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1.30) 포항 환호동 '꽃산가는길'에서 매산 황영진 선생 시집 출판기념회를 가졌다.
출판기념회 장소는 덕산 시인의 사모님께서 운영하시는 카페이기도 했다. 사모님의 사업 번창을 기원하고
매산 황영진 시인의 첫시집 '벽시계 안 밑구녕' 출판을 기념하는 자리이니 '일석이조'라고 할 수 있다.
동대구역에서 릉보, 남전, 시안 형님을 만나 포항 행사장에 도착했을 때는 오후 5시쯤이었다.
오늘의 주인공 매산은 이미 와 있었다. 몸이 안 좋아 사모님이 포항까지 차에 태워주었다고 한다.
목디스크로 고생 중이고, 체중이 갑자기 많이 빠져서 그 원인을 찾고 있단다.
매산 시인의 건강 회복을 기원하고 '꽃산 가는 길'의 사업 번창을 기원하는 마음을 담아 건배하면서 모임을 시작했다.
꽃산 카페의 바로 밖은 환호공원이다. 공원을 끼고 있는 곳이라서 분위기가 꽤 좋다는 판단이다.
'밥 있는 카페'이니 식사와 차를 동시에 즐길 수 있어서 좋다. 포항 환호공원에 들를 일이 있을 때는 꼭 한번 가 보시라.
주인장께서 아끼시고 있는 듯한 분재다. 명자꽃(산당화)인가, 아니면?
황영진 시인의 '벽시계 안 밑구녕'이란 시집을 다 읽고 쓴 후배 송춘길 시인의 비평글을 인용하고자 한다.
그의 시가 어떻게 평가되고 있는지를 비교적 객관적으로 쓴 글이라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다.
시 공부를 할 때, 시를 가르칠 때, ‘시는 분석하고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감상하고 깨달아 자기 삶으로 내면화하는 것이다.’라고 입에 거품을 물곤 했다. 시를 쓸 때, 다른 사람의 시를 읽을 때, “시는 참 좋아. 긴 이야기를 주저리 주저리 늘어놓지 않아도 되고, 그저 한 방에 할 얘기 다 녹여내니까.”라고 가슴 먹먹하곤 했다. ‘말과 여백’이라는 시동호회 활동을 열심히 할 때, 먹고 살기 바쁘고 힘든 와중에도 시심을 애써 퍼 올릴 때, “배 고프면 밥 먹어야 하고, 술 고프면 술 마시듯이, 외롭고 슬프고 기쁘고 사랑하면서 살아가는 매 순간 순간마다, 삶의 한 흔적으로서 시는 늘 우리 곁에 있다.”라고 위로를 받곤 했다. ‘빈 어깨를 슬그머니 내어 주는 시’에게 머리를 기대곤 했다.
시는 돈이 되지 않는다. 시로 출세하기 힘들고 시로 명예나 명성을 얻는 사람도 거의 없다. 오늘 우리는 시를 잘 읽지도 않고 시를 잘 쓰지도 않으며, 시인이라고 우쭐거리지 않는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제는 모든 사람들이 다 시인이다. 휴대 전화기의 문자 메시지든지, 카카오톡으로 실시간 의사소통을 하는 시대다. 따라서 사람들은 압축과 상징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면서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전하고 있기에 수준의 차이가 있을 뿐, 지금 현대인들은 모두다 시인인 셈이다. 하루에도 수십 편씩 시를 쓰고 읽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우리는 항상 뭔가 부족한 느낌, 뭔가 허전한 느낌, 마음의 빈 공간으로 스산한 바람이 쓱 지나가는 것 같은 느낌에 헤매고 있다. 슬픔과 울음으로, 혹은 기쁨과 환희로 카타르시스를 경험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감정과 여운과 여백으로 삶을 채우고 넘치게 할 때 다시 시작할 수 있는데, 스트레스와 고됨으로 채우고 있으니 감동과 흥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말 오랜만에 우리는 이 얄팍한 시집 한 권에서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슴 먹먹한 꽉 채워짐’을 함께 나눌 수 있게 되었다. 그건 나만의 생각이고 평가일 수 있지만, 그래도 분명한 것은 ‘완결된 삶의 이야기로서 시의 효용성’을 이 시집에 수록된 거의 모든 시편들에게서 확인하고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은 분명하다. 나는 이것을 ‘이야기 시(스토리텔링 포잇)’라고 규정한다. 시 한 편을 읽는 것이 단편 소설 한 작품 읽는 것과 거의 비슷하고, 그 감흥도 비슷하다. 다만 소설에서 발견하지 못하는 감정의 여백을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무한하게 확장시킬 수 있는 측면에서 황영진의 시편들은 참 괜찮은 본보기가 될 것이다. 굳이 실례를 들어 설명하고 싶은 욕망을 애써 참는다. 가끔씩 시를 읽는 사람일지라도, 학교에서 국어 시간이나 문학 시간에 시험 풀기 위한 시 공부를 한 사람일지라도, 스스로 충분히 느낄 수 있고, 그 이야기에 푹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이 시집이 갖고 있는 가장 큰 장점이자, 독자들에게 가슴 먹먹함을 안기는 큰 힘이다.
