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0월 콘서트 대비 시극 대본 초안을 일단 정리해 봤습니다. 코로나 상황에서는 여럿이 함께 연습해서 만드는 시극 형태가 쉽지는 않아서 팀별로 부분 연습한 것을 전체적으로 결합하여 통합할 수 있도록 만들고자 합니다. 전체적으로 읽어 보시고 보완할 점이나 수정할 점이 있으면 의견 주시기 바랍니다. 따라서 이 대본은 연습 과정에서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음도 알려드립니다.
시극 대본: 어이 얼어자리( 대본, 연출 / 이권주 )
무대는 특별한 장치가 없어도 좋다. 10여 명의 등장인물이 수시로 등퇴장을 하면서 준비한 시낭송을 제 때에 시작하면 된다. 시낭송 음악은 비교적 긴 시를 낭송할 때 사용하고 시조와 같은 짧은 시에는 사용하지 않아도 좋다. 다만 낭송 자체의 특징을 잘 살릴 수 있도록 한다.
1
잔잔한 음악이 한동안 흐르다가 잦아들고, 무대 왼쪽으로 조명 들어오면 무대 왼쪽에 두 남녀 A,B가 뭔가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약간 시간이 흐른 뒤에 대사를 시작하는 게 효과적이다.
A: (B를 향해서 밝은 목소리로) 구 선생님, 요즘 어떻게 지내셨어요? 손주 돌보느라 늘 고생이 많으시죠?
B: 어릴 때는 몰랐는데 요즘은 좀 커서 말도 잘 알아듣고 해서 별 어려움은 없어요. 코로나에 감염될까 늘 신경이 쓰이는 게 문제지요.
A: 그래요. 요즘은 어른들이나 아이들이나 건강관리가 최고의 관심사가 된 것 같아요. 구 선생님, 우리가 2011년 7월 구미낭송가협회를 창립한 이후 11년 남짓 많은 회원들과 함께 시낭송활동을 해 왔고, 틈틈이 연습을 해서 매년 한 번씩 시낭송 콘서트를 개최해 왔잖아요. 그 동안 구선생님께서는 회장으로서 역할이 매우 크셨고, 주옥같은 시낭송작품을 발표해 오셨습니다. 그 많은 작품 중에서 제가 꼭 한 번 다시 듣고 싶은 작품이 있습니다. 정끝별 시인의 <가지가 담을 넘을 때>인데, 지금 바로 청해서 듣고 싶습니다.
B: 그렇게 말씀하시니 쑥쓰럽긴 하지만 한 번 해 보겠습니다. (무대 중간쪽으로 움직이고 음악이 흘러나오면 <가지가 담을 넘을 때>를 낭송한다)
A: 여전하십니다. 구 선생님, 역시 시는 그 자체로서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만 전문가의 낭송으로 표현하니까 훨씬 울림이 큰 것 같아요.
B: 과찬이시고요, 시낭송을 통한 감성의 호소가 바로 우리 낭송하는 사람들이 목표로 하는 것이지요. 제가 낭송했으니 이 선생님도 화답해 주셔야죠.
A: 물론이지요. 오늘 저희들이 보여드리고자 하는 것이 바로 화답시의 세계 아닙니까? 그런 의미에서 저도 제가 좋아하는 시, 한 수 읊으면서 화답해 보겠습니다. (음악 흘러나오면, 천천히 조지훈 시인의 <산중문답>을 낭송한다.)
B: 저의 낭송에 대한 이 선생님의 화답시, <산중문답> 잘 들었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관객석을 향하여) 지금부터 여러분들은 서로의 마음을 주고받는 화답시의 세계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조명 아웃)
2
사랑을 주제로 한 음악이 한 동안 흐르다가 잦아들고, 조명 들어오면 무대 오른쪽으로 남녀 C, D가 등장, 청마 유치환과 이영도 시를 번갈아 낭송한다. (C는 유치환의 <행복>이란 시를 연별로 나누어 낭송하고, D는 이영도의 시조 2편을 낭송함으로써 화답시의 세계를 느끼게 한다.)
