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박 4일의 북해도 여행은 하얀 눈과 함께 한 여행이었다.
1월 26일 오전 10시 5분 출발하기로 예정되었던 KE765 대한항공 편,
활주로와 비행기에 내린 눈을 처리하느라 출발 자체가 1시간 정도 늦춰지는 바람에
신치토세 공항 도착 뒤의 일정이 조금 바뀌었다. 당일 예정된 코스가 다음날로 미뤄지는 부분이 생겨났다.
우리나라보다 일몰시간이 더 빠르고 오후 5시 전에 이미 어두워지기 때문이다.
신치토세 공항에 도착해서 잠시 짐을 정리하고 사진을 한 장 남겼다.
권 선생님의 여행 계획에 갑자기 함께하게 된 아내, 학창 시절 특별히 가까운 친구 사이였던 만큼,
이번 북해도 여행을 같이 하게 돼서 무척 기쁘고 설레인다고 했다. 잠도 친구와 함께 자기로 했단다.
북해도는 나도 기회를 보아 가고 싶었던 곳이라 끼어들게 되었고 잠자리 때문에 왕따가 될 수는 없어
남전 형님께 제의하여 우리 네 명이 함께하게 된 것이다. 여하튼 멋진 여행이 되길 바랄 뿐이다.
이번 북해도 여행의 가이드 유승희씨, 시종일관 우리 일행 33명과 함께해야만 했던 사람,
농담은 거의 연예인급이고 성격도 서글서글하고 탁 트인 부분이 있어 다들 좋아할 만했다.
사진을 찍으려 하니 귀엽게 포즈를 취해 주는 배려(?)가 보기 좋다. 아이를 키우지 않는다고 한다. 독신?
도야호 바로 곁에 있는 유노기와 온천 내 썬팔레스 호텔의 식당은 많은 관광객들을 한꺼번에 수용할 정도로 넓고도 쾌적했다.
남전 형과 나는 지난 여름의 10박 11일 몽골여행에 이어 이번 3박 4일 북해도 여행에도 함께하게 되었다.
(어쩌면 올 여름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블라디보스톡에서 상뜨뻬제르부르크까지 가는 여행을 같이할지도 모른다.)
저녁 식사 후의 산책은 나무에 걸린 불빛과 함께였다. 어둠 너머로 희끄무레하게 보이는 도야호의 섬이 궁금해졌다.
잠들기 전에 온천욕을 하면서 어둠을 뚫고 보고자 했던 호수의 섬 모양이 날이 새면서 자연스레 드러났다. 부드러운 선의 연속이다.
첫 관광은 쇼와신산 바라보기다. 쇼와신산은 1943년부터 약 2년 간 화산활동으로 지반이 융기하여 생긴 해발고도 402미터의 작은 산이다.
쇼와신산을 보고 다시 도야호수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유람선이 떠다니는 성처럼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약 50분 정도 유람선을 타고 호수섬 주변을 천천히 돌았다.
섬(中島) 안에는 사슴 200여 마리가 서식하고 있다고 한다.
도야코 디지털센터에서 화산활동에 대한 자료를 20여 분간 살펴 보면서 도야호 주변의 화산 생성 과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도야호를 조망할 수 있는 사이로 전망대에서의 본 모습,
전망대 곁 자작나무도 하얀 몸매를 자랑하고 있어서 흰눈과 잘 어울리는 나무임을 새삼 알겠다.
하코다테[函館]로 가는 길목에 있는 어느 식당 내부
약 200킬로그램 정도는 될 정도의 우람한 체격의 일본인 처자가 혼자 퍼질러 앉아 많은 음식을 갖다놓고 끊임없이 먹고 있던 자리다.
식당의 외부 모습, 어설퍼 보였지만 우리가 먹었던 음식은 아주 훌륭했다.
우리 일행 네 명은 눈 덮인 호수를 배경으로 서 보았다. 가이드 유승희씨의 작품이다.
해발 1131미터의 고마기다께, 화산활동으로 인하여 주변에 큰 호수를 세 개나 거느리게 되었다.
오오누마 국정공원의 호수는 강추위로 꽁꽁 얼어붙었고, 눈으로 덮여서 특별 세상을 연출하고 있었다.
가이드 유승희씨의 두 번째 사진 작품
하코다떼로 가는 길목에 있는, 다시마 박물관 '콘부관'에 들러 다시마를 원료로 만들어지는
과자, 사탕, 젤리 등의 식품 제조 과정을 잠시 지켜 보니 점원들의 정교한 손놀림이 놀라웠다.
