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구에서 육군 일병 이한별이가 정기 휴가를 왔다.
영하 30도를 오르내리는 강추위 속에서 살다가 드디어
따스한 남쪽으로 며칠간 쉬러 내려왔다.
엊저녁은 조부모님을 뵙기 위해 대구로 가는 날이다.
할아버지는 명주에 붓으로 그림을 그리고 그 위에 간단한 사연을 적어서
전방 부대로 선물삼아 등기로 보냈건만, 아직 손자는 받아보지는 못했고
그 복사본을 휴가 나와서 보게 되었으니 손자의 기분은 어떠했을까?
얼마나 감사한 일이냐, 손자를 사랑하는 할아버지의 마음이 따사롭다.
저녁 식사는 아들이 좋아하는 '벌집 삼겹살'로 하기로 했다.
방촌동 아파트 맞은편에 있는 식당이다. 6인분을 시켜서 맛있게 먹고
부모님을 먼저 집에 모셔 드리고 아들과 함께 추운 거리로 나섰다.
혼자 노래방에 가서 한 시간 놀고 왔으면 좋겠다는 녀석에게
청승맞게 혼자 노래방엘 가면 어떡하냐, 아빠하고 당구나 치러 가자
얼마 치세요? 120 정도. 너는 얼마 치냐? 100정도 놓으면 될거에요.
그러면 잘 됐다. 같이 한번 쳐 보는 거다.
사람들이 거의 없다. 몇 년만에 잡아보는 큣대인지 모른다마는
아들과 같이 어울린다는 게 그저 좋다. 아들은 제법 자세가 안정적이었다.
그러나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물 100이라고나 할까.^^
알다마 10개를 다 쳐 놓고도 마지막 쓰리쿠션을 성공 못한 채 오랜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에 나는 그간의 서툴렀던 솜씨를 만회하고, 알다마를 다 치자마자
쓰리쿠션을 단번에 성공, 애비의 내공을 보여주었다. 녀석은 조금 억울했을까?
아빠한테 지는 것이 뭐 억울하겠냐만 진다는 것은 그다지 유쾌하지는 않을 터.^^
둘째 판도 내가 이겼다. 녀석은 아직은 내 적수가 못 되는가 보다.^^
다음 휴가 나올 때 다시 한번 도전해라. 이번엔 아빠 승리였다. 맞제?
집에 들어오니 동생이 병원근무를 마치고 이제 막 퇴근했다.
조카를 만나 반가운 악수와 포옹을 하고, 맥주 한 잔씩 하면서 담소
막내아들은 아빠와 작은아빠한테 허심탄회하게 별의별 이야기를 다 했다.
어려움 없이 얘기를 다 해주니 우리들의 마음이 오히려 편하다.
옆에서 손자의 얘기를 듣고 있는 어머니도 놀랐다는 듯, 혀를 내두른다.
무슨 얘기를 했길래? (그것은 상상에 맡긴다. 여하튼, 우리 아들 화끈해서 좋다.)
자정이 넘도록 이야기를 하다가 아들은 이제 자고 싶다고 한다.
아들의 이야기는 우선적으로 들어줘야 한다. 그래? 그럼 자도록 해라.
같이 잘까? 아빠 코 많이 곯잖아요. 그렇지. 그럼 저 혼자 자게 해 주세요.
저는 예민해서 옆에 코 고는 사람이 있으면 잠을 못 자요.
군대에서 옆에 졸병이 하도 코를 골아 두세 시간 참고 참다가
마침내 화가 나서 자는 놈의 코를 때린 적이 있을 정도였어요.^^
ㅎㅎ 그러면 혼자 자렴, 나는 할머니와 함께 잘 테니까.
다음날 아침, 군에서는 6시30분이면 기상하는 시간인데
오늘 아침, 할아버지 집에서는 8시가 넘어서야 겨우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원래 아침잠이 많은 녀석이라 오늘같은 날은 더 자 두면 좋다.
동생의 출근 시간, 식사 시간에 맞춰 온 식구들이 밥상 주변에 앉아
어머니께서 정성껏 차린 아침상을 받았다. 곰국이 특별메뉴로 준비 되었다.
자, 이제 할아버지 할머니께 인사를 하고 길을 나서야 한다. 나서기 전 기념사진 한 장 남긴다.
아버지가 수염기른 모습을 보고 너무 늙어보여 놀랐다면서 어서 수염을 깎으란다.
방학 때만큼은 자연인으로 살고 싶어 안깎고 있을 뿐인데, 주변 사람들이 입을 많이 댄다.
특히 부모님께서는 왜 흰수염이 그렇게 많냐면서 안타까워 하신다. 퍽 죄송하다.
'블루닷'이라는 레스토랑 (0) | 2013.01.09 |
---|---|
구미여고 졸업생의 교육봉사 (0) | 2013.01.08 |
금오저수지, 동락공원을 한 바퀴 걸으면 참 좋다. (0) | 2013.01.04 |
부모님과 함께했던 대구 미술관 (0) | 2012.12.30 |
왜관의 '가실성당' (0) | 2012.12.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