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에 사는 동생네 집을 방문했다.
부모님 모시고 막내 금주네 네 식구와 함께한 여행이었다.
서울의 두 동생은 사정이 여의치 않아서 함께하지 못했는데 아쉬웠다.
다섯 식구가 모두 가능한 시간을 맞추는 게 쉽지 않다는 것도 있지만
동생들이 처해 있는 직장의 사정이 그리 녹록지 못하니 어쩔 수가 없었다.
8/13(토) 남해고속도로는 휴가차량으로 긴 행렬이 이어졌다.
뒤따르는 김서방(매부)이 잘 따라올 수 있도록 과속하지 않고 조용히 운전했다.
평상시의 내 운전 습관 같으면 빠른 속도로 달려갔을 테지만 정속주행을 유지했다.
정속 운전이 체질화된 김서방을 의식해서 그럴 수는 없었다.
여수 동생네 집에 도착하니, 맛있는 점심을 미리 준비해놓고 있어서
출출하던 배를 그득 채울 수 있었다. 여수로 시집 온 동생의 음식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미식가인 남편을 둔 덕분에 20년의 세월 동안 갈고 닦은 음식라면서 자랑한다.
결혼 이후 처음으로 사위네 집을 찾은 장인 어른의 방문이 의외였을지 모르나
사위 한서방은 온갖 음식을 주문해 놓았고, 고급 술(로얄살루트 21년산, 발렌타인 30년산)과
안주까지 이미 푸짐하게 준비해 놓고 있었다. 점심 먹고 나니, 바닷가로 가자며 서두른다.
밖에는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는데..... 주인의 친절을 무시하는 것은 손님의 실례!
여수의 오후 바다는 바람과 함께 비를 흩뿌리고 있었다.
자그마한 공간을 차지하고 비를 맞으며 웅천 바닷가에 텐트를 쳤다.
금주의 두 아들 성빈, 성준이는 구명조끼를 입고 바다에 뛰어들기 바쁘다.
다행히 바닷물이 그리 차지 않아서 물놀이 하기에는 그런대로 괜찮다.
비바람이 불어서 텐트를 치기가 쉽지 않았는데, 다 끝내고 나니 그런대로 괜찮다.
한서방과 큰딸 고은이가 텐트 상태를 점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술을 좋아하는 나는 벌써 캔 하나를 따서 마시기 시작한다.
허옇게 드러난 다리가 다소 민망할지 모르나 여기선 용서가 되리라.
내 아들, 한별이가 요즘 멋을 한껏 부리고 있는 것 같다.
평소에 얼굴 보기가 쉽지 않아서 같이 가자 해서 여수까지 데려왔는데 잘한 것 같다.
술도 한 잔 권하니 잘 받아 마시고, 여자친구 이야기도 잘 들려준다.
귀여운 외손주를 데리고 계시는 아버지, 오늘의 베스트 드레서 되시겠다.
근데, 툭하면 가슴을 헤쳐놓고, 바지를 걷고 하셔서 품위(?)가 다소 떨어져서 아쉽다.
그러나 워낙 솔직하신 분이라서 식구들에겐 아무런 흉이 되지 않는다.
막내동생 부부, 김서방도 이제는 불혹의 나이를 넘어섰다. 언제나 그렇게 행복하게 살도록.^^
오른쪽으로 보이는 섬이 '장도', 썰물때는 육지와 데크로 연결이 되는데,
밀물 때는 섬과의 연결이 끊기고, 바로 앞까지 바닷물이 들어와 일렁거린다.
아버지는 사진 찍기에 바쁘시고, 어머니는 소주 한 병을 들고 계신다.
금주는 개구쟁이 두 아들 저녁 먹이기 전쟁을 한바탕 치르고 있는 것 같고,
멋쟁이 고은이는 텐트 안에서 화장을 고치고 있다. 한별이는 어디 갔을까?
저녁 식사로 준비한 오리고기 5킬로그램, 동생 남주가 먹기 좋게 양념을 했고,
불판에 그 고기를 구워먹으니, 꿀맛이 따로 없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바닷가의 즐거움이다.
한별이가 굽고, 김서방이 굽고, 내가 굽고, 아내가 도우면서
그 많던 오리고기도 이젠 막바지다. 술 안주로 기막히게 어울렸다.
한고은과 한지은, 두 외손녀의 모습을 담기 위해 외할아버지는 사진기를 들이대시지만,
사진을 잘 찍히려 하지 않는 녀석들은 조금은 괴롭다. 패션디자인을 공부하는 고은이는
요즘 자신의 미모를 한껏 자랑하고 있다. 마냥 조용하기만 했던 녀석인데 밝아져서 좋다.
아빠 곁에서 뭔가를 마시고 있는 지은이(초등 4), 어느 새 안경을 끼고 있다.
아토피 피부로 고생을 좀 했는데, 요즘은 거의 나았다고 하니 참으로 다행이다.
몇 년 전, 외삼촌과 외숙모의 얼굴 초상화를 연필로 그려주던 귀여운 모습이 기억난다.
이남주, 이금주, 두 자매는 오늘 그저 좋다. 앞에 맥주가 놓여있지만 틀림없이 금주의 몫이다.
남주는 언제부턴가 술은 입에도 안 된다. 독실한 기독교인이 되었던 것이다. 우리 형제 자매와 부모님은
남주 동생한테 늘 전도의 대상이 되어 왔으나 좀처럼 변화가 없어선지 요즘은 좀 시큰둥하다.^^
귀한 사진 하나 찍었다. 어둠을 배경으로 부모님, 3남매가 활짝 웃으며.........
이번엔 브이자 손을 옆으로 눕힌 며느리와 검은모자의 손자 한별이를 넣어 본다.
아버지의 중절모는 삼베옷과 잘 어울리고 어머니의 진보랏빛 웃옷도 보기에 좋다.
남주의 차분한 브이자 손가락, 금주의 TAKE 모자도 자연스럽다.
아파트 입주 기념으로 아버지께서 사 주셨다는 소파 위에 성준이는 잠들어 있고,
성빈은 아빠 곁에서 어른들 이야기에 귀기울이며 틈틈이 먹을 것을 찾는다.
나는 장인에게 고급 양주를 따라드리는 사위의 따스한 마음을 읽어서인지 그저 흐뭇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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