하코다테에 도착, 항구 주변에 가나모리 아카렌카 창고군을 둘러보았다. 전라북도 군산항을 연상시키고 있었다.
전국에서 생산된 쌀을 일제가 조직적으로 수탈하여 군산항 일대의 창고에 가득가득 보관하고 있다가 수시로
야금야금 본토로 반출해 갔던 빼앗김과 슬픔의 역사를 다시금 되새길 수 있는 현장이었다.
눈 세상과 너무도 잘 어울리는 자작나무 옆에 기대어 서 보았다. 표정이 좀더 환한 모습이면 좋겠는데 왠지 낯설고 어색했다.
이국적인 정취가 물씬 풍기는 구 하코다테구 공회당 건물, 1907년에 큰불이 났던 곳이기도 하다.
하코다떼 항구가 보이는 경사진 거리 위에는 눈이 녹아 있었다. 열선 처리가 되어 있어서 눈이 쌓이지 않는 것이다.
모토마치 거리에서 볼 수 있는 성공회 건물
이탈리아의 나폴리, 홍콩과 함께 세계 3대 야경 중의 하나인 백만 불짜리 야경을 감상하고 숙소인 유노카와 온천으로 돌아왔다.
저녁 식사 후에는 다쿠보쿠데이 호텔의 대온천장에서 온천욕을 즐겼다. 호텔 안의 정원이 인상적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 남전 형님과 함께 온천욕을 하고 호텔 밖으로 나왔다. 눈이 내리고 있었다.
아침 8시에 하코다테의 숙소를 출발하여 북쪽으로 가야 한다. 노보리베츠, 삿보로, 오타루가 오늘 우리 일행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차창을 통해서 어제 보았던 고다미다케의 위용을 다시 한 번 쳐다보았다. 바람에 흩날리는 눈의 모습이 장관이었다.
이런 산 하나 가슴 속에 담아 둘 수 있다면 필요할 때마다 꺼내 보면서 겨울의 신선함을 추억할 수 있으면 좋겠다.
노보리베츠를 향해 이동하는 중에 2시간 만에 잠시 쉬면서 '먼산바라기'를 좀 하고 화장실 볼 일도 좀 보면서 여유를 부렸다.
에도 시대를 테마로 한 시대테마파크 에도지다이무라(에도시대 민속촌)
길거리에 늘어서 있는 상가와 웅장한 무사 저택, 깜짝 놀랄 계략이 가득한 닌자 저택
홋가이도오의 대자연에 어우러진 정취 가득한 거리 풍경 속에서
무사가, 닌자가, 기녀가 마을 사람들이 숨을 쉬고,.....
일본의 전통문화극장에서 공연 중인 닌자쇼를 잠시 감상할 수 있었다. 계략으로 가득찬 닌자저택에서
서로 다른 닌자들간의 뜨거운 투쟁을 내용으로 박진감 넘치면서도 코믹하게 진행하고 있었다.
배우들은 닌자쇼에 몰입하고 있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되풀이되는 것이지만 검도에 대한 기능이 없이는 불가능한 연기들이다.
닌자의 괴이한 미로에 들러 금방이라도 괴물이 덮칠 것 같은 스릴감과 건물이 무너져내릴 듯한 공포감을 경험했다.
게이샤들이 등장하는 오이란쇼는 점심 식사를 하고 난 뒤에 감상하기로 했다.
나무로 만든 찜통에 닭고기와 우동을 메인으로 하여 각종 야채(버섯, 양배추, 호박 등)를 함께 쪄서
소스에 찍어먹는 담백한 맛이 일품인 요리다. 두 여인은 닭고기를 못 먹어서 두 남자가 해결하느라 힘들었다.
다시 오이란쇼를 보기 위해 상가마을을 지나면서 네 명은 기념사진 한 장을 또 남겼다.
일본 건축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부분 같아서 사진에 담았다. 박공 부분의 화려한 장식 부분은 우리 건축과 확연하게 다르다.
게이샤 쇼의 공연장 내부, 중국, 말레이지아, 태국 등의 외국인들이 섞여 있었지만 우리 한국인들이 제일 많은 것 같았다.
오이란 쇼의 어릿광대로 보이는 분이 등장하더니 알아듣지 못하는 일본말과 영어를 섞어가며 한참을 재미있게 얘기했다.
우리 일행 중의 한 사람이 극중의 '규조'란 인물 역을 맡아 훌륭히 해 냈다. 경기도 이천에서 왔다는 30대 중반의 총각이었다.
노보리베츠의 지옥계곡 입구에 서 있는 나무 간판, 이곳이 환경성에서 관리하고 있는 국립공원임을 알리고 있다.
