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날이 흐리더니 급기야 비가 내렸다. 5월말인데도 오늘 하루의 최고 기온은 16도밖에 되지 않아 쌀쌀하게 느껴지는 날씨였다. 고 박재현 변호사 추모비를 팔공산 능선 모처에 세우기로 한 날인데 날씨만큼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지난 5월 19일(월) 오전에 동기회장인 순균이를 비롯해서 휘동, 수제, 순박, 권여사 등이 팔공산 한티재에서 파계재 방향으로 적당한 지점에 추모비(좌대 포함)를 미리 세워놓았고, 오늘 영신 22기 등산모임(무애산방) 정기산행일(매월 넷째주 토요일)을 이용하여 다시 그 장소를 찾아 추모비 제막식(?)을 하기로 한 것이다. 그간 회장 순균이와 산대장 휘동이가 앞장서서 준비를 잘 해주었고, 몇몇 동기들이 물심양면으로 협조를 잘 해 주었다.

오늘 등산은 파계사 주차장에서 목적지(추모비 지점)까지 약 2시간 남짓 걷는 A팀(휘동, 순균, 태천, 항도, 정우, 상근, 규태, 수제, 명배 등 9명)과 한티휴게소에서 능선을 따라 목적지까지 약 30분 정도 걷는 B팀(순박, 영활, 병우, 동관, 권주)으로 나눠서 가기로 했다. 등산 출발 시간을 조금 달리하면 비슷한 시간에 도착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나는 B팀이어서 10시 40분쯤 한티휴게소에서 출발할 수 있었다. 산책하는 기분으로 잠시만 가면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다. 위 사진은 A팀, 아래 사진은 B팀이다.






A팀에는 여인이 한 분 더 끼어 있었다. 그 여인은 누구? 고인이 팔공산을 수없이 오르내릴 때마다 찍었던 사진에 자주 등장했던 여인이다. 카톡에 휘동이가 올린 짤막한 글에는 '참고로 권오* 여사는 재현이랑 팔공산에 자주 다닌 산동생[山女弟]입니다. 오해 없길 바랍니다.'로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고인이 친동생처럼 대해 주었던 특별한 인연의 주인공인 것 같다. 고인의 추모비 건립 과정까지 관심을 갖고 참여하는 것으로 보아 의리를 중시하는 분이라고 느껴졌다. 참 고마운 일이다.

오늘의 행사를 위해 순균이가 많은 준비를 했다. 설치 장소가 국립공원임을 감안하여 추모비의 크기를 고려하고 좌대 설치를 위하여 약간의 시멘트(물)와 모래를 준비해서 설치했고 암석 실리콘 설치 작업 도구까지 준비했었다. 가로 35센티, 세로 20센티, 두께 7센티 크기의 추모비에 쓰여진 <팔공에서 자유 찾던 영혼 여기 머물다>란 문구마저도 그가 많은 의견을 수렴한 결과였다.

깨끗한 한지를 깔고 추모비에 지방('악우 박재현 신위'라고 쓴)을 붙여서 제단을 꾸몄다. 이 한지가 주는 느낌은 제를 올리는 분들의 순수와 깨끗함이라고 해도 좋다.

고인과 함께하고 싶은 마음으로 조촐한 음식(떡, 바나나, 치킨, 술 등)을 제단에 차렸다. 고인의 영혼을 불러내야 하리라.


추모제 준비를 모두 마치고, 병우의 사회로 추모제 행사는 시작되었다. 그 순서와 담당은 다음과 같다.
1. 참신(參神): 합동 재배
2. 초헌(初獻): 산대장 제관 휘동
3. 제문 낭독: 동기회장 순균
4. 아헌(亞獻): 보행교 대표 항도
5. 종헌(終獻): 법조인 대표 태천, 권여사 등
6. 추모곡 연주('대니보이', '친구여') - 순균
7. 교가 제창
8. 사신(辭神): 합동 재배
9. 소지(燒紙): 산대장 휘동
10. 추모비 제막: 산대장 휘동






추모제에 참여한 친구들은 두 손을 모으고 살아 생전의 고인을 생각하며 명복을 빌었다.

