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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그 다음 날 (이어지는 글)

세상과 함께

by 우람별(논강) 2009. 8. 6.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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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근무를 마치자마자 또 대구로 가야 했다.
오랜만에 5명의 친구들을 저녁 7시에 만나기로 되어 있었다.
그 친구들 소개를 잠시 해도 될까?
고등학교 동기들, 오랜 세월 인연을 맺어온 놈들이다.
최석완 변호사, 그의 사무실에 근무하는 허진식 사무장
연탄집 아들 조수제 공인회계사, 대구시교육청 장순균 장학사
대구의 농협 모지점 이성곤 전무, 이렇게 다섯,
그러고 보니 사회적 지위가 다 높은 것 같다.
나야 승진의 길을 포기하고 욕심없이 사는 평교사지만
나이에 걸맞게 다들 명예로운 자리에 있는 것이
보기에도 좋다.

범어네거리, 돌고래 일식회집,
우린 언제부턴가 늘 거기서 만나 왔다.
요번에는 조수제가 한턱 쏠일이 있다고 집합을 시킨 거다.
늘 그랬지만 만나면 늘 텁텁하고 걸쭉하고 자극적인 이야기를 자주 한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이쁜이(별명) 최변호사가 차기 동기회장으로 내정되어
우리 친구들이 팍팍 밀어줘야겠단다. (아이고, 회장님! 여부가 있겠소?)
조용히 술을 마시던 허진식이 나를 향하여 한 마디 한다.
"너, 요즘 마누라한테 잘 하냐? 마누라 사랑은 이렇게 하는 거야, 봐라."
하면서 옆에 있는 조수제를 덥석 안더니 표정을 얄굿게 짓고는
"여보, 사랑해. 이런 말을 밥 먹듯이 해야 되는 거야. 알았어?"
폭소가 터지고 난리가 난다. 한참을 웃었다.
"진식아, 걱정하지 마라. 임마 나 잘하고 있단 말이다."
"우아든동, 잘 살으레이. 늦게 만났지만 행복하게....."
나의 처지를 아는 친구들이라 이래저래 걱정을 많이 해 준다.
그런 표현들이 진실된 우정의 표현임도 알고 있다.
술자리는 1차만 하기로 하고는 다들 대리운전해서 귀가했다.
한 달 뒤에 있을 송념모임에서 거나하게 한잔 하기로 하고.

집에 오니 10시가 조금 넘었다. (단 3시간의 모범적인 술자리, 맞네!)
어머니는 어제 내가 갖고 온 배추 10포기를 어느새 소금에 졀여 놓고
양념을 만들고 계시는 중이고, 아버지는 정신없이 주무시고 계신다.
둘째가 조금 전에 무사히 귀가했다는 전화를 받았다고 했고,
"둘째는 엊저녁 밤새도록 잠도 못자고 뒤척이더니
낮에는 하루종일 헤매고 막 토하고 난리가 났다. 얘"
"난 어제 자리에 눕자마자 곧바로 뻗어서 그런 줄도 몰랐네요"
동생한테 전화로 직접 들은 터라 놀랍지는 않지만, 어머니는 걱정을 많이 하셨나 보다.
힘들겠지만 마늘이나 까달라고 하시면서 나에게 일거리를 안기신다.
맛있는 사과를 깎아놓고, 여수 동생이 보낸 단감을 또 깎아 놓으신다.
공짜로 일 시키려니 미안하신가?^^ 그걸 먹으면서 퍼뜩 해 보라는 거다.
티비에서는 축구 국가대표팀의 대 사우디아라비아 전 재방송 중이다.
그날 새벽 사우디를 2-0 으로 승리해서 전국민을 기쁘게 했던 경기,
19년 동안 한 번도 이기지 못한 징크스를 깼다며 난리였지.
금상첨화가 별 건가? 맛있는 거 먹으면서 좋은 경기 즐기고.
마늘을 한참 동안 깠다. 의성 마늘이라는데 아주 실하다.
바짝 마른 뿌리달린 통마늘을 반으로 쪼갠 다음,
뿌리 부분을 떼어내고 몇개의 쪽으로 쉽게 분리되면
쪽 끝부분에 칼을 대 잘라내면서 껍질을 벗겨내는 작업의 연속이다.
다 깎고 나서 그것을 다지기 위해 믹서기에 돌리니
그 효과가 생각보다 신통치 않아서 작은 절구에 넣어 빻았다.
그 소리에 아버지 잠이 깨셨다. "애비 왔구나."
"예, 그런데 어떡하나요? 잠을 깨우고 말았네요."
바닥에 수건을 이중 삼중으로 받쳐놓고 한 절구질인데 폭폭 찧는 소리가 그만.....
"괜찮다만 이리 밤늦게 에 뭘 하려고 그려?"
"아버지, 내일이면 맛있는 김치를 잡수실 수 있을 겁니다."

이렇게 또 하루가 끝나고 있었고
부모님의 주름은 하나 둘 깊어지고 있을 거였다.
늘 건강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아옹다옹 다투지 마시고
늘 마음맞춰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저희 5남매의 마음은 잘 아시죠?
메모 : 2008.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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