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야유회(낙안읍성, 순천만)

사진과 함께

by 우람별(논강) 2010. 10. 10. 06:37

본문

어제, 대학 재학 시절에 활동한 바 있는 복음고등공민학교,

그 졸업생들의 모임인 복음동창회에서 주관하는 가을 야유회에 다녀왔습니다.

대구 복음선교관 앞에서 출발할 때는 가을비가 조금씩 내리더니

순천에 도착했을 때는 날씨가 얼마나 쾌청했는지 모릅니다.

 

정병윤 선생님, 김윤규 교수님, 저, 이렇게 세 선후배가 함께한 여행이어서 좋았습니다.

특히 여행에 대한 갈증이 많았던 병윤 형을 모실 수 있어서 행복했고,

포항에 같이 살 때는 마음만 먹으면 만날 수 있었으나 지금은 내가 구미에 떨어져 살아

만나기가 어려운 김윤규 교수님(한동대)과 온전히 하루를 같이했기에 기뻤습니다.

두 선배님 사이에 끼여서 두 분의 애정어린 농담을 듣는 즐거움도 매우 컸구요.^^

2002년 개교하여 대안학교로서의 명성을 떨치고 있는 '청소년 자유학교'

그 학교 교장 선생님이기도 한 교수님의 감동적 얘기는 큰 기쁨이었습니다.

교수님을 도와 교감으로서 잠시 보좌했던 인연이 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한 때는 한두 명의 학생을 데리고 운영한 바도 있었는데 지금은 40명 가까이 됩니다.

너무 많아서 가벼운 정도의 부적응 학생은 되돌려 보내야 할 형편이랍니다.

최근 시작한, 다문화 가정의 자녀들을 위한 학교, '무지개 자유학교'도

하고자 하는 대로 잘 이루어지길 간절히 바랍니다.

 

낙안읍성, 벌써 다섯 번째 찾게 되는 곳이지요.

읍성 안에 아내의 가까운 친구가 한지공예를 하면서 살고 있어서

자연스레 들르던 곳이기도 하지만 늘 좋은 느낌으로 찾곤 합니다.

특히 안개가 은은하게 피어 있는 새벽녘의 읍성밟기는 

잊지 못할 장면으로 남아 있습니다.

 

제자들과 함께하는 병윤이형은 마냥 신났습니다.

물푸레나무 지팡이에 의지해서 절룩거리며 걷지만 오늘은 최고의 행복한 날일 겁니다.

직접 가르친 복음 25회 졸업생 5,6명의 제자들과 함께하는 날이니 오죽할까 싶습니다.

특히 왕눈이 여사님(가운데)은 얼마나 잘 챙기는지 질투가 날 정도였으니까요.

스승의 날 전후해서 김명옥, 이용숙 등 4명의 제자들이 경주 방내 병윤이 형 집에까지 가서

방청소, 빨래까지 해 주고 왔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가슴이 먹먹해지기까지 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분들의 마음이 표출된 것이라 믿습니다.

 

길가의 비각은 임경업 장군이 이곳에 와서 선정을 베풀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런데 귀부와 이수 부분이 경상도 지역에서 보는 것과 달리 정교하지 않고

차라리 우스꽝스런 모습이라서 관심이 더 가게 되더군요.

   

 낙안읍성 저 편의 구름이 가슴을 여전히 설레게 합니다.

 

포항시 문화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김윤규 교수님은 아는 게 참 많습니다.

기회가 되면 본능적으로(?) 이것저것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문화답사의 길라잡이를 수없이 해 온 일종의 직업병이라고 봐야지요.^^  

이번 여행 만큼은 철저하게 쫓아다니기만 하겠다고 했는데.....

 

 병윤 형은 대학 2학년 때 월간문학에 소설부문 당선작을 내면서 작가적 소질을 인정받았지만,

그 이후로는 특별한 작품을 발표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마가렛 미첼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란 소설로 유명해졌듯이

필생의 대작 한 편을 쓰게 되면 당신도 일약 세계적인 작가로

인정받을 날이 틀림없이 올 것이라며 호기를 부리기도 합니다.

한때는 권력을 지향하면서 사법고시에도 여러 해 도전한 바 있기도 하지만

당신의 인생에는 별 도움이 되지 못한 것 같고, 참으로 안타깝게도

30대 초반에 중풍이 와서 장애의 고통을 참으면서 살고 있습니다.

 

산으로 둘러싸인 평지에 선 읍성의 용도는

왜구의 침투를 막기위한 것이 아니었겠냐는 병윤 형의 주장을 접수하고

순천만으로 향했습니다. 이제는 오던 길로 돌아가는 귀로에 오른 셈입니다.

 

우리가 찾은 날이 순천만 갈대 축제(10.9-10.24)가 시작되는 날이더군요.

몇 년 전의 모습과는 전혀 다르게 주변을 잘 단장해 놓았네요.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라서 그렇긴 하겠으나 자연스러움은 덜합니다.

 

선착장, 여기서 배를 타고 바다 입구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30분 정도 소요)

관광용 배들이 운행을 합니다만 시간이 늦어서 배를 타지는 못하고 순천만을 조감할 수 있는

용산전망대까지 갔다 오는 것으로 계획을 잡았습니다.

 

바다쪽 방향이 아닌 순천 시내 방향 쪽입니다. 

 

 물이 빠진 뒤의 갯벌 모습,

그 표면에는 수많은 숨구멍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갯벌 위로 수많은 게들이 옆걸음을 치는데 바라보는 사람들이 조심스러운가 봅니다.

뻘흙을 잔뜩 묻힌 채 팔굽혀펴기를 연속하는 짱뚱어들의 모습이 귀엽습니다. 

