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결아빠가 원하던 고향 방문이 이루어졌다. 언제부터인가 나에게 '형님, 날 한번 잡아서 고향에 한 번 갔다왔으면 좋겠어요.' 라고 했던 동생이었다. 나야 백수라서 언제든지 시간을 낼 수 있고 한결아빠는 매주 수요일은 진료가 없는 날이니 4월 16일(수)로 자연스럽게 정해진 것이다. 이왕이면 어머니와 함께 가자는 것이고, 이 사실을 5남매 단톡방에 올려서 시간 허락되는 동생들이 있으면 함께 가자고 한 것이었는데 결국 두 여동생(셋째, 막내)은 못 오고 3형제(맏인 나, 둘째, 넷째)가 고향에서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
한결아빠는 대구 부모님댁에서 자고 아침 일찍 출발해서 8시 30분 경, 어머니를 모시고 열호재에 도착했다. 어머니는 예쁘게 차려입고 환하게 웃으면서 오랜만에 큰아들 농막을 찾아왔다면서 농막 주변을 한 바퀴 둘러보시고 방안으로 들어오셨다. 달디단 아이스크림 한 조각을 잡수시라고 드리니 맛있게 드셨다. 동생과 나는 드립커피를 한 잔씩 내려서 마시고 느긋하게 09:00경에 충주를 향해서 출발했다. 동생 차는 농막에 두고 연비 좋은 내 차로 움직이기로 했다.

충주로 가는 도중에 괴산의 국립호국원을 찾아 얼마 전에 세상을 뜨신 당고모님을 찾아 뵙기로 했다. 어머니는 사촌시누이 되는 고인과 돌아가시기 하루 전에도 전화 통화를 하셨다는데 바로 다음날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소식에 많이 섭섭해 하셨더랬다. 괴산국립호국원, 좋은 곳에 모신 것 같아 보기 좋다고 말씀하셨다. 명복을 비는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를 당고모님께서도 보고 계실 것만 같다.


당고모님은 돌아가신 후 한국전쟁 참전용사였던 당고모부님(고 최영칠) 옆에 나란히 잠들어 계신다. 큰 태극이 있는 가운데 지점, 제일 아랫줄 제일 왼쪽이 그곳이다.

괴산이 낳은 소설가 홍명희의 생가에 잠깐 들렀다. 얼마 전 당고모 장례식날에 들렀던 곳인데 동생에게도 이곳을 안내하고 싶었다. 홍명희는 <임꺽정>이란 대하소설을 남겼고, 북한에서 정치적으로 높은 지위에 올랐던 분이기도 하다.


동생은 문화해설사님의 안내를 잠시 받기도 했다.



괴산에서 국도를 따라 충주 탄금대란 곳으로 왔다. 넷째인 서준아빠도 회사의 바쁜 일을 처리하고 부리나케 달려가고 있으니 기다려 달라며 연락이 왔다. 오후 1시경이면 탄금대에 도착할 것이고 만나서 점심을 같이 먹자는 것이다. 그렇다면 탄금대 주변을 답사하면서 동생이 도착할 때까지 기다리면 된다.






어머니와 함께 보드라운 흙길을 사부작사부작 걸으니 기분이 참 좋아진다. 자연과 함께하는 풍류라는 게 바로 이런 거다.


어머니는 사진찍을 때 손가락 하트를 곧잘 만드시곤 한다.



또 손가락 하트다. 자동으로 만들어지는 하트다. 가지런한 치아가 틀니가 아니고 진짜라면 얼마나 좋을까.


탄금대 앞으로 흐르는 달래강, 남한강의 일부를 그렇게 부르는데, '달래강의 전설'을 얘기하면서 헛헛하게 웃었다.

누가 형처럼 보이냐며 동생이 능청을 떨더라만..... '머리숱이 점점 적어지고 이마가 점점 넓어진다고 형으로 보이면 다냐? 얼굴에 핀 검버섯의 수로 판단하는 겨. 감히 자신이 형으로 보인다며 까불면 안 되는겨, 알았지?'

팔천의 군사를 이끌고 왜적에 끝까지 항전하다가 장렬하게 전사한 신립 장군과 그의 군사들을 위로하기 위해 세운 위령탑이 쓸쓸하게 서 있다. 위령탑의 이름도 '팔천고혼 위령탑'이다. 왜 신립은 천연 요새인 문경새재를 버리고 이곳 탄금대로 와서 왜적과 대항했는지 알 수 없다. 그의 꿈에 나타난 여인 탓이었을까?

오후 1시가 채 되지 않은 시각에 넷째가 도착해서 반갑게 만나 기념 사진을 남겼다. 어머니는 세 아들과 만나는 오늘의 장면이 너무 좋은지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저 브이(V)자 손가락을 보시라.^^


탄금대 바로 앞에 있는 식당에 들어가 철판닭갈비와 막국수를 주문해서 점심 식사를 했다. 어머니의 식사량이 많이 줄어든 것이 내내 신경이 쓰이고 안타깝다. 식사를 적게 하면 기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조금 잡수시고도 '배불러, 다 먹었어.' 하신다.

탄금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탑평리 칠층석탑(일명 중앙탑), 신라시대 탑으로 국보 제6호다.




몇 년 전에 아내와 함께 찍었던 곳이기도 한 조각작품 앞에서 어머니는 두 아들과 함께 기분좋게 기념사진 한 장을 남겼다.