홋가이도를 대표하는 온천으로 유명한 노보리베쯔 온천은 해발 200미터 부근에 원생림으로 둘러싸인 온천향으로 황화수소천,
식염천, 철천 등 10여 종류에 이르는 온천질이 특징. 그 온천질의 효능은 세계적으로도 희귀한 것으로 이름나 있다.
직경 450미터의 거대한 폭발화구가 만든 지옥계곡으로 약 600미터의 산책로를 부담없이 즐길 수 있으며 유황냄새가 가득하다.
자, 이제 향수와 아늑함을 느끼게 해 주는 운치있는 도시 오타루로 이동할 시간이다. 목적지까지 약 1시간 30분 정도면 된다.
삿포로에서 오타루 시내까지는 눈의 연속이었다. 느즈막한 오후, 눈속으로 어둠은 서서히 내려앉고 있었다.
유명한 오타루 운하에 도착했을 때는 가로등의 황색 빛이 운하의 물 위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석양 무렵이 되면
돌블록의 가로등에 가스등이 밝혀지는 복고풍의 거리 풍경으로 향수와 아늑함을 느끼게 해 준다. 옛날에는 짐을 싣고 내리던
나룻배로 가득했던 운하, 벽돌과 석조로 된 창고 등이 유리공예점과 찻집, 레스토랑과 쇼핑몰 등으로 변신해 사람들의 관심을 끈다.
선박들이 드나들던 옛날 무역항으로 1986년에 운하 주위에 산책로를 정비하면서 오타루를 대표하는 관광지로 탈바꿈했다.
창고 처마끝에 매달린 고드름은 언제 떨어질지 모른다. 바라보기만 해도 아찔한 형국이다.
운하는 더 이상 제구실을 하지 못하고 낭만을 즐기는 관광객들을 배에 태우고 짧은 거리를 왕복할 뿐,
과거 영욕의 시절을 되새기는 역사 현장으로서의 가치는 충분하지 않을까 한다.
오타루 운하 위로 눈발이 사륵사륵 내리면서 어둠이 서서히 찾아오고 있었다.
이곳에서 오타루 명물 과자거리까지 10여 분간 걸었던 추억은 강렬한 이미지로 남았다.
북해도는 낙농업이 발달하여 신선한 생크림과 버터, 치즈 등을 이용하여 만든 다양한 디저트들이
뛰어난 맛을 자랑한다. 그 중 북해도에서만 맛볼 수 있는 유명 과자점들을 오타루 거리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약 80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며 버터샌드, 다양한 초콜릿 등이 유명한 롯카테이, 나이테 모양의 바움쿠엔 케잌과
속이 꽉 찬 슈크림 빵이 유명한 가타카로, 북해도 최고의 케잌 전문점 르타오 등의 매장에서 구입이 가능하다.
기타이치 가라스무라, 유리공예로 유명한 베네치아의 장인들을 오타루로 초청해 와서 유리공예 문화를 정착시켰음을 보여주는 곳이다.
10만 종류가 넘는 유리제품이 진열되어 있는 곳으로 오리지널 제품을 비롯한 전세계 공예품이 가득하다.
오타루 지역은 운하를 통해 외국의 문물이 많이 들어온 지역으로 오르골도 그 문물 중의 하나라 할 수 있다.
아기자기한 오르골과 다양한 기념품 등을 전시 판매하고 잇는 오르골 전시관은 특히 여성들에게 최고의 인기다.
오르골 전시장에서 아내는 인형 모양의 오르골을 샀다. '작은 세상'이란 곡이 담겨있는 것으로.
오타루에서 삿포로로 이동하여 오도오리 공원과 가로수 나뭇가지에 반짝이는 조명을 보며
눈 내리는 겨울 삿포로의 낭만적인 밤을 느꼈다. 삿포로 시내 중앙에 위치한 노보텔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삿포로에서의 마지막 밤, 1222호에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아사히 맥주를 한 잔씩 했다.
밤이 이슥도록 이야기했고, 아내는 가슴에 묻어둔 생각을 말하면 나의 속 깊은 이해를 주문하기도 했다.
일본인들이 피우는 담배의 비용을 알 수 있겠다. 국민소득과 비교해 볼 때 우리나라의 담배값은 비싸다.
노보텔 호텔 내부의 일부를 사진에 담았다.
숙소 노보텔 12층에서 내려다본 전경,
북해도의 상징 북해도 시계탑으로 유명한 홋가이도 대학의 전신인 삿포로 농학교,
시민들의 질서의식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장면
아카랭카(붉은 벽돌) 라는 애칭으로 알려져 있는 북해도 구청사는 1888년에 미국풍 네오바로크 양식으로 건축되었다.
