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10시경에 들른 옥산서원은 옛날과 다름이 없었으나 인적이 드물었다.
휴일이라 사람들이 제법 들를 법도 하건만..... 오전 10시가 너무 이른 시간이라는 결론?
'굳세고 정갈한' 저 현판의 글씨는 추사 김정희 선생이 썼다고 한다.
아계 이산해가 쓴 또 다른 현판 글씨도 저 현판 뒤에 있다고 하건만 확인하지 못했다.
두 분 모두 명필이었음에 틀림없으나 존경하는 회재 선생을 모신 옥산서원의 현판인 만큼
같은 시대의 두 명필이었다면 서로 앞 다투어 쓰려고 하지 않았을까 싶다.
시기적으로 유추해 본다면 아계(1539~1609)의 글씨로 쓴 현판이 오랫동안 걸려있다가
추사(1786~1856)의 글씨가 등장하면서부터 지금의 글씨로 교체되었을 것이다.
병산서원에 만대루(晩對樓)가 있다면 옥산서원에는 무변루(無邊樓)가 있다.
무변루의 뒷부분, 정문격인 역락문에서 보면 앞 부분이다. 오른쪽을 문을 통과해서 마당에 올라서면
양 옆으로 동재와 서재가 있고, 정면으로 보이는 것이 옥산서원 현판이 걸린 구인당이다.
옥산서원의 건물 배치도
경각의 툇마루에 올라서 오른켠으로 내려다볼 때의 모습이고 오른쪽 끝은 회재의 위패를 모신 체인묘의 담장이다.
회재 이언적신도비의 해서체 글씨도 아계 이산해 선생이 썼다. 얼핏 봐도 보통 명필이 아니다.
옥산서원 옆 자계천 계곡으로 가면 '세심대(洗心臺)'라는 곳이 있다.
흘러가는 물에 탁한 마음을 씻어내리면서 마음의 평화를 갈망하던 곳이 아닐까 한다.
글을 읽으면서 공부한다는 것이 예나 지금이나 온갖 유혹과의 싸움일 수도 있기에
수시로 마음을 다잡고 자기수련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을 것이다.
독락당의 주인인, "이언적 (李彦迪:1491∼1553)"에 대해서 알아본다.
조선 중기 문신·학자. 초명은 적(迪), 자는 복고(復古), 호는 회재(晦齋)·자계옹(紫溪翁). 본관은 여주(驪州).
1514년(중종 9) 문과에 급제하여 이조정랑· 장령, 밀양부사 등을 지냈다.
1531년 사간에 있으면서 김안로(金安老)의 중임을 반대하다 파직되어 경주(慶州) 자옥산에 들어가 성리학연구에 전념했다.
1537년 김안로가 죽자 종부시첨정으로 다시 관직에 올라 전주부윤으로 있으면서 선정을 베풀었다.
이때 조정에 <일강십목소(一綱十目疏)>를 올려 정치의 도리를 논하였다.
1545년(명종 즉위년) 좌찬성에 오르고 을사사화 때 추관(推官)을 지낸 뒤 관직에서 물러났다가
1547년 양재역 벽서사건에 무고하게 연루, 강계(江界)로 유배되어 그곳에서 죽었다.
그는 조선시대 성리학 정립의 선구적인 인물로,
조한보(曺漢輔)와 태극(太極)에 대한 논변을 벌임으로써 조선 성리학 논쟁사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했다.
1517년 영남지방의 학자인 외숙 손숙돈(孫叔暾)과 조한보 사이에 토론되었던 무극태극논쟁(無極太極論爭)에 참여하여,
주희(朱熹)의 주리론적 입장에서 두 사람의 견해를 비판하고 자신의 학문적 견해를 밝혔다.
저서로는 《구인록(求仁錄, 1550)》《대학장구보유(1549)》 《속대학혹문》《회재집》 등이 있다.
문묘와 경주의 옥산서원에 배향되었다. 시호는 문원 (文元)이다. - 참고자료 인용
독락당 마당 끝에서 담장 밖으로 자라고 있는 향나무 한 그루
독락당에서 자계천을 바라볼 수 있도록 담장의 일부는 나무 창살로 처리한 것이 흥미롭다.
독락당의 대청에서 담장을 통해 계곡을 바라다볼 수 있으며 시원한 계곡의 바람이 집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한 것일 것이다. 자연을 그대로 이용한 독락당의 건축미학이라고 볼 수 있겠다.
담장을 세워 외부로 향하는 시선을 막았지만, 그래도 자연을 가까이서 보고 싶은 마음이었을까?
좁은 창살 사이로 사물을 볼 수 있게 한 것은, 회재의 절제된 학문수양 방식을 반영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창살 사이로 계곡을 보이게끔 한 것 또한 끊임없이 흐르는 물에서 쉽없는 수양의 필요를 느끼고
막힌 곳은 돌아가고, 고여있다가도 이내 흘러가는 물의 지혜를 배우고자 했으리라.
자계천 옆 자연석 위에 자리잡은 계정(溪亭), 독락당의 백미다.
현판 '계정'의 글씨와 아래 사진의 현판 '인지헌'의 글씨는 명필인 한석봉의 글씨다.
서원과 독락당을 둘러보고 세심마을을 빠져나오다가 어느 카페 앞 수국이 눈에 띄어 카메라를 들이댔다.
물구나무선 항아리 바닥에 자태를 드러낸 보랏빛 수국은 시들어가는 자신의 모습이
조금은 수줍었던지 바람에 자꾸만 너울너울 흔들리면서 얼굴을 가리려고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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