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진주에서 결혼식이 있어서
아내와 함께 갔다가 저녁무렵 돌아왔습니다.
진주성 안의 단풍이 좋아서 한참을 머물렀더랬지요.
남강의 정취와 예쁜 내 아내 사진도 올려 봅니다.
진주성 건너편에서도 한 장면 찍었어요.
진주성 성곽위에서 아래로 보이는 의암입니다.
적장을 끌어안고 남강에 몸을 던진 논개의 혼이 머물고 있는 듯 합니다.
가까이 가서 본 의암(義巖)입니다.
진주성 안의 단풍든 모습
건축가 김원의 스승 고 김수근 선생께서 설계한 진주국립박물관
박물관 앞의 공연장 같은데, 사방 어디에서든 관람할 수 있도록 설계되었고,
동글동글 잘 깎여지고 단장된 꽝꽝나무의 귀여움도 돋보이는군요.
'강낭꽃보다도 더 푸른' 남강의 물결 위에 오래도록 머물고 싶었습니다.
결국 잎을 떨궈내야만 하는 어느 나무의 절규 같지 않나요?
단풍이 좋아서 소녀처럼 호들갑을 떨던 아내입니다.
이렇게 분위기 좋은 진주란 곳을 함께 오게 돼서 좋았다면서
차를 몰고 데려온 신랑에 대해 얼마나 고마워하던지.....
1979년 우리 대학교 2학년 때, 지리산 등산을 가면서 들른 곳이 저 뒤의 진주성이었는데 저 촉석루 안의 의기사(논개사당)에 들러 참배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그 사당을 지키던 한복입은 여인이 한 분 있었는데, 우리 일행들에게 참배를 하고 갈 것을 요구했고, 우리들은 김은호 화백이 그린 논개영정 앞에 절을 하게 되었지요. 난 그 때 안경을 사당 옆에 벗어두고 절을 했습니다. 안경을 끼고 참배하는 것이 논개에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판단했던 것 같아요. 근데 문제는 참배를 끝내고 그 안경을 거기다 두고 왔다는 것이고, 지리산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 한참 갈 때까지도 안경을 사당에 두고 온 사실을 몰랐다는 겁니다. 그때 병국이가 그 안경 분실 사건에 대해서 해석을 참 잘해 주었지요. 논개의 혼과 나의 혼이 교감한 탓에 내가 잠시 정신을 놓았던 것이라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나도 '논개'란 제목의 시를 하나 써서 당시 야간학교 문집인 <삼태성>에 실었던 적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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