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택 시인과 임실
김경식 글 /사진
김용택 시인은 ‘오래된 마을’ 산문집에서 지금까지 살아온 자신의 삶을 시적표현으로 짧게 요약했다. 지나온 세월을 이렇게 쓸 수 있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몇 번을 읽어 봐도 좋은 글이다.
참 세월 빠르지요. 꽃이 피는 살구나무 아래 앉아 문득 고개 들었더니 서른이었고, 살구나무 아래 앉아 아이들이랑 살구 줍다가 일어 섰더니 마흔이었고, 날리는 꽃잎을 줍던 아이들 웃음소리에 뒤돌아 보았더니 쉰이었습니다. 학교를 떠나며 묵묵히 나를 바라보는 살구나무를 바라다보니, 어느새 내 나이 머리 허연 예순입니다."
---김용택 산문집 '오래된 마을(한겨레 발행)' 127쪽
자신이 30년 넘게 근무했던 덕치초등학교에서 2008년 8월에 퇴임한 후에 선보이는 이 산문집에는 이렇듯 그가 살아 왔던 세월이 녹아 있다.
자신의 삶을 이렇게 아름답게 표현할 줄 아는 김용택 시인의 생가, 활짝 열린 서재에는
햇살이 눈부시다.
지금 진메마을 생가에는 김용택의 어머니 혼자 살고 계신다. 김용택 시인은 전주에서 살면서
고향에 자주 드나들고 있다. 그러나 그의 생가에는 서재가 그대로 있고 이를 개방하여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금방이라도 그와 함께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른다.
김용택 시인 고향 서재
진메마을의 상징은 앞으로 흐르는 섬진강과 느티나무, 김용택 시인의 생가이다.
오랫동안 마을을 지켜왔던 늙은 느티나무는 제13회 풀꽃상을 수상했다.
환경단체인 ‘풀꽃세상을위한시민모임’(풀꽃세상)이 제정한 상이다.
‘풀꽃상’은 자연물을 대상으로 해마다 시상하고 있다. 존경심을 회복하고 사람도 자연의 일부라는 가치를 널리 알리자는 취지로 ‘풀꽃세상’이 진메 느티나무에게 주었다.
진메마을의 정자나무는 마을지킴이, 아이들 놀이터, 주민들 사랑방, 마을 대소사를 논하는 회의장 역할을 해왔다. 이 나무는 섬진강 댐이 생기기 전에 배가 오고갈 때 배를 매놓기 위해 심었다고 전한다.
큰 나무가 있는 곳에 큰 사람이 난다고 하였던가. 진메마을은 큰 인물을 만들었다. 김용택 시인은 이 느티나무처럼 큰 그늘의 시인이 될 것이다. 시간은 강물처럼 흘러가고, 역사가 되어 머물다가 사라지겠지만 나무는 오랫동안 장수하면서 사람들에게 동경과 추억의 대상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내게도 고향의 느티나무는 살가운 그리움과 서러운 날들의 추억이 묻어난다. 고향을 떠나온 사람들에게 누구에게나 고향을 지키고 있는 늙은 나무와는 모두들 자신만의 추억이 있을 것이다. 역시 진메마을의 느티나무도 지난 세월동안 이 마을을 떠나간 사람들의 고단하고 즐거웠던 슬픈 삶의 편린들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김용택 시인 생가
느티나무 그늘에서 머물다가 김용택 시인의 생가에 다가서니 대문은 아예 없고 관란헌(觀瀾軒) 이란 현판이 반긴다. 觀瀾軒을 풀어 해석해 본다. 觀(볼관), 瀾(물결란), 軒(집헌), ‘강의 물결이 일렁이는 것을 바라보는 집’이다. 지형지물에 적합하고 분위기에 어울리는 근사한 집 이름이다. 김용택 시인의 집은 마을에서 가장 아름답다. 크지는 않지만 소담스럽고 마당에는 푸른 잔디가 깔려 있다.
마침 김용택 시인의 어머니인 박덕성씨(82)가 들어오신다.