C:
사랑하는 것은 /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D
오면 민망하고 아니오면 서글프고
행여나 그 음성 귀 기울여 기다리며
때로는 종일을 두고 바라기도 하니라//
정작 마주앉으면 말은 도로 없어지고
서로 야윈 가슴/ 먼 창만 바라다가
그대로 일어서 가면/ 하염없이 보내리라.
C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더 의지 삼고 피어 헝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 망울 연연한 진홍빛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D
너는 저만치 가고/ 나는 여기 섰는데
손 한번 흔들지 못한 채/ 돌아선 하늘과 땅
애모는 사리로 맺혀/ 푸른 돌로 굳어라.
C: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D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C,D 모두 함께)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낭송 끝나면 오른쪽 무대 조명 아웃, 왼쪽 무대 조명 인)
A: 두 회원께서는 유치환의 시와 이영도의 시조를 번갈아 가며 낭송해 주셨는데요. 구 선생님께서는 유치환 시인과 이영도 시인이 서로 어떤 사이, 어떤 관계였는지 혹시 알고 계십니까?
B: 네, 알려지기로는 동료교사로서 같은 학교에서 만났고 여덟살의 나이 차가 있었다는 사실, 만남 이후, 청마의 걷잡을 수 없는 사랑의 불길은 20년간 계속되어 숱한 편지와 사랑의 시로 승화되어 남아있다는 것이지요.
A: 그렇습니다. 두 분의 만남이 조금은 특별해서 다소 안타까운 부분도 없지 않지만 서로에 대한 애틋함과 사랑만큼은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들에게 깊은 감동으로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조명 아웃)
E, F 등장하여 조지훈의 <완화삼>과 박목월의 <나그네>를 낭송하고 낭송 후 간단한 한 마디 멘트!
E:(음악과 함께 낭송)
차운산 바위 위에 하늘은 멀어/ 산새가 구슬피 울음 운다.//
구름 흘러가는/ 물길은 칠백 리(七百里)//
나그네 긴 소매 꽃잎에 젖어/ 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 노을이여//
이 밤 자면 저 마을에/ 꽃은 지리라//
다정하고 한 많음도 병인 양하여/ 달빛 아래 고요히 흔들리며 가노니
E: 목월 선생님, 저 조지훈입니다. 지난 번 경주에서의 만남, 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노을 잊을 수 없어 시 한 수 보냈습니다. 답장을 좀 주시지요.
(조명 아웃, 음악 인)
F: (앞부분과 같은 음악이 흐르면서 낭송한다.)
강나루 건너서 밀밭길을 /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 리/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 놀//
F: 답장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조지훈 시인, 당신과 나는 어쩔 수 없는 자연파인가 봐요. 일제 치하의 고통을 노래하지 못하고, 자연에 대한 관심만 표현했으니말이오. (사이) 슬픈 현실이지만 우리 건강이나 잘 챙깁시다.(조명 아웃)
* 이방원의 <하여가>와 정몽주의 <단심가> 이어진다. 두 시조의 낭송 부분에는 음악을 곁들여 분위기를 살려주는 것이 좋겠다. 단, 주고 받으며 화답하는 부분의 음악은 하나로 통일시킬 필요가 있다.
G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져 백년까지 누리리라//
G: (잠시 뒤에 톤을 달리 해서) 포은 정몽주 대감, 당신이 끝까지 지키고자 했던 고려의 운명은 다 됐소이다. 이제 저를 좀 도와 주시지요?
H
이몸이 죽고 죽어 일백번 고쳐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없고/ 님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H: (잠시 뒤에 크게 노한 목소리로) 당신을 좀 도와 달라고? 이방원, 그대가 꿈꾸는 혁명은 나의 관심사가 아니오.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고 한 말씀 잊으셨습니까?(조명 아웃)
음악이 잠시 흐르다가 조명 다시 밝아지면 임제와 한우의 화답시가 전개된다.
I: 북천이 맑다커늘 우장없이 길을 나니/ 산에는 눈이 오고 들에는 찬비로다./ 오늘은 찬비 맞았으니 얼어잘까 하노라.//
I: (천천히 차분한 목소리로) 내 일찌기 그대를 흠모해 왔습니다. 기회가 닿으면 꼭 한번 만나보고 싶었지요. 비로소 오늘 이렇게 만나 마음을 전하게 되어 기쁩니다.
