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신고 22기(회장 장순균) 동기들이 봉암식당(수성구 욱수길 114)에서 작년에 이어 올해도 모였다. 회장단의 끊임없는 참석 독려에 힘입어 32명의 동기들이 여름 야유회에 참석했다. 너무 적은 인원이 참여하면 어떻게 할까? 모처럼의 모임에 친구들이 최대한 모여야 하지 않겠냐는 회장단의 기도가 잘 먹혔던가 보다.
나는 장회장의 부탁을 받고 구미농수산물도매센터에 가서 수박 두 덩이와 복숭아 한 박스를 샀다. 곧바로 기호, 창렬, 병배, 호경 등 4명의 친구를 따로따로 약속한 장소에서 만나 태워서 행사 장소에 도착하니, 회장은 두어 시간 전에 이미 도착해서 환영한다는 현수막을 치고 평상 위에 식탁을 나란히 정렬해 놓고 음향시설까지 갖춰놓은 다음, 행사장 입구에서 거수경례까지 하면서 좁은 다리 위를 건너 들어오는 차를 하나하나 맞이하고 있다. 평화의 전도사 영활이도 어느새 출석부를 준비해서 동기들 참석여부를 체크하기 시작한다.
행사는 12시 30분부터 예정되어 있으나 12시 정도밖에 되지 않았는데 20명이 넘은 출석이 확인되고 있다. 몇몇 친구(재현, 상근, 태천, 수제, 태섭, 휘동, 정우)는 가까이 있는 유건산(해발 453미터)에 올랐다가 시간에 맞춰 식당으로 바로 내려왔다. 휘동과 상근이는 몹시 더웠는지 웃통을 벗어던지고 계곡물을 퍼올려 시원하게 등목을 하고 있다. 바라보는 마음도 시원해진다. 대부분의 친구들은 오랜만에 만나서 그간의 안부를 물으면서 대화하기 바쁘고 새로운 동기가 행사장에 나타나면 서로 다가가 악수를 하면서 환하게 웃는 모습들이 다들 보기 좋다.
나는 식당 안쪽으로 들어가서 준비해 온 복숭아를 수도물에 깨끗이 씻은 다음, 쟁반과 접시, 칼 등을 얻어다가 평상 가에 자리를 차지하고 먹기 좋게 잘라서 적당량을 식탁 위에마다 올려놓았다. 지켜보던 정태는 복숭아를 맛보더니 너무 싱겁다면서 전문가다움을 보여준다. 영천 임고 고향에서 자두, 복숭아 등을 재배하는 장본인지라 농산물 평가에 대해서는 전문가 수준이다. 그러나 올해는 냉해를 심하게 입어서 작년에 비해 생산량이 50%도 안 돼서 여기에 가져올 것도 없었다는 안타까운 소식이었지만 늘 푼푼한 정태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내년에는 올해 손해 난 만큼의 보상이 있을 것이라 믿고 자네의 너그러운 마음을 잘 추스리길 바라네.'
12시 30분이 되니 평상 위에 동기들이 그득하게 앉아 있다. 그러나 오기로 한 서너 명이 보이지 않으니 조금만 더 기다렸다가 시작하자는 회장님의 멘트가 참 인간적이다. 한 명이라도 더 많이 나누고 싶은 절절한 마음의 표현 같아서다. 총무인 일한이도 어느 순간엔가 이런 말을 했다. '올 가을 야유회 때 보고 싶은 동기 있으면 나한테 말해라. 서울에 있든 북한에 있든 책임지고 데리고 와서 참여시키겠다.' 회장과 총무의 동기들에 대한 애정과 사랑이 그렇게 발현되고 있어서 또 한번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닭도리탕, 도토리묵무침, 두부김치, 백숙, 옻닭 등을 푸짐하게 상마다 차려 놓고 막걸리, 맥주, 소주, 음료수 등을 곁들인 우리들의 점심식사는 그야말로 진수성찬이다. 행사장 옆으로 흐르는 계곡물도 우리의 모임을 부러워 하는 듯 너럭바위 위를 하얗게 흐르면서 참 보기 좋다고, 당신들의 늘그막이 늘 그렇게 평화롭고 기쁨이 넘쳤으면 좋겠다고 인사를 하는 것 같았다.