“워메 어디셔 오셨다요” 목소리가 크고 활기가 넘친다.
방문이 열려 있는 서재 앞에 서서 온 목적을 이야기하니 반긴다.
그곳에서 김용택 시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내 박덕성씨는 부엌으로 안내하더니
냉장고에서 수박을 꺼내어 칼로 쩍 쪼갠다.
“사람들이 많이 찾아 옹께 내는 기분 좋았뿌러” “ 선상님 더운께 수박 어서 드쑈 잉”
친정이 순창군 구림마을 이라는 시인의 어머니는 이웃집에 살았던 정동영 의원과 친척이라고 했다. 묻지않는 말씀이 계속 이어진다. 정 의원 집안이 순창서 본래 큰 부자였는데, 6,25 전쟁으로 가난하게 되었던 이야기였다. 혼인 당일에야 얼굴을 보았다는 남편 자랑도 하신다.
“지금은 세상 떠났지만, 지 아부지가 대단했제, 이 산골에 이런 집을 지어 놓고 갔응께”
진메마을이 6,25 전쟁 때 모두 불에 타버린 이야기를 할 때는 얼굴이 어두워지기도 했다.
한많고 고난많던 회문산이 빤히 보일 정도이니 동네가 남아 날 수가 없었으리라.
김용택 시인 생가에는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기 때문에 매우 귀찮을 터인데 전혀 불편한 내색을 하지 않고 있는 시인의 어머니는 행복한 노년을 보내고 계셨다.
김용택 시인은 자신의 첫 시집 후기에서 “동네 사람들에게 인정 많으시고 쾌활하시며, 끝없이 삶에 대해 낙천적이신 어머님은 내 나머지 삶의 지침이 될 것이다.”라는 찬사를 하지 않았던가.
김용택 시인의 생가는 다른 문인의 생가와 판이하게 다르다.
아직도 그의 어머니가 살고 계신 집이기도 하거니와 그가 태어나고, 성장하며 공부하던 집이다.
청소년기와 청년시절 좌절하며 시를 쓰고 서른일곱이 되어 결혼한 곳이다. 서재는 아직도 살아 있는 공간으로 낮이면 활짝 개방을 해 놓는다. 덕을 베풀고 있는 것이다.
김용택 시인 어머니 박덕성 씨
김용택 시인은 겨울밤에 많은 독서를 하였다. 새벽이 되어 닭울음소리가 들릴 때면 초저녁 뜨거웠던 온돌이 식는다. 방안에는 한기가 몰려온다. 세상 떠난 시인의 아버지는 이 시간에 벌써 쇠죽을 끓이기 시작한다. 온돌방이 뜨거워지면 이내 그는 꿈나라로 가곤했다. 이런 추억이 깃든 집을 아직 김용택 시인은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복 많은 사람이다.
김용택 시인의 생가를 나와 섬진강 강변을 걷는다. 강에는 중년의 사내가 올갱이를 줍고 있다. 강 건너 시인의 밭둑 그늘에서 진메마을과 회문산을 바라본다.
그리고 오래전에 읽었던 그의 시“길에서” 몇 줄을 다시 읽고 싶다.
앞산 뒷산
오월 푸른 산을 바라보건대
그 사이 앞내가 푸르르고
--중략
생각하면 누구나 살아온 이 세상이
피눈물을 쏟던 설운 굽이인데
--중략
홀로 밭 매는 어머니만 먼 데서 보여도
밭이 너무 커서 서러웠다.
어디 같다가 늦게 돌아오는 저녁길
동구에 들어서서
어머님 등불만 보여도
나는 늘 가슴이 새롭게 튀고
발길이 부산해졌다.
--중략
홀로 풀짐 지고 산굽이 돌아오는
아버지만 길에서 만나도
강길이 너무 적막하여 나는 어쩔 줄을 몰랐다.
