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3월 1일자로 첫발령을 받은 석보중학교를 찾았다. 거기에서 만나게 된 6명의 동료들과 모임을 갖기 시작한 지도 40년이 지났다. 1년에 두 번씩은 만나왔는데 좌장이신 총재님께서 요즘 병으로 고생을 하고 계신다. 마음이 아프다. 사모님께서 와병 중인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본인까지 아프시니 난감하기 그지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오늘 문병차 안동을 찾았는데 사정상 만나뵙지 못하고 4명의 회원들은 손박사 차를 타고 그냥 첫 부임지 석보중학교를 찾아가는 추억여행을 하는 것으로 헛헛한 마음을 달래기로 했다.
석보중 운동장을 휘휘 한 바퀴 돌면서 80년대초 근무 당시의 여러 장면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나눴다.
위의 사진은 근무지 가까이 있는 하숙집의 일부분이다. 그때만 해도 바짝 마른 윤씨 아저씨와 뚱뚱한 얼금뱅이 아지매가 부부로 살면서 6명의 총각들에게 하루 세끼의 따뜻한 음식을 정성스레 제공해 주던 곳이다. 지금은 저렇게 켜켜이 쌓인 먼지와 허물어져가는 건물의 파손 상태로 보아 아무도 살지 않는 폐가가 되고 말았다. 저 방 안에서 식사를 함께했던 식솔들의 모습과 이름들이 떠오른다. 우리 하숙교사 총각 6명 외에도 교장, 교감, 교무부장, 최순* 선생님 등 10명이 넘었다. 식사하면서 교무회의가 자연스레 이루어질 정도였다.
식사를 하던 본채와 20미터쯤 떨어져 있으나 맑게 흐르는 소계천 가까운 곳에 위치한 우리들의 하숙방 건물, 이른바 석보아파트, 앞이 탁 트여서 제법 운치가 느껴졌던 곳인데 지금은 많이 손상되었고 앞에 온갖 건축자재 등이 뒤섞여 있어서 도저히 그 방안을 들여다 볼 수 없다.
그러나 모두 6개의 방이 나란히 붙어있어서 방주인들과의 소통이 자연스레 이루어졌고 당시엔 그 방을 둘러싸고 수많은 추억들을 만들 수 있었다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나는 군입대 하기 전 약 6개월을 하숙집과 인연을 맺고 살았는데 그때의 단상이 생각나서 간단히 적어본다.
총재님께서는 당시 진보면에 사는 어느 여인과 연애 중이었고 가끔씩 저녁 식사 후에는 즐거운 놀이를 유도해서 한 곳에 모여 밤늦도록 어울리게 하는 분위기메이커이셨다. 전윤태 선생님은 지금과는 다르게 당시 세상 근심을 도맡아 하는 듯 거의 말없이 조용한 이미지만을 보여주었는데 한번 웃으면 그 모습이 여간 매력적이지 않았다. 임성운 선생님은 비만 오면 우산을 거부하고 흠뻑 맞으면서 여기저기 돌아다녔고 전용 세숫대에 유난히 하얗게 생긴 발을 뽀드득뽀드득 씻던 모습이 내게 남아있다. 윤용학 선생님은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 퉁퉁한 외모의 매력을 발산했으며 바둑을 좋아했고 자주 히히 웃으면서 말씀을 잘하셨다. 내 룸메이트인 손중언 선생님은 자신이 자라던 대구의 무태(서변동)와 가난하게 살던 시절의 가족 이야기를 들려주어 그때마다 가난하게 살던 내 얘기 같아서 퍽 공감했던 기억이 새삼 떠오른다. 아, 옛날이여!
아쉬움을 뒤로한 채, 신촌 약수탕 주변의 모 식당을 찾아 맛있는 누룽지닭백숙으로 점심식사를 하고 식당 가까이 있는 꽃돌카페를 찾아 대화를 이어갔다.
카페 안에는 꽃돌 수석 여러 점을 전시하면서 판매까지 하고 있었는데 싼 것은 50만원, 비싼 것은 3500만원을 호가하는 작품까지 눈에 띄었다. 나에게는 그저 괜찮아 보이는 돌일뿐인데 어느 누군가에게는 엄청 귀한 보물로 보일 것이다.
40년 넘게 고집해 온 1박 2일간의 모임을 포기하고 사정상 당일치기로 점심 한 끼 나누고 차 한잔 하는 것으로 이번의 모임을 정리하기로 했다. 김총재님의 병환이 곧 나아지기를 기도하면서 올여름의 건강한 만남을 함께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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