김일한 총무의 개회선언과 함께 장순균 회장의 인사말씀으로 우리들의 모임은 정식으로 시작되었다. 먼저 세상을 뜬 20여 명의 고인 동기들에게 명복을 비는 묵념을 하고 회장의 하모니카 연주에 맞춰 교가를 제창했다. 세월은 오래 흘렀으나 모교의 교가만큼은 다들 잊고 있지 않고 있었다. 우렁찬 목소리와 동일한 입놀림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교가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대구 새내 맑은 물 발밑을 씻고 팔공산이 둘러싸인 신암 반석에 푸른 하늘 높이 솟고 사방을 보는 우리들의 배움의 터 영신의 학원, 삼천리 강산의 태양이 되어 빛나라 빛나라 길이 빛나라 어두운 세상의 횃불이 되어 만세에 빛나라 영신의 학원'
오늘의 모임을 축하하는 영주의 시인 정규태 동기가 보내준 축시를 장회장이 낭독했다. 일부만 인용하면,
'갈 데까지 가버린 잘여문 여름속으로/ 흰머리 휘날리며/ 오늘 우리는 이렇게 모였다.// 세월 흐르고 흰머리 늘어도/ 그저 신암반석의 기억은 아름답기만 한 것을// 반갑고도 소중한 추억묻은 친구들아/ 우리 모두를 위하여 사랑의 술잔을 들자'
이 정도 되는 축시를 들으면서 술이 취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시적 분위기와 자연이 주는 상큼함에 도취된 친구들 몇몇은 벌써 흥에 젖어 있었다. 막걸리를 누구보다 좋아하고 잘 마시는 나는 이럴 때 영락없이 취하게 되지만 오늘은 술을 거의 마시지 않고 있다. 괴로운 순간이다. 친구들을 태워서 곧 구미로 돌아가야 한다는 의무감에 자제해 왔던 것을 순간적으로 유혹되어 허물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회장단의 회계보고 순서도 있었다. 오랜 시간에 걸쳐서 매년 회원들이 10만원의 회비를 내고, 동기회의 발전과 동기사랑을 강조하는 친구들의 자발적인 찬조금도 조금씩 받고 해서 모여진 금액이 결코 적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계의 투명성을 무엇보다 중요시하는 회장단의 노력이 잘 드러나 있어서 많은 친구들이 박수를 보냈다. 지난 달 한영아트센터 안암홀 바리톤 홍희탁 독창회의 주인공인 홍희탁 동기가 금일봉을, 오늘도 경산 지역의 모임을 대표하는 조해근 동기가 금일봉을, 쾌척한 바 있어서 동기회가 더욱 풍성해짐을 느끼는 요즘이다. 오랜 기간 총무를 맡은 바 있는 호경이도 품평회 대상을 수상한 바 있는 '지장수'라는 막걸리를 최근 몇 번에 걸쳐서 공급해 오고 있어서 금상첨화라 아니할 수 없다.
친구들을 위한 회장님의 섹소폰 연주 봉사는 오늘도 계속되었다. 장회장은 50곡 정도는 악보를 보지 않고 연주가 가능한 섹소폰 매니아다. <진정 난 몰랐었네>, <아파트>, <차차차>, <내 나이가 어때서>, <돌아가는 삼각지> 등 주옥같은 곡을 들으면서 이럭저럭 세 시간 정도를 즐기다 보니 이제 배도 부르고 얼굴도 불콰해지고 다들 기분도 참 좋아진 것 같다. 이 때는 수박을 공급하면 잘 어울리겠지? 세심한 회장님도 수박을 잘라 먹을 때가 되었다는 암시를 보냈으니 누군가 행동으로 옮기면 된다. 시원한 계곡물에 둥둥 떠 있던 수박을 한 덩이씩 가져다가 적당한 크기로 자르기 바빴고, 총무인 일한이는 수박을 접시에 정성스레 담아 각 상에다 공급하느라 바빴다. 나머지 한 덩이 수박도 모임이 끝나갈 무렵 상근이와 내가 잘라서 돌렸는데 결국 다 먹지 못하고 반 정도는 남았다. 30여 명이 수박 두 개를 소화하지 못할 정도로 수박이 매우 실하고 컸다? 아니면 맛이 없었나?
동기들끼리의 모임은 쉽게 끝나지 않았다. 개인적인 사정이 있는 친구들 일부는 먼저 가고 뭔가 아쉬운 친구들은 남아서 맥주를 더 시켜서 소주와 말아서 마셨다. 그 과정에서 오가는 얘기들은 술기운이 포함된 말들이어서 그런지 내면 깊숙한 이야기인 것 같으면서도 꼬부라진 혀처럼 옆으로 설설 새고 있었다. 그러나 훨씬 듣기는 부드러웠다. 일한이는 내 곁에 앉아 내 젊은 시절 아버지의 관련 비화를 듣고는 놀랍다는 듯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누구나 그렇게 어려울 때가 있는 법이여. 다만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사느냐가 문제 아니겠어?'
친구들과 함께할 수 있었던 즐거운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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