--- 김용택 시인 시 ‘길에서’ 부분
시인의 어머니와 아버지의 농사일의 힘겨움을 가슴 아리게 생각하는 아들의 마음이
아른거린다. 이런 부모님에 대한 효심과 사물에 관한 연민이 없었다면 결코 그의 시는 허상에 불과한 것이었으리라.
나는 시인의 어머니가 밭을 매었을 언저리를 서성이며 시적 감흥보다는 실존적인 삶의 물음을 내 자신에게도 물어 보았다. 가슴 저 밑에는 부끄러움이 강물처럼 흘러가고 있다.
임진왜란을 피해 왔던 사람들이 살기 시작하면서 형성되었다는 진메마을은 조용하다.
이제 섬진강을 따라 천담과 구담으로 길을 떠난다. 동네 입구에 입간판처럼 서있는 김용택 시인의 시 ‘천담 가는 길’을 읽는다.
세월이 가면
길가에 피는 꽃따라
나도 피어나고
바람이 불면
바람에 흔들릴라요
세월이 가면
길가에 지는 꽃따라
나도 질라요
강물이 흐르고
물처럼 가버린
그 흔한 세월
내 지나온 자리
뒤돌아다 보면
고운 바람결에
꽃피고지는
아름다운 강에서
많이도 살았다 많이도 살았어
바람에 흔들리며
강물이 모르지 가만히
강물에 떨어져 나는 갈라요
--김용택 시 ‘천담 가는 길’ 전문
진메마을에 있는 김용택 시인의 '천담 가는 길' 시비
높고 깊은 회문산 자락에 펼쳐진 휘어진 능선과 골짜기를 내려가 도착되는 임실은 덕치 진메마을 앞과 구담, 천담을 지나 멀리 구례로 휘돌아 가는 섬진강이 눈부시게 흘러간다.
아, 이 물줄기가 멀리 지리산 자락 밑으로 흘러든단 말인가.
경남, 전남, 전북의 3개도, 5개 군에 펼쳐진 지리산 가슴 넓고 깊은 어머니 산이다. 이런 모성을 지닌 지리산은 그 둘레가 무려 8백리다. 몇 날이 걸려서라도 이 강물을 따라 지리산 자락 밑까지 걷고 싶다. 언제인가 시간이 허락한다면 우리 국토를 걷고 싶다. 특히 강변을 따라 걷고 싶다. 천담 가는 강변이 인적도 없지만 마을도 없다.
이 길가에 그늘만 있다면 걷기에 이보다 좋은 도보처가 없을 것 같은 강변이다. 김용택 시인은 바로 이 강변을 원형대로 보존하기 위해 힘써 왔다. 그는 1990년과 1991년 천담분교에 근무 할 때 이 길을 걸어 출근했다. 생가에서 학교까지 걸어서 왕복 약 50분 거리이다.
이 길에 가로수를 심어 그늘을 만들고 차량 통제를 하게 되면 담양의 명소인 메타세콰이어 길을 능가하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의 강은 대개 뱀처럼 곡선 형태로 흘러간다. 산마을을 휘감고 흐르는 강변이 아름다운 것은 이 때문이다. 사람들은 늘 강을 직선으로 만들고 싶어 한다.
큰 장마 때 수해는 늘 곡선의 물길을 인위적인 강둑을 쌓아 직선으로 만들어 버렸기 때문에 발생한다. 이 강변도 그런 작업을 하기 위해 달려드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른다. 걱정이다.
천담 가는 길 아름다운 길, 이 길이 무사하길 기원해 본다.
미래 어느 날 다시 이 강변길을 걸을 땐 밤이었으면 좋겠다. 그 밤에 달이 떠오르면 나는 이 싯구를 읽게 될 것이다. 세월의 세파에 휩쓸려 살아가고 있는 내 두 누님들을 위해서 읽게 될 것이다.
"누님, 오늘도 그렇게 달이 느지막히 떠오릅니다. 달 그늘진 어둔 산자락 끝이 누님의 치마폭같이 기다림의 세월인 양 펄럭이는 듯합니다. 강변의 하얀 갈대들이 누님의 손짓인양 그래그래 하며 무엇인가를 부르고 보내는 듯합니다.
