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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호재가 완전히 불에 타버리던 날

세상과 함께

by 우람별(논강) 2018. 1. 19.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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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구미시 선산읍 죽장리 548-5번지, 

그곳에 지어놓았던 농막(열호재)이 화재로 전소되던 날이다.

창원시 일대를 둘러보고 구미로 돌아와 세차장에 들러 세차를 하고 있을 때,

농막이 있는 죽장리 이웃에 살고 있는 이길자 선생님한테서 급한 전화가 왔다.

아버지 사시는 곳(열호재)에 지금 불이 났다고...... 1월 18일 오후 1시 30분 경이다.

이길자 선생님이 떨리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한 채 119에 신고를 먼저 하고

남편인 유해록 선생님이 화재 현장으로 뛰어가고 있는 상황이라고 급하게 전한다.

후들거리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아버지의 상태가 궁금하다. 혹시 집안에?

잠시 후 확인하니 유해록 선생님이 가서 쓰러져 계신 아버지를 부축해서 안전한 곳으로 모셨단다.

눈물이 날 정도로 고맙다. 하마터면 연기에 질식해서 큰변을 당했을 텐데..... 이렇게 고마울 수가.

바람이 불지 않는 포근한 날이라서 불이 크게 번지지는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만약 바람이라도 부는 날이면 주변이 모두 숲이고 산인지라 보통 문제가 아닌 것이다.


차를 몰고 화재 현장으로 가기 위해 고속도로를 달리는데 119 구급차라면서 연락이 왔다.

아버지를 차병원 응급실로 모시고 가는 중이라고..... 건강 상태는 괜찮으시단다. 휴~~

화재 현장은 어떤지 궁금해 이길자 선생님께 전화를 하니 지금 소방관들이 수없이 와서

불을 끄고 있고, 검은 연기가 계속 올라오고 있다는 거다. 헬기까지 동원되고....

화재 현장을 나중에 들르기로 하고, 선산 IC를 빠져 나오자마자 다시 병원을 향하여....


아버지는 앰블런스에 타고 오면서 여러 번 구토를 하셨다고 한다.

유독가스를 조금 마셨던 것이다. 조금만 늦게 탈출했어도......

매우 놀라셨을 아버지께서는 산소마스크를 쓰고 안정제를 맞으면서

심전도검사, 피검사 등을 하면서 결과를 기다렸는데....

담당 의사 왈, 심전도 검사 결과 왼쪽 심장의 혈류상태가 안 좋단다.

갑작스레 심장마비가 올 수도 있으니 매우 조심하라는 것.....

의사께 아버지 왈, 괜찮아요. 빨리 병원에서 나가게 해 줘요.


병원에서 나오자마자 화재 현장을 찾았다. 마을 사람들이 궁금해 몰려왔다.

어른의 건강상태는 어떠냐면서 걱정을 많이 해 주신다. 불이 났을 때의 상황을

다들 들려주시는데, 그저 놀랍고 큰일날 뻔했다는 생각에 온몸이 오싹해진다.

한 순간에 모든 것이 사라져버린 허탈감에 가슴이 아리다. 너털웃음도 나온다.

아버지께서는 귀하게 여기는 모든 것들이 한 순간에 사라져버렸으니 오죽하랴.

4년간 열호재에 살면서 정신적인 위안도 얻고 건강관리를 잘해 오셨던 터라.....

그런데 화재의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아버지 당신께서는 누전 같다고 하시지만

펑소리와 함께 불이 갑자기 번져서 방에서 빠져나오기 바빴다는 것으로 보아

가스레인지로 음식물을 끓이다가 과열로 인해서 발화된 것 같고 가스가 새어 나오면서 쾅.....

한 순간의 화재로 아버지는 젊은 시절부터 써두었던 숱한 원고 뭉치를 잃었고,

심지어 안경, 틀니, 지갑, 현금 등도.... 간신히 몸만 빠져나와서 아무것도....




소나무를 좋아하셔서 좁은 땅에 얼마나 많이 심으셨는지.... 불길에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서울 출장 중에 급한 소식을 듣고 내려온 범주 동생도 아버지의 무사함에 안도했고,

막내동생 금주도 신랑과 함께 병원까지 찾아와 아버지의 무사함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자, 이제 아버지가 머무실 곳은 더이상 선산의 열호재가 아니다. 이젠 대구의 어머니한테 가셔야 한다.

툭하면 두 노인네 잘 다퉈서 선산에 농막 하나를 지어 4년 전부터 강제로 떨어뜨려 놓았던 셈인데

이젠 함께 사셔야만 한다. 이번 화재가 그런 변화를 주기 위한 조물주의 뜻이 아닌가 싶다.


다음 날, 아버지께서는 당뇨약을 처방받기 위해서 권내과에 들렀다. 아, 그런데


화재 사건으로 많이 놀라셨는 모양이다. 혈압이 매우 높다. 당뇨만 있는 줄 알았더니 고혈압까지.....


10분 뒤에 다시 측정한 것도 마찬가지다. 당장 혈압약까지 드셔야 할 판.....


우선 음식물을 섭취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 틀니인 만큼

대구 시내 만경관 옆에 있는 용치과를 찾아 틀니를 먼저 맞춰놓았다.

안경점에 가서 마음에 드는 안경도 하나 맞추고 돋보기까지.....

주민등록증이 있어야 해서 사진관에 들러 사진 찍고, 동사무소에.....

오늘 찍은 사진은 아버지의 영정 사진이 될 가능성이 높지 싶다.


부모님과 점심식사를 하고 나는 다시 선산의 화재 현장을 찾았다.

LPG 가스통이 덩그러니 놓여있는데..... 이것마저 폭발했다면?







아버지께서 정성들여 완성한 장승도 화마를 피하지 못했다. 눈과 귀에 박아놓은 비결서(?)는 어찌 됐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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