 

 용산 전망대로 오르는 도중에 만나게 되는 출렁다리,

이런 곳 건너기를 지나칠 정도로 무서워하는 아내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평소엔 걸을 수 없는 출렁길이니만큼 지나갈 때면 장난끼가 발동해서

흔들어대고 싶은 길인데, 오늘은 다들 점잖게 걸어만 갑니다.

 

청명한 하늘의 높이 솟은 뭉게구름, 사람의 가슴을 한껏 부풀려 놓고

황금들판을 놀이판 삼아 한바탕 어울려보자고 손짓하는 듯 합니다.

 

 햇살도 사진에 담을 수가 있네요.^^ 구름의 실루엣과 먼 바다, 산의 능선, 갈대밭, 논들의 광활함이 좋습니다.

 

어떻게 논에 글씨를 저렇게 써 놓았나요? 다분히 의도적인데 오히려 낯설지 않나요?

 

 갯벌 위로 드러낸 갈대밭은 어떻게 둥그런 형상으로 남아 있을까요?

갯벌 한가운데로 난 물길은 휘어져 바다쪽으로 이어지는데,

배의 움직임이 보이지 않습니다. 새들의 비상 또한 찾을 수 없습니다.

바다의 침묵인가요, 아니면 내가 느끼는 소외감일까요?

 

붉은빛의 칠면초가 염분을 머금고 곳곳에 자라고 있습니다.

 

순천만 일대의 갈대밭이 광활한 갯벌 위로 곳곳에 자리잡아

기기묘묘한 모습을 연출하고 있어 바라보는 이에게 즐거움과 감동을 주니

사람들도 해마다 이맘 때쯤 축제의 향연을 베풀어 주는 것 같습니다.

자연의 소중함을 새삼 절감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네요.

 

 

 동창회장님 부부(두 분 모두 복음10회), 언제 보아도 금슬좋은 분들이십니다.

복음선교관, 장학회, 동창회 등 모든 일을 총괄하다시피하는 회장님은

김태한 교장 선생님(88세)께서 가장 신뢰하는 분이시라고 보면 정확할 겁니다.

사모님께서도 '내게는 과분할 정도로 잘하고 훌륭한 사람'이라고 표현하셨습니다.^^

인상을 보세요. 얼마나 좋으신가요. 말씀도 유머스럽게 참 잘하시고

마음도 참으로 너그러운 분 같아서 언제 보아도 참 좋습니다.

 

오후의 강렬한 햇빛이 굽이굽이 흐르는 물길에 비치는데 가히 환상적입니다.

 

두 분이 많이 닮았지요? 남매지간입니다. 오른쪽의 김동균 선생님(복음 12회)은

제가 활동하던 시기에 학생들에게 성경 과목을 가르치셨었는데,

창원전문대학 교수님으로 근무하시다가 올해 퇴직을 하셨다고 합니다.

 

 구름 사이로 내리비치는 빛을 찍어보고 싶었는데 그런대로 잘 나왔지요?

 

 

 

 거창 휴게소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대구로 돌아오는 시간까지는

최현득 동창회장님의 즉석 요청에 따라 김윤규 교수님의 재미난 특강이 있었습니다.

강의 주제는 '복음과의 끈질긴 인연과 청소년 자유학교, 무지개 자유학교 의 탄생 과정'입니다.

한 마디도 흘려들을 수 없었던 깔끔한 특강이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제가 김윤규 교수님을 좋아하고 존경하는 이유를 다시금 발견했다고나 할까요?

그리고 '너 요즘 한문공부는 계획대로 추진하고 있는가?

정년 퇴임 후의 준비는 잘 되고 있는가?' 이렇게 물을 것만 같았습니다.

아니, 그런 내용의 마음의 메시지를 강렬하게 제시하는 듯 했습니다.

 

 늦은 시각에 출발지였던 곳으로 다시 도착한 우리들은

수고했다며 서로를 격려하고 다음 해를 기약하면서 헤어졌습니다.

김윤규 교수님은 안동 모임이 예정되어 있어서 곧장 그리고 갔고,

난 병윤형을 경주 건천읍 방내리까지 모셔다 드리기로 했습니다.

 

형의 이야기는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안에서 계속 되었습니다.

양귀자, 김원일 등의 소설에 대한 감동을 이야기하더니 이청준의 이야기로 옮겼습니다.

난 무엇보다 형이 요즘 소설을 계속 쓰고는 있는지가 궁금해서 물었습니다.

이청준의 '눈길' 못지 않게 어머니의 절절한 사랑을 주제로 한 소설을 

최근에 써 놨는데, 작품이 너무 좋아서 아무데나 발표하기는 아깝고,

1,000만원 정도는 되는 고료를 받을 수 있는 곳에

조만간 출품할 생각이라는 말을 직접 들었습니다.

 

밤안개 자욱한 건천 방내리 마을에 도착,

짐을 챙겨서 형을 내려주고 돌아오는 길은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형님께서 살아가실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기도 하지만

작가로서 오랜 세월 글을 쓰지 않고 있는 형의 나타(懦惰)가

현실적으로 겪고 있는 정신적, 경제적 어려움과 맞닿아 있어서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만족할 수 없는 상황이 계속되기 때문입니다.

절뚝거리며 고삿길 어둠속으로 사라지는 형의 뒷모습,

밤안개가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방내마을의 가을밤 풍취가

동네 어귀에 명멸하는 가로등의 희미한 불빛 만큼이나

을씨년스러웠습니다.

 

건천 IC로 올려 구미까지 달리는 밤운전은 엄청 괴로웠습니다.

수시로 찾아오는 졸음 때문에 화들짝 놀라기를 여러 번, 결국 휴게소에 잠시 눈을 붙이고

쉬엄쉬엄 구미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자정이 넘은 시간이 되고 말았습니다.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