중앙탑 가까이 있는 충주고구려비(국보 제 205호) 전시관에도 들렀다.




내가 태어나 열 살 때까지 살았던 강현마을의 고향집에 도착했다. 옛집의 흔적은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그 터에 낯선 집이 들어서 있을 뿐이다. 고향집의 주인도 두 번이나 바뀌었고 1988년 그 터에다가 다시 집을 지었다고 한다. 지금 살고 있는 분은 나보다 두 살 위의 노인이었다. 헤어질 때, 악수를 하면서 더욱 친근감있게 인사를 했어야 했는데 그냥 고개만 끄떡하고 온 것 같아서 후회가 되었다. 다음에 만나면 얘기도 좀 더하면서 고향 소식을 길게 들어야 할 것 같다.


강현마을에서 한 마장 떨어져 있는 마을이름은 '논동마을', 나의 고향 '강현마을'과 이름이 합쳐져서 '논강리'라는 행정구역 이름이 생긴 것이다. '충주시 엄정면 논강리'다. 현수막에 써 있는 '소태'는 내 외갓집 동네가 있는 행정구역 이름이다.
고모님께서는 강현마을에서 논동마을 사는 총각한테 시집을 가셨고 거기에서 아들 하나 낳고 살다가 어느 핸가 외지(황지, 군포, 안양, 대구 등)로 나가서 살기 시작하셨고 돌아가신 뒤에야 논동마을로 오셨다. 고모님의 무덤이 이 마을에 있는 이유다. 나의 고종사촌 형인 외아들도 10년 전에 66세의 나이로 돌아가셔서 이곳 고향에 묻혔다. 우리가 이 마을에 온 것도 고모님과 고종사촌 형님의 묘를 찾아 보기 위한 것이다.

일회 형의 유골은 이 비 아래 묻혀 있다. 봉분 없이 고모님 무덤 앞에 유골만 묻고 평장으로 처리한 것이다.

고모님께서 잠들어 계신 곳이다. 생전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절을 두 번 반 올렸다.

고모님, 고종사촌 형의 무덤 앞으로 보이는 것들이다. 마을이 보이지 않는다. 마을에서 함참을 올라와야 닿을 수 있는 곳임을 알 수 있다.


넷째가 몰고 온 차량이 험한 곳을 지나가다가 타이어가 찢어지는 바람에 급히 엄정면 소재지에 있는 카센타로 가서 타이어를 교환해야 했다. 아침 출발할 때 타이어를 모두 교환하고 왔는데 불과 네 시간만에 타이어 한 찍을 또 교환해야 했으니 이런 기록이 또 있을 수 있을까? 이럴 때는 큰 액땜을 했다고 생각해야 마음이 편한 법이다.

자, 이번엔 어머니의 고향, 우리들의 외갓집 동네로 갔다. 널찍하고 좋은 길이 아닌, 옛날 고향집에서 외갓집까지 직접 걸어갔던 그 오솔길(흔터고개-동막-풀물골-자재기 고개-하청룡)의 흔적을 따라 천천히 차를 몰았다. 길은 이미 오솔길이 아니고 차가 충분히 다닐 수 있는 큰길로 변해 있어서 가능했다.


당신께서 돌아가시면 묻히게 될 분묘 터는 봉은사 바로 아래 위치해 있어서 접근성이 좋다. 그런데 어머니께서는 절로 오르내리는 길 바로 밑에 있는 게 자꾸 신경이 쓰이시나 보다. 절에서 들려오는 염불소리, 목탁소리 들으시면 얼마나 좋을꼬 싶은데...... 나도 죽으면 어머니 곁으로 갈 텐데.....

다시 외할아버지 외할머지 묘소를 찾았다. 유난히 정이 많으셔서 외손주들을 귀여워해 주셨던 분들이다. 5,60년 전의 시절을 회상하니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의 모습이 선명하게 보인다. 젊고 예뻤던 우리 어머니의 구부정한 걸음걸이에서 외할아버지의 걸음걸이가 소환되고 있었다.



큰외삼촌 묘에도 절을 했다. 48세의 젊은 연세에 간암으로 별세하셨다. 지금 살아계시면 79세일 것이니 벌써 30년 세월이 흘러버린 것이다. 엊그제 같은데..... 우리 어머니께서 동생이 못다한 삶을 더 살고 계시는지도 모른다. 90이 다 되신 어머니는 아직도 총기가 있으시다.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비교적 건강하신 편이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목계의 단골집, 신경림 시인의 목계장터 시비 앞에 있는 매운탕집에서 저녁을 먹으려고 찾았더니 '영업종료'라는 간판이 보였다. 그렇다면 또 다른 맛집을 찾으면 되는데, 서준 아빠가 맛집을 검색해 보더니 금방 찾아낸다. 한식전문 밤안개식당이린 곳인데 청국장과 불고기탕의 맛이 기가막혔다. 3형제 모두 너무너무 맛있다면서 배불리 먹었다.


식사를 마치고 넷째 동생과는 헤어져야 했다. 모처럼 모였으니 선산의 내 농막에 가서 하룻밤 함께 지내고 다음날 아침에 헤어지는 것으로 계획을 잡았더랬는데, 내일이 서준이 생일임을 알게 되어서 부득이 저녁에 올라가야 했던 것이다. 오늘만 날이냐? 다음 기회에 또 시간을 만들면 되지..... '동생, 운전 조심하고 제수씨한테 안부 전해 줘.', '서준이 생일 축하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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