J: 어이 얼어자리 무슨 일 얼어자리./ 원앙침 비취금을 어디 두고 얼어자리/ 오늘은 찬비 맞았으니 녹아잘까 하노라.
J: (천천히 차분하게) 그대, 오늘 밤 이렇게 나를 만났으니 깊은 인연임에 틀림없소. 황진이 무덤가에서 슬픔의 눈물 흘렸던 그대의 마음이 참 깊고 따뜻하오. 다행히 나는 살아있는 사랑이니 오늘밤은 찬비 맞아 얼어버린 몸과 마음을 한잔 술로 녹이시지요.
(조명 아웃)
대금 소리와 함께 다시 조명이 밝아지면 왕족 벽계수를 유인하는 황진이의 시조 초장 부분(청산리 벽계수야 수이감을 자랑마라)만을 시조창으로 연출한다.
A: 방금 황진이의 시조를 창으로 들으셨는데 감동이지요? 시조창은 배우기도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만.....
B: 아예 배울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데 우리 김명자 회원님은 정말 대단해여.
A: 그렇습니다. 보배같은 분이시지요. 구 선생님, 부탁 하나 드리겠습니다. 황진이가 남긴 시조가 모두 6수가 있다고 하는데, 그 중에서 한 수만 지금 직접 낭송해 주셨으면 합니다.
B: (어조를 달리하여 아주 천천히) 동짓달 기나긴밤을 한 허리를 버혀내여/ 춘풍 니불 아래 서리서리 너엇다가/ 어론님 오신 날 밤이어든 구비구비 펴리라.
A: (감동을 받은 듯 고개를 끄덕이며) 와, 황진이는 천상 시인입니다. 짪은 작품에도 문학적 표현이 곳곳에 넘쳐흐르니까요. 또 얼마나 솔직하고 매혹적입니까. 10년 동안 도를 닦던 지족선사가 하루아침에 무너질만 하지요?
B: (빈정대는 듯한 말투로) 남자들은 다 비슷한가 봐요. 여자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 남자가.....
A: 없지요. 잘 없습니다. 하하, 아마 저라도 어쩔 수 없었을 겁니다. 근데 한 남자만큼은 달랐어요.
B: 한 남자? 누구였지요?
A: 송도삼절의 하나, (관객들에게 답을 유도해도 좋음, B로부터 답이 나오면) 맞아요. 화담 서경덕 선생님, 황진이가 유일하게 존경했던 인물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가 남긴 시조 한 편이 전해지는데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무대 오른쪽 조명 밝아지고 음악과 함께 K 등장하여 낭송)
마음이 어린 후이니 하는 일이 다 어리다./ 만중운산에 어느 님 오리마는/ 지는 잎 부는 바람에 행여 긘가 하노라.(오른쪽 무대 조명 아웃, 왼쪽 무대 조명인)
B: 서경덕의 이 시에 대해서 황진이가 화답한 시조가 또 있지요? 그것도 소개하겠습니다.
(다시 오른쪽 무대 밝아지고 음악과 함께 L 등장하여 낭송)
내 언제 무신하여 님을 언제 속였관대/ 월침삼경에 온 뜻이 전혀 없네./ 추풍에 지는 잎 소리야 낸들 어이하리요.(조명 아웃, 왼쪽 무대 조명 인)
시조 낭송이 모두 끝나면 A와 B의 마지막 대사
B: 이 선생님, 역시 화답시의 매력은 서로의 간절한 마음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 아닐까요?
A: '간절한 마음의 작용'이라? 그렇죠. 맞습니다. 화답시에는 서로에 대한 관심과 배려, 그리움, 사랑 이런 감정이 고스란히 배어있으니까요. 그래서 그 감동이 더욱 크게 느껴지는 것이고 특별하게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B: 오늘 이 선생님과 제가 진행한 화답시의 세계를 결론삼아 말씀해 주신 것 같습니다.
A: 감사합니다.
A,B 대사 모두 끝나면 조명 아웃 되었다가 클로징 음악과 함께 조명 밝아지면 등장인물 모두 나와서 인사를 한다. 인사가 모두 끝나면 조명 아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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