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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 <형영> 단원들 모임 1박 2일

오늘 나는

by 우람별(논강) 2026. 1. 11. 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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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항에서 거주하던 시절, 극단 <형영>과 인연을 맺어 배우 및 스텝으로 활동한 기간은 1993년부터 2005년까지 만 12년 정도다. 2006년 근무지를 포항에서 구미로 옮기면서부터 극단의 연극 활동과는 실질적으로 멀어져 있었는데, 작년 말 극단 선배, 김시종 선생님과 어쩌다 연락이 되어 단원들끼리 서로 얼굴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자연스레 만들어졌다.
  제법 오랜 세월을 동고동락했던 회원들이라 언제 만나도 그저 반갑다. 1월 10일 오후 5시, 경주의 모 식당, 그 날 그 시간이 가까워오면서 설레는 마음 주체할 수 없었다. 아침 일찍 차를 몰고 길을 나섰다. 휴일이라 그런지 경주 IC로 빠져나오려는 차량이 1km 넘게 정체될 정도였다. 느릿느릿 가야 하는 차 안에서 오늘 만나게 될 인물들의 변화된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남성회원들부터 강순원, 김시종, 최건주, 이영률, 이재훈, 박진영.... 여성회원들은? 민광숙, 윤경희, 정효진, 오혜윤, 최정미.... 
  12시경 진평왕릉 입구인 술머리에 도착했다. 경주에 살고 있는 친구는 벌써 나와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술머리에서 만나 나를 데리고 식당으로 가서 점심을 먹기로 이미 약속을 한 바 있어서다. 식사 후 남산 주변을 먼저 둘러보고 난 뒤에 단원들을 만나겠다는 나의 이기적 발상이기도 했다. 소위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리는 거다. 이해하시라.^^ 
 

봉화골에 위치한 식당에서 시래기밥으로 점심을 먹고 칠불암까지 갔다오는 것으로 계획을 세웠다. 친구는 이미 아침 일찍 자신의 산책 코스를 한 바퀴 둘러봤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걷기 운동을 마친 상태다. 그러나 나와 칠불암까지 동행하기로 한 것은 오히려 금상첨화라며 솔선하여 안내하기로 한 거다. 나도 20여 년만에 가 보는 칠불암 코스이니 매우 기대되었다. 
 

나의 친구 서정우 선생님, 그는 내 동기이다. 울진고 교장, 울릉군교육장, 경주여고 교장을 지내고 정년퇴임을 한 뒤,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너무너무 잘 활용하고 있는 지혜로운 친구다. 해외여행, 통키타 연주, 중국어 공부, 맨발걷기 등 취미생활에 단단히 재미를 붙이고 산다.
 

친구와 헤어지고 소디스 커피샵으로 들어가니 많은 극단 회원들이 이미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서로 끌어안으면서 반가움을 표현했다. 오후 5시가 되면서 많은 단원들이 거의 다 모였고, 커피샵 바로 옆에 있는 식당으로 옮기기 전에 숙소 가까이 있는 주차장에 차를 대놓고 식당으로 이동, 맛있는 저녁 식사를 시작했다.
 

  저녁 식사는 쇠고기를 곁들이는 특별 만찬인 것 같다. 고급진 식당이라서 제법 큰 비용이 예상된다. 그냥 맘껏 먹으면 된다고는 하지만 부담스러운 만큼 나중에 금일봉을 찬조하면 되리라 생각하고 허리띠를 풀고 오랜만에 배불리 먹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무엇보다 반가운 분들과의 회식이라 더욱 좋다.
 

이 사진의 남자 두 분을 먼저 언급한다. 제일 왼쪽의 이영률 선생님, 개인적으로도 친하게 지내는 우리 사랑하는 후배님이다. 호는 월여(月如), 1993년, 희곡 <한씨연대기>를 공연할 때 극단에서 처음 만났다. 월여는 배우로, 나[논강(論江)]는 입단기념 조명 담당 스텝으로 각자의 역할에 충실했었다. 그 이후 극단에서는 물론 개인적으로라도 월여와 논강은 인연을 거듭하면서 호형호제 해 왔다. 오른쪽에 보이는 이재훈 선생님, 울진 매화중종고 근무를 같이 했던 모임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된 친구이고, 희곡 <오장군의 발톱>이란 작품에 출연하면서 형영 극단에서도 인연을 맺었다. 워낙 인물이 좋고 목소리가 중후해서 뭇배우들의 부러움을 사기에 충분했고 마음이 하해처럼 넓어서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월여의 뒤에 보이는 정효진 선생님과 이재훈 선생님의 앞에 보이는 오혜윤 선생님은 나와 같은 시기에 활동하지는 않았으나 형영 극단 20년 역사에서 보면 후반부에 열심히 활동했던 배우들이다. 서로 고등학교 동기라서 절친한 친구이기도 하다. 고등학교 3학년 재학 시절(1996년)에는 문학 시간에 나한테 배웠으니 나와는 사제지간의 관계다. 두 제자가 어쩌다가 내가 활동했던 극단의 단원까지 되어 후배라는 인연까지 맺게 되었는지 구체적으로 잘 모르긴 하지만 제자요 후배인지라 기분이 매우 좋다. 왼쪽 끝의 민광숙 선생님, 고향이 충북 충주라고 했으니 나와는 또 동향 선후배이기도 하다. 나의 친동생 효주의 이미지와도 거의 비슷하다. 오늘 20년만에 보는 얼굴이었지만 그 이미지는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나를 오라버니라고 불러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것이다. 오른쪽 이재훈 선생님 뒤로 보이는 윤경희 선생님, 현재 형영 대표님이자 회장님이시다. 공연할 때, 그분의 열연하는 모습을 관객의 입장에서 감동적으로 본 적은 있으나 개인적으로 얘기를 나눠 본 적이 별로 없어서 약간 낯설다. 그러나 극단 형영의 대표로서 꿋꿋이 자리를 지켜주고 계시고 오늘 같은 자리를 만들어 준 것도 윤대표님의 배려인 것 같아서 여간 고맙지 않다. '대표님, 다음에도 불러주세요.'
 