다음으로 이 시집을 전체적으로 관통하고 있는 단 한 개의 시어는 바로 ‘슬픔’이다. 그 슬픔은 바로 시인 본인을 비롯하여 시인과 가장 가까운 부모, 형제, 사랑하는 사람 등과 같은 이들에 대한 애정과 감사함의 다른 말이다. 그리고 그 슬픔은 ‘가난’과 늘 더불어 함께 나눌 수밖에 없었던 숙명이고, 시인은 숙명적으로 이를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삶 속에서 참 의미를 찾고자 했다. ‘저를 자기 긍정에 이르게 한 것은 놀랍게도 슬픔이었다.’라고 시인은 이 시집의 맨 앞장에 고백하고 있다. 그래서 시인의 이야기는 현재나 미래에 대해 것이기보다 과거에 머무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나는 이를 ‘과거의 회상’이나 ‘추억의 반추’라고 결코 말하고 싶지 않다. 과거의 슬픔이 오늘이나 미래의 힘이 되고 용기가 되고 쓸모 있는 이정표가 되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정말 쉽게 발견하고 깨닫게 해주는 것이 바로 이 시집의 또 다른 큰 힘이다.
사는 게 결코 만만하지 않는데, 어떻게 사느냐를 아는 것이 어찌 그리 쉽겠는가? 그런데 이 시집의 시편 하나하나를 읽으면 우리 같은 무식한 독자들도 “아! 이런 생각으로 살아가는구나! 이런 생각들이 나를 위로하고 나에게 위안을 주고 나를 다독여 줄 수 있구나!”하는 생각쯤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웬만하면 40여 편이 수록된 이 시집 한 권을 하루 아침에 다 읽기보다는 하루에 서너 편씩 한 일주일 정도 나누어 읽기를 권한다. 이 시집이 갖고 있는 분명한 한계와 부족함이 없지는 않다. 십대나 이십대 정도의 나이와 계층의 독자들에게는 감정이입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시인처럼 살아보지도 못했으며,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이해하기 힘들 것이며, 그런 이야기가 자신들의 삶과는 상당히 유리되어 있기에 공감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아직 검증이 되지 않았을 뿐이다. 나이 어린 젊은 독자들도 실제 체험에서 공감하는 바는 적을지 모르지만, 상상력이 가져다주는 공감 체험을 통해 폭발적인 감동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추측해 본다. 근본적으로 슬픔으로 울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고, 이 시집 1부에 실린 작품들은 나이에 상관없이 특히 그런 상상력에 빠지게 만드는 끌림과 울림이 있는 시들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시인과 동시대를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는 사오십대 독자들에게 이 시집은 정말 크나큰 보물이다. 우리 같은 평범하고 부족한 독자들은 거의 다 이렇게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러니 공감이 크고, 울림과 감동이 큰 셈이다. 그리고 그 시절의 그리운 사람들이 이제는 우리 곁에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그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리기만 해도 그립고, 회한의 생채기가 가슴을 긁고 지나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기억이 우리를 카타르시스에 빠지게 한다. 더 잘 살아야지 하는 힘과 용기가 된다.
백 마디 비평보다 한 번 읽어보기를 권한다. 스스로 감상하고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볼 수 있을 것이다.
오른쪽의 현수막에 쓰인 이름들 가운데 나만 등단 시인이 아니다. 시를 좋아하고 시를 즐겨 써 왔던 내가
언제부턴가 시를 쓰지 않게 된 것은 너무 관념적인 시를 쓰고 있는 나 스스로에 대한 실망이기도 하고
짧은 시보다는 호흡이 길 글을 써 봐야 하겠다는 생각이 더 강해서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 호흡이 긴 글도
언젠가부터 한계처럼 다가오기 시작했다. 하고 싶은 말이 어찌 그리 많은지 주제가 집중되지 않았던 것이다.
'말은 많아서 편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 쓰기 시작한 산문이 나에게는 어쩌면 군더더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얼마 전부터 시를 다시 써야겠다는 결심을 굳히기에 이르렀다. 늘 내가 만나는 분들이 시인들이라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적어도 유인회의 입장에서는 시 안 쓰는 내가 안타까웠을 것이고 되도록 시를 썼으면 하는 바람이 있을 것이다.
대구경북 작가회의와 교육문예창작회에도 함께 참여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을 것이라 믿는다.
시안 형은 대금 연주자로 오랫동안 활동하고 계신다. 이 날도 대금과 관련된 얘기를 한참 동안 들려주셨다.
매산의 시집 중에 '너에게로 가는 길'이란 시를 낭송하면서 시에 대한 나의 태도를 곁들여 이야기하는 장면이다.
