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의 서재 / 소설가 조정래
<조정래에게 서재란?>
작품의 산실, 보물창고, 영혼의 감옥
작가한테 서재라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는데, 나의 경우는 첫 번째는 제 작품의 산실이지요. 모든 작품을 서재에서 쓰는 것이기 때문이죠. 그리고 두 번째는 서재는 독서를 하는 장소인데, 세계의 유명하다는 작가들, 그리고 내가 필요한 책들이 보관된 지식인들의 영혼의 보물창고라고 할 수 있겠죠. 그리고 내 작가의 삶을 구속하는 영혼의 감옥이기도 하고, 영혼의 재창조의 장소이기도 하고… 그런 것이 제 서재의 여러 가지 의미입니다.
저는 지금 작가생활 40년이 됐는데, 그 동안에 한번도 마음에 드는 서재를 가져보지 못했어요. 왜냐하면 아파트에서 살다가 빌라로 옮긴 지 10년 됐는데, 아파트든 빌라라는 것이든 전부 기성품이잖아요. 인스턴트, 한 사람이 설계해 가지고 만들어 놓은, 그러니까 생활인들에게는 편리하지만, 작가에게는 아주 불편한 장소예요. 그래서 저는 서재가 마음에 안 드는 채로 작가생활을 했는데, 앞으로 기회가 되면, 새로 집을 지어져 한 20평에서 30평짜리 넓은 서재를 두고, 구석구석마다 책상을 갖다 놓고, 남쪽으로는 강이 보이고 북쪽으로는 산이 보이는 그런 풍광이 아름다운 내 서재를 갖기를 소망하고 있습니다. (갖고 있는 책의 구성은) 대개의 작가가 그렇겠지만, 특히 저 같은 경우는 문학책이 80%, 그 다음에 나머지 15% 정도가 역사, 사회학 서적, 나머지 5%가 철학 내지는 미술, 음악 관계의 서적들, 그리고 위인전 이런 것들로 구성되어 있는데, 대개 문학책 위주이기 때문에 소설, 시, 그리고 역사책 그 세가지로 분류를 하고 있지요.
(김초혜 시인과 내 서재는) 절대로 합해질 수가 없는 것이, 시와 소설이 다르고, 김초혜 선생과 내가 결혼할 때 약속한 게 있어요. 우리는 서로의 문학세계를 존중하되 간섭하지 않는다. 그 원칙을 지금까지 지켜왔어요. 결혼 44년 동안. 그래서 서재도 각기 완전 독립하고 필요한 자료들만 있으면 가서 빌려다보고 다시 제자리에 꽂는 원칙을 철저하게 지켜왔습니다. 앞으로도 지켜갈거고요.
애착이 가는 인물들을 굳이 꼽자면 <태백산맥>에서 하대치와 외서댁. 그리고 <아리랑>에서 공허스님과 필녀. 그리고 <한강>에서 유일표와 강숙자예요. 지금 들으시면 아시겠지만, 전부 남녀가 균등하게 한명씩이예요. (애착이 가는 이유는) 첫 번째가 그들이 가장 개성적인, 살아있는 인물들이고, 두 번째로는 주제를 가장 잘 실어서 독자들에서 전달해주는 중개인들이고, 세 번째가 그들의 개성이 많은 사람들에게 매력을 줄 수 있는 개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세 가지 이유가 그 인물들을 특히 사랑하는 이유가 되겠지요.
