 된다고 해서 일부러 동북향으로 앞을 향하게 했다는

만해 선생의 기개가 돋보이고, 길을 가다가 만난 육당 최남선을 외면했다는 일화가 생각났다.

모른 체하는 만해를 보고 불러세우고는 "나를 모르는가? 나, 육당일세." 했을 때,

"모르오, 내가 아는 육당은 이미 죽었다우." 하던 만해 선생이 아니었던가?

육당의 변절에 대한 만해 선생의 호된 꾸지람을 들을 자, 이 시대엔 없을까?

 

 

'마저절위', '절구공이를 갈아서 갈대를 자른다', 절구공이를 갈아서

바늘을 만들었다는 고사로서 계속해서 정진하라는 뜻일 것이다.

 

심우장(尋牛莊), 만해 한용운(1879-1944) 선생이 만년에 12년 정도 머물다 입적한 곳,

그분의 숨결이라도 느껴보려는 내 마음을 누가 알까마는 어릴 적 읽었던 그의 전기를 잊을 수 없다.

민족 시인으로서 투철한 독립운동가로서 불교를 개혁하려했던 의식있는 승려로서

만해는 우리 민족의 지도자였음이 틀림없고, 그의 삶은 여전히 우리들에게 큰 감동으로 살아있다.

그분의 삶에 무한한 존경심을 보내면서 옷깃을 여미고 천천히 심우장 좁은 골목길을 내려왔다.

지난 겨울의 눈덮인 심우장 골목길에는 햇볕 한줌도 부족해서 얼어붙었을 것이고

연탄재가 뿌려진 흔적이 곳곳에 많았다. 안도현의 '너에게 묻는다'란 시가 떠오른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 너는 /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위창 오세창 선생이 전서로 쓴 '심우장' 편액이라고 한다. 깨우침을 찾아 수행하는 과정을

소를 찾는 일에 비유한 불교설화에서 따온 이름 '심우', 그 의미가 새삼 큰 가르침이 되는 것 같다.

내가 찾고 있는 것은 무엇이며, 내가 살아있는 가치는 여전히 유효한가, 아닌가.....

 

오후 4시부터 공연이니 아직 한 시간의 여유가 남았다. 대학로 일대를 어슬렁거리며 돌아다니다가

커피 전문점인 '카페 베네'에 들렀다. 아내가 꼭 한번 들르고 싶었던 곳이라며 팔을 잡아 끌었던 것이다.

'스타벅스' 등 외국 브랜드를 제치고 국산브랜드로서 더 많은 점포망을 가지고 성업 중이라고 한다. 

토종의 승리인 셈이니 일단 기분이 좋아진다. 상품 메뉴가 다양하니 젊은이들의 구미에 딱이다.

 

커피 + 팥이 속에 든 와플 + 아이스크림, 동시에 즐기는 메뉴이니 내게도 딱이다.

 

대학로에서 가장 오래 되었다는 '학림 다방(SINCE 1956)' 입구,

'학림'은 배움의 숲이란 뜻일 게다. 옛날 서울대학교가 위치해 있던 곳에서 가까우니

'학림'이란 이름이 참으로 어울렸을 것 같다. 입구의 왼쪽에 뭐라고 써놓은 것이 있어 읽어 보니,

황동일 님은 '학림 안쪽의 공간을 대학로라는 첨단의 소비문화의 바다위에 떠있는 고립된 섬'

처럼 느끼고 있다고 했고, '현재의 시간 위에 과거를 끊임없이 붙잡아 매두려는

위태로운 게임을 하고 있다'고 했다. '한 잔의 커피와 베토벤의 음악을 들을 수 있는

흥미로운 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이 몇 군데나 될까?' 라고 했다. 다음엔 한 번 들러봐야겠다.

 

오늘의 최종 목적지, '학전블루 소극장', 그 앞마당에는 2008년 1월에 세운 김광석 노래비가 눈길을 끈다.

애절하게 부르는 김광석의 노래를 직접 듣는 듯했다. 그는 학전 소극장에서 1,000회 콘서트를 맞았고

그것을 기념하고 기리는 의미에서 추모사업회에서 그 노래비를 소극장 마당에 세운 것 같다.

노래비 옆에는 유명한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김민기, 김장훈, 김제동, 노찾사, 노영심,

백창우, 성시경, 신형원, 안치환, 양희은, 유익종, 윤도현, 이소라, 이승훈, 이정렬, 전인권 등

조각은 안규철이란 분이 했다. 다들 김광석 추모사업회 회원들인 것 같았다.

입장 시간이 아직도 30분이나 남았으니 대학로 주변을 더 돌아보기로 했다.

 

동숭 아트센터 앞, 그 옆에는 대학로 뮤지컬 전용극장 신축 공사가 한창이었다.