"섬진강 4 - 누님의 초상-」
섬진강변
걷고싶은 길을 시간이 허락하지 않아서 승용차로 가는 것이 무척이나 아쉽다.
섬진강수련원으로 바뀐 옛 천담분교까지 갔다가 다시 진메마을로 돌아 왔다. 느티나무 앞에 차를 세우고 마지막으로 진메마을을 향해 사진기 셔터를 누른다.
진메마을을 떠난다. 강변을 거슬러 달린다.
이곳에서 회문산을 휘돌아 옥정호를 거쳐 호남고속도로 ‘태인나들목’을 목표로 길을 나서기 위해서다. 회문산 자락을 휘감아 돌아가면서 저 산의 지나온 역사가 내머리를 스친다. 회문산은 우리나라의 5대 명당 중에 하나로 알려져 있는 산이다.
회문산 북서쪽에는 장군봉(해발 780m), 북쪽 중앙으로 회문봉(큰지붕, 해발 837m)으로 호남에서는 큰 산이다.
산의 5부 능선에 자리 잡은 ‘회문산자연휴양림’은 다양한 활엽수종이 자라고 있다. 그러나 이 산에는 가슴아린 슬픈 사연들이 많다.
1846년 천주교 병오박해때 충남 당진에 살던 김대건 신부의 동생 란식과 조카 김현차가
몸을 피한 장소이다. 이들은 이곳에서 살다가 회문산에 묻힌다. 김대건 신부는 3대가 순교한 집안이 아닌가. 김대건 신부는 죽으면서까지 신앙의 자유를 그리워했다.
그들의 삶과 죽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회문산 자락은 짙은 녹음 속에 8부 능선으로 목화구름이 흘러간다.
한말에는 면암 최익현 의병장이 의병 1000 명과 함께 항일무장투쟁을 벌였던 산이다.
6·25 전쟁때는 남부군 사령부 터로 700여명의 빨치산이 주둔하며 투쟁하던 장소다. 오래전에 이태의 소설 ‘남부군’을 읽고 이 산을 찾으려 했지만 아직도 올라가지 못하고 있다. 그저 산 모습만 가까이에서 보며 떠난다.
회문산자연휴양림에서 매년 6월25일 이념대립으로 희생된 영혼을 달래주고 민족의 화해와 남북통일을 기원하는 회문산 해원제가 열린다고 한다.
역사는 슬픔과 고통을 안겨다 주었지만 자연은 아름답다. 옥정호로 가는 길은 너무나 아름다워 슬프다. 자연이 아름다우면 슬픔도 깊지 않은가.
강과 호수가 이어진 산길을 달려간다. 지나치는 골짜기가 금방 그리운 것은 다시는 볼 수 없을지 모른다는 이별 때문일 것이다. 사람마다 지니고 있을 이런 정서를 김용택 시인은 ‘그리운 것은 모두 산 뒤에 있다’는 시를 써서 대변한다. 이 시를 읽으며 김용택 시인의 고향을 찾아갔던 기행을 마친다.
회문산
이별은 손끝에 있고
서러움은 먼데서 온다.
강 언덕 풀잎들이 돋아나며
아침 햇살에 핏줄이 일어선다.
마른 풀잎들은 더 깊이 숨을 쉬고
아침 산그늘 속에
산벚꽃은 피어서 희다.
누가 알랴 사람마다
누구도 닿지 않은 고독이 있다는 것을
돌아앉은 산들은 외롭고
마주 보는 산은 흰 이마가 서럽다.
아픈 데서 피지 않은 꽃이 어디 있으랴
슬픔은 손끝에 닿지만
고통은 천천히 꽃처럼 피어난다.
저문 산 아래
쓸쓸히 서 있는 사람아
뒤로 오는 여인이 더 다정하듯이
그리운 것들은 다 산 뒤에 있다
--김용택 시인 시 ‘그리운 것은 모두 산 뒤에 있다’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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