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손자 가온이의 돌잔칫날

사진과 함께

by 우람별(논강) 2026. 9. 21. 09:22

본문

손자 가온이의 돌은 9월 24일이다. 올해는 추석 전날이라서 현실적으로 모임을 갖기가 어렵기 때문에 조금 당겨서 19일(토)에 안동 정상동에 위치한 '예미정'이란 식당에서 조촐한 돌잔치를 갖기로 했다. 아내와 나는 비교적 여유롭게 길을 나섰고, 오후 1시 약속장소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사돈 내외가 먼저 와 있었고, 우리 부부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3년 만의 만남이었다. 아들 내외, 손녀 나은, 주인공 가온이, 사돈집 색시가 함께했다. 나는 손자 돌기념으로 돌반지와 현금봉투, 우리 동생들(4남매)의 자그마한 정성까지 전달했다. 귀엽고 건강한 손자를 얻은 할아비의 기분을 그 누가 알랴! 손녀, 손자를 낳아 기른 아들과 며느리가 그저 고마울 뿐이다. 오늘의 점심 식사 비용은 당연히 할아비인 내가 지불하는 게 맞겠지? 사돈 내외는 추석 선물이라면서 고향에서 직접 농사지은 많은 양의 고춧가루를 전달해 주었다. 아내는 그저 소박한 드립백 커피 몇 통을 전달했을 뿐인데, 참으로 감사하다. 잘 먹겠습니다. 오랜만에 보아 좋았습니다. 시간 날 때 댁에 한번 놀러 가겠습니다. 늘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주인공 자리에 앉은 가온이를 바라보는 며느리의 시선이 정겹다. 68년 전, 첫아들을 낳은 우리 어머니 허 여사께서 나에게 보내주었던 시선도 그랬을 테지? 
 

며느리는 셋째 딸인데, 언니인 첫째 딸은 아직 결혼하지 않은 올드미스! 직장 생활을 열심히 하고 있고 틈나는 대로 우리 손녀 손자를 얼마나 잘 돌보아 주는지 모른단다. 아이들도 ‘이모’를 연발하며 잘 따른다고 한다. 사돈 색시, 고마워요. 웃는 모습이 참 예쁩니다. 퍼뜩 좋은 사람 만나야지요?  
 

이렇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귀염둥이들, 자주 못 보는 것이 못내 아쉽다. 마음 같아서는 옆에서 늘 함께하고 싶은데.... 어디 그게 맘대로 되는가? 자주 봐야 정들고 반가움이 큰 법인데, 녀석들의 낯설어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안 사돈, 의성인 김 여사님의 미소가 매우 자애롭게 느껴진다. 외할머니의 사랑을 온몸에 받으며 크고 있는 가온이, 박수를 함께 치면서 빵긋빵긋 웃고 있다. 이보다 더 귀여울 수 있어?  가온아, 사랑해!!! 
 

나도 가온이 옆에 앉아서 돌 기념사진 하나 남긴다. 2살의 손자 가온이, 68살의 할아비다. 녀석이 대학교에 들어갈 때쯤의 내 나이는? 18년 뒤니까 86세? 그때까지는 살아있겠지? 아니, 살아있어야 돼. 열심히 몸관리를 해야 하리라.^^
 

소위 돌잡이 장면인데, 녀석은 귀찮았는지 울고 말았다. 결국 가온이는 많은 것 중에 의사봉을 잡았다. 공부 잘해서 법관이 될 조짐이라면서 아비는 히죽히죽 웃었다.
 

‘나은아, 가온아, 아프지 말고 항상 건강해야 해, 알았지?’

안동 낙동강 가에 위치한 유아히어(You are here) 카페에서 사돈 내외와 우리 내외는 손주의 재롱을 한참 지켜보면서 차를 한 잔씩 나누었다. 바깥사돈의 감 농사 이야기와 농촌의 현실을 걱정하는 이야기를 잠시나마 들을 수 있는 기회였다.
 

안동에서 두세 시간을 즐겁게 어울리다가 열호재로 돌아왔다. 아내는 카페의 일을 해야 했기에 곧바로 그 근무지로 갔고 나는 주어진 시간과 여유를 충분히 즐겼다. 그러나 나라의 국정 상황이 좋지 않다는 느낌 때문에 마음이 그렇게 편치는 않았다.
 

다시 그다음 날 9월 20일(일) 13시경, 부모님 모시고 우리 내외는 대구의 동촌유원지 모 식당을 찾았다. 무청시래기감자탕을 좋아하시는 부모님인지라 그곳을 자주 가게 되는데, 두 분 모두 맛있게 드셨다. 그러나 그 양이 많지 않아서 으레 남는 것을 포장해 달라고 해서 집으로 가져가야 할 것 같다. 두세 끼는 더 끓여서 맛있게 드실 수 있는 양이다. 
 

식사를 끝내고 부모님 댁으로 돌아가, 지난 9일에 공연했던 시극 <그날이 오면>의 동영상을 아버지께 보여드렸다. 몹시 궁금하셨던 모양이다. 아버지의 시 4편과 아버지의 녹음 시낭송이 동원된 작품이기도 해서 그 어느 해보다 의미가 크다. 며칠 전에 시극 <그날이 오면>을 극장까지 와서 직접 감상했던 영주의 정규태 시인은 아버지의 수필집 두 권을 얻고 싶다고 했다. 그 친구의 말이 떠올라서 아버지께 말씀드렸더니 보관 중이던 수필집 두 권을 가져와서 느릿느릿 떨리는 손으로 ‘정규태 님 淸覽이라고 쓰고 행을 바꿔 2026.9.20. 저자 드림’이라 쓰더니 인주를 찾아내 큼지막한 낙관을 찍어서 건네주신다. 
 

부모님과 헤어지고 다시 구미 선산 열호재로 오후 늦게 돌아왔다. 하루는 아들내외, 손주들과 함께하고 이어진 또 하루는 부모님과 함께하는 날이어서 그 이틀간의 시간들이 얼마나 소중하게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부모 자식 간의 만남이라는 것도 나이가 들수록 그 횟수가 점점 줄어드는 느낌이어서 더욱 그렇다. 비록 작은 공간이지만 나의 늘그막을 잘 지탱해 주고 있는 저 사진 속의 열호재가 나에겐 자식만큼이나 소중하다. 내 영혼을 달래주는 데는 결코 작지 않아서 바랄 게 없다. 적어도 내 육신의 건강이 허락하는 한, 아무런 문제가 없음을 믿는다.    

'사진과 함께'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부모님과 함께한 고향 나들이  (1) 2026.04.09
조카 고은이 결혼식  (0) 2026.03.31
청류회 회원들과 함께 봄맞이  (0) 2026.03.29
어머니 생신 날  (1) 2026.02.01
칠곡 328고지를 오르며  (1) 2026.01.26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