산대장의 초헌이 끝난 후 순균이가 자신이 직접 쓴 제문을 낭독했다. 그 전문을 여기에 그대로 옮겨 본다. 참으로 명문이다.
악우(嶽友) 박재현 告由祭文
"維世次 2025년 5월 24일. 영신고 22기 동기 일동은 팔공산 마루금 양지바른 곳에
길지를 마련하여 敢昭告于하나이다.
팔공산을 좋아했던 친구가 떠난 지 벌써 1년,
새벽안개 걷힌 비로봉에 흰구름이 흘러가고,
5월 야생초 철쭉이 곱게 피고 지는데
가팔환초 팔공능선 곳곳에 뭇별들이 속삭인다.
팔공 정원에서 유유자적 거닐었던 이 부근에
그 모습을 그려보고자 모두 함께 모였다네!
팔공산아?
바람따라 홀연히 떠난 사랑했던 우리 친구를 기억해 다오.
구름 사이로 떠나버린 웃는 얼굴, 한없이 넓은 가슴으로
다시 못 올 머나먼 길 외롭지 않게 함께 해다오.
뻐꾹새 날고 5월 찔레꽃 하얗게 필 때
우리는 보고 싶어 여기 작은 돌에 이름 석 자 새겨 놓았다오.
지나가는 산객들이여!
가던 길 잠시 걸음을 멈추고,
팔공산을 너무도 사랑했던 산사나이의 소박한 뜻을 기억해 주오.
악우 고 박재현!
새벽 동화사 풍경소리, 갓바위 목탁소리, 팔공능선 저녁놀,
별빛, 바람소리 벗삼아 영원한 안식을 누리소서!
謹以淸酌庶羞 恭伸奠獻 尙饗
2025년 5.24.
영신고 22기 동기 일동"


아헌, 보행교 모임을 대표해서 항도가 술을 올리고 재배했다.


종헌, 고인의 산여제 권오* 여사가 술잔 올리고 재배! 권여사는 잔을 따르며 말했다. '120살까지 살겠다고 하더니.....' 한과 아쉬움이 묻어나는 말이었다.

같은 법조인으로서 재판정에서 자주 만나야 했던 태천 판사도 한 잔 올리고 재배! 그는 일찌기 사법고시에 합격을 해서 변호사 3년, 경북대 법대교수 8년을 재직한 후 판사로 임용되어 줄곧 사법부의 현직 판사로서 활동해 왔고 내년 1월말이면 정년을 맞게 된다.


추모곡 연주 순서, 하모니카를 꺼내든 순균 회장이 <대니보이>와 <친구여>를 연주했다.


생전에 팔공산 암벽타기를 즐겼고 그것을 즐기다가 하늘로 올라간 고인, 1년이 지난 어느 비 오는 날, 그를 추모하는 친구들이 모여서 팔공산 능선에서 조금 흘러내린 이 바위 아래, 소박한 추모비 세우는 장면을 하늘에서 내려다보고 있을까?

교가 제창 순서다. '대구 새내 맑은 물 발밑을 씻고, 팔공산이 둘러싸인 신암반석에 푸른 하늘 높이 솟고 ~~ '

산대장 휘동이가 축문과 지방을 태움으로써 고인과의 만남을 끝냈다. '고 박재현 변호사, 잘 가시게. 팔공 능선을 타고 오가는 우리들의 기억 속에 영원히 남을 그대는 이미 팔공의 신이 되었음을 우리는 믿고 있다우. 또 만나세.'

산대장 휘동이가 추모비를 가렸던 한지를 걷어냈다. 검은 돌에 흰글씨 '팔공에서 자유 찾던 영혼 여기 머물다'가 선명하다. 장차 이곳을 찾아와 고개 숙이게 되는 사람이 있다면 고인의 영혼과 곧바로 교감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의미로 새긴 문구 같아서 좋다. 잠시 동안이라도 '여기 머물러' 있는 고인의 영혼과 만날 수 있을테니까.


15년 전에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고 하영의 추모비도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어서 돌아가는 길에 잠시 들러 술 한 잔 따르면서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사진은 수제의 모습이다. 그는 지난 월요일 무거운 돌(추모석 20킬로, 좌대 10킬로)을 등에 지고 오를 정도의 괴력과 동기사랑을 보여준 의리의 산사나이다.


자, 이제 하산이다. 추모식을 마치고 팔공산 등정을 계속하려던 계획을 포기해야 했다. 노구를 이끌고 비 맞으며 등산하는 것은 일종의 객기일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A팀이 올랐던 가파른 길 대신에 B팀이 걸었던 짧은 길을 택하여 하산하면 문제가 없을 것이다. 30분 정도 걸어가서 한티휴게소에 세워둔 세 대의 차량에 분승해서 파계사 주차장으로 이동, 그 주변에서 음식을 나누는 것으로 결정했다.


영주에서 온 규태 시인, 얼마 전 전라도 일대의 섬들과 자연을 10여일간 만끽하고 돌아와서 시심이 한껏 부풀어 있을 것 같다. 머지않아 또 동기 사랑을 노래하는 시가 카톡에 올라오리라 기대한다.

오늘의 추모비 건립 행사를 끝내면서 산대장 휘동이는 카톡에 위와 같이 입출금 내역을 공개하면서 회계 정리를 했고, 참여해 준 모든 친구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음을 밝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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