프랑스 작가 빅토르 위고 같은 사람들은 제가 문학청년 시절부터 존경해 왔고, 그런 작가가 되고 싶었고… 그 이유는 사회의식과 문학성을 가장 조화롭게 잘 승화시킨 분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죠. 그런 인물들, 그 소설의 인물들이 좋고. 그리고 인간이 인간이기 위해서,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것이, 인간 생존의 가장 기본적 소망인데, 그 인간다움을 가장 잘 승화시켜 놓은 작품들을 좋아해요. 그래서 최근에 읽은 주제 사라마구가 쓴 <눈 먼 자들의 도시> 그런 작품들도, 인간이 인간답지 못하고 얼마나 사악하고 잔인하고 더러울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어서, 잘 쓴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역사라고 하는 것을 사람들은 어렵게, 또는 거리가 멀게 생각하는데 잘못된 생각이에요. 역사는 우리 인간의 삶 자체, 우리의 삶도 현재일 때 우리의 삶이고 시간이 지나버리면 역사가 되는 거지요. 다만 역사라는 것은 큰 사건, 기록해야 할 가치가 있는 것들만 골라냈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에요. 그러므로 역사를 모른다는 것은 오늘날 우리의 삶에 대한 책임을 갖지 않는다는 것이고, 과거를 모르면 현재는 말할 것도 없고, 미래의 삶조차도 전혀 전망을 못하게 되어 있는 거예요. 그래서 역사에서 배운다는 말을 하는데… 특히 우리나라처럼 숙명적으로, 운명적으로, 좁은 땅덩어리에서 끝없이 핍박 받고 침략 받으면서 고통스럽고 괴로움 속에 살아온 우리민족 같은 경우엔 역사를 모르면 또 그런 일을 당할 수밖에 없게 되어 있기 때문에 역사를 알아야 된다는 거고, 그 이야기를 하는 것이고. 그런 측면에서 문학과 역사는 불가분의,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어요. 그래서 우리 민족이 서러움과 고통과 괴로움을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도 인간답게 살아야 된다, 우리의 인간이라는 존엄성을 가져야 된다는 뜻으로 저는 우리의 근현대사 100년을 굳이 대하소설 32권으로 썼던 것이고, 그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서 ‘역사를 보는 눈이 달라졌다’ 하는 말을 들을 때 저는 글 쓰는 사람으로서 가장 큰 보람을 느끼고 무언가 성취되었다는 만족감을 느낍니다.
우리 흔한 말이 그런 게 있죠.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게 낫다. 마찬가지로 저 당나라 시대부터 백 번 읽는 것보다 한번 옮겨 베끼는 필사가 더 효과가 있다는 것이에요. 필사는 정독 중의 정독이거든. 그래서 우리 아들, 며느리에게 니 애비가 어떤 고통 속에서 이 글을 썼는가를 알아라, 그래야 내 새끼로서의 자격이 있다. 그런 뜻으로 필사를 시킨 것이고, 독자들도 필사를 하게 되면 태백산맥 문학관에 놔줄 수 있냐고 최근에도 확인이 왔어요. 그래서 필사를 정말 다 하시면 그러겠다고 했어요. 그러나 정말 필사하기는 쉽지 않을 거예요. 우리 아들과 우리 며느리는 자식, 며느리의 의무 때문에 억지로 마지못해서 하는 부분이 있어요. 알아요. 그러나 서른 두 권을 쓴 사람에 비하면 필사는 훨씬 쉬운 일이니까 정말 쓰는 독자가 있을 수 있겠죠. 쓰시면 반드시 태백산맥 문학관에 전시해 드리겠습니다. 이름 명확하게 박아서.
사회적 고민을 가진 책이라는 것은 한 사람의, 짧게는 10년, 길게는 평생의 영혼의 작업이 응축, 줄여서 모아진 액기스예요. 그런데 그것들이 수 없이 많이 나오는 것 중에 또 고르고 골라놓은 것들을 명저, 명작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내 영혼이 깨어있기를 바라고, 내가 사물을 새롭게 볼 수 있는 능력이 있기를 바란다면, 그리고 내가 사람으로서 품격을 지닌 지식적 교양인이고 싶어 한다면은, 책을 읽지 아니하고 어찌 하겠는가. 그 다음, 밥 먹을 때, 고통스럽게 먹는가? 항상 즐거움으로 먹는다. 정신의 배고픔도 또한 느낄 줄 아는 자에게는 독서가 왜 필요하냐고 말하지 아니할 것이다. 배가 고파서 밥을 맛있게 먹듯이 영혼의 배고픔을 항상 느끼는 자는 책을 맛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그 선택을 못하는 자에게 책을 읽으라고 말하지 말라. 그 선택을 잘하는 자에게 왜 너는 책을 읽느냐고 묻지 말라.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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