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3일 오전부터 11월 14일 저녁 늦게까지
1박 2일의 과정을 늦게나마 정리해 본다.
* 11/13(토)
9시 30분경, 달성군 강창의 막내동생 집에 들러서 금주와 조카 성빈을 데리고
10시 20분경, 방촌동에 들러 아버지를 모시고 용인 수지의 채윤네집을 향해 출발,
중부내륙고속도로 충주휴게소에서 점심 식사(황태국, 순두부백반),
오후 2시 20분경 수지 신봉동 도착.
여주 이모댁에서 출발하신 어머니를 모시기 위해서
채윤아빠 승용차(K7, 최근 구입)를 타고 분당의 오리역으로 가서 마중,
분당에 오니 구갈중 교감 정병국 선생이 기억나서 잠시 통화함.
등산을 하고 하루를 즐기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중이라 했음.
시간만 더 있다면 만나보고 싶은 굴뚝 같았음.
오후 4시 10분경, 광명에 사는 이현정(돌아가신 처형의 딸) 집을 향해 출발,
40킬로 남짓되는 거리인데, 교통이 워낙 정체되어 2시간 정도 소요됨.
처형 세 분이 모두 먼저 와 계셨고, 오서방도 곧 도착,
처형이신 고 김행도 여사의 기일인 만큼 식사를 하기 전 간단하게 추도식을 가짐.
부산 처형께서 의식 준비를 하셨고 기도와 찬송으로 한층 격에 어울렸음.
재원 엄마는 온갖 음식을 만들어 추도식 준비에 소홀함이 없었고,
살이 너무 많이 빠진 듯해서 나는 걱정을 했지만,
다른 분은 날씬한 몸매를 모두 부러워하는 것 같았음.
보혐회사 신입사원인 전경용 군도 합류,
조카 이현정이 낳은 남매 재원, 예원이의 재롱이 매우 귀여움(사진 촬영)
9시 30분경, 사정상 먼저 집을 나와 다시 수지의 동생집으로 이동,
차가 덜 막혀서 30여 분만에 금방 도착, 범주 동생, 남주 동생과 상봉,
막걸리, 맥주, 소주 청탁불문하고 기분좋게 마시며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움.
채윤 아빠의 멋진 클래식 기타 연주, 합창, 이남주 집사의 설교,
신심 두터운 남주 동생의 전도는 확신에 찬 정열 그 자체였고,
아직까지는 예수를 진정으로 영접한 사람이 가족 중에 없음.
* 11월 14일(일)
새벽 1시에 남주 동생은 다음날 교회에 가야 하는 일 때문에
먼저 목동 집으로 귀가했고, 잘 놀던 서준, 채윤, 성빈도 곤하게 잠들고,
아내를 비롯한 여인네들 또한 많이 피곤했음인지 먼저 침실에 들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끝까지 남아서 나, 범주의 형제 이야기에 간간이 끼어드시고.....
이 원장의 고민에 찬 이야기는 술에 취한 듯 좀처럼 실마리가 풀리지 않았다.
새벽 5시가 넘으니 더 이상 마실 것이 없다. 잠을 자 둬야 했다.
오후 2시에 은평구 불광동에 있는 예식장에 늦지 않게 닿으려면.
조카들이 일찍 깨서 장난을 치고 그 서슬에 잠이 깼다.
3시간 수면이면 눈이 잘 떠지지 않아야 정상인데, 난 괜찮다.
이원장은 음주로 몸에 무리가 된 탓인지 자꾸자꾸 졸고 틈만 나면 잔다.
아침 10시 경, 막내제수가 차려주는 아침식사를 맛있게 하고
여유를 즐기다가 정오 무렵, 예식장을 향해 출발,
내차에는 이원장과 부모님이 타시고
석주 동생차에 아내와 제수, 서준, 성준, 금주가 탔다.
한남대교, 남산터널, 종로, 파고다 공원 등 서울 시내를 관통하여
독립문, 무악재 지나 불광동 예식장에 도착했을 때는 오후 1시.
비교적 여유있게 식장에 도착한 것이다. 아버지는 왜 이렇게 일찍 왔느냐
시간 될 때까지 차를 몰고 바깥에서 놀다 오는 것이 어떠냐 하시는데,
'시간이 남는 게 아닙니다. 사람들을 미리 만나고 하려면 시간이 확보돼야 해요.'
서울시내의 복잡함에 불편을 느끼는 것으로 보아 역시 난 촌 체질,
서울을 떠나지 못하고 서울 생활만을 고집하는 분들이
오히려 측은하게 느껴진다고 표현하면 너무 솔직한 걸까?
예식장은 건물의 16층에 위치해 있었다.
지하 3층에 주차를 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데
그 안에서 정장을 차려입은 신랑 서승원 군과
드레스를 입은 신부를 우연히 만나게 되었는데, 신부가 대단히 예쁘다.
신랑(40세)과 띠동갑(28세)이라고 하는데 대단히 선량해 보인다.
