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손잡이/ 김광규
남들은 모두 오른손으로
숟가락을 잡고
글씨 쓰고
방아쇠를 당기고
악수하는데
왜 너만 왼손잡이냐고
윽박지르지 마라 당신도
왼손에 시계를 차고
왼손에 전화 수화기를 들고
왼손에 턱을 고인 채
깊은 생각에 잠기지 않느냐
험한 길을 달려가는 버스 속에서
한 손으로 짐을 들고
또 한 손으로 손잡이를 붙들어야 하듯
당신에게도 왼손이 필요하고
나에게도 오른손이 필요하다
거울을 들여다보아라
당신은 지금 왼손으로
면도를 하고 있고
나는 지금 오른손으로
빗질을 하고 있다
- 시집 <좀팽이처럼> (문학과 지성사,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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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의 화자가 시인 자신을 일컫는다면 김광규 시인은 왼손잡이인 모양이다. 시를 쓰고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데엔 왼손잡이이든 오른손잡이이든 불편이나 큰 차이가 있을 게 없다. 문제는 일상에서 겪는 불편함인데 가위도 오른손잡이용, 문고리도 오른손잡이가 편한 방향이다. 카메라, 노트북 등도 오른손잡이의 입장에서 만들어졌고, 지하철 개찰구도 오른손잡이 위주로 찍고 들어가게 되어 있다. 군대의 총도 오른손잡이용이다. 알게 모르게 우리는 오른손잡이 사회였고 왼손잡이는 나쁜 버릇으로 규정짓는 사회였다.
정일근 시인의 <오른손잡이의 슬픔>이란 시가 있다. ‘오른손이 아프고 부터 왼손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나는 오른손 왼손을 평등하게 가지고 태어났으나/ 태어나면서 나는 오른손에 힘을 주며 세상을 잡았다/ (중략) 오른손이 아프고 부터 왼손으로 세상을 잡는다/ 왼손으로는 지푸라기 하나 쉽게 잡히지 않는다/ 자꾸만 놓치고 마는 왼손의 미숙 앞에/ 오른손의 편애로 살아온 온몸이 끙끙거린다/ 오른손잡이도 왼손잡이도 절반을 잃고 산다/ 손은 하나다 두 손을 모아야 기도가 되듯이/ 마주쳐야 소리가 나듯이’
오른손을 편애하며 살아온 오른손잡이에게도 몇 가지 왼손 습관은 있는 것 같다. 전화기를 들고 왼손으로 턱을 고이는 것 말고도 내 경우 왼손으로 돈을 세고 고스톱을 칠 때도 왼손으로 패를 때린다. 누구나 왼손과 오른 손이 다 필요한데 어째서 왼손을 차별하고 비난하는 걸까. 오른손으로 밥을 먹고 왼손으로는 뒷일을 처리하는 인도나 이슬람 사회처럼 왜 왼손을 차별하고 대접을 해주지 않는 걸까.
지난 8월 13일은 세계 왼손잡이의 날이다. 왼손잡이들의 인권신장과 인식변화를 추구하기위해 영국의 왼손잡이 협회에서 제정해 시작된 날이다.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오른손잡이 위주의 세상에서 소수자인 왼손잡이들이 겪는 어려움을 전 세계에 알리고 편견을 줄여보고자 하는 취지에서 제정되었다. 무엇보다 ‘왼손잡이는 나쁘다’ ‘고집이 세다’ ‘유전이다’ ‘왼손은 더러운 손이다’ ‘억지로라도 고쳐야 한다’ 등의 잘못된 시선과 인식을 바꾸는 게 먼저겠다.
ACT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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