 

상명아트홀, 작년 봄이었던가 전국교사대회에 참여했다가 잠시 짬을 내어

이곳에 와서 재미있는 연극 '어느 늘근도둑 이야기'를 보았었다.

 

대학로 큰길가에 서 있는 故 함석헌 선생님의 시비를 소개하는 내용이다.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두 명의 아마추어 가수가 콤비로 공연을 하고 있는데 예사롭지 않다.

너무 재미있는 얘기와 공연으로 관객들이 연신 웃음을 터뜨리면서 저들의 '가난한' 공연에

폭발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다. 파란 옷을 입은 가수의 입담은 코미디언 수준을 초월하고

작은북으로 드럼을 치는 사나이의 터프한 멘트와 특유한 연주 솜씨는 인기 폭발이었다.

친구인 토담의 모습과 너무 닮았다고 말하는 아내의 말에 공감하면서 웃었다.

 

극단 '학전'의 2층 사무실이다. 지하는 전용소극장, 1층 Terass, 3층은 연극연습실로 쓰고 있다.

 

오늘 공연에 출연하는 사람의 사진이다. 3.10~3.20까지 공연 예정이었다.

평일은 7시 30분, 토, 일요일은 오후 4시 공연인데 3시간 남짓 진행된다.

'학전 20주년 기념 공연' 내용은 <지하철 1호선>부터 <고추장 떡볶이>까지

레퍼토리 공연으로 계속된다. 극단 '학전'은 1994년 록뮤지컬 <지하철 1호선>을 시작으로

록뮤지컬 <모스키토>, 뮤지컬 <의형제> 록오페라 <개똥이> 등을 통해

우리 정서와 노랫말이 살아 숨쉬는 한국적 뮤지컬의 문법을 찾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을 펼쳐오고 있다. 또한 <우리는 친구다>, <고추장 떡볶이> 등

수준높은 어린이 청소년 뮤지컬의 계발, 제작과 해외공연계와의 폭넓은 교류를 통해

우리 작품을 검증하고 제작능력을 배양해 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한다.

 

190여 석이 약간 넘는 전용소극장 내부, 작은 공간이지만 20년 세월 동안

이곳 무대에 오른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까를 상상해 본다. 

정각 4시가 되자, 조명이 꺼지고 1부 <지하철 1호선>이 막이 올랐다.

원래 160분 뮤지컬인데 90분으로 압축되어 다이제스트 버전으로 만났다.

15분 정도 쉬고 2부는 학전 어린이 무대와 학전 뮤지컬의 대표곡들을 엮어 보여주었다.

 

 

뮤지컬 배우이자 가수인 이정렬 씨(맨오른쪽)는 이곳에서 연극을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딸 아이가 뱃속에 있었는데, 지금은 그 딸(가운데)이 뮤지컬 배우로서 무대에 섰다.

오늘 같은 날에 부녀와 함께 공연을 하고 있으니 그 감격이 오죽할까?

그 딸은 예술고등학교를 가려다가 인문계로 가게 되었다고 한다.

 

뮤지컬 '의형제'의 전체적인 스토리와 노래, 장면 장면을 짤막하게 보여주었지만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하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우리의 현대사를 잘 조명하면서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와의 본래적인 갈등을 축으로 하고 있는 흥미진진한 이야기였다.

'학전'의 대표이자 모든 작품의 연출자이기도 했던 김민기는 끝내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다만, 그가 말하고자 한 것이 무엇인지는 그가 만든 노랫말처럼 은은하게 와 닿고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얼굴은 잘 드러내지 않고 울림의 메시지는 끊임없이 만들면서

번득이는 의식을 잃지 않고 열심히 살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다.

난 아직 그의 남성 저음이 한없이 그립기만 한데, 끝내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연극관람을 마치고 혜화역까지 가는 길에 '달고나'를 파는 노점상이 있어 들렀다.

설탕을 국자에 녹여 소다를 타서 부풀린 다음 철판에 털어놓고 납작한 누르개로 얇게 누른 다음

온갖 모양의 쇠로 살짝 눌러 그 모양대로 온전하게 떼어내면 또 한번의 기회를 주면서

 달고나 파는 아저씨들이 유혹했던 기억이 새롭다. 게임하듯이 도전했던 어린 시절이었다.

아내는 그냥 지나칠 수 없다며 한 개 1,000원 하는 달고나 두 개를 사서는 덥석 깨문다.

나에게도 몇 조각 건네 주는데, 어린 시절의 추억 만큼이나 달콤했다.

 

대학로에는 수십 군데의 소극장이 산재해 있다.

큰길가에 있는 샘터파랑새극장의 외벽이 특이하다.

사다리를 타고 하늘로 향하거나 구름을 좇는 모습이

'희망'을 찾아가는 민중들의 모습으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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