몇 달 전 시어머니가 되실 우리 이모님께 보낸 편지를 우연히 읽게 되었을 때,
예쁜 글씨와 착한 마음씨가 돋보였고 끝까지 읽지 못하고 결국 눈물을 훔치고 말았다.
시어머니의 건강을 걱정하는 갸륵한 마음씨에 감동을 받아서다.
그 편지의 주인공을 가까이서 보게 되니 더욱 반가웠다.
예식장 앞에는 이모부님 내외께서 하객들을 맞기에 바쁘셨다.
나도 안면이 있는 분들에게 인사를 드렸다.
결혼식에서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은 사진을 찍는 일인 것 같아
먼저 동생들과 식사를 하고 결혼식 장면을 놓치지 않고 찍었다.
일부는 동영상으로 남겼고, 대부분의 장면은 사진으로 남겼다.
폐백할 때 전통 한복을 입은 신랑 신부의 고운 모습과
신랑 신부의 절을 받고 계시는 어른들의 모습도 찍었다.
아버지께서는 아침부터 약주를 많이 드신 탓에 몸이 많이 흔들리고 있었다.
더구나 친구이자 친척인 이준남 아저씨와 예식장에 만나 계속 술을 드셨으니......
말쑥한 차림의 준남 아저씨는 인상에 걸맞게 다소 짖궂은 모습을 보여주었고,
아버지의 허름한 옷차림은 그분과 대조되어 어머니는 속이 상하셨다.
괜찮은 옷을 입고 와도 되는데, 일상복을 입고 온 아버지가 야속한 거다.
'뭘 그리 신경쓰냐? 편한 옷이 최고지.' 하는 아버지의 생각과
예식장에 올 때는 깔끔하게 차려 입고 가야 한다는 어머니의 생각은
종종 잔소리로 말싸움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종사촌 동생인 이인기(36살)로부터 건축사 사무실 운영과 관련하여
잘 되고 있다는 좋은 소식을 들을 수 있었고, 이종 동생인 현정이는
동생인 서승원의 결혼에 매우 상기된 듯 했고, 이모님의 건강을 의식,
한편으로는 마음이 짠하지 않을까 한다. 철모르는 애띤소녀 예원이를 안고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모습이 보기가 좋았다. 장원이댁과 똑같이 옷을 맞췄나 보다.
석주는 하객들이 건네는 축의금 봉투를 받아 번호를 매기고 그 안에 든 돈을 세고,
현정의 남편인 정서방은 장부에 하나하나 정리를 하고 있었다.
식이 끝나고 늦게 점심을 잡수시는 이모님들, 외삼촌, 외숙모,
검은 테를 쓴 성업 아재의 모습도 카메라 속에 담아 두었다.
16층 빌딩에서 내려다보는 불광동의 주택이 을씨년스러웠다.
석주 동생은 이원장을 태워 구의동까지 데려다 주는 것으로 하고
나는 부모님 모시고 다시 대구를 향해 출발, 그 때가 오후 4시가 약간 넘었나?
밤새도록 술마시고 얘기하느라 잠을 몇 시간 자지 못한 탓으로
정체된 고속도로 위를 운전한다는 것이 보통 힘든 게 아니었다.
맨처음에는 교통체증 때문에 힘들었으나 체증이 다소 풀리면서
잠도 달아나고, 기분도 좋아지면서 별다른 어려움은 없었다.
아버지의 독설과 어머니의 만만찮은 말대꾸는 여전히 긴장을 조성한다.
10여일간 떨어져 사실 때에는 보고싶어 하던 아버지였는데, 또 갈등?
술도 한잔 하셨겠다 대책없이 내뱉는 아버지의 언어폭력은 대단했고,
어머니는 또 그만큼 속상해 하고, 자식들 또한 안타까움이 더하고.
차 안에서 오가는 아버지의 언성 높음은 자식들을 참으로 곤혹스럽게 했다.
아내가 겪는 스트레스는 또 다른 차원일 테지만 그래도
간간히 던지는 웃음으로 그것을 해소하고 있는 것 같았다.
잠도 깨울 겸, 천안휴게소에서 간단하게 저녁식사를 함.
금주는 충무김밥, 나와 아내는 된장찌개, 아버지는 잔치국수
어머니는 식사를 전혀 하고 싶지 않다 하시고......
밤 9시 30분경에 방촌에 도착하니, 김서방이 차안에서 기다리고 있다.
엄마와 하루종일 떨어져 있던 개구쟁이 둘째놈 성준이를 보면서
금주 동생과 큰아들 성빈이의 귀가를 기다렸을 것이다.
시간도 늦고 해서 곧바로 동생네 가족들과는 헤어지고,
우리 부부는 이모네집에서 한 김장 김치와 남주가 보내준 홍시를
어머니한테 조금 얻어 곧바로 구미 집으로 귀가했는데 그때가 밤 10시쯤?
하루 종일 차를 탄 때문인지 아내는 머리가 빙빙 돈다고 표현함.
이렇게 1박 2일을 정리해도 될까 몰라.
간단히 한다는 것이 또 길어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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