가운데 보이는 강순원 선생님, 1992년 형영 극단을 창단 이후 2012년 극단의 마지막 공연에 이르기까지 약 20년간 웬만한 공연 작품은 거의 다 그가 연출을 맡았을 정도로 가장 광범위한 활동을 했기에 포항 형영 극단의 전설이 되었다. 포항제철중학교 교장 선생님으로 정년퇴임을 하고 난 뒤에는 영천 자양면에 소재한 땅을 사서 농막을 하나 지어놓고 부인과 함께 아름다운 전원생활을 하고 있어 주위로부터 부러움을 사고 있다. 나보다 한 살 더 많지만 학번이 같아서 극단 활동 당시부터 말을 트고 친구로 지내왔다. 제일 오른쪽은 내가 흔히 극단 선배로 부르고 있는 김시종 선생님이다. 미소가 참 아름다운 멋쟁이다. 나이가 내가 두어 살 더 많아 나를 형님이라 부르기도 하지만 친구라 해도 어울린다. 극단의 공연 역사를 두루두루 꿰고 있고, 그때그때 찍어둔 숱한 사진을 잘 보관하고 있어서 그를 통하지 않고서는 극단의 역사를 제대로 알 수 없다. 제일 왼쪽의 최건주 선생님, 정확한 발음과 중후한 목소리가 보배여서 어떤 역할을 맡든간에 척척 소화해내는 능력을 지녔던 국민배우였다. 술 한잔 하는 자리에서는 내 이름과 비슷해서 내가 '권주(술을 권하다)'하면 '건주(술을 비우다 또는 말리다)'로 화답해서 장단도 잘 맞는다. 로만 칼라를 목에 두르고 신부 역을 맡아 기막히게 연기하던 장면이 내게 강렬하게 남아 있다. 
 

강동리조트, B동 4085호, 널찍한 공간의 숙소로 돌아왔다. 포항에서 준비해 온 음식을 펼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이재훈 선생님의 문어숙회 자르기 장면이 예사롭지 않다. 평소 부인을 도와주는 애처가의 본능과 순수함이 드러나고 만다.
 

이런 음식과 술로 시작되는 극단 형영 단원들의 친목 모임은 밤 이슥도록 계속될 것이 분명하다. 나도 며칠 동안 콧물감기, 목감기로 이어지는 고통으로 모임 참석 여부를 고민한 바 있지만 도저히 약속을 저버릴 수 없었던 것처럼 오늘같은 분위기에서 몸 생각한다고 술도 안 마시고 자제만 한다면 단원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않는가! 오늘 이 자리는 맘껏 즐기는 자리이니 끝까지 술을 마셔보리라.^^  ‘그대 한 잔 받게. 나도 한 잔 주고.’^^
 

돌아가면서 재미난 이야기를 꺼내는 장면들에서는 방안이 들썩들썩 웃음꽃이 만발했다. 이재훈 선생님의 돈들여 배운 노래 이야기를 필두로 김시종 선생님의 ‘개달아’, 최건주 선생님의 '할 말이 없다' 등의 배꼽잡는 이야기들이 주변을 맴돌다가 진주난봉가의 긴 노래를 판소리 풍의 아니리로 가사를 짧게 처리하면서부터 나의 시낭송까지 이어지고 말았다. 문제는 툭 찌르면 자동으로 나오는 배창환 시인의 <서문시장 돼지고기 선술집>이란 시의 낭송이 음주 탓인지 중간 지점에 이르러 하얗게 되는 것을 경험해야 했다. 연극대사를 잘 치고 나가다가 갑자기 생각나지 않아 황당해졌던 과거의 공연 트라우마가 소환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기억은 늙어가는 것이 아닐까 싶긴 한데 마음은 아직 젊디젊은 게 문제라면 문제다.^^  
 

가운데 앉은 최정미 선생님, 경북에서 4년, 울산에서 16년 국어교사로서 20년 정도 근무하셨던 멋쟁이 단원이시다. 오늘 민광숙 선생님과 함께 형영 극단 울산지부에서 왔다며 환한 미소로 인사를 했다. 소주와 맥주를 말아서 기분좋게 한 잔씩 하는데 오늘 같은 날은 제대로 한잔 해 봐야 안 되겠느냐는 전사의 자세를 잠시 보였다. 강순원 선생님이 가져온 앵두주가 입에 맞았던지 내가 옆에 앉아서 여러 번 권했는데 얼마나 맛있고 즐겁게 마시는지 거침이 없었고 참 좋아 보였다.
 

