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수수밭 / 천양희
마음이 또 수수밭을 지난다
머위잎 몇장 더 얹어 뒤란으로 간다
저녁만큼 저문 것이 여기 또 있다
개밥바라기별이
내 눈보다 먼저 땅을 들여다본다
세상을 내려놓고는 길 한쪽도 볼 수 없다
논둑길 너머 길 끝에는 보리밭이 있고
보릿고개를 넘은 세월이 있다
바람은 자꾸 등짝을 때리고, 절골의 그림자는
암처럼 깊다 나는 몇 번 머리를 흔들고 산 속의 산,
산위의 산을 본다 산은 올려다보아야 한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저기 저 하늘의 자리는 싱싱하게 푸르다
푸른것들이 어깨를 툭 친다 올라가라고 그래야한다고
나를 부추기는 솔바람 속에서
내 막막함도 올라간다 번쩍 제정신이 든다
정신이 들 때마다 우짖는 내 속의 목탁새들
나를 깨운다 이 세상에 없는 길을 만들 수가 없다
산 옆구리를 끼고 절벽을 오르니 천불산이 몸속에 들어와 앉는다
내 맘속 수수밭이 환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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