오오도리 공원, 삿포로의 핵심 관광지이자 삿포로의 심볼로서 시의 중심부에 위치하며
길이 약 1.5키로미터 면적 7.8ha 규모의 특수공원이다. 2월 초의 겨울 눈축제에 대비한 시설 정비로 한창 바쁘다.
계절마다 다양한 이벤트가 열려 1년 내내 삿포로 시민과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공원에는 92종 약 4,700 그루에 이르는 수목이 심어졌고, 아름다운 화단과 잔디가 조성되어 있다.
저 끝으로 삿포로 역이 보인다.
면세점에 들렀다. 4000엔 가까이 하는 사케 한 병을 샀다. 일본의 전통주인 정종의 맛을 내는.
매산 황영진 시인 출판기념회 때 사용할 축하주로 사는 것이다. 아내도 뭘 샀는지 제법 양이 많아 보였다.
삿포로 시내의 어느 한 지점, 높은 건물이라고는 거의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집의 높이를 제한하고 있는 듯하다.
이번 여행의 마지막은 삿포로 맥주의 맥주 공장을 견학하는 것이다.
두 컵 반 정도의 시음을 하고 나니 다들 기분이 좋아졌나 보다.
남전 형은 삿포로 맥주 6캔과 우산 형님께 드릴 두 캔들이 삿포로 맥주를 샀다.
삿포로맥주 공장 시음장에서 내려다 본 바깥 풍경, 공장의 넓이가 대단함을 알겠다.
맥주 석 잔 가까운 시음 덕분인지 다들 유쾌해져서 치토세 국제공항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여행객들의 기분을 배려한 여행사의 운영 방법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잠시 웃었다.
KE 766편 인천행 대한항공 비행기를 타기 직전의 신치토세공항은 비교적 한산했다.
남전 형의 모자는 어느 새 바뀌어 있다. 공항 면세점에서 만족스런 가격으로 구입한 모자다.
아이스크림이 맛있어 보였으나 나는 먹기를 거부했다. 목이 간질간질하고 기침이 나오는 감기 환자이기 때문이다.
남전 형은 이번 여행에서 가스등이 켜진 오타루 운하에서 과자거리까지 눈맞으며 걸었던 그 순간의 이미지를 잊지 못하겠다고 했다.
시인이시니만큼 또 한 편의 시로 형상화되리라 믿는다. 나도 만약 이번 여행을 한 편의 시로 표현해 본다면?
북해도에서 / 이권주
호수를 거느린 화산(火山)은 여럿의 얼굴이었다.
들길 달리며 본 것과 호숫가에 서서 본 게 그랬다.
아이누(AINU)족 전설이 발자욱처럼 얽혀 있을 산기슭
저주의 눈사태로 이젠 털묻은 얼굴과 완만함이 남았다.
모든 걸 감추고 하얗게 얼어버린 호수가 그랬다.
갈매기 날아드는 창고 거리 자작나무 한 그루
다다미방에 깔아놓은 이불처럼 속살마저 얇고 하얬다.
숨 한번 고르며 뽀오얀 어깨에 기대어 안아 보았다.
잘룩한 허리같은 야경이 함관(函館)의 볼거리였다.
오타루 운하엔 눈발이 질투처럼 내려앉고 있었다.
창고의 회색 고드름은 눈덮인 운하로 곤두박칠 기세였고
가로등의 따스한 불빛만 물결에 조금씩 일렁거릴 뿐
삼삼오오 걸어갔던 과자 거리, 유리공예 거리는
눈의 숨소리였다. 길어깨 위로 사르르륵 쌓이는
북해도의 겨울은 가슴의 울림으로 망울졌다.
쇼와신산, 도야호, 온천, 유람선, 닌자 게이샤쇼
삿포로 맥주, 오오도리 공원, 밤 깊은 이야기
사나흘에 보고 들은 세상, 무지개 핀 설국이었다.
추억처럼 쌓인 또 다른 마음 풍경이었다.
덕천강과 함께한 대마도 여행 (0) | 2016.07.25 |
---|---|
체화정, 쌍암종택 (0) | 2016.06.19 |
3박 4일의 홋가이도오(북해도) 여행을 앞두고 (0) | 2016.01.25 |
송구영신(送舊迎新)하는 날, 서 교장과 함께 (0) | 2016.01.01 |
안동 유교문화길, 선유줄불놀이 (0) | 2015.10.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