가운데 앉은 강순원 선생님은 예나 지금이나 코믹한 말과 행동으로 좌중을 즐겁게 했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금방이라도 엉덩이춤이라도 한 판 벌어질 것 같은 동작이 그저 그만이다. 연극에서 배우로 출연해서 연기를 해도 성공적일 텐데, 그는 아직까지 연출만 했지 배우로 출연한 역사는 없다. 불가사의한 것 중의 하나라는 생각이다.^^
늦게 도착한 박진영 선생님, 치과 의사다. 오늘 개인적인 볼 일이 있어서 늦게 참석할 수밖에 없었다. 늦게 온 미안함 때문인지 고급진 양말을 한 켤레씩 회원들께 선물했다. 산타클로스가 되고 말았다. 고맙다. 그도 역시 중후한 목소리의 주인공이다. 내가 방금 시를 낭송한 뒤여서, 곽재구의 <사평역에서>란 시를 낭독해 달라는 내 주문을 받고 그 시를 차분하게 낭독했는데, 역시 목소리가 주는 감동은 여전했다.
 

사진작가인 강순원 선생님의 사진기로 기념사진 몇 장을 이렇게 남겼다. 저 환한 모습들이 오늘의 기분 그대로일 것이다.
 

지금부터는 윷놀이 시간이다. 강순원 선생님이 준비해 온 오동나무 윷과 재미나게 설계한 윷판이 돋보였는데 6명씩 한팀이 되어 자웅을 가르기로 했다. 3전 2선승제로 서로 이기기 위한 경기가 시작되었는데, 재미의 끝판왕이었다. 
 

윷판에서 4개의 말을 동시에 업어놓은 상태에서 뒷도만 안 나오면 단숨에 경기를 이기는 순간인데 오혜윤 선생이 던진 윷이 뒷도였다. 그 때의 절망감에 같은 편인 두 배우는 정신을 잃은 듯 푹 쓰러져 눕었다. 상대방은 쾌재를 부르고.... 이게 바로 윷놀이의 재미! 
 

결국 이 게임은 1:1로 비겼다가 결승에서는 박진영 선생의 자리바꿈 작전이 주효했는지 둘째판 패배의 주인공인 오혜윤 선생의 혁혁한 운발에 힘입어 결국 이기고 말았다. 숱한 윷놀이 경기를 해 봤지만 최고의 재미를 맛본 날이었다.^^
 

자정이 될 무렵, 박진영 선생님과 민광숙 선생님은 먼저 귀가 해야 했고, 일부는 잠자리에 들었고 월여와 나, 정효진 선생님, 김시종 선생님은 새벽 3시 30분까지 마지막 남은 술까지 다 비우고 나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자는 둥 마는 둥, 날이 밝자 또 하루는 시작되면서 회원들은 눈을 비비고 일어났다. 울산의 최정미 선생님은 종교활동 때문에 먼저 자리를 떠야 했다.
 

아침 식사는 경주 시내 분황사 앞에 있는 두부공작소란 식당에서 해결하고, 숙소인 강동 리조트로 돌아와서 이야기를 좀 나누다가 11시쯤 체크아웃 하기로 했다.
 

다시 숙소로 돌아와 귤을 나누어 들면서 이야기하는 시간,
 

숙소에서 나와 경주 보불로에 위치한 대형 베이커리 까페인 브레스커피웍스란 곳에 들렀다. '2025 건축문화상'을 받은 독특한 건축물 때문인지 인산인해의 커피샵이었다. 아메리카노 6,500원, 카페라떼 7,000원, 아포카토 8,000원, 캐모마일레몬티 8,000원 등의 가격이 눈에 띈다. 
 

차보다 빵이 먼저 들어와서 정효진 선생님이 섬섬옥수로 빵을 자르고 있다. 골고루 먹을 수 있도록 음식을 배분하기 위함이다. 군대에서는 '작전에 실패할 수는 있어도 음식 분배에 실패하면 용서받지 못한다'는 말이 있는데..... 이재훈 선생님의 큰손은 무슨 지적질을 하기 위함인가?ㅋㅋ
 

커피웍스 실외에 마련된 포토존에 9명이 모두 앉아 헤어지기 직전 기념사진 한 장 남긴다.
 

"형영 단원들, 다들 멋쟁이임을 내 일찌기 알아봤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도 그 멋 잃지않고 살고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다음 기회에도 만남은 계속되리라 믿고 그 만나는 날을 기다리겠습니다. 그 때까지 건강하게 지냅시다. 오늘 새벽 날씨가 영하 12도까지 내려가는 바람에 내 농막 열호재의 지하펌프는 그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얼어터지고 말았습니다. 어쩔 수 없이 아파트로 당분간 철수했는데, 또 기회를 봐야겠습니다. 그럼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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