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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조암, 인각사, 지보사 들르던 날

사진과 함께

by 우람별(논강) 2010. 3. 23.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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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월 14일, 일요일

아내와 함께 대구 어른댁에 들러

오늘 바람이나 쐬러가자고 했더니 부모님은 좋아하신다.(얼마만인가!)

어디로 모실까요 하니, 어디든 좋다 하신다.

 

영천 신령에 있는 은해사 말사 거조암, 영산전(국보 14호) 앞에서 한 컷! 

근데, 아버지의 자세가 좀 신경이 쓰인다.

피우시던 담배를 손가락에 끼고 계시고, 오른손은 또....

저 뒤로 500나한을 모신 영산전에서는 서울에서 내려온 신도들이

스님의 법문을 듣고 있고, 몇몇 분은 나한 상 앞에 일일이 동전을 시주하면서 합장을 올렸었다..

 

부모님 곁에 내가 서니 어른들이 너무 작아 보이셔서 민망하네.^^

 

거조암에서 나와 군위에 있는 인각사로 감.

인각사, 보각국사 일연이 삼국유사를 집필한 곳,

지금의 건물은 언젠가 다시 세워서 옛 흔적을 보기는 어려워도

곳곳에 흩어진 주춧돌과 기록이 고찰임을 증명한다.

 

비각 안에 모셔진 보각국사비는 새겨진 글씨를 제대로 읽을 수 없을 정도로 마모되고..... 

 

보각국사 정조지탑(보물 428호)은 일연 스님이 마지막 남긴 말을 전해주는 듯하고,

'아름다운 마무리'를 강조하신 법정 스님은 승주 송광사에서 오늘 다비식과 함께

한 줌의 재로 세상을 등지셨지만, 다시 태어난다 해도 승려가 되어

하고 싶었던 일을 계속하고 싶다 하신 법정, 그렇게 '무소유의 정신'을 강조하셨고,

많은 가르침을 글로 남기신 분께서 하고 싶었던 일은

도대체 무엇이었기에 미련(?)을 표현하셨을까?

 

일연 스님은 평소에 노는 모습이 어떠셨을까? '여러분'은 우리 중생들 전체를 지칭한 것일까?

아니면 주변의 지인을? 아니면 비유된 말로서 스님께서 지향했던 '역사'였을까? 

 

 부도 옆 전시실, 주지 스님께서 신경써서 마련해 놓은 공간인 듯한데,

일연스님의 숨결을 느낄 수 있도록 배려한 것 같다.

 아버지의 진지함이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아버지, 어머니 오늘따라 매우 다정해 보이신다.

미운 정, 고운 정이 소복소복 쌓여있는 두 분의 관계

자식들이 보기에는 여전히 천생연분이다.

아버지의 기른 수염과 안경 너머 눈에는

특유의 장난끼가 남아 있어서

입가의 웃음을 숨길 수 없다.

 

인각사에서 빠져 나와 의성 금성면 소재지에 있는 탑리5층석탑(국보 77호)을 찾았다.

탑 주위의 고즈넉함이 좋아서 즐겨 찾는 곳이지만 부모님 모시고 가니 더 좋다.

저 멀리 보이는 금성산도 우리를 즐겨 맞는 듯하고.....

 

 

의성 빙계계곡 한켠에 우뚝 선 빙산사지 5층석탑(보물 327호)은

금성면 탑리 5층석탑과 너무 닮았다. 아들도 어머니를 닮았다.^^

 

철골 무지개 다리 위에 서 보았으나 무지개가 너무 차가웠다.

무지개를 찾아나선 어느 소년의 열정이 이곳에 남아있던가?

 

다시 군위와 의성의 경계 지점에 있는 지보사로 왔다.

벌써 너댓 번은 찾아온 것 같다. 아내와 함께 2년 전 쑥을 캐러 오기도 했다.

남전 형은 고향집에서 가까워 어릴 때부터 어머니 손을 잡고 많이 찾았던 곳이라고 하는데,

절로 오르는 계단과 나즈막한 담장이 썩 잘 어우러지는 사찰이다.

 

하루에 세 번 절을 찾으면 좋다는 아내의 제안에, 세 군데 절을 다 찾은 셈이다.

승주 송광사 법정 스님의 다비식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을 테지만,

사바 세계의 또 다른 스승을 잃어버린 그 허허로운 마음을 이렇게 달래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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