시집에 실린 작품 중에 가장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시 하나를 골라 낭송하고 관련된 이야기를 하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유인회 회원 모두는 매산의 시 한 편 한 편의 문학성을 높이 평가했고, 첫시집인 만큼 대경 작가회의 차원에서 북콘서트를
꼭 한 번 할 필요가 있다며 매산 시인의 결심을 촉구했다. 그러나 매산은 우리끼리의 출판기념회에 충분히 만족한다고 했다.
릉보 김종인 시인은 2007년까지 5편의 시집을 내었고, 해마다 40~50편의 시를 쓰고 계신다.
원고 청탁이 들어오면 써 놓은 시를 언제든지 투고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있는 분이시다.
최근 10년 가까이 시집을 내지 않아서 마음만 먹으면 시집 한두 권 정도는 출판이 가능하다고 본다.
작년 2월말 교직에서 명퇴한 이후, 고향인 김천 초곡동을 자주 찾는다고 한다. 거기에 이미
11평의 목조주택을 지어놓고, 농사짓기는 물론 토종닭도 기르면서 소박한 삶을 살고 있다.
최근에는 거기에 2평 규모의 원두막을 짓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어서 완공되는 대로
유인회 모임 장소로 제공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기대됩니다. 형님,'
릉보 형은 또 10년 이상 서각(書刻)을 해 온 분이시기도 하다. 몇날 몇일이고
열심히 새겨서 가까운 분들께 선물해 주시기를 좋아하는 따스함을 지니셨다.
아버지가 살고계신 선산의 '열호재' 현판의 서각도 릉보 형 작품이다.
자정 무렵, 술자리를 파하고 덕산형께서 두호동에 예약해 놓은 숙소[천호장]로 가서 홍어 안주를 구해
소주와 맥주를 마시면서 티비로 중계되는 한일전 축구(3:2 한국 역전패)를 지켜보다가 새벽까지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눴다. 릉보 형은 일찍 잠이 들고 매산과 나는 마지막까지 담소하다가 잠을 청했다.
다섯 명이 자기에는 방이 다소 비좁고 너무 더운데다가 코고는 소리에 특히 시안 형은 힘들었단다.
그래도 잠은 일찍 깨어 숙소를 나와 북부해수욕장 일대를 산책하기로 했다. 영일만 건너편 포스코의 위용이 다소 낯설었다.
남전과 매산
남전과 논강
릉보와 시안
논강과 매산
10시 30분 경에 꽃산가는 길로 가서 아침 식사를 하기로 되어 있는데 아직 여유가 많다.
바닷가 쪽으로 좀더 둘러 보기로 했다. '앗, 저분들은?'
파도 타기를 즐기는 윈드서핑 동호회원들의 대담함이 놀라울 뿐이다.
이 추운 겨울에도 자신의 취미를 굽히지 않는 용기가 정말 부럽다.
낚시꾼들이 즐겨찾는 방파제 옆 어느 횟집에 들러 해장술 한 잔 하면서 싱싱한 도다리회를 시켜 입에 넣어 보았다. 최고의 맛이었다.
여기 눌러앉아 매운땅까지 먹으면서 아침 식사를 하고 싶은 생각도 있었지만 미월 형수님의 정성어린 아침상을 생각하며 일어났다.
아침 식사는 물곰탕이었다. 술을 마신 다음 날 해장에 가장 좋은 음식이라고 볼 수 있는데
미월 형수님께서 일부러 시장에 가서 거금을 주고 사온 물곰을 푹 삶아 아침 해장국으로 준비한 것이다.
호가 미월인 형수는 내가 울진 매화종고에서 근무하던 시절 한문을 나한테서 배웠으니 특별한 인연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나의 선배와 결혼을 했으니 제자가 아닌 형수님이 되어 버린 것이다. '형수님, 행복하세요.'
1박 2일간의 유인회 모임을 마치면서 덕산 형님 내외와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매산은 대구로 버스를 타고 먼저 떠났고, 남전, 릉보, 시안 형님을 모시고 나는 경주로 차를 몰았다
세 선배님의 국어과 동기이고 경주의 건천에 사는 소설가, 정자현 작가님을 만나기 위해서다.
나와는 국어과 선후배로서 대학시절 복음고등공민학교에서 함께 활동했던 인연으로 만나 왔던 분이다.
그러고 보니 시안, 남전, 자현 선배님이 모두 복음학교 선배님들이시네.^^ 놀라운 인연이다.
정자현 작가는 1년 전부터 고향인 건천 방내를 떠나 경주 성건동 동리생가 주변에서 살고 있다고 한다.
30대 중반에 중풍이 와서 더이상 교직에 있지 못하고 오랜동안 교단을 떠나 있는 바람에 가정 형편이 말도 아니지만
그 독설은 여전했다. 칼국수 한 그릇씩 먹으면서 환한 미소를 잃지 않고 얘기하는 선배님의 과거 이야기는 다소 공허했다.
요즘의 생생함이 없고 쓰라린 과거에만 얽매여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의 지적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소설로 쓸 수 있다면 멋진 작품이 나올 법도 한데.....
칼국수 점심을 먹고 나오면서 네 동기분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이 시대의 훌륭한 작가들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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